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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메이저리그 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RICHIE SEXSON
Chapter 10
Thank You, Tom Boswell (감사합니다, Tom Boswell씨)
“Charles Barkley가 Madison Square Garden을 평정한 검은 모자의 악당이었다면,
A’s와 Rangers의 유니폼을 입은 Jose Canseco는 화려한 악당 레슬러라 할 수 있었다.”
Mike Lupica
내가 만약 과거로 돌아가 20살이 된 내 자신을 만날 수 있다면, 스테로이드 복용을 삼가라든지 팝 스타와 사귀지 말라든지 하는 식의 조언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선수들이 스포츠 기자들에 대해 잘난 척이나 하고, 어울리지도 않는 옷이나 입고 다니고, 불룩 튀어나온 똥배나 나온 작자들이라고 아무리 험담을 하더라도, 언론이 한 운동선수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똑똑히 이야기해 줄 것이다.
메이저 리그에는 가히 언론 플레이의 귀재라 할 수 있는 선수들이 몇몇 있다.
Cal Ripken이나 Alex Rodriguez 같은 위선자들이 마이크 앞에서 알랑방귀를 뀌어대는 꼴을 보면 구역질이 날 정도다 ;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들어보면, 마치 사전에 무슨 연구소에서 예상 질문들과 답변을 모조리 준비해 놓은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Alex가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대기업의 대변인들 조차 볼품없고 가엽게 느껴질 정도다.
내가 지금까지 보아 온 어느 정치가보다도 정치적인 사람이 바로 Alex다.
선수생활 초기부터 이렇게 훈련 받았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오로지 돈, 돈, 돈만을 벌도록 철저히 세뇌되었다.
Alex는 팬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하는 선수로써의 가치는 없다 ; 그는 그저 뒤에서 묵묵히 플레이를 하는 2번 타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수치상으로 보았을 때 그의 성적은 아주 훌륭하며, 이를 근거로 구단들은 그에게 천문학적인 연봉을 지급한다.
그리고 Alex를 비롯한 야구계의 정치 선수들은 항상 기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정답만을 얘기한다.
마치 새들에게 모이를 주듯이, 언론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이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전부 다 거짓말이면 어떠랴?
누가 그걸 따지겠는가?
기자들의 입장에서는 TV나 신문에서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을만한 선수들의 몇 마디를 실으면 그만이다.
그러한 선수들이 언론에서 하는 말들은 사실 별 의미도 없는 쓰레기다.
하지만 다 운동 선수의 입에서 나올 법한 말들이고, 기자들의 입장에서는 기사를 작성하기가 수월하여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것이다.
언론은 이런 식으로 쓰잘데기 없지만, 기자들이 듣기 원하는 말을 잘 해 주는 선수들에게 보상을 해 준다.
예전에는 Cal Ripken 선수가 카메라 앞의 광대 노릇을 하며 자신에 대한 인위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선수였는데, 요즘은 Alex가 그 역할을 이어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Cal Ripken을 최고의 영웅으로 삼았다고 하니,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Alex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그가 아주 순수하고 깨끗한, 절대로 나쁜 일을 할 리 없는 선수라는 것이다.
그는 항상 신중하고, 모든 일을 올바르게 처리하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일부 기자들은 그가 너무나 완벽하고, 항상 정치적으로 올바른 말만 하기 때문에 재미가 없다고 불만을 털어놓기도 한다.
하지만 왜 항상 그에게 마이크를 돌리는가?
왜냐하면 그가 언젠가 저지를 수도 있는 실수를 포착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 일반 대중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그는 성자가 아니며, 기자들은 지금 아주 사소한 실수라도 놓치지 않고 파고들 태세를 갖추고 있는 상황이다.
선수생활 내내 Cal Ripken은 언론의 철저한 보호를 받았다.
야구 가족에서 성장한 그는 나쁜 일을 할래야 할 수가 없는 ‘untouchable’이었다.
동료 선수들에 대한 푸대접을 일삼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화살이 돌아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는 동료 선수들과 따로 숙소를 사용했음은 물론이고, 이동 중에도 별도의 차량에 홀로 탑승했다.
