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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쟁신칠인(有爭臣七人)
간언하는 신하 일곱이라는 뜻으로, 간언하는 신하 일곱만 있어도 정사를 올바르게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아첨이 아니라 간언이다. 그런 신하를 곁에 둘 수 있는 군주야말로 현명한 군주이며 현명한 대부라는 것이다.
有 : 있을 유(⺝/2)
爭 : 다툴 쟁(爫/4)
臣 : 신하 신(臣/0)
七 : 일곱 칠(一/1)
人 : 사람 인(人/0)
출전 : 공자가어(孔子家語) 삼서(三恕)
미국의 경영자문교육회사 ‘켄 블렌차드 컴퍼니’의 회장인 켄 블랜차드는 범고래가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관찰한 것을 토대로 한 경영 이론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에서 긍정과 칭찬의 위력을 강조하였다.
하지만 그 칭찬이 늘 긍정적 위력을 발휘할까? 권력의 세계에서 참모들의 권력자에 대한 칭찬은 권력자를 무너뜨리고 자기 이익을 위한 아첨의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일까? 소크라테스는 "사냥꾼은 개로서 토끼를 잡지만, 아첨꾼은 칭찬으로서 우둔한 자를 사냥한다"고 하였고, 키케로는 "아첨은 악덕의 시녀다"고 하였다.
모든 사람은 쓴 약보다는 꿀을 좋아하듯이, 비판보다 칭찬에 약하다. 모든 권력자는 칭찬과 아첨에 약하다. 전제왕권 시대건 민주주의 시대건 권력자는 처음에는 잘해 보겠다고 다짐하면서 주위에 간언(諫言)하는 신하(참모)를 두고 그의 말을 들으려 한다. 하지만 권력이 공고하게 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간언을 멀리하고 칭찬하고 아첨하는 자에게 마음이 쏠리게 되어있다. 그래서 간언하는 자를 멀리하고 칭찬과 아첨으로 일관하는 자를 가까이한다.
권력자에게서 이러한 특성은 권력을 가진 후에 그 권력이 백성(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란 생각보다는 자기가 얻고 쟁취한 것이란 착각에 빠지는 순간부터, 그리고 그 권력을 향유(享有)하는 순간부터 간언은 아주 쓴 약이 되어 버리고 아첨과 칭찬에 집중하게 된다. 그때부터 독선과 독단에 빠져 권력은 균열이 생기고 수많은 정책적 오류를 범할 뿐 아니라 언행에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은 커진다. 그래서 권력자 스스로 주변에 간언하는 자를 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일찍이 공자는 '간언하는 신하 일곱만 있어도(유쟁신칠인 有爭臣七人)' 정사를 올바르게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물었다. “자식이 아버지의 명령을 따르는 것을 효도라 하고, 신하가 임금의 명령을 따르는 것을 충정(忠貞)이라 할 것입니다. 이를 어찌 의심하겠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비루하구나! 네가 아직 깨닫지 못했구나. 설명해 주겠다. 옛날 명석한 임금이 있는 만승지국(萬乘之國: 만승의 나라)에는 다투어 간언하는 신하 일곱만 있으면 임금에게 지나친 행동(잘못된 정책과 언행)이 없게 되고, 천승지국(千乘之國: 천승의 나라)에 간하는 신하 다섯 사람만 있으면, 사직이 위태롭지 않게 되며, 백승지가(百乘之家: 백승의 집안)에 간하는 신하 세 사람만 있으면 녹봉과 작위가 없어지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간언하는 자식이 있으면 그 아버지가 무례(無禮)한 데에 빠지지 않게 되고, 선비에게 간하는 벗이 있으면 불의(不義)를 행하지 않았다. 따라서 자식이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어찌 효도가 되겠으며, 신하가 임금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어찌 충정이라 하겠느냐? 오직 그 쫓아 할 일(옳은 일)을 살펴 행하여야만 그것을 효도라 하고 충정이라고 하는 것이다."
孔子家語 卷上
三恕 第九
제9편 자신을 돌아보는 세 가지
孔子가 修身과 治國에 관해 논술한 말들을 기록한 편이다. 첫 문장에 “군자에게는 三恕가 있다. 선비가 삼서의 근본을 밝게 안다면 몸을 단정히 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으므로, 편명을 '三恕'라고 하였다. 군신‧부자‧형제 사이의 三恕를 강조하고, 군자가 생각해야 할 세 가지[三思]를 항상 살피라고 당부하였다. 이 편의 내용은 '荀子'에 많이 보인다.
9-1
三恕 第九 孔子曰 君子有三恕하니 有君不能事하고 有臣而求其使가 非恕也요 有親不能孝하고 有子而求其報가 非恕也요 有兄不能敬하고 有弟而求其順이 非恕也니 士能明於三恕之本면 則可謂端身矣라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에게는 삼서(三恕)가 있다. 임금을 능히 섬기지 못하면서 신하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것은 恕가 아니고, 어버이에게 능히 효도하지 못하면서 자식에게 보답을 요구하는 것도 恕가 아니며, 형을 능히 공경하지 못하면서 아우에게 순종을 요구하는 것도 恕가 아니다. 선비가 三恕의 근본을 밝게 안다면 몸을 단정히 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9-2
孔子曰 君子有三思하니 不可不察也라 故君子少思其長則務學하고 老思其死則務敎하고 有思其窮則務施하나니라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에게는 세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으니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어려서는 장성하였을 때를 생각하여 학문에 힘쓰고, 늙어서는 죽었을 때를 생각하여 가르침에 힘쓰고, 부유하여서는 곤궁하게 되었을 때를 생각하여 베푸는 데 힘쓰는 것이다.”
9-3
孔子觀於魯桓公之廟에 有欹器焉하고 問於守廟者曰 此謂何器오
공자가 魯 桓公의 사당에서 기울어지는 그릇을 보고 사당을 지키는 자에게 물었다. “이것은 무슨 그릇인가?”
對曰 此蓋爲宥坐之器로이다
사당을 지키는 자가 대답하였다. “이것은 宥坐라는 그릇입니다.”
孔子曰 吾聞宥坐之器는 虛則欹하고 中則正하고 滿則覆하니 明君以爲至誡라 故常置之於坐側이라하니라
공자가 말하였다. “내가 듣기로 유좌라는 그릇은 속이 비어 있으면 기울어지고 중간 정도 차면 바르게 서고 가득 차면 엎어지므로, 훌륭한 임금이 지극한 경계로 삼아 늘 자리 곁에 두었다고 한다.”
顧謂弟子曰 試注水焉하라
그리고는 제자들을 돌아보고 말하였다. “한 번 물을 부어 보아라.”
乃注之水하니 中則正하고 滿則覆이라
이에 물을 부었는데, 중간 정도 차서는 바르게 섰고 가득 차서는 엎어졌다.
夫子喟然嘆曰 嗚呼라 夫物惡有滿而不覆者哉리오
부자가 한숨 쉬며 탄식하여 말하였다. “아, 물건이 가득 차고서 엎어지지 않는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9-4
子路進曰 敢問持滿有道乎잇가
자로가 앞으로 나와 말하였다. “감히 묻습니다. 가득 찬 것을 잡아 지키는 데에도 방법이 있습니까?”
