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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구려 토론방 스크랩 고구려와 한의 9년 전쟁
산중호걸 추천 0 조회 634 08.09.27 09:34 댓글 35
게시글 본문내용

1. 고구려의 건국 연대는 삭감되었다.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고구려의 건국연대는 삭감되었다고 주장했다. 단재는 근거로 당대의 비기와 광개토대왕릉비문의 내용을 들었다.

  • 고구려 말기 "9백년에 미치지 못한다."라는 비기가 유행했다.
  • 광개토대왕릉비문에 "17세손 광개토경평안호태왕에게 전하였다." 라는 구절이 있다.

단재는 고구려의 연대가 약 1백 몇 십년이 삭감되었다고 보았고, 이를 근거로 고구려의 건국연대를 기원전 190년경의 전후 수십 년으로 올려보았다.

 

2. 동부여의 분립

 

신화는 전한다. 부여의 왕 해부루의 신하였던 아란불이 왕에게 고하기를 "꿈에 천신이 내려와 이르기를, '이 땅에는 장차 내 자손으로 하여금 나라를 세우도록 하고자 하니, 너희들은 가섭원으로 가거라.' 고 하였나이다." 천신의 뜻을 거부할 수 없었던 해부루는 가섭원으로 도읍을 옮기니 이것이 동부여이다. 그리고 고도에는 천신의 아들 해모수가 나라를 세우니 이것이 북부여라고.

신화는 역사적 사실을 은유하고 있다. 부여는 신조선(단재는 단군조선이 나중에 신조선, 말조선, 불조선으로 분립했다고 보았다.)의 별칭이다. 당시 신조선 즉 부여는 흉노와의 전쟁에 대패한 상태였다. 이로인해 흉흉해진 민심을 수습하고자 해부루와 아란불은 천신의 뜻이라 하여 도읍을 옮긴 것이다.

그리고 부여의 옛 땅에는 대단군을 자칭한 해모수가 나라를 세운 것이다.

 

해부루가 선택한 가섭원은 갈사나 혹은 가시라 라고 하는데 이는 삼림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중국사에서는 가시라를 옥저라고 썼는데 만주원류고에 의하면 옥저는 와지의 음역이고, 와지는 만주어로 삼림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즉 갈사 = 가시라 = 옥저 = 부여가 같은 것이다.

 

동부여 대소왕때 그리고 고구려 대무신왕때, 동부여와 고구려는 대규모 군사충돌을 한다. 이 충돌에서 동부여는 승리하였지만, 대소왕이 전사함으로써 나라가 분열된다. 막내동생 모갑은 남가시라 즉 남옥저로가 남동부여를 세웠고, 종제 모을은 고향에서 자립하여 북동부여를 세웠으나 결국 고구려에 투항하였다.

역사에 보이는 갈사국은 남동부여이고, 예전에 보이는 불내예역시 남동부여를 가리킨다는 것이 단재의 설명이다.

 

3. 한무제와 대무신왕의 대결

 

단재는 이 남동부여를 두고 한무제와 대무신왕이 격돌했다고 주장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우선 주목해야할 기록이 있다.

 

  1. 무제가 즉위한 지 수년 후에 팽오로 하여금 예맥조선을 쳐서 창해군을 설치하려 하였으므로 연과 제 사이의 지방은 큰 소동에 휩싸였다. - <한서 식화지>
  2. 한 무제 원삭 원년(기원전 128년)에, 예군 남려 등이 우거에 반기를 들고28만 명을 거르니고 요동으로찾아와서 한(漢)에 투항하였다. 그리고 그 땅을 창해군으로 만들었다. - <후한서 예전>
  3. 원삭 3년(126년) 봄에 창해군을  파하였다. - <한서 본기>
  4. 지금 예주를 침략하여 성읍을 설치하고자 한다. - <한서 주보언열전의 원광 원년(기원전 134년) 엄안의 상소문>

단재는 남려를 남동부여로 보았다. 예전에 기록된 불내예왕이 남동부여를 가리킨다고 보았던 단재는 한 무제에 투항하고자 했던 예군 남려를 남동부여로 보았다.

