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어둠이여,
나는 불꽃보다 당신을 더 사랑합니다.
불꽃은 제주위로 둥그렇게
찬란히 빛나면서
세계를 구별 짓지만,
그 바깥에 있는 어떤 존재도 불꽃을 모릅니다.
그러나 어둠은 모든 것을 제 품에 품고 있습니다
형상들과 불꽃, 짐승들과 나를,
인간과 모든 세력까지도
잡아챕니다--
어쩌면 바로 내 곁에서 어떤 위대한 힘이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밤을 믿습니다.
내가 믿는 것은 말해진 적 없는 모든 것입니다.
나는 나의 경건한 감정을 풀어놓으렵니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감히 바라지 못했던 것. 그것이
언젠가 내게서 저절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너무 방자한 말인가요, 나의 신이여, 용서하소서.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다만,
나의 가장 훌륭한 힘은 분노도 겁도 없는
충동과 같다는 것입니다, 마치
아이들이 당신을 좋아하듯 말입니다.
이렇게 흐르고 저렇게 굽이쳐서
양팔 넓게 벌려 큰 바다로 흘러들 듯,
이렇게 커가는 반복 속에서 나는
지금가지의 그 누구보다도 더
당신을 알리고 당신을 포고하렵니다.
이것도 오만인가요, 하지만
당신의 구름 낀 이마를 배경으로
이렇듯 진지하고 외롭게 서 있는
나의 기도를 보아 이 오만함을 용서하소서.
나는 이세상에서 아주 고독합니다, 하지만
모든 시간에 축복을 내릴 만큼 고독하지는 못합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아주 보잘것없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당신 앞에 하나의 사물처럼 설 정도로 작지는 못합니다,
어둡고 영리한 사무처럼.
나는 나의 의지를, 나의 의지만을 따르렵니다
행동으로 나아가는 길을.
그리고 머뭇거리는 조용한 시간에
그 무언가가 다가오면
이를 잘 아는 사람들 틈에 있거나 아니면
혼자 있을 것입니다.
나는 언제나 당시의 온 모습을 비추렵니다,
그리고 당신의 흔들리는 무거운 그림을 붙들고 있기 위해
언제고 눈멀지도 늙지도 않을 것입니다.
나는 스스로를 펼치고 싶습니다.
나는 결코 이 몸 그 어디도 굽히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굽히는 곳이 있다면 나는 속는 것이나까요.
그리고 나는 나의 감각을
당신 앞에 진실되게 하렵니다.
나는 내 스스로를 그리렵니다,
오랫동안 가까이서
보아온 그림처럼
매일같이 사용하는 단지처럼
어머니의 얼굴처럼
치명적인 폭풍을 뚫고
나를 실어다준
배처럼.
내가 많은 것을 원함을 당신은 봅니다.
어쩌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를테면 모든 한없는 떨어짐의 어둠과
온갖 상승의 반짝이는 유희를 원하는 거지요.
그렇듯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아무것도 원치 않습니다
그들은 가벼운 요리의 감치는 느낌으로
왕후의 기분을 맛볼 따름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기뻐하는 얼굴은
봉사하고 갈망하는 얼굴입니다.
당신은 마치 도구처럼 당신을 사용하는
그러한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당신의 몸은 아직 식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삶이
조용히 제 비밀을 털어놓는
깊어가는 당신의 깊이에
잠기기에 아직 늦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떨리는 손으로 당신을 짓습니다.
한 조각 한 조각 쌓아 올립니다.
하지만 그 누가 당신을 완성할 수 있을가요,
그대 성당(聖堂)이여,
로마란 무엇인가요?
그것은 무너져 사라지는 것.
세계란 무엇입니까?
당신의 탑에 둥근 지붕이 얹히기 전에
수마일에 이르는 모자이크로 된
찬란한 당신의 이마가 솟아오르기 전에
세계는 무너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때때로 꿈속에서
나는 당신의 공간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저 아래 토대로부터
지붕의 황급빛 장식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나는 봅니다, 나의 감각이
마지막 장식들을
만들어 달고 있는 광경을.
예전에 한 사람이 당신을 원한 적이 있기에
지금 우리들이 당신을 원하는 것도 아무렇지 않겠지요.
설령 우리들이 모든 깊이의 존재를 부정하한다 해도--
산맥이 금을 품고 있다면
그 누가 일부러 그것을 캐내지 않는다 해도
바위의 적막 속으로 흐르는 물이,
넘치는 그 물이
언젠가 그것을 바같으로 밀어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원치 않는다 해도
신은 성숙해갑니다.
삶의 많은 어리석음들을 화해시켜
감사하는 마음에서 하나의 상징으로 변모시키는 자, 그 자가
시끄러운 자들을
궁정에서 내쫓고,
이들과는 다른 모습으로잔치를 벌이면, 당신은 손님,
안그한 저녁이면 그는 당신을 맞이합니다.
당신은 그의 고독의 분신.
그의 독백의 고요한 중심입니다.
당신 주위로 그어진 모든 원은
그로 하여 시간의 원을 넘게 해줍니다.