子曰 聰明睿智호되 守之以愚하고 功被天下호되 守之以讓하고 勇力振世호되 守之以怯하고 富有四海호되 守之以謙하니 此所謂損之하고 又損之之道也니라
공자가 말하였다. “총명하고 叡智가 있더라도 우매함으로 지키고, 功이 천하를 덮을 만하더라도 겸양으로 지키고, 勇力이 세상을 떨칠 만하더라도 유약함으로 지키고, 부유하기가 온 四海를 소유할 만하더라도 겸손으로 지켜야 하니, 이것이 이른바 덜어내고 또 덜어내는 방법이다.”
9-5
子路見於孔子한대 孔子曰 智者若何며 仁者若何오
자로가 공자를 뵙자, 공자가 물었다. “지혜로운 자는 어떠하며, 어진 자는 어떠한가?”
子路對曰 智者는 使人知己하고 仁者는 使人愛己하니이다
자로가 대답하였다. “지혜로운 자는 남이 자신을 알게 하고 어진 자는 남이 자신을 사랑하게 합니다.”
子曰 可謂士矣로다
공자가 말하였다. “士라고 할 만하다.”
子路出하고 子貢入이어늘 問亦如之한대 子貢對曰 智者는 知人하고 仁者는 愛人하니이다
자로가 나가고 자공이 들어오자 똑같이 물었는데, 자공이 대답하였다. “지혜로운 자는 남을 알고, 어진 자는 남을 사랑합니다.”
子曰 可謂士矣로다
공자가 말하였다. “士라고 할 만하다.”
子貢出하고 顔回入이어늘 問亦如之한대 對曰 智者는 自知하고 仁者는 自愛하니이다
자공이 나가고 안회가 들어오자 똑같이 물었는데, 안회가 대답하였다. “지혜로운 자는 자신을 알고 어진 사람은 자신을 사랑합니다.”
子曰 可謂士君子矣로다
공자가 대답하였다. “君子인 士라고 할 만하다.”
9-6
子貢問於孔子曰 子從父命孝乎며 臣從君命貞乎인저 奚疑焉이리오
子貢이 공자에게 물었다. “자식이 아버지의 명에 순종하는 것이 효도이고 신하가 임금의 명에 순종하는 것이 忠貞일 것입니다. 어찌 이것을 의심하겠습니까.”
孔子曰 昔者明王萬乘之國에 有爭臣七人이면 則主無過擧하고 千乘之國에 有爭臣五人이면 則社稷不危하고 百乘之家에 有爭臣三人하면 則祿位不替하고 父有爭子면 不陷無禮하고 士有爭友면 不行不義라 故子從父命이 奚詎爲孝며 臣從君命이 奚詎爲貞이리오 夫能審其所從을 之謂孝며 之謂貞矣니라
공자가 말하였다. “옛날 훌륭한 임금이 소유한 萬乘의 나라에 諫하는 신하 7인이 있으면 임금이 잘못이 없고, 千乘의 나라에 간하는 신하 5인이 있으면 사직이 위태롭지 않고, 百乘의 집안에 간하는 신하 3인이 있으면 녹봉과 작위가 없어지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간하는 자식이 있으면 無禮한 데에 빠지지 않고 선비에게 간하는 벗이 있으면 不義를 행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자식이 아버지의 명에 순종하는 것이 어찌 효도가 되겠으며,注+ 신하가 임금의 명에 순종하는 것이 어찌 충정이 되겠는가. 무엇을 따라야 할지를 잘 살피는 것을 효도라고 하고 충정이라고 하는 것이다.”
9-7
子路盛服하고 見於孔子한대 子曰 由아 是倨倨者何也오 夫江始出於岷山에 其源可以濫觴注+이어늘 及其至于江津하여는 不舫舟하고 不避風이면 則不可以涉하니 非唯下流水多耶아 今爾衣服旣盛하고 顔色充盈하니 天下且孰肯以非告汝乎오
자로가 잘 차려입고 공자를 뵙자, 공자가 말하였다. “由야! 이렇게 거만한 것은 어째서인가? 강물이 岷山에서 처음으로 나올 때에 그 근원은 술잔에 넘칠만한 정도인데, 강나루에 이르러서는 배를 타지 않거나 바람을 피하지 않으면 건널 수 없다. 이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물이 많아져서가 아니겠느냐. 지금 너의 의복은 매우 화려하고 안색은 거만하니, 천하 사람들이 또 누가 너에게 잘못을 말해주려 하겠느냐.”
子路趨而出하여 改服而入한대 蓋自若也라
자로가 종종걸음으로 나갔다가 옷을 바꿔 입고 들어왔는데 거만한 모습은 그대로였다.
子曰 由아 志之하라 吾告汝호리라 奮於言者華하고 奮於行者伐하니 夫色智而有能者는 小人也라 故君子知之曰智는 言之要也요 不能曰不能은 行之至也라 言要則智요 行至則仁이라 旣仁且智하니 惡不足哉리오
공자가 말하였다. “유야! 기억해 두어라. 내가 너에게 말해주겠다. 우쭐대며 말하는 자는 화려한 것일 뿐이고 우쭐대며 행동하는 자는 자랑하는 것일 뿐이니, 겉으로 지혜가 있고 능력이 있는 체하는 자는 소인이다. 그러므로 군자가 아는 것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말의 요령이고, 하지 못하는 것을 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행동의 준칙이다. 말에 요령이 있으면 지혜롭고 행동에 준칙이 있으면 어질다. 이미 어질고 지혜로운데 어찌 부족하겠느냐.”
유쟁신칠인(有爭臣七人)
孔子家語 卷上
三恕 第九 / 六
제9편 자신을 돌아보는 세 가지
9-6
子貢問於孔子曰 子從父命孝乎며 臣從君命貞乎인저 奚疑焉이리오
子貢이 공자에게 물었다. “자식이 아버지의 명에 순종하는 것이 효도이고 신하가 임금의 명에 순종하는 것이 忠貞일 것입니다. 어찌 이것을 의심하겠습니까.”
孔子曰 昔者明王萬乘之國에 有爭臣七人이면 則主無過擧하고 千乘之國에 有爭臣五人이면 則社稷不危하고 百乘之家에 有爭臣三人하면 則祿位不替하고 父有爭子면 不陷無禮하고 士有爭友면 不行不義라 故子從父命이 奚詎爲孝며 臣從君命이 奚詎爲貞이리오 夫能審其所從을 之謂孝며 之謂貞矣니라
공자가 말하였다. “옛날 훌륭한 임금이 소유한 萬乘의 나라에 諫하는 신하 7인이 있으면 임금이 잘못이 없고, 千乘의 나라에 간하는 신하 5인이 있으면 사직이 위태롭지 않고, 百乘의 집안에 간하는 신하 3인이 있으면 녹봉과 작위가 없어지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간하는 자식이 있으면 無禮한 데에 빠지지 않고 선비에게 간하는 벗이 있으면 不義를 행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자식이 아버지의 명에 순종하는 것이 어찌 효도가 되겠으며,注+ 신하가 임금의 명에 순종하는 것이 어찌 충정이 되겠는가. 무엇을 따라야 할지를 잘 살피는 것을 효도라고 하고 충정이라고 하는 것이다.”
