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민족 고유의 명절인 설날이 다가온다. 시대가 변하고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분열되면서 명절의 떠들썩한 풍경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동네에서는 윷판이 벌어졌고 풍물놀이패가 어우러져 흥에 겨운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전통 민속 경기인 씨름은 명절 때마다 주요 대회가 열렸는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온 국민이 씨름을 보기 위해 TV 앞에 모였고 대통령이 씨름을 시청하기 위해 청와대에 도착해서야 경기를 시작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씨름에 대한 열기는 굉장했다. 하지만, 현시대로 접어들면서 우리나라의 민속놀이는 급격히 쇠퇴하였다. 젊은 세대들에게 윷판과 널뛰기는 더이상 흥을 돋우는 놀이가 아니다. 세배를 마치면 영화관이나 카페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명절을 휴양지에서 휴식을 취하는 가족들도 늘면서 전통 놀이 문화는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씨름 역시 대중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국민 스포츠로 인기를 누렸던 씨름은 이제 언제 어디서 대회가 열리는지, 천하장사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드물다. 야구와 축구, 농구와 배구까지 프로화되면서 경쟁에서 뒤처졌고 97년 IMF 사태 이후로 프로 씨름은 붕괴되었다. 결국, 선수들은 모래판을 떠나서 격투기 선수나 연예인으로 전향하기에 이르렀다.
반면 우리나라의 씨름과 가장 비교되는 것이 이웃 나라 일본의 전통 스포츠인 스모다. 인기가 시들해진 씨름과는 다르게 스모는 일본 최고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선수들은 모두 스모협회에 가입이 되어 있어서 기본 급여가 제공되고 안정적으로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우승 상금은 1억 엔, 우리 돈으로 10억이다. 천하장사의 우승 상금이 최고 1억임을 감안할때 씨름과는 격이 다르다. 매년 마지막 대회의 시상식은 일본 총리가 직접 수여할 만큼 일본의 스모의 위상은 대단히 높다. 물론 침체기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정부와 언론과 협회가 하나가 되어 팬 서비스를 시작했고 스모협회는 매일 선수들의 일상을 소개하여 팬들과 친숙해지도록 노력했다. 전용경기장 재건과 공격적인 마케팅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한 결과, 애니메이션과 게임 산업에 이르기까지 일본 곳곳에 스모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현재는 하와이, 몽골, 유럽 등 외국인 선수도 증가하는 추세이고 일본 여행의 필수 관광 코스로도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우리나라도 씨름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팬들 속으로 친숙히 파고들어야 한다. BTS가 세계적인 가수로 성장하게 된 원동력도 소셜미디어를 통한 팬들과의 소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 씨름협회는 오래전부터 씨름 재건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씨름의 부흥을 위해 전국 소도시를 돌면서 대회를 진행하고 지역단체들도 씨름을 마케팅 수단으로 삼아 특산물을 홍보하는 효과를 톡톡히 보고는 있으나, 씨름 경기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여전히 미비하다. 인기 스포츠와 비교하면 관심을 끌 만큼의 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시대의 변화에 맞게 씨름 풍속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옛것 그대로의 전통과 관습만을 고집한다면 후대에는 씨름이 역사 속의 민속놀이로만 남을지도 모를 일이다. 씨름의 전통적 요소를 발굴하여 현대적으로 되살리고 MZ 세대들도 즐길 수 있도록 품격을 높여야 할 것이다. 작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씨름의 부흥을 위해 대한 씨름협회와 업무협약을 체결하였다.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지난 몇 년간 씨름은 협회를 중심으로 고군분투했지만 스스로 살아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의 재정과 행정 지원으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임에는 틀림이 없다. 씨름은 우리나라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2018년에는 남한과 북한이 공동으로 씨름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하였다. 또한, 김홍도의 풍속도에서 볼 수 있듯이 씨름은 우리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담고 있는 소중한 자산이다. 따라서 우리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씨름의 가치를 발굴 보존하여 후손 대대로 물려주어야 할 것이다. 모래판 위의 장사들이 다시 한번 대한민국을 뒤흔들어 세계적인 스포츠로 재도약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