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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원지(敬而遠之)
공경하나 멀리한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공경하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멀리한다든지, 존경은 하면서도 가까이하기를 꺼리는 그런 뜻으로도 쓰이고, 겉으로는 존경하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못마땅해하는 뜻으로도 쓰인다.
敬 : 공경할 경(攵/9)
而 : 말 이을 이(而/0)
遠 : 멀 원(辶/10)
之 : 갈 지(丿/3)
(유의어)
경원(敬遠)
경원시(敬遠視)
경귀신이원지(敬鬼神而遠之)
출전 : 논어(論語) 옹야편(雍也篇)
공자(孔子)의 제자 번지(樊遲)가 지(知)에 대하여 묻자, 공자(孔子)는 "자기 자신이 해야 할 일에 힘쓰고, 귀(鬼)나 신(神)은 공경(恭敬) 하되 멀리하는 것이 지(知)라 할 수 있다(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고 말했다 한다.
또 "자공(子貢)아. 죽은 사람에게 지각(知覺)이 있는지 없는지 알고 싶거든, 기다렸다가 죽으면 저절로 알게 되리니 그래도 늦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다.
경원(敬遠)이라는 말은 논어(論語) 옹야편(雍也篇)에 나온다. 공자(孔子)의 제자 번지(樊遲)가 '지(知)란 어떤 것이냐?'고 묻자 공자는, "백성의 도리(道義)를 힘쓰고 귀신을 공경(恭敬)하고 멀리하면 지(知)라 말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옳게 알고 옳게 깨달은 참다운 앎이란 어떤 것이냐고 물은 것 같다.
공자는,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실천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귀신의 힘을 빌려 福(복)을 구하고 禍(화)를 물리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 것이 아는 사람의 올바른 자세다" 하고 대답한 것 같다.
따라서 이 말은 귀신을 공경하여 모독하지 않으며 또한 귀신이 내리는 화복(禍福)에 마음을 쓰지 않는다는 말이고 후대에 와서는 겉으로는 공경하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멀리한다든지, 존경은 하면서도 가까이하기를 꺼리는 그런 뜻으로도 쓰이고, 겉으로는 존경하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못마땅해하는 뜻으로도 쓰인다. 또한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을 은근히 비꼴 때 사용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경원(敬遠), 경원시(敬遠視)라고 한다.
경이원지(敬而遠之)
공자 논어(해제)
6-22
子曰 : 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
공자가 말하였다. "인민이 의롭게 되는 일에 전심전력하고, 귀신은 공경하되 멀리하는 것이 지혜라고 할 수 있다."
11-12
季路問事鬼神, 子曰 : 未能事人, 焉能事鬼? 曰 : 敢問死? 曰 : 未知生, 焉知死?
자로가 귀신 섬기는 일을 묻자, 공자는 말했다.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거늘, 어떻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느냐?" "감히 여쭙건대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삶도 아직 이해하지 못하거늘, 어떻게 죽음을 알 수 있겠느냐?"
7-21
子不語怪, 力, 亂, 神.
공자는 괴이한 일, 폭력, 분란(역적), 귀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귀신 내지 천도에 관한 인문주의적인 전통을 계승하여, 공자는 이와 같이 귀신에 대해 명확한 한계를 설정했다. '귀신은 공경하되 멀리해야' 지혜인 만큼, 귀신을 멀리하지 않으면 지혜가 아니다. 아무튼 귀신의 존재에 대해 공자는 명확히 부인하지 않았으나 그 존재를 강조하지도 않았다.
한대(漢代)의 유향(劉向)이 저술한 설원(說苑)에 나오는 다음 대화에도 공자의 그런 분위기가 잘 반영되어 있다.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죽은 사람에게 지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귀신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죽은 사람에게 지각이 있다고 말하자니 효성스런 자손이 생업에 방해되면서까지 장사에 몰두할까 염려되고, 지각이 없다고 말하자니 불효한 자손이 죽은 이를 유기하고 장사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자공아! 죽은 사람에게 지각이 있는지 없는지 알고 싶거든, 기다렸다가 죽으면 저절로 알게 되리니 그래도 늦지 않을 것이다. (…) 이와 같은 태도가 바로 '귀신을 멀리하는' 일일 것이다."
