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마경덕
창을 넘어오는 빗소리, 어둠에 숨은 밤비를 소리로 읽는다. 지붕 아래 누워 밤새 빗소리에 젖는 일은 단잠과 바꿔도 참 좋은 일
모과나무 첫 태에 맺힌 시퍼런 모과 한 알, 서툰 어미가 두 손을 움켜쥐는 밤. 빗물에 고개가 무거운 옥상의 풋대추도 노랗게 물든 살구도 자다 깨어 빗물에 얼굴을 닦고 있을 것이다.
내일이면 뿌리째 뽑힌 텃밭 달개비도 기운 차려 보랏빛 꽃을 내밀겠다. 첩의 입술 같은 붉은 능소화는 길바닥에 속엣말을 흥건히 쏟아놓겠다.
투둑투둑 콘크리트 바닥에 부딪혀 비의 발목이 부러지는 소리, 사방으로 빗물 튀는 소리.
피를 수혈받는 밤
젖어야 사는 것들은 지붕이 없다.
마경덕 시인
전남 여수 출생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신발론』 『글러브 중독자』 『사물의 입』 -新 글러브 중독자 『그녀의 외로움은 B형』
2012년 ‘100명의 시인이 뽑은 올해의 좋은 시집’ 『글러브 중독자』 선정
2013년 ‘시인이 뽑은 올해의 좋은 시’ BEST 10 「놀란흙」 선정
2014년 ‘시인이 뽑은 올해의 좋은 시’ BEST 10 「뻐꾹채는 피고」 선정
제2회 북한강문학상 대상 . 두레문학상 , 선경상상인문학상. 모던포엠 문학상 수상
롯데백화점, AK문화아카데미, 강남문화원, 솜다리문학 시 창작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