공식적으로는 신변보호 차원에서 이러한 조치를 취했다고 발표했지만, 우리 같은 유색인종 선수들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만약 유색인종 선수가 그처럼 동료 선수들과 떨어져 개별 행동을 했다고 상상해 보자.
언론은 아마 그에 대해
“팀워크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선수다.
팀이야 어찌 되든 자기하고는 상관이 없다는 생각인 모양이다.”
라고 비난을 퍼부었을 것이다.
하지만 Ripken 같은 선수는 아무런 부담 없이 자기 멋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야구계의 이중잣대가 또 한 번 적용된 사례다.
선수의 입장에서는 야구의 “야”자도 모르는 무식한 기자들을 상대한다는 것이 무척 짜증나는 일이다.
직구와 슬라이더를 완벽하게 구사하며 훌륭한 경기를 치른 투수에게 인터뷰를 청하며
“오늘 성공의 비결은 무엇이었습니까?”
라고 묻는 기자들의 모습을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야 당연히 ‘원하는 대로 제구가 되었고 스터프도 좋았기 때문’이다!
경기를 내내 지켜 봤으면서도 그걸 모른단 말인가?
물론 나 같은 사람이야 같은 선수니까 기자들보다 야구에 대해 조금 더 잘 알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수년간 야구경기를 취재한 사람들이 그 정도쯤은 짐작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무엇보다 웃기는 작자들은 숫자놀음을 좋아하는 싸이코 기자들이다.
선수생활 경험은 고사하고, 야구에 대해 깊이 알지도 못하면서 숫자만 가지고 야구를 정의하려고 하는 기자들도 있다.
한마디로 장난하자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숫자만으로 야구를 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숫자만 가지고는 선수가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든지, 아니면 가정 불화를 겪고 있다든지 하는 요소들은 파악할 수 없다.
경기 외적인 휴먼 요소들은 숫자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작자들은 자기가 무척 똑똑한 줄로 착각하고 있다.
지나친 우월감에 젖어 있는 일부 기자들은 차마 눈 뜨고 보기 민망할 정도다.
만약 이런 류의 기자들이 선수들이 있는 클럽하우스를 방문하기라도 한다면 참 재미있는 광경이 벌어질 텐데,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선수와 직접 대면하는 것을 꺼려한다.
지난 20여 년간 스포츠 비즈니스 업계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오늘날 스포츠 언론사간의 치열한 경쟁에 비하면 20년 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난 그 세월 동안 선수생활을 해 온 한 사람으로써, 그 차이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오늘날 스포츠 언론사간의 경쟁은 야만적이며, 기자들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있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지어내기까지 한다.
물론 기자들이 늘 거짓말만 하고 다닌다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뼈아픈 경험을 통해 이들이 때로는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언론은 나를 소재 삼아 수백만의 판매부수를 올렸고, 나를 통해 유명해진 기자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나에 대해 보도한 내용 중 새빨간 거짓말들도 많았다.
언론은 Jose Canseco라는 한 인간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1980년대 당시, 나는 운동선수라기 보다는 록음악 스타에 가까웠다.
내가 가는 곳마다 보디가드들이 동행했고, 나는 매력적인 몸과 튀는 개성을 가진 스타로써의 모든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마치 허리우드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야구 선수로써의 활약보다는
‘저 친구 요즘 Madonna랑 사귄다며?’,
‘Jose 엉덩이 정말 멋있지 않아?’
라는 식의 이야기를 더 많이 일삼았다.
내가 경기에서 어떤 성적을 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언론과 팬들에게 재미있고 화려한 뉴스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무슨 짓을 하든, 언론은 이를 과대 포장하여 보도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나는 기자들의 질문에 항상 솔직하게 나의 진심을 털어놓았지만, 그들은 한 번도 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마 이해하려고 노력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자들 대부분은 나를 일종의 만화 캐릭터 내지는 광대로 묘사하는 것에 만족했고, 이는 언론 사주들이 원했던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신문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기자들이 나를 오해한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자라온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Miami에 거주하는 쿠바인들의 위상이 많이 나아졌지만, 내가 선수생활을 시작하던 20년 전만 하더라도 인종차별이 곳곳에 팽배해 있었다.