대소왕이 전사한 이후 남동부여는 고구려의 속국으로 전락했다. 고구려의 압박이 날로 강해지자, 남동부여는 한과 통하여 고구려에 대항하고자 했다. 남동부여의 요청을 받은 한 무제는 남동부여 땅에 창해군을 설치할 계획을 세우고 팽오를 대장으로 삼아, 바다를 건너니, 이때가 기원전 134년이다. 그러나 고구려의 저항은 완강했다. 결국 9년간의 혈전끝에 한 무제는 창해군 설치를 포기했고, 전쟁을 종결시킬 수 밖에 없었다.

 

 * 조선상고사를 읽다가 이 부분이 좀 흥미로워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회원님들 생각이 듣고 싶어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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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09.28 01:47

    첫댓글 BC 134~BC 126 의 요동지역의 일이라면, 고구려 대 한이 아니라 <고조선 대 한>의 대립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지 않을까요? (이 시기는 위만조선이 멸망하는 BC 108 이전입니다) 당시 요동~한반도 북부 일대에서 고조선만큼 크게 힘을 떨친 세력은 없었을 것 같습니다. 한사군 중 현도군에 고구려현이 있던 것으로 보면 고조선 말기 무렵에 초기의 고구려가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이 고구려는 고조선의 세력권 내의 소국 정도 규모였을 것 같습니다. 고조선이 멸망한 뒤, '덩달아' 한사군의 한 소지역으로 편입되는 걸 보면... 그러니 당시에 한漢과 대립할 만한 요동~한반도의 국가라면, 역시 고조선이라 해야겠죠

  • 08.09.28 19:56

    이 시기에 고조선의 존재가 입증된 바 있나요?? '고구려 대 漢'의 기사에서 왜 갑자기 고조선이 거론되어야 할까요???

  • 08.09.28 20:15

    사마천 <<사기(史記)>>에 한무제의 (고)조선 침공 기사가 있습니다. 참고로 사마천이 한무제 당시의 사람이라는 것도 간과해선 안될 부분이죠.

  • 08.09.28 20:49

    고조선의 존재가 없었다고 보는건 아닌것 같습니다만.. 유물과 기록 그리고 건국신화만으로도.. 존재가치를 인정받고 있는게 현실 아닙니까?

  • 08.09.28 21:09

    밀리터리 나그... / 저도 고조선이 존재했다고 봅니다만 한무제 당시까지 고조선이 있었다는 얘기가 되니 '삼국유사'를 근거로 한다면 고조선의 존속기간이 무려 2,200년 이상이 되는군요. 이게 가능한가요? 전 세계에서도 유래가 없는 일인데요. 역사는 과거의 현실을 기록한 것이지 막연한 전설이 아니니까요.

  • 08.09.28 21:09

    신농님! 원문을 부탁드립니다. 한나라 시기의 조선이 과연 고조선을 말하는 걸까요? 만약 그렇다면 삼국유사에서 말하는 고조선과 연결선상에서 그 중간의 역사에서도 조선에 관한 역사기록이 존재해야 하겠죠. 그렇지 않나요? 또 2,200년이 넘는 고조선 기간 중에 수억개의 유물들이 파묻혔을텐데 한 두개 쯤은 발굴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혹시 아시는 유물이 있으면 그것도 소개바랍니다.

  • 08.09.28 22:11

    sorgai 님// 이 시기(BC 134~BC 126)에 고조선의 존재가 입증되었느냐를 묻는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이 시기에 고조선이 '없었다' 라고 주장하는 견해는 보질 못했거든요. <사기> 에는 연나라의 고조선 침공(진개의 침공) 기사가 기원전 3세기경의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고, 신농님 이야기처럼 한무제가 BC 2세기 무렵에 조선침략을 감행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 08.09.29 00:42

    진개의 기사는 한서, 화양국지, 삼국지위지동이전, 자치통감, 염철론, 통전, 구당서 등등에는 언급이 되었으나 사기는 찾을 수 없군요. 조선에 대한 기사는 사기의 영토설명 부분에 등장합니다만, 이것이 우리가 인식하는 조선인지 확인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시기에 고조선이 '없었다' 라고 주장하는 견해가 없는 것은 모르기 때문이지 고조선이 확인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죠. 상당히 오해가 있는 주장이십니다.