공자의 이 말은 간하는 사람을 주변에 두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준다. 간하는 사람을 두는 것은 굳이 권력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공자는 부유쟁자, 사유쟁우, 군유쟁신(父有爭子 士有爭友, 君有爭臣) 즉 아버지에게는 간하는 자식이 있어야 하며, 선비에게는 간하는 벗이 있어야 하고, 군주에게는 간하는 신하가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유는 간하는 자식과 벗과 신하를 둔 아버지와 선비와 군주는 자신을 바로 세우는데 노력할 뿐 아니라 행하는 일에 있어서 어긋남이 없어질 것이라 했다. 그래야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선비는 선비로서, 군주는 군주로서 그 지위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찍이 많은 아버지와 선비와 군주는 그 간하는 자식과 벗과 신하를 멀리하고 아첨하는 자식과 벗과 신하를 가까이했다.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를 이룩한 진시황도 충청으로 간하는 명석한 자식인 첫째의 부소 왕자를 멀리하고 유순하고 순종하는 자식인 막내 아들인 호해 왕자를 더 가까이했으며, 간하는 신하보다는 아첨하는 환관 조고를 지나치게 가까이하였다. 결과는 조고에 의해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
위 공자의 말에서 만승지국(萬乘之國)은 당시 중국의 역사에서 천하를 다스리는 천자의 나라를 말한다. 여기서 7인은 천자를 보필하는 신하인 삼공(三公)과 사보(四輔)를 말한다. 삼공은 태사(太師)‧ 태전(太傅)‧ 태보(太保)이고, 사보는 전의(前疑)‧ 후승(後丞)‧ 좌보(左輔)‧ 우필(‧右弼)이다. 천승지국(千乘之國)은 제후의 나라에 해당한다. 여기의 5인은 제후를 보필하는 신하인 삼경(三卿과 2인의 고굉지신(股肱之臣)을 말한다.
삼경은 사도(司徒)‧ 사마(司馬)‧ 사공(司空)이며, 고굉지신(股肱之臣)은 다리와 팔뚝에 비길만한 신하로 임금이 가장 신임하는 중신을 말한다. 백승지가(百乘之家)의 3인은 경대부를 보필하는 가신을 일컫는 것으로 실노(室老)‧ 가장(家相)‧ 읍제(邑宰)를 말한다. 이들은 주군에게 충성하되 아첨이 아니라 때때로 간언함으로써 바른 정치를 하여 주군을 지키고 백성을 구제하여야 한다. 따라서 이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아첨이 아니라 간언이다. 그런 신하를 곁에 둘 수 있는 군주야말로 현명한 군주이며 현명한 대부라는 것이다.
위에서 만승지국의 7인, 천승지국의 5인, 백승지가의 3인은 황제와 제후 왕과 경대부의 곁에서 그들을 보좌하며 정치를 책임지는 핵심 인물들이며 황제와 왕과 경대부 아래의 최고위직들이다. 이를테면 오늘날 우리나라로 말하면 국정을 책임지는 핵심 인물인 대통령 비서실장과 수석들, 그리고 총리와 장관들일 것이다. 간언은 황제와 왕의 잘못을 충언하는 것을 넘어 항상 치우치지 않는 올바른 마음과 행동으로 사욕을 떠나 오로지 나라와 백성을 위해 정사를 담당하는 것까지를 의미한다. 이들이 균형을 잡고 정의로울 때 권력자는 더욱 백성(국민)의 신뢰를 받고 권력은 탄탄하게 된다.
중국과 조선, 나아가 인류의 모든 통치자의 역사를 볼 때 권력자가 전횡을 휘두를 때는 그 권력자가 주변에 간하는 신하를 두지 않았으며 비록 제도상으로 두었다 하더라도 멀리하였거나 간하는 신하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배척하였다. 결과는 그 권력이 처참하게 무너졌으며 심할 경우 나라가 망했다.
권력자가 주변에 간하는 신하를 멀리하는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그 권력자 본인의 생각과 행동 때문이다. 권력자가 간하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관용과 성찰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권력자는 자기 말만을 따르기를 바라며 타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속성이 있다. 그런 권력자는 매우 권위적이며 독선적이다. 설령 타인의 말을 들어도 옳은 일은 모두 자기가 생각한 것처럼 꾸며서 말하며 곡해를 한다. 그런 시장이나 군수 등은 그에게 좋은 정책을 조언하는 사람의 의견을 듣지만, 그 조언 모두를 마치 자신의 기발한 생각처럼 말하고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집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면 정책은 오류가 발생한다. 그런 사람에게는 자신이 가진 권위에 의해 진실한 마음이 가려졌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떻든 그런 권력자들은 주변에 칭찬하는 자만 가까이하고 간하는 자를 멀리하는 근본적인 속성이 있으며 간하는 사람은 자신을 비난하고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둘째는 권력자가 유약하거나 중심이 불분명한 자일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그 권력을 얻는데 자신의 역량이 아니라 주변의 역량에 의한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그 권력을 가지는데 공헌한 자나 그 그룹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옛날 중국에서 문생천자(門生天子)란 말이 있었다. 이는 황제가 환관의 시험에 의해 옹립된 천자라는 뜻으로 환관들이 득세할 때 황제는 환관들에 의해 옹립되고 폐위되었다. 그래서 그 문생천자인 황제들은 모두 정치는 환관들에게 맡기고 주색에 빠지게 되었다. 그때 환관들은 교묘한 아첨으로 황제가 주색에 삐지도록 하였고, 권력을 휘둘러 나라를 도탄에 빠뜨렸다. 이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이나 단체장 등이 특정의 인물, 특정의 집단에 집중되어 당선되었을 때 그들의 요구와 이권에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의 말만 듣고 충심으로 간하는 자나 국민의 참된 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듣지 않는다. 결과는 실정(失政)으로 이어진다.
셋째는 권력자 스스로 간하는 신하보다는 아첨하는 신하를 가까이하다 시간이 지나면, 그 아첨을 절대 충성으로 착각하게 된다. 그래서 그 아첨하는 신하에게 더 많은 권한을 위임하게 된다. 권한 위임이 지나쳐 오래가면 그 아첨하는 신하는 권력을 휘두르게 되고 결국에는 부정과 부패를 저지를 가능성이 커진다. 중국의 진시황제는 환관 조고의 아첨에 넘어가 옥새까지 맡길 정도의 권력을 주었다가 나라를 망하게 하였으며, 당나라 현종은 환관 고역사에게 너무 많은 권력을 주어 ‘안녹산의 난’을 초래하게도 하였다. 현대사에서도 이승만은 이기붕의 아첨에 너무 많은 권력을 주어 3.15 부정선거까지 자행하게 하여 하야하였으며, 박정희도 차지철에게 너무 많은 권력을 주어 10. 26사태로 목숨을 잃었다. 아첨하는 특정 인물에 대한 지나친 신뢰로 그에게 권력이 집중되면 그의 전횡으로 나라와 권력은 흔들리게 마련이다.