특정인의 배경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당연히 그러려니 하는 선입견을 가진, 자기가 인종차별주의자인 사실 조차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 말이다.
좋다, 인정하겠다 ; 우리 라틴계 사람들은 꿀 먹은 벙어리들이 절대 아니다.
우리는 민족의 특성상 크게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소리지르는 것도 좋아한다.
그게 우리들의 의사소통 방식이다.
우리에게 있어 침묵보다는 가끔씩 언성을 높이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언론은 내가 첫 번째 부인 Esther와 이야기 하면서 서로를 향해 소리를 치다시피 하는 장면이 목격되기라도 하면, 마치 우리가 사생결단이라도 내기 위해 부부싸움을 일삼고 있다는 식으로 보도하곤 했다.
Ripken, McGwire 등과 같은 선수들과는 격이 틀린 일개 라틴계 선수로써 내가 야구계의 이중잣대를 절실하게 느꼈던 사건이 하나 있다.
1988년에 Washington Post지의 Thomas Boswell이란 기자가 나에 대해 썼던 글이다.
당시 그는 야구계의 스테로이드 사용 실태와 관련하여 나를 본보기로 삼기로 마음먹고 글을 썼는데, 내가 스테로이드를 복용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못했다.
그리고 기실 Mark McGwire가 나보다 훨씬 몸집이 불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이, 나만 문제를 삼는 이유에 대해서도 전혀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왜?
어느 누구도 착하디 착한 McGwire가 무슨 짓을 했는지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고, 알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나는 항상 나쁜 놈이었고, 따라서 나쁜 놈으로 취급되어야 마땅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기사가 나간 후, 다른 언론사들도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 나를 가지고 노는 게 무척 재미난 일이었던 모양이다.
Boswell이 나에 대해 스테로이드 문제를 최초로 제기한 후, 무려 12년이 지난 후에야 McGwire의 스테로이드 복용 가능성에 대한 첫 기사가 나왔다.
Boswell이 나에게 스테로이드 복용 혐의를 씌웠던 것에 왜 그리 신경을 쓰냐고?
일단 그 사건 때문에 Pepsi와 맺었던 백 만불 짜리 광고계약이 파기되었다.
광고촬영 일정까지 모두 정해져 있는 상태였다 ; 쿠바에서 온 덩치 큰 친구, Jose Canseco가 마운드에서 Pepsi 캔을 던지는 장면을 찍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Boswell의 기사가 나간 후, Pepsi측의 태도가 갑자기 돌변했다.
Boswell은 마치 손가락을 튕기듯, 기사 하나로 내 주머니에 들어온 백만 불을 빼앗아 간 것이었다.
Pepsi 사건 직후, 다른 기업들도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어느 누구도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지만, 내가 스테로이드를 사용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져나간 후 나는 더 이상 광고 상품으로써의 가치가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나는 Boswell을 상대로 고소까지 할 생각이었지만, 결국은 시간 낭비라 판단하고 그만두었다.
그 후 Boston에서 Red Sox를 상대로 플레이오프를 치르는데, 웃기는 일이 발생했다.
내 주위를 둘러싼 팬들이 모두
‘스테로이드! 스테로이드!’
라 외치며 나를 조롱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순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팬들이 나의 옆모습을 볼 수 있도록 방향을 잡은 후, 팔을 굽혀 나의 울퉁불퉁한 알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돌아서서 반대쪽 알통도 보여주었다.
그러자 팬들은 좋아하며 광분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게 연예인으로써의 끼가 있어 자연스럽게 그런 쇼맨십을 즉흥적으로 발휘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언론을 상대하는 일에 있어서는 여러 모로 어리석었다.
언론의 힘이 선수의 생명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긴, 기사를 다루는 기자들 조차 펜의 위력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의 글이 선수들의 이미지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망각하고 있었으니, 내가 언론의 힘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Albert Belle 선수와 그리 친하진 않았지만, 그 역시 언론의 힘에 의해 희생된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그도 바보 같은 짓을 많이 하긴 했다.