  • 08.09.29 00:48

    사기에서 조선을 언급했다하여 고조선으로 단정짓는다면 춘추나 시경에서 언급하는 춘추시기의 '韓'은 한민족의 韓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지 않을까요? 시경의 '大雅-蕩-267 韓奕'에서는 韓侯가 무왕을 알현하는 기사 뿐 아니라 혼인기사, 제사 등에 대해서 사기의 조선보다 韓나라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겨우 한줄의 조선기사를 근거로 고조선이라고 단정한다면 그보다 많은 설명이 있는 韓侯기사는 당연히 한민족의 기원을 설명한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게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 08.09.30 00:45

    우선 한 가지 사과를 먼저 드려야겠습니다. 찾아 보니 진개의 이야기는 <한서 흉노전> 에 나오긴 하는데, 이 이야기에는 대 조선전이 아니라 대 동호전입니다. 일부 동호 = 조선 설을 주장하는 이야기들 때문에 혼동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동호가 조선이라고 단정할 충분한 근거는 없는 이상, 사기에 진개의 조선공격 이야기가 나온다고 말할 순 없죠. 이 점 사과드립니다. (덕분에 저도 잘못 알던 것 하나를 깨쳤네요)

  • 08.09.30 00:51

    하지만 <사기> 에 나오는 '조선전' 의 조선이 고조선이 아니라는 주장은 저로선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아마 sorgai 님은 기존의 사기, 한서류 등에서 말하는 조선이 고조선임을 증명할 유물/유적이 불충분하지 않느냐는 이야기신 듯한데, 기존 학설에서 언급하는 유물/유적의 경우 어떤 점이 불충분한지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08.09.30 10:45

    역사상의 조선은 '위만조선', '기자조선', '근세조선'과 같이 조선과 결부된 개념이라고 봅니다. 즉, 최초의 조선은 굳이 ~조선이라고 할 필요도 잆었고, 후대에 최초의 조선을 계승한 나라로서의 조선이라는 의미로 구분하는 것이지요. 저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만, '단군조선'이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실존했다고 하면 이는 단군이 본래의 조선을 계승했다는 뜻이니 우리 민족의 최초나라인 고조선과는 의미가 전혀 다른 것이 됩니다.

  • 08.09.30 10:50

    민족적 계승은 혈통적 계승과 그 기록, 당시 삶이 남긴 유물, 유적, 풍속 등 전반에 걸쳐서 일관된 통일성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사기의 '조선=고조선'이라고 한다면 삼국유사에 근거할 때 2,200년 가량이 흐른 시점이니 그 이전의 조선과의 연계성이 있어야 할 겁니다. 그런데 이는 근거가 전무하고, 솔직히 우리 학자들은 '조선'의 의미조차 알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그러니 고조선을 논하는 것은 알파벳을 이해 못하면서 세익스피어의 문장론을 이야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 08.09.30 10:57

    이런 일들이 어디 고조선 뿐이겠습니까? 민족적 노래로서 모두가 인정하는 '아리랑'도 그 유래와 의미를 제대로 모르고, 민족적 대이동을 보여주는 '차례' 또한 단순히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니 우리의 역사인식이란 참으로 허망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개인적으로 사기의 조선 언급이 우리의 선대역사를 말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은 인정합니다만, '사기의 조선≠고조선'으로 판단합니다. 즉, 사기의 조선은 고조선과 고대 삼국의 빈자리를 메워주는 과도기적 성격을 가진 것이지 고조선과 동일시 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우리의 삼한인식 또한 동일한 맥락이라고 판단합니다.

  • 08.09.30 14:47

    sorgai님/1. 잘못 아시는 것 같습니다.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이라는 용어는 후대인들이 붙인 것일 뿐, 당대에 쓰이던 용어가 아닙니다. 당연히 당시 국호는 모두 '조선'이지요(설마 삼국지 조위, 남북조시대 남조의 유송 등이 당대에 쓰인 것으로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그런데 후대인들이 그 왕조를 구분한다는 의미에서 '기자'를 붙여 기자조선, '위만'을 붙여 위만조선이라 했을 뿐입니다. 단군조선이라는 말이 이전 본래의 조선 존재를 전제한다는 것은 어인 말씀인지요?

  • 08.09.30 14:55

    2. 삼국유사의 고조선 조는 말 그대로 '신화'일 따름입니다. 고고학적으로 정확히 기원전 2333년에 세워졌다라는 사실을 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솔직히 요임금 즉위 몇년에 건국했다는 표현 자체가 후대의 누군가가 중국 설화를 보고 끼워넣은 것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요). 그런 반면 춘추시대 <<관자>>나 전국시대 각종 기록, 그리고 한대(漢代) <<사기>> 등의 (고)조선 관련 기록들은 역사적 사실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따르면 주~한대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나오는 조선이란 나라가 있다는 뜻입니다.

