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유(王維)-곡은요(哭殷遙)(친구를 묻고 오며)
送君返葬石樓山(송군반장석루산) 그대를 청산(석루산)에 묻고 돌아오다 돌아보니
松柏蒼蒼賓馭還(송백창창빈어환) 송백은 푸른데 조문객은 마차 타고 돌아가네
埋骨白雲長已矣(매골백운장이의) 청산 백운에 유골을 묻으니 아, 길이 그만인 것을(인연이 영원히 다했으련만)
空餘流水向人間(공여유수향인간) 어이타, 흐르는 물은 사람을 따라오는가?
*왕유[王維, 701년 ~ 761년, 자는 마힐(摩詰), 분주(汾州, 지금의 산시성(山西省) 펀양(汾陽) 출신]는 중국 성당 시기의 시인이며 화가이자 관료로, 이백은 천재天才, 두보는 지재地才, 왕유는 인재人才로 평하기도 하고, 각각 시선詩仙, 시성詩聖, 시불詩佛이라 하였습니다.
시,서,화,음악에 능통하였고, 문학적으로는 산수전원시를 많이 창작하였고, 그림 방면에서는 중국 남송화의 비조로 추앙되며 음악에도 정통하였으며, 회화성이 뛰어나고 선취禪趣가 풍부한 산수전원시를 많이 썼습니다. 안녹산 반군에게 잡혀 반강제적으로 관직을 맡았다가 난 평정후 하옥되어 죽을 뻔한 것을 동생 왕진의 구명운동으로 풀려났고,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어머니의 감화를 받아 불교에 귀의하였고, 40세 때 장안 남쪽 남전현에 있는 망천 별장을 얻어 친구 배적과 더불어 반관반은半官半隱 생활을 하며 자연에서 노니는 즐거움을 시로 읊었습니다.
*위 시는 한문학계의 원로이신 손종섭 선생님의 “노래로 읽는 당시”에 실려 있는 것을 옮겨 본 것인데, 친구를 곡哭하는 만장輓章이라합니다. 백골을 묻은 청산을 백운이 또 묻어 겹겹으로 봉쇄하였으니 인간과의 인연을 길이 단절하였음에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겠거늘, 어찌하여 저 물마저 그곳을 지키려 하지 않고 설어라, 설어라 하면서도 끝내 버려두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따라 청산을 뒤로 하고 골 밖으로 나와 버리는고?, 그 적막한 곳에 친구를 묻어둔 채, 매정하게도 떠나오고 있는 발걸음이 차마 무거운 것이라 하고, 끝연에 서린 이 괴리감은 바로 그의 또 다른 시의 일절, “춘초연년록 왕손귀불귀 (春草年年綠 王孫歸不歸)(춘초년년록 왕손귀불귀 ; 봄풀은 해마다 푸르련만, 그대 돌아올는지 못 올는지?)”와도 통하는 감정이라 합니다.
*형식 : 칠언절구(七言絶句)
*殷遙(은요) : 성당의 시인으로 작가의 친구
返葬(반장) : 반구返柩(객지에서 죽은 사람의 시체를 고향으로 돌려옴)하여 장사지냄
賓馭(빈어) : 장례에 참여한 손들이 탄 마차
長已矣(장이의) : 길이 그만이라는 절망의 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