예를 들어 1996년, Sports Illustrated 사진기자에게 야구공을 던진 사건은 정말 어리석은 행위였다. 나는 그런 망나니 같은 짓은 한 적이 없다.
어쨌든, 문제는 바로 이거다 : 만약 Ripken이나 McGwire가 그런 일을 저질렀다면 언론에서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아마도 그들의 유머감각을 칭찬하며
“하하, 정말 재미 있습니다.
야구 잘하는 사람들이 장난도 잘하는군요.”
라고 보도했을 것이다.
Ty Cobb을 비롯한 야구사의 위대한 선수들 중에는 못 말리는 망나니들도 참 많았다.
물론 그런 사실은 이해할 수 있다.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경기장 밖에서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 선수들도 얼마든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백인 선수가 그런 망나니 짓을 하면 ‘근성 있고, 터프하고, 승부욕이 대단한’ 선수로 묘사되는 반면, 흑인이나 라틴계 선수에게는 그가 천성이 못된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근거로 사용된다.
나는 언론의 횡포가 CF 계약의 성사여부에 영향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감사합니다, Tom Boswell씨),
구단과 장기계약을 할 때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특정 구단과 상호 우호적인 장기계약을 맺기를 원한다면, 언론을 상대할 때 특히나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
기자들에게 싫은 소리를 한다거나 불만을 털어놓는 일은 절대 금물이다.
McGwire는 선수들끼리 있을 때 기자들을 “호모새끼들”이라고 표현하곤 했다.
그는 그런 식으로 기자들을 비하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나와 마찬가지로 기자들이 자기를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여기서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겠다 : 아무리 돈 많은 슈퍼스타 선수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가족을 꾸려나갈 책임이 있고 감정이 있는 인간들이라는 사실을 기자들이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야구 선수들도 어떨 때는 웃고 싶고, 어떨 때는 울고 싶은, 똑 같은 인간들이다.
선수들마다 독특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 매일마다 생각이 바뀌는 선수들도 있고, 하루 중에도 시시각각 변덕을 부리는 선수들도 있을 수 있다.
항상 얼굴에 웃음을 띠고 다닐 수 있는 사람은 없다 ; 가족 중 누군가 아프다거나, 가정에 불화가 있다거나,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웃고 다닐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구든 언젠가 말 실수를 하기 마련인데, 선수들은 그런 실수를 저지를 때 마다 언론의 공격을 받게 된다.
하나의 사건만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친구나 직장 동료들을 잘 알기 위해서는 그들과 부대끼며 시간을 보내야 하듯이, 야구 선수들도 장시간 지켜보면서 그들의 행동양식을 파악한 후에야 비로소 그를 알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자들은 항상 객관성과 공평무사의 원칙을 입에 담지만, 그들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언론은 자기들 내키는 대로 어떠한 사건을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요리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으며, 모든 사람들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여론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마음에 드는 선수를 얼마든지 띠워줄 수도 있고, 맘에 안 들면 파멸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나를 취재했던 모든 기자들이 나를 공격만 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지난 1990년, Sports Illustrated지의 Rick Reilly 기자는 나에 대한 대중의 잘못된 인식을 깨기 위해 특집 기사를 내기도 했다.
Reilly 기자는 이렇게 썼다.
“Jose Canseco 선수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San Francisco Examiner의 Bill Mandel 칼럼니스트는 Canseco를 단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그를 비난한다.
’난 New York 출신이다.
New York에서는 Canseco 같은 사람에 대해 ‘얼간이’라는 호칭을 즐겨 사용한다.’.
Canseco 선수가 그의 말대로 진짜 얼간이라면, 그가 정기적으로 Miami Youth Club에서 불우한 어린이들과 함께 농구도 하고, 저녁 식사도 사 주고, 수백 켤레의 운동화를 기증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Canseco가 얼간이라면 왜 불치병에 걸린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Make-a-Wish Foundation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것일까
? Canseco가 얼간이라면 왜 백혈병에 걸린 어린이에게 비행기표를 보내줘 A’s 춘계 훈련을 참관할 수 있도록 해 주었을까?