대체로 아첨하는 자들은 큰 권력 앞에서는 죽는시늉까지 하면서 충성을 보이고 온갖 감언이설로 현혹한다. 공자가 말한 것처럼 교언영색(巧言令色)을 일삼는다. 그러나 그의 보이지 않는 내면에는 권력과 재물에 대한 엄청난 음모와 탐욕을 숨기고 있다. 그리고 그가 얻은 권력만큼 약자들에게 군림한다. 최고 권력자가 진실과 정의 혹은 다른데 눈을 돌릴 겨를을 주지 않고 권력에 대한 자기도취와 향락에 빠져들게 한다. 중국 한나라를 망하게 하였던 십상시(十常侍)들이 그랬다. 뇌물로 권력과 지위를 얻은 자는 자기가 준 뇌물보다 더 많은 것을 약자들에게서 취한다. 조선 시대 간신의 대명사였던 유자광은 그 간신 행위만큼이나 권력을 휘둘러 많은 사람을 무고하게 죽게 했다. 그런 모든 것들이 아첨하는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성이다. 그러나 권력자는 그 아첨하는 자의 늪에 빠지기가 매우 쉽다. 인간은 누구나 쓴 약보다는 단 약을 좋아하며, 쓴소리보다는 단소리를 좋아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권력자가 주변에 간하는 자를 두었느냐 아니냐 아첨하는 자들이 들끓느냐 아니냐는 것은 그 주변 인물들의 구성을 보면 알 수 있다. 혹자는 권력자가 추진력을 강하게 가지려면 그 뜻을 따르는 자들로 채워져야 한다고 한다. 맞는 말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매우 위험하다. 대통령 주변 인물이 동일 출신이나 동일 계열의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면 정상적인 정치보다는 실정(失政)을 할 가능성이 크다. 간언하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간언하는 자가 없으면 권력자가 정책 결정에 심사숙고하거나 신중하지 못한 경우가 많으며 자기 뜻대로 밀고 나가는 경우가 많아진다. 또 언행이 정제되지 못하고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커진다. 러시아 푸틴의 핵심 참모들은 거의 다 KGB 출신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30만 예비군 동원령을 내리는 죄악을 저지르는데도 브레이크를 잡지 못한다. 그래서 참모들의 성향과 출신 등의 다양성이 필요하다.
간언할 수 있는 자를 두는 것은 순전히 권력자의 몫이다. 권력자가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정치를 하려고 다짐한다면 자기성찰과 성실한 자세가 필요하다. 여기에 필요한 사람이 바로 간언하는 사람이다. 간언하는 자는 권력보다는 정의를 추구하는 자이며 자리보다는 충성을 다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주변에 예스맨(YES MAN)만 두는 것만큼 위험한 권력자는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자유론』의 저자 존 스튜어트 밀은 현명한 의사결정을 이한 모든 곳에는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악마의 대변인’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미국의 유명한 케네디 대통령은 짧은 재임 기간이었지만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는 항상 그 악마의 대변인을 두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과거 대통령들이 하나같이 존경을 받지 못한다. 이는 국민적 비극의 하나이다. 이는 국민의 몫이기도 하다. 국정은 정쟁으로만 일관하고 있다. 야당은 대통령이 검찰 위주의 인사를 했다고 검찰 공화국이란 말까지 하면서 비판을 한다. 대통령의 언행과 정책수행에 대한 잡음이 많다. 지금도 대통령을 두고 말이 많다. 실제로 대통령과 주변 인물들의 언행에 실언과 실수가 잦다. 이 모든 일이 대통령과 그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이 성찰과 진중함보다는 간언하는 자들을 멀리하고 대통령에 대한 방어기제만 발휘하기 때문은 아닐까?
지금 이 시점에 대통령과 국정 운영의 최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일찍이 공자가 말한 유쟁신칠인(有爭臣七人: 간언하는 신하 일곱만 있어도)을 깊이 새겼으면 한다. 이는 대통령뿐 아니라 지방의 단체장들 모두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부유쟁자(父有爭子)
부유쟁부(夫有爭婦)
사유쟁우(士有爭友)
군유쟁신(君有爭臣)
아버지에게는 간하는 자식이 있어야 하고, 남편에게는 간하는 아내가 있어야 하며, 선비에게는 간하는 벗이 있어야 하고, 군주에게는 간하는 신하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남편은 남면답게, 선비는 선비답게 군주는 군주답게 제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통유쟁참(統有爭參: 대통령에게는 간하는 참모가 있어야 한다)이다.
충고하는 벗이 없다는 슬픔
소학 제2편 인간의 길 다섯번째 벗들과의 관계 중 101. 진심으로 충고하는 벗에 이런 말이 있다.
天子 有爭臣七人이면 雖無道니 不失其天下하고
천자에게 직언을 하는 신하 일곱 명이 있으면 비록 자신이 무도할지라도 천하를 잃지 않는다.
諸侯 有爭臣五人이면 雖無道나 不失其國하고
제후에게 직언을 하는 신하 다섯 명이 있으면 비록 제후가 막돼먹었어도 자신의 나라를 잃지 낳는다.
大夫 有爭臣三人이면 雖無道나 不失其家하고
대부가 직언을 하는 가신 세 사람을 두고 있으면 비록 대부가 막돼먹었어도 자신의 집안을 잃지 않는다.
士有爭友則身이면 不離於令名하고
선비에게 직언을 하는 친구가 있으면 그 선비에게 아름다운 명성이 떠나지 않으며,
父有爭子則身이면 不陷於不義니라
아버지에게 직언을 하는 자식이 있으면 그 아버지는 의롭지 못한 일에 빠지지 않는다.
故로 當不義則이면 子不可以弗爭於父며 臣不可以弗爭於君이니라.
때문에 불의한 일을 당하면 자신은 아버지에게 간하지 않을 수 없고, 신하는 임금에 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충고가 소용없을 때가 있다. 그래서 효경에 "임금에게 과실이 있으면 간하되, 세 번이나 간하여도 듣지 않으면 물러난다(君有過則諫 三諫而不廳則去)"라는 구절이 있다.
성서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마태복음 18:15-17)
소학의 102절에서는 직언(충고)를 할 때는 듣는 이(임금, 스승)가 싫어하는 표정을 지을 때까지 직언을 해야지 부드럽게 표현하는데 그쳐서는 안된다고 했다.
하지만 직언의 중심에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잔소리로 여기게 된다.
누군가에게 직언(충고)를 한다는 것은 그에게 대한 사랑의 표현이다. 충고, 직언을 하는 이유는 천자에게는 천하를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제후에게는 나라를 잃지 않기 위해, 대부에게는 집안을 잃지 않기 위해, 선비에게는 아름다운 명성이 떠나지 않게, 아버지에게는 의롭지 못한 일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다.
자신에게 직언을 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로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두 번째로 자신이 직언하는 사람에게 곁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들을 귀가 없는 것이다.
세상에서 충고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그는 역경을 극복한 자신의 경험이 독이 되어 타인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 독불장군이 되기 십상이다.
또 어느 조직의 최고 권력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입에 나온 말에 조직원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권력에 취한다. 말하는 대로 다 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언에 귀기울이지 못하는 권력자들은 그 힘을 잃기 마련이다. 그의 옆을 지키는 사람들은 비천한 사람들만 남기 때문이다.