논어도 공자는 귀신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고 전하고 있다. (7-21)
경이원지(敬而遠之)는 '존경은 하되 가까이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존경하는 사이일수록 너무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 바로 그런 사이를 가리키는 표현인데, 너무 가까워지면 존경하던 마음마저 사라지는 일이 벌어지기 쉽다. 그래서 서양 속담에 '시종 앞에 영웅 없다'는 표현이 있다. 그 사람에 대해 시시콜콜 알고 나면 도저히 존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표현은 경원(敬遠)이라고 줄여서 쓰기도 하는데, 이때는 '꺼린다'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도 많다. "네, 투수가 이 선수와의 대결을 두려워하여 경원사구로 걸리는군요." 야구에서 투수가 고의사구로 타자를 내보낼 때 쓰는 표현이다.
경이원지(敬而遠之)
공경하되 멀리한다는 뜻으로,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실천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귀신의 힘을 빌려 복(福)을 구하고 화(禍)를 물리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 것이 아는 사람의 올바른 자세라는 말이다.
대한민국의 한복판인 서울 이태원 좁은 골목에서 할로인 데이 행사로 수많은 젊은 생명이 희생되고 세상이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인간은 신을 어디까지 가까이하고 어디까지 멀리하여야 할까?
현대를 과학의 시대라고 하지만 신은 여전히 인간의 의식 저변에 자리 잡고 인간의 의식을 흔들고 인간에 대한 지배의 욕망을 드러낸다. 어쩌면 불안전한 인간은 스스로 신을 부르고 신을 만들어 왔는지 모른다. 혹은 그 어떤 지배욕을 가진 자가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신을 요청하였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신은 존재의 실체가 없고 다만 그 실체는 인간의 상상에 의해 설정된 것이기에 그 믿음과 믿음에 뒷받침된 상상에 의해 실체는 달라지며 신비성을 지닌다. 신의 존재는 신비성을 지니는 만큼 인간을 지배하고 미궁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크다.
고대는 신화의 시대다. 동서를 막론하고 신화에 기반을 두지 않는 기원의 역사는 없다. 특히 시베리아 동북부 및 중국을 비롯한 몽골, 한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의 신은 구체적이지 않지만, 인간의 길흉과 화복을 지배하는 것으로 상정된다. 그 대표적인 상징이 바로 하늘이었다. 하늘은 상제로서 모든 것을 주관하는 주재자였다. 그 하늘과 소통하는 중재자는 바로 샤먼이었다.
샤먼은 서양의 개념으로서는 주술사였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엑스터시와 빙의(憑依: 신내림)를 통해 의무(醫巫)· 사제(司祭)· 점사(占使)· 영매(靈媒) 등의 역할을 하는 복합체인 무당(巫堂·巫)이다. 어느나라건 이 주술사인 샤먼은 신과 인간의 사이에서 인간의 길흉화복을 점치고 액운을 물리치고 병을 치료하는 존재로 여겨왔다. 그러나 인간이 그러한 신에 지나치게 의존할 때 현실적인 삶이 파괴되고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다.
현대 과학의 시대에도 신의 위력은 여전한 것 같다. 아직도 종교와 주술이 사람을 지배하여 인간 세상을 뒤흔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인간 중심으로 볼 때 인간이 신을 어디까지 믿느냐에 따라 신이 인간을 지배하는 수준이 달라진다. 서양에서 신이 인간을 지배한 중세시대는 암울했다. 신이 지나치게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가 암울한 것은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였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신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신이 작용하는 깊이와 넓이가 다르다는 점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인간이 신을 대함에 있어서 어디까지 어떻게 대해야 할까의 문제이다. 신을 대함에 있어서 절제와 경건함을 유지할 수 있다면 인간은 신으로부터 배반당하지는 않을 것이라 여겨진다. 우린 여기서 공자의 말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일찍이 공자(孔子 BC)는 제자들에게 신을 대함에 있어 "공경하더라도 멀리하라(敬而遠之)"고 하였다. 혹자들은 공자를 무신론자로 취급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공자는 절대로 무신론자가 아니다. 그는 유신론자였다. 다만 그는 신의 세계를 강조한 것이 아니라 현세의 삶의 방식과 윤리 등, 삶의 원리에 몰입한 철학자였던 것뿐이다. 그 점은 소크라테스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공자는 철저한 실용주의자라 할 수 있다.
