나는 요 근간에 광동제약 최수부 회장이 휴가중 지난 7월 24일 갑자기 심장마비로 별세했다는 기사를 조선일보 오피니언
양상훈 논설위원이 쓴 칼럼을 보고 알게 되었다.최부수 회장은 나의 고향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천내리' 바로 이웃 집에
살았던 고향 선배님 이다. 최근 몇년전에 강남역 근방 모쳐에서 재경 달성군 화원읍민대회 에서 얼굴을 뵈옵는 것이 마지막
이 될 줄이야 ... 나 보다 7곱살 연상이니 향년 만 78세 나이 치고는 적지 않은 인생을 살다 가신 분으로 생각 된다.
제약회사란, 회사 규모에 비하여 약의 선전비를 많이 지출 하다 보니 우리들에게 많이 알려진 광동탕으로 유명한 광동제약
의 최수부 회장 하면 왠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유명인중에 한 사람으로 꼽힌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사람이 자서전까지
출간하였다니 그의 입지전력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알 것이나 나의 어릴때의 추억이 되 살아 나는 건 어쩔수 없는 노릇 이리라.
타임 머신을 타고 60년 전을 거슬러 올라가면 1953년 정전협정을 맺은 해이기도 하다. 그 때야 먹을것, 입을것, 땔감이 태부족
하여 겨울철에는 먼산에 나무를 베어 지게 한짐 지고 오면 그것이 유일하게 생계를 유지 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 19세의 소년
가장인 최회장도 그 때는 나무꾼으로 행세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봄 철이면 낙동강 갯변에 참외 농사를 지어 장마전에 수확
하고 그게 끝나면 시골의 돼지를 자전거에 싣고 대구의 자갈마당 등지에 가서 팔았다.우리동내에선 돼지 장사로 유명해져 있었다.
언젠가는 시골 장 마당에 다니며 동동구리무(초기의 화장품 크림)를 팔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였는 데, 아마 이때 부터 최회장은
사업의 승기를 잡았는지 '경옥고' 라는 약단지 를 시골 장마당에서 팔기 시작하여 본격적으로 대구시를 중심으로 나중에는 전국적
인 무대로 진출하면서 지금의 광동 제약의 기틀을 닦았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우리가 어릴때 각 가정집에 '경옥고' 단지가 없는
집이 없었을 정도가 되어 있었다.물론 이러한 단계까지 도달할 때는 무수히 많은 고생에 고생을 거듭하며 버티고 견디며 살아 남
은 자 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자기확신을 실천한 분인 것 같다. 그는 초등학교 4년을 중퇴한 거의 무학자 이기에 무댓뽀로 통하는
회장 님이란다..
우리 주변에는 KAIST 나 서울의 명문대학을 다니거나 졸업을 했어도 그 사회에 잘 적응을 하지 못하고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사람
이 부지기 수로 많다고 한다. 이러한 분들에게 최수부 회장은 인생의 최후의 승리를 이룬 자의 교훈으로 영원히 기록 될 것이다..
Rod Mckuen - And To Each Season
Rod Mckuen (로드 맥퀸)
로드 맥퀸은 상당히 다채로운 경력을 가지고 있다. 1960대 후반 가장 잘나가는 시인중 하나였으며, 성공한 작사/작곡가, 영화음악가, 그리고 훌륭한 가수였다. 학자와 음악인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했던 사람이다. 또한 불어에 상당히 능통하여 벨기에 출신의 샹송가수 Jacques Brel의 가사를 영어로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했으며, 아카데미상에 두 번, 그리고 퓰리처상에 한 번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1933년 4월 29일 오클랜드에서 Rodney Marvin McKuen란 이름으로 태어난 로드 맥퀸은 어머니가 재혼을 한 이유로 의붓 아버지와 함께 생활을 하였다. 11살때 폭력을 일삼던 알콜 중독자인 의붓 아버지에게서 도망쳐 집을 나와 측량기사, 스턴트맨, 카우보이, DJ, 벌목꾼등 숱한 직업을 전전하며 힘든 생활을 하며 돈을 벌어 어머니에게 보냈다. 스스로 자신의 교육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은 로드 맥퀸은 각종 저널을 구독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그가 시를 쓰고 가사를 쓰게된 계기가 된다. 이후 신문사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을 하며 한국전에 참전하여 선전 문구를 작성을 하였다.