Canseco가 얼간이라면 왜 전신마비가 된 어린이를 돕기 위해 Pleasanton, California까지 가서 4시간 반 동안 사인을 해 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가 진짜 얼간이라면, 왜 동생에게 집과 Porsche 911을 사 주고, 아버지에게는 Cadillac을 사 주었을까?
Jose Canseco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야구계의 신사다.
그 스스로 지난번에 그런 얘기를 했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 기사는 Sports Illustrated지가 오늘날의 ESPN과 같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시기에 나왔다.
당시의 Sports Illustrated지는 스포츠 언론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Rick Reilly 기자의 의견에 많은 사람들이 호응해 줬더라면 참 좋았을 뻔 했다.
하지만 Reilly의 기사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였다.
역시 가장 큰 문제는 대부분의 스포츠 기자들과 분석가들이 자기가 어떤 말을 지껄이고 있는지 조차 잘 모른다는 것이다.
일반 대중은 언론에서 보고 들은 것들이 모두 사실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지면에 등장하는 기사들 중 절반 가량은 기자들과 저널리스트들이 공부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끄적거린 부실한 글들에 불과하다.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선수들의 발언을 기사화하기도 하고, 주관적인 견해와 감정에 얽매여 글을 쓰는 경우도 많다.
17년간의 프로 선수생활을 통해 스포츠 언론의 행태를 가까이서 지켜본 결과, 기자나 저널리스트들이 자신의 개인적인 견해를 기사화하는 순간 긴장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실제로 일어난 일을 사실 그대로 적지 않고 개인의 감정에 치우치다 보면, 사건을 과장해서 표현하게 되기 마련이다.
내게 있어 유능한 기자라는 것은, 사실과 개인적인 감정(특정 선수, 선수의 인종, 피부색, 신념에 대한 선입견)을 혼동하지 않는 사람을 의미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실제로 언론계에는 인종차별적인 시각을 가진 기자들이 일부 포진해 있고, 이들에게 힘이 주어지면 한 선수의 인생을 파멸시키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과민반응하고 있는 것 같은가?
모두들 철이 좀 들어야 한다.
수천 명에 이르는 기자들 중 인종차별주의자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믿는 사람은 정말 세상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전세계 모든 분야에 인종차별이 존재하고 있다.
언론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기자들은 일반 대중이 선수들의 참모습에 대해 알 수 있는 통로는 언론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언론은 선수들의 발언을 왜곡하거나, 선수들이 인터뷰에 불응할 경우 자기 내키는 대로 마구 글을 써대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 결과 기자의 개인적인 견해와 사실적인 내용을 분간할 수 없는 일반 대중만 피해를 보게 된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1989년에 Bay Area에서 발생한 Loma Prieta 지진, 다들 기억하고 계실 것이다.
Oakland A’s는 그 날 Giants와 월드 시리즈 3차전을 치르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오후 5시경에 지진이 발생했을 때 선수들은 필드에서 연습 중이었고, 나는 서둘러 Esther와 함께 구장을 빠져나갔다.
우리는 Porsche에 몸을 싣고 Easy Bay의 Blackhawk 지역으로 즉시 향했다 ; 클럽하우스가 정전이 되는 바람에 나는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유니폼 차림이었다.
기름이 거의 떨어져 주유소에 들렀는데, 이미 많은 차량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30여분 후 우리 차례가 왔을 때였다.
Esther는 자기가 나가서 직접 주유를 하겠다고 내게 말했다.
(셀프서비스 주유소였다).
“당신은 그냥 차 안에 있으세요.
아직 유니폼 차림인데다, 밖에 사람들도 저리 많잖아요.
당신이 그 차림으로 나갔다간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요.
사람들이 한꺼번에 싸인 받으려 몰려들 것이고, 그럼 더욱 더 혼잡해질 거예요.”
그래서 Esther가 나 대신 나가서 주유를 했다.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결코 넘어가지 못했다.
Esther가 주유를 마치고 우리는 계속 가던 길을 갔는데, 주유소에서 대기하던 사람들 중 기자가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다음 날 신문에는
‘부인에게 중노동을 강요하는 남성 우월주의의 화신, Jose Canseco’
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Girls Gone Wild’라는 제목의 영화 들어 보셨는가?