논어의 양화편 중 이런 말이 있다. "비천한 필부와 함께 임금을 섬길 수 있겠는가? 그는 관직을 얻지 못했을 때 관직을 얻을 것만 걱정하고, 관직을 얻고 난 다음에는 잃어버릴까 걱정한다. 항상 관직 잃어버릴 것에 대해서만 걱정한다면 어떤 짓이라도 할 것이 없을 것이다."
또 논어의 선진편 중 이런 말이 있다. "그리고 직언을 하는 사람들은 그의 곁을 떠난다. 왜 그런가? 훌륭한 신하는 올바른 도로써 임금을 섬기다가 그 도를 실현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관직을 그만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고전 속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충고(직언)하는 벗이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효경 15. 간쟁장(諫諍章)
윗 사람을 맹목적으로 따라선 안 된다
간쟁장(諫諍章) 제십오(第十五)
曾子曰: 若夫慈愛恭敬安親揚名, 則聞命矣. 敢問子從父之令, 可謂孝乎?
증자가 “자애(慈愛)와 공경(恭敬)과 안친(安親)과 양명(揚名)과 같은 경우는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감히 묻겠으니 자식의 아버지의 명령을 따르는 걸 효라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子曰: 是何言與, 是何言與!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게 무슨 말인가, 이게 무슨 말인가!
昔者天子有爭臣七人, 雖無道, 不失其天下;
옛적에 천자가 간쟁해주는 신하가 7명이라도 있다면 비록 천자가 무도하더라도 천하를 잃지 않았고
諸侯有爭臣五人, 雖無道, 不失其國;
제후가 간쟁해 주는 신하 5명이라도 있다면 비록 제후가 무도하더라도 나라를 잃지 않았으며
大夫有爭臣三人, 雖無道, 不失其家,
대부가 간쟁해주는 신하 4명이라도 있다면 비록 무도하더라도 집을 잃지 않았다.
士有爭友則身不離於令名, 父有爭子則身不陷於不義.
선비가 간쟁해주는 벗이 있다면 몸이 훌륭한 명성에서 떠나지 않고 아버지가 간쟁해주는 아들이 있다면 몸이 불의함에 빠지지 않는다.
故當不義則子不可以不爭於父, 臣不可以不爭於君.
그렇기 때문에 불의함에 빠진다면 자식은 아버지에게 간쟁하지 않을 수 없고 신하는 임금에게 간쟁하지 않을 수 없다.
故當不義則爭之, 從父之令, 又焉得爲孝乎?
그러므로 불의함에 빠진다면 간쟁해야만 하니 아버지의 명령을 따르기만 하는 게 또한 어찌 효를 한다 하리오?”
간언을 장려하라
- 정관정요 권2. 제4편 구간(求諫)
간언(諫言)이란 군주나 웃어른에게 충고하는 것을 말한다. 당 태종은 거울이 없으면 자신의 생김새를 볼 수 없듯이 신하들의 간언이 없으면 정치적 득실에 관해 정확히 알 방법이 없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당 태종은 간언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신하들이 침묵하는 이유는 충성스런 간언을 할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임을 알았다.
위징이 대답했다. "폐하께서 마음을 비우고 신하들의 의견을 받아들인다면, 마땅히 말하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옛사람은 '신임하지 않는 사람이 간언하면 자기를 비방한다고 생각하고, 신임하는 사람이 간언하지 않으면 봉록만 훔치는 자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재능은 각기 다릅니다. 성격이 유약한 사람은 속마음이 충직해도 말하지 못하고, 관계가 소원한 사람은 신임받지 못할 것을 두려워해 감히 말하지 못하며, 마음속으로 개인의 득실을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에게 이익이 있는지 없는지 의심하므로 감히 말하지 못합니다."
신하란 군주의 허물을 비추는 거울
태종은 위엄이 있고 용모가 엄숙하므로 문무백관 가운데 나아가 알현하는 사람들은 모두 행동거지에 있어 당당함을 잃었다. 태종은 아랫사람들의 이런 심리 상태를 알게 된 후로 어떤 일에 대해 보고하는 관리를 접견할 때마다 안색을 꾸몄으며, 신하들의 직언과 간언을 듣고 정치교화의 이해득실에 대해서 알기를 희망했다.
정관 초년에 태종이 "나는 비록 현명한 군주라고는 할 수 없으나, 다행히 여러 대신이 끈임없이 나를 보좌해 잘못을 바로잡아 허물을 보충해주고 있소. 여러분의 정직한 간언과 바른 논의에 의지해 천하를 태평성대로 만들기를 바라오"라고 하자,
간의 대부 왕규는 대답했다. "저는 '굽은 나무도 먹줄을 따라 자르면 바르게 되고, 군주가 신하의 간언을 받아들이면 사리에 밝아질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木從繩則正 后從諫則聖). 그런 까닭에 고대의 성군에게는 반드시 직언하고 간언하는 일곱 명의 신하가 있었습니다. 만일 의견을 제시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죽음으로써 서로 이어가며 간언했습니다. 폐하께서는 성인처럼 생각이 트였으니 아래의 비루한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고, 어리석은 신하는 이처럼 관대하고 거리낌 없이 직언할 수 있는 조대에 살고 있으니 어리석은 의견이나마 온 힘을 다하기를 원합니다."
간언하는 신하가 있어야 멸망하지 않는다.
정관2년 태종이 신하들에게 말했다. "만일 군주의 행동이 정당하지 못한데 신하가 바로 잡아주거나 간언을 하지 않고, 구차하게 아첨하며 순종해 편안함만을 도모하면서 하는 일마다 모두 칭찬만 한다면, 군주는 어리석어지고 신하는 아첨하니 나라가 위급해져 멸망하는 것은 멀리 있지 않을 것이오."
간언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라
정관8년 태종이 신하들에게 말했다. "그러므로 항상 간언하는 자의 말이 나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아도 그가 나를 범했다고는 생각하지 않겠소. 만일 그 즉시 질책한다면, 의견을 말하는 사람은 전전긍긍하며 내심 두려워할 것이오. 그러면 어떤 사람이 감히 다시 말을 할 수 있겠소."
거울 앞에서 모습을 비춰보라
정관16년 태종이 방현령에게 말했다. "자신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총명한 사람이지만,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요. (중략) 나는 항상 위징이 수시로 정확한 의견을 제시해 나의 허물을 적절히 지적한 것은 밝은 거울 앞에 서서 모습을 비춰보는 것처럼 나의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했소."
문제의 싹은 미리 자른다
정관17년 태종이 저수량에게 하찮은 일까지 고달프게 간언할 필요가 있나고 물으니, 저수량이 답했다. "강직한 신하는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을 때 그것을 막도록 권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정점까지 발전하게 되면 다시 간언할 필요가 없습니다."