공자가 신을 부정하지 않은 것은 그의 탄생설과도 관련된다. 공자의 본명은 중니(仲尼)이다. 공자의 탄생에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자의 아버지 숙양흘이 나이 70에 대를 이를 마땅한 아들을 얻기 위해 구혼을 하였는데 20대 초반의 안징제가 자진하여 공자에게 시집을 갔다.
어머니인 안징제는 니구산(尼丘山)에 가서 신령님께 기도를 올리고 공자를 낳았다. 그런 까닭에 공자의 이름 구(丘)라 한 것이다. 구(丘)는 니구산에서 따 온 것이다.(일설에는 태어났을 때 니구산처럼 이마에 골이 파여 있었기 때문에 이름을 구(丘)라고 지었다고도 한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신과 조상에 대한 예의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고 한다.
이처럼 공자의 탄생은 신과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은 비정상적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열등감을 가졌을지 모른다. 그래서 공자는 어릴 때부터 그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을지 모른다. 공자의 여러 말에서 보면 부모를 거역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부모의 잘못을 묵인해서도 안 된다. 그 절묘한 도덕률을 찾아간 것이 공자였다. 그의 과제는 현실에서 도덕적으로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노자(老子)가 "공자는 세상 안에서 걷고 나는 세상 밖에서 걷고 있다"고 했듯이 공자는 철저하게 세상 안에서 걸으면서 이상 세계를 추구하였다. 그가 추구한 것은 현실 세계 안에서 신을 공경하고 부모를 받들며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었다. 현실 세계의 사랑과 정의를 이룩할 때 모든 예(禮) 즉 지고한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 그를 위한 실천의 중심 개념이 바로 인(仁)이다. 그리고 지고한 경지는 치우침 없는 중용(中庸)의 세계다.
제자들이 공자의 가르침을 정리한 대표적인 책인 논어(論語)는 학(學)으로 시작하여 명(命)으로 끝이 난다. 이를테면 모든 삶의 시작은 학(學: 배움)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명(命: 천명)을 따르고 명에 순종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여기서도 공자의 사상은 유신론자이다. 천명(天命) 즉 신의 경지에 이르고 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배움을 통해 끊임없이 이치를 터득하고 몸과 마음을 수련하여야 한다. 그것은 신에의 귀의가 아니라 신의 뜻을 무리 없이 받아들이며 인간세계에서 경건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공자는 제자들을 가르칠 때 괴력난신(怪力亂神)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설령 누가 물어도 그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子不語 怪力亂神/ 論語 述而). 이에 대하여 괴력난신(怪力亂神) 즉 괴이함과 용맹함과 어긋나고 어지럽히는 일은 이치의 정상이 아니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은 것이며 귀신은 조화의 자취로 비록 바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치를 궁구함에 지극한 자가 아니면 쉽게 밝히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라 하였다.
'서툰 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듯이 이런 경지는 심오한 것이기에 함부로 말하면 사람들을 현혹하여 오히려 덕(德)을 문란하게 하고 세상을 어지럽힐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공자의 제자 번지가 지혜를 물었다. 이에 공자가 대답하였다. 백성(사람)이 의(義)를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면서도 멀리하면 가히 지혜롭다고 말할 수 있다. 번지가 또 인(仁)에 대하여 여쭙자 공자가 대답했다. 인(仁)이라는 것은 어려운 일을 먼저 하고 얻어지는 결과를 뒤로 하면 인(仁)이라 할 수 있다(樊遲 問知 한데 子曰 務民之義요 敬鬼神而遠之면 可謂知矣니라. 問仁한데 曰仁者 先難而後獲이면 可謂仁矣니라/ 論語 雍也).