그는 1950년대 들어 "Dor"라는 필명으로 틈틈이 시를 쓰면서 시인의 길을 걷게 된다. 10개 국어 이상으로 번역된 그의 시집들은 지금까지 전세계적으로 6,500만부 이상 팔려, 상업적으로 유례가 없을 만큼 큰 성공을 거둔 시인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는 작곡 분야에서도 놀라운 재능을 보여, 멀리는 프랭크 시나트라와 페리 코모, 런던 필하모닉에서부터 가깝게는 마돈나에게까지 곡을 써줬으며, 팝과 클래식을 넘나들며 작곡한 곡이 무려 1,500곡이 넘는 걸로 알려져 있다.
미국으로 돌아와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하며 가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유명한 Purple Onion에서 처음엔 포크 송을 노래를 하게 된다. 이로인해 레코드사와 연결된 로드 맥퀸은 1950년대 후반 몇 장의 앨범을 Decca 레코드사에서 발표하였다. 그리고 (1956), (1958), (1958)와 같은 영화에 출연하여 연기활동도 함께하며, (1958) 등의 영화음악에도 손을 대게 된다. Lionel Hampton의 밴드와 함께 노래하기도 하였던 로드 맥퀸은 1959년 CBS TV쇼의 음악의 작곡과 진행을 위해 뉴욕으로 이주한다.
1960년대에 그는 Jacques Brel의 음악에 감명을 받고 그의 가사를 영어로 옮기겠다는 결심을 실천하기위해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Jacques Brel의 "Ne Me Quittes Pas" 그의 노력으로 인해 Damita Jo의 버전으로 특히 유명한 "If You Go Away"가 영어 가사로 엄청난 힛트를 기록했다. "If You Go Away"는 이후 많은 가수들이 앞다퉈 리메이크곡을 내면서 팝의 명곡으로 자리잡게 된다. 영국의 Walker Brothers 출신의 Scott Walker는 1960년대 후반 많은 로드 맥퀸의 레코딩하였고, Terry Jacks 역시 그의 곡을 취입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 후 수많은 가수들이 그의 곡을 부르게 된다. 자신이 발표한 음악도 좋은 반응을 얻었으나 그가 직접 발간한 시집도 베스트 셀러가 되는 등 음악과 문학 그리고 영화와 관련된 모든 일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던 대단한 예술가이다. 그의 시낭송 앨범인 [Lonesome Cities]은 1968년에 그래미상의 Best Spoken Word Recording 부문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로드 맥퀸의 음악은 가사가 상당히 뛰어나다. 거의 문학시와 같은 수준이다. 부드러운 멜로디와 더불어 상당히 운치있는 그의 목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으며 듣는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고 편안하게 감싸주는 매력이 있다.
1967년 로드 맥퀸은 Anita Kerr, 그리고 San Sebastian Strings와 팀을 이루어 [The Sea](1967), [The Earth](1967), [The Sky] (1968), [Home to the Sea](1969), [For Lovers](1969), 그리고 [The Soft Sea](1970) 등의 감미로운 보컬의 팝 시리즈 앨범을 발표하였다. 1969년 로드 맥퀸은 작사/작곡가로 명성을 드높였고, 프랭크 시나트라 같은 대가수 또한 [The Words And Music Of Rod Mckuen]이란 타이틀 아래 앨범을 발표하였다.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른 "Love's Been Good to Me"는 이후 로드 맥퀸의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 되었다. 게다가 영화 에 쓰인 "Jean"은 로드 맥퀸에게 아카데미 노미네이트의 영광을 안겨주었다. 의 영화음악을 담당하며 로드 맥퀸은 1970년 두번째로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하였다. 1971년에는 페리 코모가 부른 로드 맥퀸의 "I Think of You"가 어덜트 컨템포러리 힛트를 기록하였고, "The World I Used to Know", "Rock Gently", "Doesn't Anybody Know My Name", "The Import!!!!!!!!ance of the Rose", "Without a Worry in the World", 그리고 "Soldiers Who Want to Be Heroes" 등이 다른 가수들에게 불려 사랑을 받았다.