▶️ 有(있을 유)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달월(月; 초승달)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𠂇(우; 又의 변형)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有자는 '있다, '존재하다', '가지고 있다', '소유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有자는 又(또 우)자와 月(육달 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여기에 쓰인 月자는 肉(고기 육)자가 변형된 것이다. 有자의 금문을 보면 마치 손으로 고기를 쥐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내가 고기(肉)를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有자는 값비싼 고기를 손에 쥔 모습으로 그려져 '소유하다', '존재하다'라는 뜻을 표현한 글자이다. 그래서 有(유)는 (1)있는 것. 존재하는 것 (2)자기의 것으로 하는 것. 소유 (3)또의 뜻 (4)미(迷)로서의 존재. 십이 인연(十二因緣)의 하나 (5)존재(存在) (6)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있다 ②존재하다 ③가지다, 소지하다 ④독차지하다 ⑤많다, 넉넉하다 ⑥친하게 지내다 ⑦알다 ⑧소유(所有) ⑨자재(資財), 소유물(所有物) ⑩경역(境域: 경계 안의 지역) ⑪어조사 ⑫혹, 또 ⑬어떤 ⑭12인연(因緣)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재(在), 있을 존(存)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망할 망(亡), 폐할 폐(廢), 꺼질 멸(滅), 패할 패(敗), 죽을 사(死), 죽일 살(殺), 없을 무(無), 빌 공(空), 빌 허(虛)이다. 용례로는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음을 유명(有名), 효력이나 효과가 있음을 유효(有效), 이익이 있음이나 이로움을 유리(有利), 소용이 됨이나 이용할 데가 있음을 유용(有用), 해가 있음을 유해(有害), 이롭거나 이익이 있음을 유익(有益), 세력이 있음을 유력(有力), 죄가 있음을 유죄(有罪), 재능이 있음을 유능(有能), 느끼는 바가 있음을 유감(有感), 관계가 있음을 유관(有關), 있음과 없음을 유무(有無), 여럿 중에 특히 두드러짐을 유표(有表), 간직하고 있음을 보유(保有), 가지고 있음을 소유(所有), 본디부터 있음을 고유(固有), 공동으로 소유함을 공유(共有), 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는 뜻으로 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면 우환을 당하지 아니함 또는 뒷걱정이 없다는 뜻의 말을 유비무환(有備無患), 입은 있으나 말이 없다는 뜻으로 변명할 말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유구무언(有口無言), 있는지 없는지 흐리멍덩한 모양이나 흐지부지한 모양을 일컫는 말을 유야무야(有耶無耶), 형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라는 뜻으로 천지간에 있는 모든 물체를 일컫는 말을 유상무상(有象無象), 이름만 있고 실상은 없음을 일컫는 말을 유명무실(有名無實), 머리는 있어도 꼬리가 없다는 뜻으로 일이 흐지부지 끝나 버림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유두무미(有頭無尾), 다리가 있는 서재라는 뜻으로 박식한 사람을 이르는 말을 유각서주(有脚書廚), 만물은 조물주가 만드는 것이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님을 일컫는 말을 유생불생(有生不生), 다리가 있는 양춘이라는 뜻으로 널리 은혜를 베푸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유각양춘(有脚陽春), 뜻이 있어 마침내 이루다라는 뜻으로 이루고자 하는 뜻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을 유지경성(有志竟成),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온다는 뜻으로 뜻을 같이하는 친구가 먼 데서 찾아오는 기쁨을 이르는 말을 유붕원래(有朋遠來), 시작할 때부터 끝을 맺을 때까지 변함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유시유종(有始有終), 무슨 일이든 운수가 있어야 됨을 이르는 말을 유수존언(有數存焉), 있어도 없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있으나 마나 함을 이르는 말을 유불여무(有不如無), 말하면 실지로 행한다는 뜻으로 말한 것은 반드시 실행함 또는 각별히 말을 내 세우고 일을 행함을 이르는 말을 유언실행(有言實行), 끝을 잘 맺는 아름다움이라는 뜻으로 시작한 일을 끝까지 잘하여 결과가 좋음을 이르는 말을 유종지미(有終之美), 입은 있으되 말을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정이 거북하거나 따분하여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유구불언(有口不言), 행동이나 사물에 처음과 끝이 분명함 또는 앞뒤의 조리가 맞음을 일컫는 말을 유두유미(有頭有尾),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서로 융통함을 이르는 말을 유무상통(有無相通), 장차 큰 일을 할 수 있는 재능 또는 그 사람을 일컫는 말을 유위지재(有爲之才), 끝까지 일을 잘 처리하여 일의 결과가 훌륭함을 이르는 말을 유종완미(有終完美),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그대로 있지 않고 인연에 의하여 변해 가는 것이라는 말로 세상사의 덧없음을 이르는 말을 유위전변(有爲轉變), 가기에 잎을 더한다는 뜻으로 이야기에 꼬리와 지느러미를 달아서 일부러 과장함을 이르는 말을 유지첨엽(有枝添葉),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는 뜻으로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배움의 문이 개방되어 있음을 이르는 말을 유교무류(有敎無類) 등에 쓰인다.
▶️ 爭(다툴 쟁)은 ❶회의문자로 争(쟁)의 본자(本字)이다. 손톱 조(爪)와 또 우(又) 그리고 물건을 가리키는 갈고리 궐(亅)을 합친 글자로서, 위와 아래에서 손으로 물건을 잡고 서로 잡아당기며 다툰다는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爭자는 ‘다투다’나 ‘경쟁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爭자는 爪(손톱 조)자와 又(또 우)자, 亅(갈고리 궐)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爪자는 ‘손톱’이라는 뜻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단순히 ‘손’의 동작으로 쓰였다. 갑골문에 나온 爭자를 보면 소의 뿔을 놓고 서로 잡아당기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금문에서는 소뿔 대신 쟁기가 그려져 있었지만 서로 다투고 있다는 뜻은 같다. 爭자는 이렇게 무언가를 놓고 서로 다툰다는 의미에서 ‘다투다’나 ‘경쟁하다’라는 뜻을 갖게 된 글자이다. 그래서 爭(쟁)은 ①다투다 ②논쟁하다 ③다투게 하다 ④간하다(웃어른이나 임금에게 옳지 못하거나 잘못된 일을 고치도록 말하다) ⑤경쟁하다 ⑥모자라다 ⑦차이(差異) 나다 ⑧다툼 ⑨싸움 ⑩어찌 ⑪어떻게 ⑫하소연(딱한 사정 따위를 간곡히 호소함)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다툴 경(競)이다. 용례로는 서로 다투는 중요한 점을 쟁점(爭點), 싸워서 빼앗아 가짐을 쟁취(爭取), 서로 다투어 무슨 사물이나 권리 따위를 빼앗는 싸움을 쟁탈(爭奪), 서로 다투며 송사를 일으킴을 쟁송(爭訟), 서로 자기의 의견을 주장하여 다툼을 쟁의(爭議), 서로 권리를 다툼을 쟁권(爭權), 앞서기를 다툼을 쟁선(爭先), 우승을 다툼을 쟁패(爭覇), 일을 먼저 하기를 서로 다툼을 쟁두(爭頭), 서로 다투어 토론함을 쟁론(爭論), 같은 목적을 두고 서로 이기거나 앞서거나 더 큰 이익을 얻으려고 겨루는 것을 경쟁(競爭), 싸움으로 무력으로 국가 간에 싸우는 일을 전쟁(戰爭), 상대를 쓰러뜨리려고 싸워서 다툼을 투쟁(鬪爭), 얼크러져 다툼이나 말썽을 일으켜 시끄럽게 다툼을 분쟁(紛爭), 말이나 글로 논하여 다툼을 논쟁(論爭), 버티어 다툼을 항쟁(抗爭), 말로써 옥신각신 함을 언쟁(言爭), 여러 패로 갈라져 다툼을 분쟁(分爭), 당파를 이루어 서로 싸움을 당쟁(黨爭), 말로써 굳게 간하여 실수를 바로잡고 잘못을 고치게 함을 간쟁(諫爭), 앞서기를 다투고 뒤처지는 것을 두려워 한다는 쟁선공후(爭先恐後), 서로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다툼을 이르는 말을 쟁장경단(爭長競短), 고기를 잡으려는 사람은 물에 젖는다는 쟁어자유(爭魚者濡) 뼈와 살이 서로 다툼의 뜻으로 형제나 같은 민족끼리 서로 다툼을 골육상쟁(骨肉相爭), 도요새와 조개의 싸움으로 어부에게 잡히고 말았다는 뜻으로 제3자만 이롭게 하는 다툼을 이르는 말을 휼방지쟁(鷸蚌之爭) 등에 쓰인다.