이러한 공자의 말에 대하여 정자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사람이 귀신을 지나치게 믿기 때문에 현혹되어 생활이 문란하게 되고 믿지 않으면 오만해지기 쉽다. 따라서 신을 공경하면서도 멀리할 수 있어야 지혜롭다고 말할 수 있다. 또 어려운 것을 먼저 하는 것은 자신을 이기는 것이니 어려운 것을 먼저 하고 얻어지는 것을 나중에 하는 것 또한 자신을 이기는 것이니 그것을 인(仁)이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공자는 경귀신이원지(敬鬼神而遠之)라는 말로 신에 대한 태도를 분명하게 하였다. 여기서 경원(敬遠) 즉 경이원지(敬而遠之)라는 말이 유래하였다. 공자의 삶은 초지일관 신에 대하여 경이원지(敬而遠之) 하였다. 공자는 삶에 대해서는 대단한 합리주의자였으며 실용주의자였고 실천론자였다.
사람들이 종교에 지나치게 빠지면 가족도 삶도 팽개치고 오로지 종교에 몰입하게 된다. 그 결과는 모든 삶이 파괴되는 것이다. 일본의 ‘옴 진리교 사건’이나 우리나라의 ‘오대양 사건’도 신에 지나치게 편집된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서양의 중세에 면죄부가 난무한 것도 신에 지나친 의존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 고려말 신돈의 국정농단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은 왜 종교에 몰입할까? 어쩌면 지나친 욕심과 편집된 사고와 생활 때문은 아닐까? 종교에 몰입하더라도 현실적인 삶을 존중하면서 몰입할 수 있다면 얼마나 건강할까? 종교와 주술이 권력과 결탁하면 세상을 험악한 곳으로 내몰고 지나치면 사람을 제물로 희생시킨다. 종교와 주술이 돈과 결탁하면 선량한 수많은 사람을 미궁으로 빠뜨린다.
이번에 큰 사고를 일으킨 할로윈의 유래를 보면 잔인하다. 할로윈은 2500년 전 아일랜드의 켈트(Celt)족이 죽음으로부터 인간의 영혼을 이끄는 중개 신인 사메인(Samhain-샤먼)을 섬기면서 시작되었다. 켈트족은 일 년에 한 번씩 사메인을 달래기 위하여 희생 제사를 지냈다. 그 날은 당시 일 년의 끝 날인 10월 31일이었다.
아일랜드는 지구의 북반부에 위치하여 겨울과 여름이 대부분이다. 그들에게 10월 31일을 여름이 끝나는 날이며 11월 1일은 겨울의 시작이다. 그래서 여름이 끝나는 10월 31일에는 각종 유령과 귀신들이 찾아와 산 사람 속에 들어가 다음 해에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귀신을 달래고 쫓기 위해 사람까지 제물로 바쳤다. 그들은 밤중에 검은 옷과 검은 두건을 쓰고 횃불을 밝히고 마을마다 다니며 강제로 "처녀를 바칠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하고 다그치면서 처녀를 바치지 아니하는 마을은 모두 불살라 버렸다.
켈트족은 그 유령과 귀신들을 속이고 쫓기 위해 사람이 안 사는 것처럼 집 안의 불을 끄고, 동물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귀신보다 더 무서운 복장과 가면을 쓰고, 밤에는 동네마다 장작더미를 쌓고 불을 피웠다고 한다.
그러나 4세기경 유럽 전역에 로마제국이 수립되고 기독교가 국교화하자 속국으로 있던 나라들이 자신들의 종교도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켈트족의 사메인 숭배 풍습도 기독교에 흡수되어 인신 제사를 버리고 축제의 형식으로 행사를 하였다.
그것은 점차 축제와 맞물려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아일랜드와 스콧틀랜드 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미국에서도 하나의 풍습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던 것이 한국에 들어 온 것이다. 이러한 할로인 데이 행사는 나 살기 위해 너를 죽이는 것이다. 그것이 변화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오늘날 미국과 한국에서 이 할로윈 데이 행사는 어쩌면 비천한 상업주의와 향락주의가 결합된 것인지 모른다. 현대인들이 공상 영화, 판타지 소설 등에 빠지듯이 과학화의 시대에 귀신 놀이에 몰입하며 자신을 숨기고 마음대로 향락할 수 있는 즐길 거리가 된 것인지 모른다.