붓을 잡은 이 손은 왜 이리 헤매는 걸까요?
내가 당신을 그릴 때, 신이여, 당신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나는 당신을 느낍니다. 나의 감각의 가장자리에서
당신은 저 멀리 많은 섬들처럼 머뭇거리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단 한번 눈길도 주지 않는 당신의 눈을 위해
나는 공간이 됩니다.
당신은 이제 당신의 광취의 한가운데 있지 않습니다.
천사들의 춤의 행렬이
당신의 아득한 먼 곳을 음악처럼 소모하는 그곳이 아니라,
당신은 이 세상 맨 끄트머리 집에 살고 있습니다.
당신의 온 하늘은 나의 가슴속을 엿보고 있습니다,
내가 생각에 잠겨 당신을 입 밖에 내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대 두려움에 떠는 자여, 나 여기 있습니다.
당신은 듣지 못하나이까, 이 모든 감각을 다하여
당신 몸에 가 부딪쳐 부서지는 이 소리를?
다시 날개를 단 나의 감정은
당신 얼굴 주위를 맴돌 줄 압니다.
당신은 보지 못하나이까, 당신 바로 앞에
고요의 옷을 차려 입고서 있는 이 영혼의 모습을?
나의 오월의 기도는
나무를 보며 무르익듯
당신의 눈길로 익어가지 않는가요?
당신이 꿈꾸는 사람이라면, 나는 꿈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잠에서 깨어나려 한다면, 나는 당신의 의지입니다
그리고 나 이세상의 온잦 아름다움을 다스리고
이 시대의 놀라운 도시 위에 내리는
별들의 정적처럼 스러질 것입니다.
나의 삶은 당신 눈에 부산하게 비치는
그러한 가파른 시간이 아닙니다.
나는 나의 배경 앞에 서 있는 한 그루 나무,
나는 나의 많은 입들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맨 먼저 다무는 그 입입니다.
서로 너무나 어울리지 못하는
두 음 사이의 휴지(休止)입니다, 나는.
죽음의 음만 자꾸만 높아지려 하기에.
하지만 그 어두운 중간에서
두 음은 떨면서 화해합니다.
그리하여 노래는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가벼운 날들과 날씬한 시간들이 서 있는
그 어느 곳에서 내가 자라났다면,
나 당신에게 훌륭한 축제를 마련해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손은 지금처럼 당신을 꼭 잡아
당신을 두렵고 아프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곳에서라면 나 당신을 신나게 써버렸을 것입니다,
그대 가없는 현재이시여.
마치 공처럼
파도치는 기쁨 속으로 내가 당신을
던져 올리면, 누군가 당신을 잡았을 것입니다.
당신의 낙하에
빈 손을 내밀어주었을 것입니다.
그대 사물 중의 사물이시여.
나 당신을 칼날처럼
빛나도록 했을 것입니다.
황금빛으로 눈부신 고리로
당신의불을 에워싸도록 했을 것이빈다,
그리하여 그 고리는 더없이 하얗게 비찬며
그 불을 내게 내밀었을 것이빈다.
나 당신을 벽에다 그리지 않고,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하늘에다 직접 그렸을 것이빈다,
그리고 어느 거장처럼
당시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산처럼, 불난리처럼,
사막에 불어닥치는 자뭄처럼,
혹
나 당신을 언젠가
찾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내 친구들은 지금 멀리 있어,
그들의 웃음소리 한 조각 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 당신은 둥지에서 떨어졌습니다.
당신은 노란 발과 커다란 눈의 어린 새,
측은하군요.
(나의 손은 당시에겐 너무나 큽니다.)
나는 손가락으로 한 방울의 샘물을 당신께 뿌리고
당신이 핥는지 엿듣습니다.
그리고 나는 당신과 나의 심징이 뛰는 소리를 가만히 느낍니다,
우리 둘 다 불안스런 마음으로.
내가 착한 마음으로 형제처럼 대하는
이 세상의 모든 사물들에게서 나는 당신을 만납니다.
당신은 씨알로 조그만 사물 속에 스며들어 볕을 쬐고
또 큰 사물에는 크게 몸을 맡깁니다.
그렇듯 헌신하며 사물 속을 흐르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힘들의 유희입니다.
뿌리 속에서 자라오르다, 줄기에 가서는 줄어들고
그리고 우든지에 이르면 부활하는......
젊은 형제 수도사의 목소리 :
나 흘러 사라집니다, 사라져갑니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는 모래알처럼.
나 갑자기 저마다 목말라하는
무수한 감각에 눈을 뜹니다.
온몸 이곳 저곳이
부어오르고 아파옴을 느낍니다.
가장 아픈 곳은 가슴 한가운데입니다.
나는 죽고 싶습니다. 날 혼자 내버려두오.
이제 맥박이 터질 만큼
불안이 나를 덮쳐올 것이빈다.
신이여, 보소서, 어제만 해도 소년이었던 새 사나이가
당신을 지으러 옵니다. 여인들에 의해
그의 손은 합장하도록 포개졌으니, 이것은
이미 반쯤은 속이는 일입니다.
