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난 나의 독자들께 제목에서부텀 몇 가지 오해를 불러 일으킨데 대한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리며 이 글을 시작한다, 서정은 여자이름이 아니라는 것...일전에 내가 쓴 모 습작 안에는 여정이란 이름의 여자 캐릭터가 있긴 있었다.
난 티브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탁자 끝 편 저쪽에 놓인 원형의 성냑곽에 손을 뻗쳤다. 티브이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 김민조양이 "설금설금 녹여드네"라는 곡을 부르고 있었다.
아, 이 곡을 부를 줄은 몰랐다.
사실은 이 곡이 그녀의 최고 히트곡일 것이다. 대중들은 그걸 모른다. 도대체 어쩌자고 지금 이 곡을 그녀의 일곱 번째 음반의 제일 끝에 있는 이 곡을 부르고 있는 것일까, 믿기 어려운 일이면서도 동시에 화들짝하고 놀랄 일이었기에 내 눈은 온통 티브이 안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었던 것이다. 흥분한 나는 피가 역류하며 담배를 어느 새 입에 문채 그제서야 생각난 듯 성냥곽을 찾는다. 아니 담배를 입에 문 채로 한참 동안을 티브이 속 그녀에게 눈을 빼앗기고 있었다고나 할까, 그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어째서 "설금설금 녹여드네"이냐고? 것도 '슬금슬금'도 아니고...
글쎄 그 노래를 들어보지 않은 자는 노래 제목에서 약간 촌스러운 느낌이 난다고 선입견을 가질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딱한번만이라도 아니 텔레비젼 수상기에서 그녀의 황홀한 자태와 매혹적인 두 눈을 꼭 확인하진 않더러도 그녀의 목소리만 듣는다손 치더라도 나는 누구든지 그 순간 벼락에라도 감전된 듯, 그 곡의 제목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으리라 확신한다.
그것은 순간적인 일이다. 단 일초 사이에 그 노랫가락을 듣기 이전의 찰나와 그 이후의 찰나에 그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확 변해버리는 것이다. 아니 변화 받는다고 할까...
나 역시 그랬었으니깐...
내가 생각할 때 그녀는 목소리로 사람의 영혼을 낚아대는 타고난 전도사요, 어부였다고나 할까?
이런 젠장, 한눈 팔다가 성냥곽을 놓쳤다. 성냥 다발이 탁자 아래에 흩뿌려진다. 미스 정이 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핑크 빛 바탕에 번쩍이는 모조 보석 입자로 잔뜩 수 놓인 몸에 착 달라붙는 통치마 차림의 그녀가 카운터의 미스 김과 무슨 얘기인지 한참을 키득거리다가 이제서야 일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바닥에 떨어진 아무 성냥이나 집어든채로 불을 댕겨 담배불을 일단 붙이고 난 다음에 흩어진 성냥들을 줏어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눈은 계속 티브이 수상기를 바쁘게 오간다, 한 장면이라도 놓칠세라...
그러면서도 가끔 티브이에서 억지로 눈을 떼다가 미스 정 쪽을 쳐다본다.
치마는 오른쪽 옆이 종아리부터 허벅지 근처까정 좍 찢어져 있었다. 아니 이걸 정확한 말로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미스 정이 천천히 걸을 때마다 그 틈으로 언뜻언뜻 내비치는 각선미는 날 더더욱 교란시켰다.
사실 난 원래 이런 류의 유행가에는 그다지 취미가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녀가 떠나간 이후로부터 내 귓가에 이런 류의 도롯트가 척척 감겨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엔 국민 가수 김 민조 양의 목소리가 있었다.
풍년 다방, 난 가끔 이 곳을 찾는다. 마음이 한없이 적요하거나 심사가 허허로운 오후가 찾아올 즘이면 내 발은 어김없이 이 곳을 향하고 있다. 이 곳의 쌍화차는 그야말로 명물이다. 그야말로 오후의 피로가 싹 가시게 해주는 최고 수준이라고나 할까?
미스 정은 떠나간 그녀를 쏙 빼닮았다. 미스 정을 처음 본 순간 난 가만히 선 채로 지구가 선회하는 느낌을 받았드랬다. 쌍화차와 내 옆에 감겨드는 그녀를 생각나게 하는 미스 정(물론 미스 정 목소리가 조금만 더 그녀를 닮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풍년 다방의 그 널널한 소파에 와 앉아 있으면서도 난 풍년 다방을 그리워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본다.
"오빠, 이게 뭐하는거니, 지금"
미스 정이 소파에서 내려와 바닥에 엎드린 내 자세를 보고는 단번에 내뱉는다. 그녀는 양손을 허리깨에 질끔 올려 놓는다.
"야, 넌 무슨 여자가 억양이 그렇게 드세냐"
"와서 좀 거들어라, 그렇게 빤히 구경만 하고 섰지 말고..."
미스 정은 잠시 튕기더니만 이내 쭈그리고 앉아 성냥줏는 걸 거든다...
그녀는 역시 착하다, 투박하게 구는 건 그 연약함을 감추려는 위장일 뿐이다.
"저여자가 그렇게 좋아, 허이구 완전히 넋이 나갔구먼..."
"미스 정 그대는 모른다, 같은 여자라서일까?"
"난 아무래도 저 설금설금 녹여드네란 가사가 촌스런거 있지"
"그만하고, 가서 쌍화차 두잔만 내와라"
미스 정은 알겠다는 듯이 선뜻 일어나서 주방으로 향한다.
역시 그녀의 뒷 모습은 시원시원하다.
"달걀푸는 거 잊지말고!"
난 소리를 지르듯이 말한다. 내 시선은 여전히 그 곳이다.
가수 김민조양이 곡의 클라이막스부분을 부르며 진한 바이브레이션이란 레이션은 있는대로 다 쥐어짜내며 엔딩의 여운을 갈무리하고 있다.
그때였다. 다방 문이 열리면서 손님이 오는 걸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댄 것은...
어두컴컴한 다방의 실내가 열린 문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환한 빛에 노출된다.
검은 가죽 장화가 보인다. 장화코엔 약간의 흙이 거칠게 묻어있다.
난 여전히 바닥에 기는 자세로 훤칠한 키의 그 자의 얼굴을 보려하나, 그가 등진 눈부신 후광 때문에 식별이 어렵다. 눈이 부시다. 남자의 실루엣만 겨우 파악될뿐...
어깨가 굵직한 게 장골이다.
검은 썬그라스... 크 이거 완전히 무슨 액션 영화네
순간 약간 섬칫하는 예감이 들었다.
혹여 미스 정이라도 찾아온 건 아닐까... 난 지렛짐작에 공연히 불안해졌다.
사내는 문을 연 채로 한참을 정적 속에 다방 안을 실펴보는 듯하다.
보다 못한 카운터의 미스 김이 그에게 말을 건넨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저기요..."
사내가 비로소 입을 연다. 굵직한 그 목소리, 저음 톤의 그 음향은 날 압도하기에 충분한 어떤 괴리스마가... 순간 난 나도 모르게 오금이 저렸다.
"혹시 여기 간 짜장 두 그릇 시키신 분요..."
또 장난 전화였나보다, 처음보는 사내라 했는데 알고보니 신장 개업한 근처 중국집 배달원이었다.
결국 우리는 배도 출출하고 마침 이른 저녁 시간이기도 하고 해서 간 짜장 두 그릇을 돈을 지불하고 요기를 했다. 거기다가 볶음밥 한 그릇도 추가로 시켰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손님이 없누~ 이러다 풍년 다방 문 닫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