혹자들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즐기며 새로운 에너지와 삶의 역동성을 찾을 것이라 하지만 비천한 상업주의와 절제 없는 향락주의가 융합되어 빚어낸 행사는 어떤 행사를 막론하고 즐거움은 있을지 모르지만, 후유증은 매우 크다. 고려 시대에 국가적인 행사인 팔관회 행사도 그래서 중단된 적이 있었다.
편집되고 극단적인 그리고 교조주의에 빠진 종교가 개입된 전쟁은 끝없는 대결만 낳는다. 그런 종교가 권력과 결합하면 성전에 바친다는 명목으로 인간을 처참하게 유린한다. 종교가 세상을 구제하고 아름답게 하려면 경건함과 절제가 있는 믿음을 성숙시켜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종교 본래의 사랑과 포용이 발휘된다. 그러면 종교로 인한 전쟁도 사라지리라. 여기에도 경이원지(敬而遠之)가 필요하다.
종교적인 색채를 가진 모든 행사는 경건함과 절제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축제도 지나친 상업주의와 향락주의가 개입되면 본질에서 벗어나고 퇴폐화된다.
그리고 모든 축제는 공자가 낙이불음(樂而不淫)이라 했듯이 즐기되 음탕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려면 경이원지(敬而遠之) 하여야 한다. 이번 이태원 사건을 보면서 앞으로 '할로윈데이'가 나아갈 길을 생각해 본다. 기왕에 하려면 비천한 상업주의와 향락주의가 배제된 낙이불음(樂而不淫), 경이원지(敬而遠之)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야 문화라 할 수 있지 않을까?
▶️ 敬(공경 경)은 ❶회의문자로 등글월문(攵=攴; 일을 하다, 회초리로 치다)部와 苟(구)의 합자(合字)이다. 등글월문(攵)部는 급박하여 다가온다는 뜻이다. 혁은 엄격하게 격려한다는 뜻으로 말을 삼가는 뜻이 있는데 다시 등글월문(攵)部를 더하여 敬(경)은 한층 더 게을리하지 않음을 뜻으로 삼가다, 조심하다의 뜻이 있다. ❷회의문자로 敬자는 '공경하다'나 '정중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敬자는 苟(진실로 구)자와 攵(칠 복)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苟자는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개를 그린 것으로 '진실로'나 '참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진실되다'라는 뜻을 가진 苟자에 攵자가 결합한 敬자는 '진실하도록 하다'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敬자에 쓰인 攵자는 예의를 갖추도록 만든다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강제성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고대에는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글자가 많다. 그래서 敬(경)은 성(姓)의 하나로 ①공경(恭敬) ②예(禮), 감사(感謝)하는 예(禮) ③공경(恭敬)하다 ④삼가다(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마음을 절제(節制)하다 ⑤정중(鄭重)하다, 예의가 바르다 ⑥훈계(訓戒)하다, 잡도리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공손할 공(恭), 공경할 흠(欽), 공경할 지(祗), 공경할 건(虔)이다. 용례로는 노인을 공경함을 경로(敬老), 공경하는 마음을 경의(敬意), 존경하고 사모함을 경모(敬慕), 남의 말을 공경하는 태도로 듣는 것을 경청(敬聽), 공경의 뜻을 나타내는 인사를 경례(敬禮), 존경하여 일컬음을 경칭(敬稱), 초월적이거나 위대한 대상 앞에서 우러르고 받드는 마음으로 삼가고 조심하는 상태에 있음을 경건(敬虔), 공경하고 중하게 여김을 경중(敬重), 공경하고 사랑함을 경애(敬愛), 존경하여 높이어 부르는 말을 경어(敬語), 속마음과는 달리 겉으로는 존경하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멀리함을 경원(敬遠), 공경하여 삼가 답장한다는 경복(敬復), 존중히 여겨 공경함을 존경(尊敬), 삼가서 공손히 섬김을 공경(恭敬), 존경하는 마음이나 예의가 없음을 불경(不敬), 숭배하고 존경함을 숭경(崇敬), 공경하고 두려워함을 외경(畏敬), 더욱 공경함을 가경(加敬), 항상 마음을 바르게 가져 덕성을 닦음을 거경(居敬), 부모를 잘 섬기고 공경함을 효경(孝敬), 씩씩하고 공경스러움을 장경(莊敬), 공경하되 가까이하지는 아니함 또는 겉으로는 공경하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꺼리어 멀리함을 이르는 말을 경이원지(敬而遠之),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함을 이르는 말을 경천애인(敬天愛人), 하느님을 받들고 백성을 통치하기를 게을리 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경천근민(敬天勤民), 신을 공경하고 조상을 숭배함을 일컫는 말을 경신숭조(敬神崇祖), 노인을 공경하는 생각을 일컫는 말을 경로사상(敬老思想),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일컫는 말을 경외지심(敬畏之心) 등에 쓰인다.