후에 로드 맥퀸은 클래식 분야에까지 영역을 확장하여 모음곡,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위한 음악까지 손을 대게 된다. 그는 [The City: A Suite for Narrator & Orchestr]으로 음악부문 퓰리처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하였다. 1977년에는 란 저서를 써 자신의 생물학적인 아버지를 찾으려 애썼다.
이후 [New Ballads](1970), [Pastorale](1971), [McKuen Country](1976) 등의 앨범을 발표한 로드 맥퀸은 1981년 라이브 공연에서 은퇴하였다. 1년 뒤 우울증 진단을 받게된 로드 맥퀸은 이로인해 10년 동안이나 고전하게 된다. 그 가운데서도 시작활동을 계속했으며, 영화 [The Little Mermaid]와 TV 시리즈 [The Critic] 등에 목소리 배우로 출연하였다. 그리고 1982년에는 1965년과 1966년 사이 녹음된 곡을 다시 녹음한 앨범 [After Midnight]을 발매하였다.
사랑과 자연, 그리고 신성함을 다뤘던 그의 가사를 비평가들은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고, 몇몇 비평가들은 단순하고 지나치게 감정적이라는 악평을 하였다. 그러나 30권 이상이 되는 그의 저서들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대학 교제로 사용되기까지 하였다. 그의 앨범들은 전세계적으로 1억장 이상이 판매되었다.
1969년 4월 29일에는 뉴욕의 카네기 홀에서 로드 맥퀸의 서른 여섯번째 생일을 기념하는 콘서트가 열렸었다. 가장 매력적인 허스키 보이스의 소유자로 한 세대 이상을 꾸준히 사랑을 받아온 그는 자신의 생일 파티에서 가장 편안하게, 마치 오래되어 빛바랜 활동사진을 볼 때와 같은 꿈결같은 편안한 기운을 내뿜으며 예의 그 멋진 목소리를 뽐냈다. 관객들과의 부담 없는 교감과 그의 열정적인 노래는 두 장의 앨범 [At Carnegie Hall]에 담겨 공개되었고 곧바로 베스트셀링 앨범의 리스트에 오르게 되었다.
로드 맥퀸은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보여 1970년대 남아프리카 투어에서는 흑백이 섞인 좌석을 요구하였다. 성공적으로 끝난 이 투어는 이후 Sammy Davis, Jr., Ella Fitzgerald 같은 많은 흑인 아티스트들의 공연에 포문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AIDS 퇴치, 어린이와 노인들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인도주의에 대한 노력으로 로드 맥퀸은 저명한 Freedoms Foundation Award을 두 번이나 수상하였다
첫댓글 경옥고 라는 말을 매우 오랫만에 듣습니다.
제가 국민학교 시절에, 친정 아버지께서 그것을 꿀단지 처럼 모셔 놓고, 한번씩 스푼으로 떠서 드시는걸 보았습니다.
갑자기 3월에 멀리 떠나가신 친정아버지가 그리워 지네요....
김은숙 님.. 경옥고를 친정 아버님께서 꿀단지 처럼 모셔놓고 한번씩 스푼으로 떠서 드셨다고 하셨시유 ?
금년 3월에 별세하신 친정 아버님의 조의를 제대로 표현 해 드리지 못하여 이자리를 빌어 잠시 삼가 고인의
넋을 위로 해 드렸으면 하네요.. 누구나 아버님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이 많겠지요 만 김은숙 님의 경우는 더욱
특별 하신 것 같아요~친정 아버님께서는 최수부 회장 보다는 물론,오래 장수 하셨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