이러한 상황에서는 차라리 ‘Media Gone Wild’라는 제목이 더 적합할 것 같다.
언론이 어떤 식으로 진실을 왜곡하는지, 한 가지 사례를 더 소개하겠다.
‘악명 높은 총잡이, Jose Canseco’라고 내가 개인적으로 칭하는 사건이다.
내가 MVP를 수상한 이듬해인, 1989년에 있었던 일이다.
나는 그 해 춘계 훈련 도중 손에 골절상을 입었다. 중요한 부위는 아니었지만 통증이 무척 심했기 때문에 수술을 받은 후 한동안 기브스를 하고 다녀야만 했다.
얼마 후인 4월 말의 어느 날, 나는 Esther와 함께 붉은 색 Jaguar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다친 부위가 잘 아물어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간단한 검진을 받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San Francisco Medical Center의 University Of California 대학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켰고, 당시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그 날은 금요일이었고, 근방에 우리 차 말고는 다른 차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Esther와 나는 병원으로 들어갔고, 나는 자기장 이미지 테스트를 받았다.
다행스럽게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다.
진료가 끝나고 차를 타러 돌아가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4~5대의 경찰차가 내 차를 포위하고 있었다.
경찰관 중 한 명이 내게 물었다. “당신이 이 차 주인이요?”
“네, 그런데요.”
“당신을 체포합니다.”
“체포라고요?
아니, 제가 뭘 어쨌는데요?”
“캠퍼스 안에서 총기를 소지한 혐의입니다.”
내 차 안에 9mm 자동 피스톨이 비치되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불법으로 소지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정식으로 허가를 받은 총이었다.
나는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만일의 사태에 내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구비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나를 통해 어떻게 해서든 돈을 좀 벌어보거나, 심지어는 신변에 위협을 가하려 하는 미치광이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내가 어이가 없었던 것은 총기소지 자체를 문제 삼은 경찰관들의 태도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차 안에 총기가 있는 것이 뭐 그리 큰 죄가 되는지도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나의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 역시 어처구니 없었다.
나는 평소에 그 총기를 운전석 아래의 자루 속에 보관했는데, 차를 주차하면서 자루가 앞으로 약간 밀려나온 것이었다.
우리가 병원으로 들어간 후 누군가가 “40-40” 번호판이 찍혀 있는 나의 차에 관심을 갖고 접근을 했고, 우연히 총기 자루를 보게 된 것이다.
그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고, 나는 영문도 모른 채 FBI의 심문을 받게 되었다. 문제의 소지가 전혀 없는, 정식 허가를 받은 총 한 자루 때문에, 그것도 누가 내 차에서 두리번거리지만 않았어도 조용히 넘어갔을 사건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언론은 기회다 싶어 그 날의 사건을 대대적으로 과장하며 보도했다.
San Francisco Chronicle지는 스포츠 면이 아니라 아예 헤드라인에 대문짝만하게 다음과 같은 제목을 실었다 :
“Canseco 구속! 실탄으로 장전된 총기, 자가용에서 발견!!!”
Chronicle지의 기사 내용도 기가 찼지만, 다른 매체에서도 서둘러 이 사건을 뻥튀기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기사들을 다 읽고 나면, 내가 마치 실탄이 장전된 총기를 학생들에게 겨누고 마구 발포라도 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
철창 신세가 된 나를 면회하러 온 Esther에게 기자들은 마이크를 들이댔고, 그녀는 간단하게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미친 짓이에요!’
라고 대답했다.
이런 터무니없는 사건 하나가 터지게 되면 평생 그 짐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
총기소지 사건 이후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 일에 대해 캐물었고, 나는 졸지에 대학 캠퍼스에서 사람들에게 총기나 겨누고 다니는 미친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만약 그 사건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 Cal Ripken이었으면 어땠을까? 아마도 이런 식이었을 것이다 : “실례합니다 Ripken씨.
죄송합니다만 차 안에 있는 그 총기 좀 볼 수 있을까요?
잠시면 됩니다.
그냥 형식적인 조사일 뿐입니다.
아, 정식으로 허가 받은 총기라고요?
전혀 문제 없다고요?