  • 08.09.30 15:00

    님의 말씀은 이 조선이라는 나라 이전에 또 하나의 조선이 있었다는 의미인 것 같은데, 그 근거가 명확하게 제시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만. 학계에서 고조선 이전의 나라가 또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고고학적 측면(홍산 문화 관련)을 제외하고는 제기된 바가 없는 것으로 압니다. // 님의 말씀이 고금문 류의 주장이라는 것은, 님의 꼬리말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고금문에 관심을 가져본 바가 있기 때문에 그쪽에서 주장하는 상고사 상이 무엇인지도 압니다. 하지만 그것은 현재 학계에서 전혀 설득력을 가지지 못합니다. 만약 님께서 그 주장을 전개하고 싶으시면, 기정사실화해서 마치 그것이 진실인양 논하지 마시고

  • 08.09.30 15:01

    타인들이 이해할 수 있게끔 설득력있게 글을 써야 합니다.(이 이야기 제가 전부터 누차 말씀드려온 것으로 압니다)

  • 08.09.30 22:50

    1. 후대인들이 붙인 것일 뿐, 당대에 쓰이던 용어가 아님은 매우 당연한 이야기죠. 문제는 왜 각자가 조선을 계승했다고 주장하는가 입니다. 기자와 위만은 분명 그 출자가 다른 사람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조선계승을 내세우고 있으나 중시조가 다른 인물인 셈이죠. 이렇게 서로 출자가 다른 인물이 각자 조선을 내세웠다는 것은 이들을 포괄하는 선조가 있었다는 이야기이니 이들보다 앞선 시대에 조선이 있었다는 방증이 됩니다.

  • 08.09.30 22:52

    2. 삼국유사의 고조선은 신화가 아니라 사실을 말한 겁니다. 다만 후대에 최초의 역사사실을 이해하지 못해서 신화가 된 것이죠. 우리가 알에서 태어났다거나, 천손이라는 말 자체도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단어만 전달된 예입니다. 왜 신화가 되었을까요? 아리랑이나 차례의 본의를 아직도 모르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이해가 되실겁니다.

  • 08.09.30 22:55

    3. 고금류의 주장이 맞습니다. 사마천이 역사를 기록하기 전 적어도 2천 여년전에 기록된 본래의 고대문자들이죠. 거기에는 족보도 새겨져 있고, 사마천이 전하는 인물의 당대 기록도 있습니다. 당대의 기록, 이것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면 적어도 사마천이 기록한 시기보다 1천년 이상 먼저 기록된 것임은 이해하실 겁니다. 그 기록과 사마천을 비롯한 각 문헌기록과 비교해서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히 문헌쪽을 의심해야 하는 것이죠.

  • 08.09.30 22:57

    현재 학계에서 전혀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도 모르는 건 모르는 것이니까요. 왜 잣대를 학계에 두어야 하는 걸까요? 설득력있는 설명은 거듭 수없이 밝히는 바이지만 이곳은 이미지를 올려서 설명할 방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카페 개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08.09.30 23:48

    다만 의아스러운 것은 신농님이 스스로 주장한 바와 같이 '고금문에 관심을 가져본 바가 있다'고 하면서도 제 말에 대한 이해가 10%도 미치지 못한다는 겁니다. 신농님은 어느 고금문 기록을 읽으려고 시도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시면 신농님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고금문에서 조선이라는 글자의 형성내용을 이해하는 건 매우 기초적인 사항이니까요. 조선이라는 오늘날의 글자는 틀렸을 뿐 아니라, 조선의 각 획은 모두가 인칭으로서 족보를 시대순으로 나타낸 고조선시대의 이름자를 조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분들이야 생소하시니 그렇다쳐도 고금문을 공부하신 분마저 그런 반응이라면...

  • 08.10.01 00:07

    sorgai님 근데 아리랑 이나 차례의 본의가 무슨말인가요?

  • 08.10.01 19:13

    아리랑이나 차례는 그 본질은 이미 사라진 채 형식 뿐인, 껍데기만 남았다는 뜻입니다. 아리랑은 백가쟁명식의 썰만 난무하고, 차례는 그저 조상님에게 제사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는 현실이죠.

