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구석에 숨겨두고 자물쇠를 채워 놓았던 비밀, 내가 안전업무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10년 전 햇살이 따가운 주말 오후 친구는 안전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고향에서 야간학교를 힘들게 마친 그는 타향인 울산으로 흘러와 이모부가 주인인 영세한 천막제작사에 몸을 맡겼다.
잔심부름으로 뼈를 굳힌 후 눈썰미에 억척을 보탠 이십 년 만에 ‘00 특수 천막사’ 간판을 내 걸던 날 ‘이제부터 아무 문제도 없다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며 입이 귀에 걸렸던 친구는 운명의 날 도급받은 H사 제품적치대 천막공사를 하던 중 2미터 남짓한 높이에서 추락 후 병원으로 응급후송 되었지만 그날 밤을 끝내 넘지 못했다.
사고 소식을 전해 듣고 가족보다 먼저 현장으로 달려가 보았더니 폭이 좁고 기름이 칠해진 철제 앵글 위에서 안전화 대신 운동화를 신었고 안전모는 착용하지 않고 작업한 것이 결정적인 사고요인으로 판단되었다.
20년째 안전업무에 몸담아 안전베테랑이라고 자부하는 나는 가슴이 답답해 줄담배만 피웠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한 달에 서너 번씩 만나 밥 먹고 술 마시며 산엘 함께 올랐던 친구의 안전도 못 챙기는 주제에 무슨 안전 전문가인가 하는 자책, 몇 년을 헤아릴 수 없이 만나온 나에게는 어찌 안전 보호구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해주지 않았단 말인가 하는 친구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리고 또 때렸으나 이미 그는 내곁을 떠난 사람이었다. 그래서 ‘후회는 항상 앞서지 않는 것’이라고 했던가?
사고 후 무심결에 친구 집 근처에 다가가다 아차 하고는 발길을 돌렸고 때론 근처에 볼일이 있어도 핑계 꺼릴 만들어 의도적으로 우회했으며 베란다에 서서 멀리 친구 집 방향으로 바라보다가 흠짓 놀라 눈길을 돌리는 버릇이 생겼고, 회사 근무 중 작업장 점검 때는 복장 보호구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직원들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심지어 남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안전모 턱 끈 미활용자(未活用者)나 안전화 끈이 너덜거리는 것까지 유별나게 까탈을 부려 기어코 바로 고쳐놓아야 식성이 풀렸다. 그것 모두는 친구를 마지막 떠나보내던 화장터에서 친구의 영혼에게 두 번 다시 주변에 안전 보호구를 미착용하거나 활용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도록 만들겠다는 그 와 맺은 약속 때문이며
이 글을 친구의 영전에 정중히 바치며 오늘 공개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 없이 약속을 지키겠다는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