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여성시대 친일파재산환수
석방 이후 온오프로 ㅈ뺑이 치는 려시들이 많아짐과 동시에 나의 내란성 분조장이 재발했다..
이 개새들은 대체 뭐가 문젤까 이 법기술자 놈들은 대체 뭘 보고 배웠길래 ㅇㅈㄹ인가 고뇌하며 쓰게 된 글
첫 한국인 법원 검사장(이제는 검찰총장 직) 김찬영
일제강점기 법조인으로 활동, 유민회 평의원 출신
유민회가 뭐여
유민회: 1919년 11월 14일 고희준(高羲駿)·김응두(金應斗)·정응설(鄭應卨) 등이 당국의 인가 밑에서 남작 이용태(李容泰)를 회장으로 추대하고 조직하였다.
간부는 박병철(朴炳哲)·송진옥(宋振玉)·유병룡(柳秉龍)·이풍재(李豊載) 등이며, 박영효(朴泳孝)가 이면에서 주도한 서울지방 유산계층의 단체였다.
교육진흥·경제개발·민심생활의 안정 및 사회의 진보발전 등을 표방하였으나, 친일여론 조성에 힘쓴 일종의 관제 실력양성운동단체이며, 때문에 한때 노동문제 쪽으로 관심을 나타내려 한 시기도 있었다.
그만 알아보자 ^^...
2대 검사장 이종성
검색되는 기록으로는 훌륭한 분임에 틀림없는데 어떻게 이 시기에 임명이 되었는지가 의문이었던 참에 역사학자 이강수의 책 (친일파와 반민특위, 나는 이렇게 본다)을 보게 됨
반민특위 임명되고 꽤나 활동한줄 알았는데 금방 사퇴했다고 쓰여있음. 아니 멋진 스펙처럼 써놓을거라면 언제, 왜 사퇴했는지도 나와야하는거 아니여 당연히..? 안나옴. 분명 어제 검색할땐 1월에 사퇴했다고 봤는데 다시 찾으려니 힘들어 누가 찾아줘... ㅠ
사퇴 시기가 왜 중요하냐면 12월에 반민특위 선출인데 반민특위가 제대로 활동 시작한건 1월 5일이라 걍 발만 담궈놓고 허위스펙으로 세탁 돌렸을 수 있어서 그래 ㅎ
사퇴 이후 반민특위가 체포해온 이승우, 공주갑부 김갑순 같은 매국노들의 변호인으로 활동했다는데 구글검색으로는 도무지 나오지 않는다...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3064903
까지 찾아봤으나 찬양만 있었다.
해방된 조국에서 이종성은 사회적 활동 범위를 더욱 확대해 나갔다. 이종성은 대법원 재판관으로 임명되어 전 조선총독부 체신국장, 위생과장, 법무국장, 경성형무소장 등 조선총독부 관리들의 죄를 법정에서 심리하는 등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작업을 수행하였으며, 이후 1946년 2월 대법원 검사총장직을 맡게 되어 검찰 조직을 이끌었다.
이 부분은 의심이 들지 않을 수가 없는게 대법원에서 뭐..매국노들 제대로 처벌받은게 없다고 알고있거든 뭔 청산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겄네용 ㅎ
이 찬양이 전부 진실이라면 어떻게 그 시절 검찰총장이 되었고 그 이후로도 납북되기 전까지 빵빵한 스펙을 쌓을 수 있었는지 매우 의문스러우나 확인할 방도가 구글검색뿐인 낡고 지친 허접에게는 찾기 매우 어려움 이슈로 포기... 잘 아는 여시 있다면 제발 알려줘용 ㅠ
대검찰청으로 독립 이후 제 1대 검찰총장 초대 법무부 장관을 지냈던 이인
반민특위를 와해, 해체시킨 인물(근데 이정도면 독립운동가 옆에 변절 괄호로 써줘야 하는 거 아녀? 좋은 일을 아무리 했어도)
반민특위법이 제정되었을때, 이인은 다음과 같이 반민법에 반대를 표명했다.
* 새로운 출발의 시기에 또다른 민족분열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
지역적으로 남한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것은 법의 평등원칙에 어긋난다.
민족반역자 색출에 있어 악질적인 괴수에 그 처벌을 국한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새로운 절충안을 작성하였다.[3]
1949년 3월 서울 종로구의 국회의원인 장면이 주미대사 임명 관계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자 그는 보궐선거에 출마하였다. 3월의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제헌국회의원이 되었고, 6월에 법무부장관직을 사임하였다. 이후 김상덕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을 사임하자 7월 7일에 반민특위 위원장이 되었다. 이인은 반민특위 특경대를 해산시키고 신변보호를 담당하던 경찰마저도 모두 철수시켜 '더이상 반민족 행위자의 체포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나아가 이인은 반민특위 해체를 주요내용으로하는 반민법 개정안을 제출하였고, 개정안은 통과되어 반민특위는 해체되었다.
