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간호장교 출신 이종명 씨 미국의사가 되다
미국에서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의대를 진학하여 의사가 되는 경우가 많이 있어 뉴스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인이 의대를 진학하여 50 지천명의 나이에 의사가 되었다면 무슨 사연인지 많은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합니다. 이종명 씨는 한국 여인의 몸으로 50의 나이에 가정의학과 전문의 레지던트 과정을 마쳐가는 의사입니다.
이종명 씨는 간호사관학교를 졸업한 제 각시의 2년 후배이기도 하고 제게는 목은 이색 선생을 중시조로 하는 한산이씨 할머니벌 되는 종친이기도 하여 언제고 한번 만나고 싶었던 분이었습니다. 마침 오늘 미국시각 1월 10일 북가주 지역 국군간호사관학교 신년 동문 모임에 참석을 하여 그동안의 노고도 위로를 하고 또 어떻게 그 세월을 살아왔는지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이종명 씨는 1965년 청주에서 이영규 씨와 이정옥 씨의 1남 4녀 중 맞이로 태어났습니다. 청주여고를 졸업하던 1984년까지 줄곧 1등을 놓치지 않은 수재였습니다. 가난한 집안 형편을 생각하여 무료로 공부할 수 있는 국군간호사관학교로 진학하여 1988년 2월 28기로 임관하여 간호장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993년 대위로 전역한 후에는 미국 간호사시험에 합격하여 캘리포니아 프레즈노에서 간호사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리곤 미국 간호사생활 3년만인 1996년에는 미국 중환자간호전문간호사(CCRN) 시험에 합격합니다. 또 1998년에는 미시간에 있는 앤드루스 대학 (Andrews University)의 널스 프렉티셔너(Doctor of Nursing Practice)과정에 입학하여 간호사 생활을 하며 2001년에 졸업하여애틀랜타 병원과 올랜도 연방교도소 병원에서 법무부 소속 연방공무원 GS11 계급의 널스 프렉티셔너로 근무를 합니다. 이 정도만 하여도 한국인으로 미국에 진출하여 아메리칸 꿈을 이루었다고 만족할 만 합니다. 하지만 이종명 씨의 도전은 계속됩니다. 2010년도에는 주말에는 널스 프렉티셔너로 근무를 하고 평일에는 마이에미 근처 레잌워드(Lake Worth)에 있는 유에스에이티 의대(U.S.A.T, University of Science Arts & Technology Medical School)에 입학하여 의학을 공부합니다. 졸업을 하고 와이오밍과 덴버의 병원들을 돌며 수련을 하고 이제 뉴멕시코 병원에서 가정의학 전문의 수련 마지막 과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국군간호사관학교 출신 중에 한국과 미국에서 의대를 진학하여 의사로 변신을 꾀한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종명 씨처럼 한 남자의 아내로 또 아들을 미국 남부의 명문 에모리 대학을 보낸 한 아이의 엄마로 이루어낸 업적이라고 생각하면 이종명 씨의 노고는 숙연하여지기까지 합니다.
여기까지 오면서도 여가의 시간은 근처 한인들에게 간염 예방훈련을 시키고 시민권을 준비하는 한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시간을절제하며 봉사하는 삶을 살아온 자랑스러운 미국 속의 한국 여인입니다. 앞으로의 포부는 더욱 가상합니다. 가정의학 전문의가 되고 난 이후에는 ‘국경없는의사회’에 가입하여 아프리카 의료봉사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국군간호사관학교는 세계 유일의 간호장교를 양성하는 사관학교입니다. 6.25동란 중에 만들어져 부상병들을 보살폈고 한국군의 역사와 함께한 국군간호사관학교는 IMF 환란 중에는 군조직 감축대상이 되어 폐교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극적으로 살아남아 세계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파병되어 전 세계 전쟁터에서 나이팅게일의 정신을 실천하여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역 후에는 전 세계로 진출하여 한국의 위상을 알리는 민간외교관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한국의 낭자군이라 할 만합니다.
© 2016 OhmyNews
+++ |
첫댓글 대단합니다.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