그의 오른손이 왼손에게,
제 위치를 지키도록 눈짓하고
팔에 홀로 매달려 있으라 요구하는 까닭입니다.
어제만 해도 그의 이마는 세월에 쓸려
둥글어진 냇물 속의 돌과 같았습니다,
세월이란 파도치는 물결일 뿐입니다
또 세월은 우연으로 드리운 하늘로부터
그림을 나르는 것만을 요구할 뿐이빈다.
오늘날 이 한레는
냉혹한 법정의 판결 앞에
하나의 세계사가 돌진하여,
그 판결문 속을 떨어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얼굴 위에 공간이 생깁니다.
이 빛줄기 전에는 빛이란 없었스빈다.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당신의 책은 시작됩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대 가장 온화한 법칙이시여.
당신의 법칙과 싸우는 가운데 우리는 성숙하였습니다.
억누를 수 없는 위대한 향수(鄕愁)인 당신이시여.
우리가 끝내 빠져나올 수 없는 그대 숲이여.
우리가 침묵으로 부르는 그대 노래이시여.
도망가던 감정들을 붙잡아버리는
그대 어두운 그물이시여.
우리를 창조하신 그날에
당신 역시 한없이 큰 모습으로 시작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햇빛을 받아 무르익고,
이토록 널리 퍼지며 깊이 뿌리내렸습니다.
이제야말로 당신은 인가, 천사 그리고 성모의 품에
쉬면서 당신을 완성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손을 하늘의 언덕 위에 쉬에 하시고
말없이 기다려주십시오. 우리가 당신을 위해 남 몰래 하는 일을.
일꾼들입니다, 우리는, 결수, 거장(巨匠), 장색(匠色)이죠.
우리는 짓습니다, 그대 높은 중당(中堂)을.
그러면 때때로 지지한 방랑객이 찾아와서는
한 줄기 빛처럼 우리의 수백의 혼 사이로 지나며
떨리는 손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솜씨를 보여줍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처럼 모든 것을 아는 듯한
시간이 당신에게서 빛을 뿌리며 다가와
우리의 이마에 입 맞출 때까지,
우리는 흔들리는 비계 위로 올라갑니다.
손에 손에는 묵직하게 망치가 들려 있습니다,
그러면 망치질소리가 끝없이 울려 퍼집니다.
산과 산을 넘어 뚝딱뚝딱 메아리칩니다.
어둑해질 무렵에야 우리는 당신을 놓아줍니다.
그러면 당신의 떠오르는 윤곽이 어슴프레 보입니다.
신이여, 당신은 위대합니다.
당신은 너무나 위대하기에
당신 근처에만 가도 이미 나는 보잘것없습니다.
당신은 그렇듯 어둡기에
당신의 자락에 비치는 나의 작은 빛은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당신의 의지는 파도처럼 힘차기에
모든 나날들이 그 물결에 휩쓸립니다.
나의 그리움만이 당신의 턱을 향해 다가가
당신 앞에 천사처럼 섭니다.
낯설고 파리한 구원받지 못한 천사,
천사는 당신을 향해 날개를 펼칩니다.
달이 창백한 빛을 뿌리며 흘러간
그 무한한 비상을 그는 바라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습을 이미 잘 알고 있는 까닭입니다.
천사는 날개를 마치 불꽃 너울처럼 활짝 펴고
당신의 그림지 드리운 얼굴 앞에 서서
하얀 날개 빛을 비추어
당신의 잿빛 눈썹이 자기를 벌하려는지 보고 싶어합니다.
그렇듯 많은 천사들이 당신을 빛 속에서 찾으며
이마를 별들을 향해 들이대고
당신을 빛에서 배우려 합니다.
그러나 내게는, 당신에 대한 시를 지을 때마다,
그들이 얼굴을 돌리고
당신 외투의 주름에서 멀어진다고 생각됩니다.
당신 스스로 황금의 손님인적이 있었습니다.
저희들의 맑은 대리석 기도속으로
당신을 부르던 그 한 시대를 위해서
당신은 혜성들의 왕처럼 나타났습니다.
이마엔 빛다발을 뽐내면서.
그 시대가 사라졌을 때 당신은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나를 나부끼게 하는 당신의 입은 몹시 검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손은 흑연과 같습니다.
그것은 내가 외국책에서 읽은
미켈란젤로의 시절이었습니다.
그는 보통의 척도로는 잴 수 없을 정도로
거인처럼 큰
무한(無限)이란 말을 잊는 사나이였습니다.
한 시대가 끝나갈 때, 그 시대의 가치를
다시 한번 종합하려 할 때면, 언제나 되돌아오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또 다른 그 누군가 그 시대의 온 무게를 들어 올려
자기 가슴의 심연을 향해 집어 던집니다.
그보다 먼저 살았던 사람들은 고통과 기쁨을 구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삶의 큰 덩어리만을 느낄 뿐이며,
만물을 하나의 사물처럼 포옹합니다.
신만이 그의 의지 밖 저 멀리에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도달할 수 없는 신과의 거리에 대한
드높은 증오심으로 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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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랑
제1부 수도사 생활의 서 (2) - 릴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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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9.2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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