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문의·병상수 전국 평균 밑돌아 경영악화 소형병원 줄도산 위기 ‘낮은 의료수가’ 병원 경영 발목
조선·자동차·화학 등 대형 작업이 많은 울산은 작업현장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심심찮게 발생한다. 더불어 암을 비롯한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병이 증가하면서 삶의 질에서 ‘의료수준’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을 제외한 지역의 의료환경은 열악한 실정이다. 특히 울산은 의료기관 병상과 의사 숫자가 전국평균을 크게 밑돌고, 중소병원을 포함해 대형병원에서도 외과 전문의가 부족해 머지않아 ‘수술대란’이 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병원, 개원-폐업 악순환 올 9월까지 집계된 울산의 의료기관은 종합병원 4개, 일반병원 64개, 의원 502개, 한의원 241개, 치과 295개 등으로 총 1106개다. 지난해 12월 이후 20여개 늘어난 것으로, 숫자로 보면 적은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울산의 인구 1천명당 의료기관 병상수는 8.04개(전국평균 9.01개)로 16개 시·도 중 12위이고, 의료기관 종사자수도 하위권으로 전국평균과 비교해 3명(천명 기준) 정도 적다.
하루가 다르게 남구·중구의 교통요충지를 중심으로 중소병원들이 늘고 있지만 문제는 많이 생기는 만큼 폐업하는 곳도 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병원경영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06년 100병상 미만 병원 543개 중 42개가 문을 닫아 7.7%의 도산률을 나타냈다. 이 같은 수치는 200~299병상 4.9%, 300병상 이상 1.8%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으로, 적은 규모의 병원일수록 폐업 위기에 자주 내몰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병원경영연구원 관계자는 “2000년 이후 의원이 증가하면서 의료계 전반의 환자 유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며 “중소병원 줄도산의 가장 직접적인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더욱 문제인 것은 병원의 개원율 또한 꾸준히 증가하면서 개원과 폐업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울산 역시 2006년 이후 종합병원 1곳을 비롯해 의원·치과·한의원 등이 꾸준히 늘어 60여곳 이상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하지만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많은 병원들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중구 병영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전문의는 “예전만해도 12개이던 의대가 40여개로 급속도로 불어나면서 매년 3000여명의 의사가 새롭게 배출되고 있다”며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병원간의 과다경쟁으로 병원을 여는 순간 빚쟁이로 전락하는 젊은 의사들이 늘고 있다”며 경쟁적으로 숫자만 불리고 있는 현재 병원의 실태를 우려했다.
10년 후 수술받기 힘들다 또 다른 문제는 병원은 늘고 있지만 정작 서민들에게 필요한 흉부외과·산부인과·예방의학과 전문의들은 갈수록 줄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전국 의대 전공의 전기 모집 지원 현황을 보면 피부과, 정신과, 성형외과 등은 경쟁률이 1.5대 1인 반면 흉부외과, 산부인과, 예방의학과 등은 정원의 50%도 채우지 못했다. 외과도 정원의 절반을 겨우 채웠다.
이 같은 현상은 2000년대 들어 더욱 심화돼 현재 전국 59개 대형 종합병원 중 흉부외과 전공의가 한 명도 없는 병원은 23곳이나 된다. 10곳 중 4곳은 전공의가 없어 수술을 다른 병원에 넘기고 있으며, 그나마 나머지 병원들도 1~2명의 전공의를 데리고 수술을 진행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추세에 따라 한 해 새로 배출되는 흉부외과 전문의 수는 1997년 63명이었던 것이 올해는 33명으로 반 토막이 났으며, 우수인재들이 서울 지역으로 몰리면서 울산을 비롯한 지방도시는 의사를 구하기 힘들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같이 병원에서는 의사가 모자라는 한편 의대 졸업자 중 한해 평균 800여명의 미취업자가 발생하는 것은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암 환자가 늘고, 심장병 등 서구형 질병이 증가하면서 외과 의사가 책임져야 할 수술은 급속히 증가하는데 대부분의 젊은 의사들이 힘들고 돈 안 되는 일은 꺼려하니 그 피해는 서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다.
지역 종합병원 관계자는 “10년 이내에 외과의사가 부족해 의료대란이 올 수도 있다”며 “울산도 몇 년 후 외국에서 의사를 수입해야 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러한 의사들의 수술기피 현상을 줄이고 우수한 의료인력을 확보하려면 현재 낮게 평가돼 있는 의료수가를 인상하고, 전공의 처우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병원들에 따르면 88년 1000원대를 유지하던 의료수가는 2008년 30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20년간 3배가량 오른 셈이지만 그동안의 물가오름세를 감안하면 현실적이지 못하는 것이 병원 측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급성 심근경색증 심장수술을 할 경우 흉부외과 의사 3~4명, 간호사 3~4명, 의료기사 1~2명이 참여해야 하고, 수술 후에도 이틀간 중환자실에서 집중 진료해야 한다. 이 수술의 경우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책정한 진료비는 병원 마다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약 200만원내외다. 환자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돈이지만 병원 입장에서는 인건비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늘어난 병원부채 환자가 채운다? 간혹 발생하는 의료분쟁도 수술의들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외과 전문의들은 “위험부담이 내과보다 큰 외과수술의 경우 수술이 잘 되면 문제가 없지만 혹시 잘못돼 의료사고라도 나면 의사가 감당해야할 정신적·도의적 책임은 클 수밖에 없다”며 “위험한 수술을 외면하는 지금의 의료현실도 문제지만 이들이 최적의 조건에서 일을 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물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이러한 의료수가는 장기 경기불황으로 인한 환자 수 감소와 맞물려 병원의 경영난을 더욱 심각하게 하고 있다. 지난 5년간 평균 의료수가 인상률은 2.8%로 평균물가상승률에 못 미쳤다. 이로 인해 2008년 상반기까지 누적원가보존율은 70%를 넘지 못해 대부분의 병원이 사실상 손해 보는 장사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받고 있는 서울대병원도 지난 6월 기준으로 3685억원의 부채를 가지고 있으며, 전국 10개 병원 중 충북대병원과 화순전남대병원을 제외한 8개 병원은 부채액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소위 잘나간다는 국·공립 병원들도 의약품 및 의료장비 대금이 체불 돼 곤혹을 겪고 있다.
문제는 병원이 이러한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대부분 보험적용을 받을 수 있는 내과, 산부인과 보다는 건강보험 적용을 받기 힘든 성형외과, 피부과 등 비급여수가 의료행위를 많이 하게 된다는 것이다. 약을 처방할 때도 마찬가지로 수가를 고려하는 게 관행으로 이뤄지고 있다. 정부가 국민의 보험료 부담수준을 고려해 가격 인상을 억제하고 있는 건강보험수가가 오히려 국민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의사협회 관계자는 “지금처럼 병원의 경영난이 되풀이 될수록 병원뿐만 아니라 환자들도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보게 된다”며 “건강보험 재정을 건실화하고 건강보험수가를 적정하게 인상해야 국민의 진정한 건강권이 보장된다”고 밝혔다.
글=김종윤기자 / 사진=이수열기자 | |
첫댓글 결국 의료보험 올린다는 결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