허허, 그럼 됐습니다.
앞으로도 그라운드에서의 좋은 활약 기대합니다. 파이팅!”
이와 같은 심각한 사례 말고도 정말 어이없는 일들이 많았다.
Double-A Huntsville에서 생활하던 시절, 한 기자가 찾아와 나를 가리키며 코치에게 이렇게 물었다 : “저 친구 영어 할 줄 알아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져나올 뻔 했다.
이름이 Canseco고 라틴계 사람이면 당연히 영어도 못할 것이라 생각했단 말인가?
하하. Arnold Schwarzenegger에게도 그렇게 한 번 물어보시지?
하지만 솔직히 마이너 리그 기자들은 욕하고 싶지 않다.
이들은 메이저 리그 기자들과는 많이 다르다 ; 이들은 야구 자체와 관련된 뉴스에 대해 관심이 많다.
메이저 리그 기자들은 야구보다도 선수들의 지저분한 사생활이나 뒷조사를 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다.
물론 건드려선 안 되는 선수들은 제외하고 말이다.
나는 선수생활 초기부터 야구계의 악당이었다.
기자들은 늘 나와 Mark McGwire를 비교해 가며 대비시켰다 ; 질주하는 스포츠카를 사랑하는 라틴계 러버보이 악당, Jose Canseco와 대 미국의 자랑스런 아들, Mark McGwire…
생각해보면 그나마 선수생활 초기 때 언론과의 마찰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 같다.
나는 수줍음을 많이 타긴 했지만, 기자들과 인터뷰 하는 일을 그리 대수롭게 생각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1985년에 Triple-A Tacoma로 승격되면서부터 언론과 부딪히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 팀은 헤매고 있었다.
우리의 경기를 보러 오는 관중도 없었고, Tacoma 팀은 아예 지도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이와 같이 절박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구단은 언론을 동원하여 나를 A’s의 차세대 유망주로 부각시켰다.
나는 혜성같이 등장한 강타자, 위기에 빠진 A’s를 수렁에서 건져줄 구세주였다.
그리고 언론도 구단의 이러한 이미지 메이킹에 동조했다.
내가 데뷔한 후, A’s는 Mark McGwire, Walt Weiss와 같은 선수들도 키우면서 본격적인 팀 재건에 착수했다. 그리고 우리는 조금씩 승리의 기쁨을 맛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모든 짐을 짊어진 팀의 구세주로 인식되었고, 중간에 무엇인가 하나라도 삐걱거리면 언론은 사정없이 내게 모든 책임을 돌렸다.
기자라는 직업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Oakland에서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야구에 대한 열기가 다시 높아지면서 언론사간의 경쟁 역시 과열되었다.
하나의 팀을 취재하기 위해 동시에 여러 언론사들이 달려들다 보니, 기자들은 독자들의 주목을 끌기 위해 새롭고 튀는 뉴스거리를 어떻게 해서든 짜내야 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기자들은 독자들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나를 표적으로 삼았고, 나는 가는 곳마다 논란거리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각 신문사 기자들은 나의 사생활과 결혼을 비롯하여, 나의 배경까지 철저히 해부하기 시작했다. 1987년이 되자 나는 어느새 언론사 기자들의 동네북이 되어 있었다.
자가용에 썬팅을 하는 조그마한 일에서부터 시작해서, 나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전국 언론매체를 타고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정말 웃기지도 않았다.
내가 언론으로부터 조금이나마 해방된 것은 프로 야구생활 마감 2~3년을 앞둔 시점이었다.
수줍은 성격도 벗어버리고 기자들과 조금씩 친분을 쌓아가면서, 나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도 조금씩 녹아 내린 것이다.
그 이전까지 나는 수년간 언론의 조롱, 조작, 그리고 과장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나에 대한 흑색 선전을 일삼는 기자들은 하나같이 백인이었다는 사실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야구생활 내내 유색인종이 운영하는 언론사나 기자, 프로듀서가 나를 그런 식으로 비방했던 기억은 없다.
물론 나도 매일같이 그들에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나는 프로야구의 세계에 존재하는 이중잣대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항변했고, 선수들의 연봉계약 시기가 찾아왔을 때 흑인 선수들이 불공평한 대접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보고 문제 제기를 하기도 했다.