▶️ 而(말 이을 이, 능히 능)는 ❶상형문자로 턱 수염의 모양으로, 구레나룻 즉, 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을 말한다. 음(音)을 빌어 어조사로도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而자는 '말을 잇다'나 '자네', '~로서'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而자의 갑골문을 보면 턱 아래에 길게 드리워진 수염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而자는 본래 '턱수염'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지금의 而자는 '자네'나 '그대'처럼 인칭대명사로 쓰이거나 '~로써'나 '~하면서'와 같은 접속사로 가차(假借)되어 있다. 하지만 而자가 부수 역할을 할 때는 여전히 '턱수염'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한다. 그래서 而(이, 능)는 ①말을 잇다 ②같다 ③너, 자네, 그대 ④구레나룻(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 ⑤만약(萬若), 만일 ⑥뿐, 따름 ⑦그리고 ⑧~로서, ~에 ⑨~하면서 ⑩그러나, 그런데도, 그리고 ⓐ능(能)히(능) ⓑ재능(才能), 능력(能力)(능)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30세를 일컬는 말을 이립(而立), 이제 와서를 일컫는 말을 이금(而今), 지금부터를 일컫는 말을 이후(而後), 그러나 또는 그러고 나서를 이르는 말을 연이(然而), 이로부터 앞으로 차후라는 말을 이금이후(而今以後), 온화한 낯빛을 이르는 말을 이강지색(而康之色), 목이 말라야 비로소 샘을 판다는 뜻으로 미리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가 일이 지나간 뒤에는 아무리 서둘러 봐도 아무 소용이 없음 또는 자기가 급해야 서둘러서 일을 함을 이르는 말을 갈이천정(渴而穿井),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듯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아주 다른 것을 이르는 말을 사이비(似而非), 공경하되 가까이하지는 아니함 또는 겉으로는 공경하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꺼리어 멀리함을 이르는 말을 경이원지(敬而遠之), 뾰족한 송곳 끝이 주머니를 뚫고 나온다는 뜻으로 뛰어나고 훌륭한 재능이 밖으로 드러남을 이르는 말을 영탈이출(穎脫而出), 서른 살이 되어 자립한다는 뜻으로 학문이나 견식이 일가를 이루어 도덕 상으로 흔들리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삼십이립(三十而立), 베개를 높이 하고 누웠다는 뜻으로 마음을 편안히 하고 잠잘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고침이와(高枕而臥), 형체를 초월한 영역에 관한 과학이라는 뜻으로 철학을 일컫는 말을 형이상학(形而上學), 성인의 덕이 커서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유능한 인재를 얻어 천하가 저절로 잘 다스려짐을 이르는 말을 무위이치(無爲而治) 등에 쓰인다.