▶️ 臣(신하 신)은 ❶상형문자로 본디 크게 눈을 뜬 모양을 형상화했다. 내려다 본 사람의 눈의 모양으로 전(轉)하여 신을 섬기는 사람, 임금을 섬기는 중신(重臣), 신하(臣下)를 말한다. ❷상형문자로 臣자는 '신하'나 '하인', '포로'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臣자는 고개를 숙인 사람의 눈을 그린 것이다. 臣자가 '신하'라는 뜻을 가진 것은 왕의 눈을 마주하지 못하는 사람의 눈을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臣자는 본래 '포로'를 뜻했던 글자였다. 고대에는 포로로 잡히거나 항복한 노예들을 왕실의 노예로 삼았다. 臣자는 그들을 일컫던 글자였다. 그러나 후에 왕을 섬기는 모든 사람을 통칭하는 용어로 쓰이면서 지금은 '신하'나 '하인'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臣자는 단독으로 쓰일 때는 '신하'를 뜻하지만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監(볼 감)자나 臥(엎드릴 와)자처럼 고개를 숙인 사람의 눈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한다. 그래서 臣(신)은 ①신하(臣下) ②백성(百姓) ③하인(下人) ④포로(捕虜) ⑤어떤 것에 종속(從屬)됨 ⑥신하(臣下)의 자칭(自稱) ⑦자기(自己)의 겸칭(謙稱) ⑧신하(臣下)로 삼다 ⑨신하로서 직분(職分)을 다하다 ⑩신하답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임금 주(主), 임금 후(后), 임금 군(君), 임금 제(帝), 임금 왕(王), 임금 황(皇), 임금 후(矦), 임금 벽(辟)이다. 용례로는 임금을 섬기어 벼슬을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을 신하(臣下), 신하와 서민 또는 많은 신하를 신서(臣庶), 신하가 되어 복종함을 신복(臣服), 신하된 처지를 신분(臣分), 나라에 공로가 있는 신하를 공신(功臣), 국가나 임금의 명령을 받고 외국에 사절로 가는 신하를 사신(使臣), 임금과 신하를 군신(君臣), 중직에 있는 신하를 중신(重臣), 봉토를 받은 신하 곧 제후를 봉신(封臣), 슬기와 꾀가 있는 신하를 모신(謀臣), 문관인 신하를 문신(文臣), 무관인 신하를 무신(武臣), 남의 신하를 인신(人臣), 간사한 신하를 간신(奸臣),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절을 다하는 신하를 충신(忠臣), 지위가 낮은 신하를 미신(微臣), 이름난 신하를 명신(名臣), 다리와 팔뚝에 비길 만한 신하라는 뜻으로 임금이 가장 신임하는 중신을 이르는 말을 고굉지신(股肱之臣), 다리와 손에 비길 만한 신하라는 뜻으로 임금이 가장 신임하는 중신을 이르는 말을 고장지신(股掌之臣), 임금과 신하와 물과 물고기란 뜻으로 떨어질 수 없는 친밀한 관계를 일컫는 말을 군신수어(君臣水魚),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신하와 어버이를 해치는 자식 또는 불충한 무리를 일컫는 말을 난신적자(亂臣賊子), 간사한 신하와 불효한 자식을 일컫는 말을 간신적자(奸臣賊子), 임금은 그 신하의 벼리가 되어야 함을 이르는 말을 군위신강(君爲臣綱), 임금과 신하 사이에 의리가 있어야 함을 이르는 말을 군신유의(君臣有義), 목구멍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듣기에 괴로운 직언을 하는 강직한 신하를 일컫는 말을 골경지신(骨骾之臣), 임금의 사랑을 잃게 된 외로운 신하의 원통한 눈물을 일컫는 말을 고신원루(孤臣冤淚), 임금과 신하 사이에 지켜야 할 큰 의리를 일컫는 말을 군신대의(君臣大義), 풀을 베는 천한 사람이란 뜻으로 평민이 임금에 대해서 저를 낮추어 일컫던 말을 자초지신(刺草之臣), 임금의 명령을 비롯한 나라의 중대한 언론을 맡았다는 뜻에서 승지를 일컫던 말을 후설지신(喉舌之臣), 벌이나 개미에게도 군신의 구별은 뚜렷이 있다는 뜻으로 상하 위계 질서를 강조할 때에 이르는 말을 봉의군신(蜂蟻君臣), 임금이 치욕을 당하면 신하가 죽는다는 뜻으로 임금과 신하는 생사고락을 함께 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군욕신사(君辱臣死), 풀떨기 같은 신하라는 뜻으로 벼슬하지 않는 백성을 이르는 말 또는 신하인 자가 스스로를 낮추어 이르는 말을 초망지신(草莽之臣), 임금이 치욕을 당하면 신하가 임금의 치욕을 씻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는 뜻으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도와 생사고락을 함께함을 이르는 말을 주욕신사(主辱臣死) 등에 쓰인다.