Will Clark와 Kevin Mitchell 선수가 계약을 할 당시의 이야기를 예로 들겠다.
두 선수가 함께 뛰면서 Kevin Mitchell이 훨씬 더 좋은 성적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Will Clark는 고액 연봉에 4년 계약을 따 냈고 Kevin Mitchell은 그러하지 못했다.
나는 이 때 문제를 제기했고, 백인들이 주도하는 언론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또 폭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나는 불의를 보고 불만을 표시한 나의 행위에 대해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은 전혀 느끼지 않았다.
왜냐고?
나와 같은 유색인종 선수들은 그렇지 않아도 Will Clark에 대해 그다지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출신인 Will Clark는 평소에도 소수민족을 자극하는 투의 발언을 거리낌없이 해 왔었고, 그가 우리를 깔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그를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백인이었고, 그는 Will Clark이었고, 그는 시스템의 보호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Clark와 Mitchell 선수의 일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한 후, 내가 가는 구장마다 소수민족 선수들이 나를 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거나 하이 파이브를 해 왔다.
그들은 내게 야구계의 이중잣대에 도전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고, 나의 그러한 행동을 반겼다.
내가 야구계에서 은퇴할 때까지 미쳐 깨닫지 못한 일이었지만, 논란이 되었던 나의 이러한 행동들은 종국에는 나에게 득보다는 실을 더 많이 안겨다 주었다.
내가 만약 이런 정치적인 발언들을 하지 않았더라면, 불의를 보고도 입을 다물고 싸우지 않았더라면, 구단주들이 나에게 선수로 뛸 수 있는 기회를 연장시켜 주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일반 대중은 언론에서 정의의 사자로 묘사되는 선수들이 완벽하게 깨끗한 사람들이 절대 아니며, 나쁜 이미지를 가진 선수들이 그리 못된 사람들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진실은 항상 그 중간 어디엔가 있는 법이다.
그렇다. 언론은 악마도 천사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고, 그와 반대로 천사를 악마로 묘사할 수도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정치계인 흑색선전과 다를 바가 없다. 언론이 정확하게 사실을 보도하지 않는다면 일반 대중은 정치판에서 정확히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런데 정보 전달을 해야 할 언론이 대중을 기만하고 있다면?
진실을 조작하는 언론의 행태는 예전에도 있었고, 오늘날에도 일부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미래에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언론이 전하는 정보를 믿고 말고는 대중들의 몫이다.
내가 스스로에게 수 차례 다짐했듯이, 스포츠 기자의 말 조차 믿을 수 없다면 과연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한단 말인가?
번 역 : 윤 민
첫댓글 언론이 한 운동선수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숫자만으로 야구를 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좋은말이네요.. 역시 그쪽답게 차별은 존재하나 봅니다.
뭐 유색 인종 선수이긴 하지만 느바에서 분명 조던 룰이 존재했었구..예전 래리 버드도 언론에게 있어(자신이 원하지 않았더라도) 유부형의 언론의 도움을 많이 받은것이 사실이니깐요.. 지난번 론 아테스트 껀도 그가 백인이었거나 이미지가 좋은 선수였다면 과연 그정도로 무거운 제지를 받았을까에 대한 의문역시 존재
합니다.. -_-;; 사실 MLB에서도 켄트의 "JBL적 마인드"가 그다지 부각되지 않다가 LA로이적해서야 세인들에게 입에 오르내리고 있고 반면 "먹튀"라는 선수들에대한 인격적인 비난(모욕)은 유색인종 선수들(벨,모 본,박찬호 등)이 주대상이고 반면 백인인 DD나 케빈 에이피어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었단 점을 비교해본다면
정말 그래요... 다렌 드라이포트... 왜 욕을 안먹는지... 물론 막판에 너무 초췌해져서 욕하기도 미안할 정도였지만요... 케빈 에이피어는 그나마 애너하임의 월드시리즈 우승멤버이었고 활약은 미미했지만 큰 부상없이 자신의 계약기간은 채워줬으니 비판은 상대적으로 덜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