1946년 군정청 검찰청 검찰총장이 되어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등의 수사를 지휘하는 등 좌파 세력의 근절에 노력했으며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미국이 조작한 위조지폐 사건이 내게 말을 걸었다 - 오마이뉴스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2989237
독립유공자로 현충원행
그만 알아보자...
개싻아지 검찰총장은 너무나 많고 나는 기력 딸리는 평일의 노동자니까...
제2대 검찰총장(대리) 엄상섭은 대충 찾아도 어마어마한 스펙이 있는 분임
무려 조선총독부 검사ㄷㄷㄷ
부산지방검찰청장, 대검찰청 검사, 변호사, 고등고시위원, 홍익대학장, 국회법제사법위원장을 지냈다. 제2대, 제4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대한민국 형법 초안 작업에 깊은 관여를 하였고 한국 형법학의 기초를 다졌다.
이후 회고록을 통해 애국지사들에게 면목이 없다면서 "왜제통치에 협력하였다는 것만은 아무리 사과를 해도 모자랄 것"이라고 말해,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대표적인 친일 전력 반성 사례 중 하나로 언급했다.
에궁..면목 없는 거 치곤 너무 잘사신 듯
4대 한격만
뭐 훌륭한 과거두 없고 반성도 없고 현재 정치 검찰의 롤모델 아닌가 싶은 정도.. 1954 사사오입 개헌 당시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면서 특무대장 김창룡, 헌병대 총사령관 원용덕과 함께 개헌 반대 세력 제거하는데 앞장 섬
김창룡=백범 김구 선생 암살범 안두희쉑 숨겨주고 헌병대 입대시켜줌
원용덕=의사도 군인도 싫어졌는데 둘 다라니...암튼 대단한 색ㄱ기..일본 만주군^^출신의 정치군인
친일인명사전에 등장하는 친일 군인쉑들임 얘네랑 베프먹고 이승만 지킴이 한 한격만...뭐가 잘 안나오는건 똑같은데 걍 저것만으로도 뭐...걍...뭐...ㅋ
...그만 알아보자
5대 민복기
개 큰 네임드 왔다.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남작 작위 받고 중추원 부의장까지 역임한 민병석 ㄷㄷㄷ 이완용이랑도 친인척인 어마어마한 매국의 피
진짜 다른 사람들은 찾기 더럽게 힘들었는데ㅠ 역시 경술국적 직계 세탁은 힘들었던걸까?
노력하지 않아도 오마이뉴스부터 위키백과 어디 블로그 그냥 막 줄줄 나옴
일제강점기 판사 출신 친일반민족행위자이자 대한민국의 前 법조인.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 대법관, 제5·6대 대법원장을 역임했다.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대법원장을 역임한 대한민국 법조계에서 전무후무한 커리어를 남겼다.
친일인명사전 수록자이자 박정희 정부의 주요 인사였고, 인민혁명당 사건과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의 주범이기도 하다.
여기서 인혁당 사건이?
당시 '인혁당사건'을 담당한 서울지검 공안부(부장 이용훈)는 20여 일 간의 수사 끝에 증거불충분으로 "양심상 도저히 기소할 수 없다"라고 기소장 서명을 거부했다.
이때 나선 것이 당시 검찰총장 출신 법무장관이었던 민복기다. 그는 '상명하복의 검찰 기강을 세우기 위해 공소장에 서명을 거부한 검사에 대해서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그러자 김형욱 부장 밑에서 차장을 지내고 검찰총장으로 부임한 신직수가 당직검사를 바꿔가며 1차 인혁당 사건의 관련자들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기소장 서명을 거부했던 이용훈 등 검사들은 옷을 벗었다.
음...^^ 피는 물보다 진하다.
근데 여시헴들 그거 아세요
이쉑도 현충원에 묻혔다.
역시 매국블러드 어디 안가 존나 양심x
아 맞다
자랑스러운 설법대인으로도 선정 됐었음ㅊㅋㅊㅋ~^^ 전통있어
문제시 제발 살살 말해줘 요즘 급속노화중이라 마음이 김성훈 경호차장의 시술받은 피부보다 얇고 심약해욥..
문제 없음 2탄으로 돌아옴
첫댓글 무덤에서 나와보셈 존나 패고싶다
와 여시 어케다찾았어 나라팔아먹는 개쌍놈들 다모여있네 후속기사ㅈㄴㅈㄴ원해요
유구한 역사네^^
친일파들 다 저주 받길
진짜 미쳤다...존나에반데ㅠ 잘 읽었어 여시야!!
양질의글
아.. 뿌리부터 썩었네 시발
현충원 파묘 안돼? 저런것들이 왜 현충원에 묻혀 있어야 되는거야
현충원 부관참시가줘 잼시
아니 미방 심우정 닮아서 깜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