▶️ 遠(멀 원)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袁(원)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袁(원)은 뜻을 나타내는 옷 의(衣)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止(지; 발)를 바탕으로 哀(애, 원)이 합(合)하여 옷이 치렁치렁한 모양이나 옷이 길다는 뜻과, 책받침(辶)部는 움직이는 일에서 나아가는 일의 길게 하다, 길다, 멀어지다, 멀다 등의 뜻이 있다. ❷회의문자로 遠자는 '멀다'나 '심오하다', '오래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遠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袁(옷 길 원)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袁자는 옷깃이 넉넉한 옷을 표현한 것으로 '옷이 크다'라는 뜻이 있다. 遠자는 이렇게 옷깃이 넓다는 뜻을 가진 袁자를 응용한 글자로 옷깃이 늘어져 있듯이 길이 매우 '멀다'라는 뜻을 표현했다. 그래서 遠자는 '(길이)멀다'나 '멀어지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지만 '(세월이)오래되다'나 '심오하다'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그래서 遠(원)은 ①멀다 ②심오(深奧)하다, 깊다 ③많다 ④세월이 오래되다 ⑤멀리하다, 멀어지다 ⑥소원(疏遠)하다 ⑦내쫓다, 추방하다 ⑧싫어하다 ⑨어긋나다 ⑩먼 데 ⑪선조(先祖)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오랠 구(久), 미륵 미(彌), 멀 유(悠), 길 영(永), 멀 하(遐), 멀 요(遙), 멀 료/요(遼), 길 장(長),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가까울 근(近)이다. 용례로는 멀고 가까움을 원근(遠近), 시간이나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원격(遠隔), 먼 곳으로 싸우러 가는 것을 원정(遠征), 먼 데 것은 잘 보이고 가까운 데 것은 잘 보이지 않는 시력을 원시(遠視),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넓은 바다를 원양(遠洋), 멀리 가서 놂을 원유(遠遊), 중심으로 부터 멀어져 감을 원심(遠心), 아득한 먼 시대를 원대(遠代), 멀리 바라다 봄을 원망(遠望),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교외를 원교(遠郊),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의 신상을 생각함을 원념(遠念), 장면을 넓게 찍은 영화 필름 또는 사진 따위를 먼 곳에서 넓게 찍는 일을 원사(遠寫), 길고 오랜 세월로 앞으로 오래도록 변함없이 계속됨 또는 어떤 상태가 끝없이 이어짐을 영원(永遠), 공간적으로 까마득히 멂 또는 시간적으로 먼 훗날에나 가능한 상태에 있음 곧 현재나 당장에는 불가능한 상태에 있음을 요원(遙遠), 지내는 사이가 두텁지 않고 버성김 또는 서먹서먹함을 소원(疏遠), 멀고 높음 또는 고상하고 원대함을 고원(高遠), 동떨어지게 멂을 격원(隔遠), 한없이 멀고 넓음을 광원(廣遠), 몹시 오래 됨을 구원(久遠), 이어져 내려온 시간이 오램을 면원(綿遠), 거리가 멀지 아니함 또는 닥칠 시일이 오래지 아니함을 불원(不遠), 아주 아득하게 오램을 창원(蒼遠), 멀리 바라봄을 망원(望遠), 눈이 미치지 않은 만큼 까마득하게 멂을 묘원(渺遠), 먼 데 있는 물은 가까운 데의 불을 끄는 데는 쓸모가 없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 멀리 있는 것은 급할 때에 소용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원수근화(遠水近火), 먼 데 있는 친척은 가까운 이웃만 못함을 이르는 말을 원족근린(遠族近隣), 먼 나라와 친하고 가까운 나라를 쳐서 점차로 영토를 넓힘을 일컫는 말을 원교근공(遠交近攻), 화를 멀리하고 복을 불러 들임을 일컫는 말을 원화소복(遠禍召福), 먼 곳에 있어서 올 수가 없음을 이르는 말을 원막치지(遠莫致之), 파랗게 그린 먼 산 같은 눈썹이라는 뜻으로 미인의 눈썹을 형용해 이르는 말을 원산미(遠山眉), 공경하되 가까이하지는 아니함 또는 겉으로는 공경하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꺼리어 멀리함을 일컫는 말을 경이원지(敬而遠之), 날은 저물었는데 갈 길은 멀다는 뜻으로 이미 늙어 앞으로 목적한 것을 쉽게 달성하기 어렵다는 말을 일모도원(日暮途遠), 천 리 길도 멀다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먼길인데도 개의치 않고 열심히 달려감을 이르는 말을 불원천리(不遠千里), 앞으로 갈 길이 아득히 멀다는 뜻으로 목적하는 바에 이르기에는 아직도 남은 일이 많음을 이르는 말을 전도요원(前途遙遠),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온다는 뜻으로 뜻을 같이하는 친구가 먼 데서 찾아오는 기쁨을 이르는 말을 유붕원래(有朋遠來) 등에 쓰인다.