  • 08.10.01 19:28

    그렇다면 대부분의 한국인이 모르는 내용을 sorgai님은 알고있다는 말이군요 답글로 힘드시다면 따로 자료를 올려주셨으면 합니다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는 무엇인지요?

  • 08.10.01 16:03

    제가 학계 언급한 것에 대해 착각하신 것 같습니다. 저는 학계의 권위를 내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한국 역사학계도 다양화되고 있습니다. 한데 고금문류와 같은 주장을 학자들이 검토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학자들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도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당장 sorgai님부터 고금문 관련 주장에 대해서 다른 회원 분들의 공감을 살만한 근거를 전혀 제시하지 않으셨는데, 그에 입각한 주장을 펼쳐서 어떤 호응을 얻고 싶으신 것인지요?(분명 sorgai님께서 먼저 반박 리플을 달으셨습니다) sorgai님께서 개인 카페를 통해 어떻게 논증을 하시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직까지 수긍할만한 자료를 보지 못한 이

  • 08.10.01 16:06

    상 어떤 회원 분께서도 님의 갑작스러운 반박 리플에 동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주장을 제기할 때에는 스스로 충분한 논거를 펼쳐야 하며, 그렇지 않는 이상 자신의 이야기를 기정사실화해서 뜬금없이 타인의 글에 반박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다른 이야기는 제쳐두고, 이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 08.10.01 19:04

    신농님은 스스로의 요구가 어불성설임을 모른채 나온 것이면 처음부터 배워야 하고, 알고도 요구하신 것이면 답변보다는 다른 의도, 그것도 좋지 않은 의도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님은 고금문을 언급하면서 고금문을 보여주지도 않고 설명을 하실 수 있나요? 대단한 능력입니다. 그려. 저는 그런 능력이 없는고로 근거가 될만한 출전을 제시합니다.

  • 08.10.01 19:11

    고금문류와 같은 주장을 학자들이 검토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가 하는 질문은 별가치가 없는 것이죠. 고금문이나 갑골문을 연구하는 분들이 있으나 역사와 연결해서 연구한 분은 저 거의 못 봤습니다. 한 분 빼고는...신농님이 금문으로 우리역사를 연구하신 분을 아시는 것 같은데 한번 그 분들의 이름과 저서나 논문을 소개해주시죠. 제가 살펴보겠습니다. 아! 그리고 신농님은 답을 하지 않으셨어요. 고금문은 어떤 것을 교재로 공부하셨는지 답해주시기 바랍니다.

  • 08.10.01 19:13

    sorgai님, 이 카페에 고금문을 강의하러 오셨습니까? 모르면 배우는 자세로 임하라는 식의 말씀은 뭡니까? 님이 이 카페의 주인장 혹은 운영자이시면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님은 이 카페의 회원입니다. 고금문 식의 주장을 펴려면, 일반인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님이 생각하는 고금문식의 역사상은 이 카페 회원 분들의 역사상과 많이 다릅니다. 한데 처음부터 자신의 역사상(기원전 2500년경 무렵 삼황오제시대가 고조선시대다)을 기정사실화해서 반박 리플을 달면, 누가 그 말씀에 수긍하겠습니까? 아무튼 제 말의 의도는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히 설명하시지 않을 것이라면 그냥 반박을 하지 않는

  • 08.10.01 19:14

    님은 문맹입니까? 고금문을 설명하려면 뭐가 있어야 하는지 모르시나요? 또 님은 어떤 고금문을 교재로 연구하셨는지부터 답해주세요. 그럼 님을 알 수 있으니까요.

  • 08.10.01 19:21

    저는 지금 사적으로 님과 단 둘의 대화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고요. 그저 님이 이 카페 토론방에 님의 주장을 전제한 반론을 달고 싶다면, 다른 회원 분들이 납득할 수 있게 논증을 해달라고 공적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외에 저는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 08.10.01 19:13

    것이 낫겠다"는 것이니, 다른 말로 돌리지 말아주십시오.

  • 08.10.01 19:19

    신농이라는 필명을 사용하시는데도 불구하고 말을 돌리는 건 님이죠. 그렇지 않나요? 저는 출전은 제시합니다. 제가 아는 신농의 이름자의 시작은 '사고전서 전록 844-12'로 알고 있습니다만...그걸 감안해서 신농이라는 이름자를 지으신 거 아닌가요? 님은 어떤 교재로 고금문을 공부하셨다고 주장하시는지 교재를 알려주시기를 거듭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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