▶️ 七(일곱 칠)은 ❶지사문자로 柒(칠)과 통자(通字)이다. 다섯 손가락을 위로 펴고 나머지 손의 두 손가락을 옆으로 편 모양을 나타내어 일곱을 나타낸다. 아주 옛날 숫자는 하나에서 넷까지는 선(線)을 그 수만큼 한 줄로 늘어 놓고, 다섯 이상은 다른 기호를 사용했다. 그 중 五(오)와 七(칠)과 九(구)는 닮음꼴, 六(육)과 八(팔)과도 닮음꼴로 되어 있다. 일설에서는 七(칠)은 베다란 뜻의 글자를 빌어 쓴 것이며 후세의 切(절)이란 글자를 기원이라 한다. ❷상형문자로 七자는 '일곱'이나 '일곱 번'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七자는 칼로 무언가를 내리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갑골문과 금문에 나온 七자를 보면 十자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칼로 사물을 자르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갑골문에서는 十(열 십)자가 막대기를 세운 그려졌었기 때문에 十자와 七자는 혼동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소전에서는 두 글자의 구분이 어려워지면서 끝을 구부리는 방식으로 지금의 七자를 만들게 되었다. 七자는 본래 '자르다'라는 뜻으로 쓰였었지만, 후에 숫자 '일곱'으로 가차(假借)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여기에 刀(칼 도)자를 더한 切(끊을 절)자가 '자르다'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七(칠)은 일곱의 뜻으로 ①일곱 ②일곱 번 ③칠재(七齋; 죽은 지 49일 되는 날에 지내는 재) ④문체(文體)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한 해의 열두 달 가운데 일곱째 달을 칠월(七月), 사람의 일곱 가지 심리 작용을 칠정(七情), 바르지 못한 일곱 가지 견해를 칠견(七見), 그 수량이 일곱이나 여덟임을 나타내는 말을 칠팔(七八), 나이 70세로 일흔 살까지 산다는 것은 옛날에는 드문 일이다는 뜻의 칠순(七旬), 일곱 걸음에 지은 시를 칠보시(七步詩), 한 줄이 일곱자로 된 한시를 칠언시(七言詩), 일곱 줄로 매어 만든 거문고를 칠현금(七絃琴), 제갈공명의 전술로 일곱 번 놓아주고 일곱 번 잡는다는 말을 칠종칠금(七縱七擒),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째 일어난다는 말을 칠전팔기(七顚八起), 유교에서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일곱 가지의 조건을 이르는 말을 칠거지악(七去之惡), 사물이 서로 연락되지 못하고 고르지도 못함을 이르는 말을 칠령팔락(七零八落) 등에 쓰인다.
▶️ 人(사람 인)은 ❶상형문자로 亻(인)은 동자(同字)이다.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서 있는 것을 옆에서 본 모양을 본뜬 글자. 옛날에는 사람을 나타내는 글자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썼으나 뜻의 구별은 없었다. ❷상형문자로 人자는 '사람'이나 '인간'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人자는 한자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글자이기도 하다. 상용한자에서 人자가 부수로 쓰인 글자만 해도 88자가 있을 정도로 고대 중국인들은 人자를 응용해 다양한 글자를 만들어냈다. 이전에는 人자가 두 사람이 등을 서로 맞대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해석을 했었지만, 갑골문에 나온 人자를 보면 팔을 지긋이 내리고 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었다. 소전에서는 팔이 좀 더 늘어진 모습으로 바뀌게 되어 지금의 人자가 되었다. 이처럼 人자는 사람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부수로 쓰일 때는 주로 사람의 행동이나 신체의 모습, 성품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人(인)은 (1)사람 (2)어떤 명사(名詞) 아래 쓰이어, 그러한 사람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사람, 인간(人間) ②다른 사람, 타인(他人), 남 ③딴 사람 ④그 사람 ⑤남자(男子) ⑥어른, 성인(成人) ⑦백성(百姓) ⑧인격(人格) ⑨낯, 체면(體面), 명예(名譽) ⑩사람의 품성(稟性), 사람됨 ⑪몸, 건강(健康), 의식(意識) ⑫아랫사람, 부하(部下), 동류(同類)의 사람 ⑬어떤 특정한 일에 종사(從事)하는 사람 ⑭일손, 인재(人才)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어진 사람 인(儿),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짐승 수(兽), 짐승 수(獣), 짐승 수(獸), 짐승 축(畜)이다. 용례로는 뛰어난 사람이나 인재를 인물(人物), 안부를 묻거나 공경의 뜻을 표하는 일을 인사(人事),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인권(人權), 한 나라 또는 일정 지역에 사는 사람의 총수를 인구(人口), 세상 사람의 좋은 평판을 인기(人氣), 사람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여 이르는 말을 인류(人類), 사람의 힘이나 사람의 능력을 인력(人力), 이 세상에서의 인간 생활을 인생(人生), 학식과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인재(人材), 사람의 수효를 인원(人員), 사람으로서의 됨됨이나 사람의 품격을 인격(人格), 사람에 관한 것을 인적(人的), 사람을 가리어 뽑음을 인선(人選), 사람의 힘이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일을 인위(人爲), 사람의 몸을 인체(人體), 사람의 얼굴의 생김새를 인상(人相), 한 사람 한 사람이나 각자를 개인(個人), 나이가 많은 사람을 노인(老人), 남의 아내의 높임말을 부인(夫人), 결혼한 여자를 부인(婦人), 죽은 사람을 고인(故人), 한집안 사람을 가인(家人), 장사하는 사람을 상인(商人), 다른 사람을 타인(他人), 널리 세상 사람의 이야깃거리가 됨을 일컫는 말을 인구회자(人口膾炙), 인간 생활에 있어서 겪는 중대한 일을 이르는 말을 인륜대사(人倫大事), 사람은 죽고 집은 결딴남 아주 망해 버림을 이르는 말을 인망가폐(人亡家廢),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있다는 뜻으로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이나 오래 살고 못 살고 하는 것이 다 하늘에 달려 있어 사람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인명재천(人命在天), 사람의 산과 사람의 바다라는 뜻으로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모인 모양을 이르는 말을 인산인해(人山人海), 사람마다 마음이 다 다른 것은 얼굴 모양이 저마다 다른 것과 같음을 이르는 말을 인심여면(人心如面), 여러 사람 중에 뛰어나게 잘난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을 인중사자(人中獅子), 여러 사람 중에 가장 못난 사람을 이르는 말을 인중지말(人中之末), 사람의 죽음을 몹시 슬퍼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인금지탄(人琴之歎),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뜻으로 사람의 삶이 헛되지 아니하면 그 이름이 길이 남음을 이르는 말을 인사유명(人死留名), 사람은 곤궁하면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사람은 궁해지면 부모를 생각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인궁반본(人窮反本),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니라는 뜻으로 사람의 도리를 벗어난 사람을 일컫는 말을 인비인(人非人), 인생이 덧없음을 이르는 말을 인생무상(人生無常), 사람의 근본은 부지런함에 있음을 이르는 말을 인생재근(人生在勤),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이 짧고 덧없다는 말을 인생조로(人生朝露), 남의 신상에 관한 일을 들어 비난함을 이르는 말을 인신공격(人身攻擊), 아주 못된 사람의 씨알머리라는 뜻으로 태도나 행실이 사람답지 아니하고 막된 사람을 욕하는 말을 인종지말(人種之末), 남이 굶주리면 자기가 굶주리게 한 것과 같이 생각한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여겨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함을 이르는 말을 인기기기(人飢己飢), 인마의 왕래가 빈번하여 잇닿았다는 뜻으로 번화한 도시를 이르는 말을 인마낙역(人馬絡繹), 얼굴은 사람의 모습을 하였으나 마음은 짐승과 같다는 뜻으로 남의 은혜를 모름 또는 마음이 몹시 흉악함을 이르는 말을 인면수심(人面獸心), 사람은 목석이 아니라는 뜻으로 사람은 모두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목석과 같이 무정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인비목석(人非木石), 정신을 잃고 의식을 모름이란 뜻으로 사람으로서의 예절을 차릴 줄 모름을 이르는 말을 인사불성(人事不省)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