▶️ 之(갈 지/어조사 지)는 ❶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❷상형문자로 之자는 '가다'나 '~의', '~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之자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다. 之자의 갑골문을 보면 발을 뜻하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之자의 본래 의미는 '가다'나 '도착하다'였다. 다만 지금은 止자나 去(갈 거)자가 '가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之자는 주로 문장을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之(지)는 ①가다 ②영향을 끼치다 ③쓰다, 사용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⑤어조사 ⑥가, 이(是) ⑦~의 ⑧에, ~에 있어서 ⑨와, ~과 ⑩이에, 이곳에⑪을 ⑫그리고 ⑬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 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일컫는 말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 함을 이르는 말을 지남지북(之南之北),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으로 재능이 아주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비유적 의미의 말을 낭중지추(囊中之錐), 나라를 기울일 만한 여자라는 뜻으로 첫눈에 반할 만큼 매우 아름다운 여자 또는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는 말을 경국지색(傾國之色), 일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일을 저지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말을 결자해지(結者解之), 알을 쌓아 놓은 듯한 위태로움이라는 뜻으로 매우 위태로운 형세를 이르는 말을 누란지위(累卵之危), 어부의 이익이라는 뜻으로 둘이 다투는 틈을 타서 엉뚱한 제3자가 이익을 가로챔을 이르는 말을 어부지리(漁夫之利), 반딧불과 눈빛으로 이룬 공이라는 뜻으로 가난을 이겨내며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어가며 고생 속에서 공부하여 이룬 공을 일컫는 말을 형설지공(螢雪之功),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함이란 뜻으로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봄을 이르는 말을 역지사지(易地思之), 한단에서 꾼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부귀영화는 일장춘몽과 같이 허무함을 이르는 말을 한단지몽(邯鄲之夢), 도요새가 조개와 다투다가 다 같이 어부에게 잡히고 말았다는 뜻으로 제3자만 이롭게 하는 다툼을 이르는 말을 방휼지쟁(蚌鷸之爭),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풍수지탄(風樹之歎), 아주 바뀐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은 느낌 또는 딴 세대와 같이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비유하는 말을 격세지감(隔世之感), 쇠라도 자를 수 있는 굳고 단단한 사귐이란 뜻으로 친구의 정의가 매우 두터움을 이르는 말을 단금지교(斷金之交), 때늦은 한탄이라는 뜻으로 시기가 늦어 기회를 놓친 것이 원통해서 탄식함을 이르는 말을 만시지탄(晩時之歎), 위정자가 나무 옮기기로 백성을 믿게 한다는 뜻으로 신용을 지킴을 이르는 말을 이목지신(移木之信), 검단 노새의 재주라는 뜻으로 겉치례 뿐이고 실속이 보잘것없는 솜씨를 이르는 말을 검려지기(黔驢之技), 푸른 바다가 뽕밭이 되듯이 시절의 변화가 무상함을 이르는 말을 창상지변(滄桑之變),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기세라는 뜻으로 범을 타고 달리는 사람이 도중에서 내릴 수 없는 것처럼 도중에서 그만두거나 물러설 수 없는 형세를 이르는 말을 기호지세(騎虎之勢), 어머니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문에 의지하고서 기다린다는 뜻으로 자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르는 말을 의문지망(倚門之望), 앞의 수레가 뒤집히는 것을 보고 뒤의 수레는 미리 경계한다는 뜻으로 앞사람의 실패를 본보기로 하여 뒷사람이 똑같은 실패를 하지 않도록 조심함을 이르는 말을 복거지계(覆車之戒)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