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3일 저녁 7시, 서울 사당동에 있는 둥그나무 한정식집에서 32년 반만의 해후가 이루어졌다.
그러니까 어제 저녁의 일인데, 내가 가르쳤던 초로의 제자들 아홉명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목회의 연습생인 교육전도사로 첫 발을 내디딘때가 1980년 3월 2일이었고 그 교회는 동대문지방 영성교회였는데
당시 영성교회의 담임목사님은 차종필목사님(현재91세)으로 성수동 성암교회에서 시무하시다가 이석만목사님과 임지를 교환하여
부임하신지 얼마 안된 시점이었다.
목회를 의욕적으로 해 보시고자 교회학교 부흥을 위해 전도사 세 명을 모집했는데, 아동부전도사와 중고등부 전도사
그리고 심방전도사였다. 그 중 나는 아동부를 전담하는 전도사로 부름을 받아 난생 처음으로 목회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축복 속에 아동부가 부흥을 이루기 시작했고, 갈수록 교사들의 열심도 더해갔다.
그렇게 4개월이 지났을 때 중고등부를 전담하던 김재중전도사님(현재 안산대학교 교목)이 일신상의 이유로 사임을 했고
담임목사님은 나에게 중고등부를 겸직해 달라고 말씀을 하셨다. 당시 중고등부 집회인원은 20명에서 30명 정도를 오르내리는
정도였는데 점점 부흥을 주셔서 60-70명까지 모이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다.
그도 그럴수밖에 없는 것은 당시 교회 주변에는 영성교회 학생회 부흥을 가로막고 있는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당시 비행청소년으로 고등학교 2학년 나이에 별(전과)을 네 개나 달고 있던 권오돈(작고)이라는 학생이 문제였다.
토요일 오후에 학생예배 시간만 되면 이 아이는 교회 입구에 서서 아이들이 교회에 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고 아이들은
오돈이가 무서워 되돌아가기가 일쑤였다. 이 아이는 당시 청량리 답십리 전농동 면목동 장안동 일대를 주름잡으며
200여명의 비행청소년들을 거느린 속칭 학생 짱이었다.
한 번은 주일 낮예배를 드리는데, 예배당 유리창이 와장창 깨졌고, 주먹만한 돌이 교회 안으로 날아들어 아수라장이 된 일이 있었는데
다름아닌 권오돈이라는 아이의 짓이었는데 술에 만취상태에서 본드를 흡입해 환각상태에서 벌인 일이었다.
나는 이 아이를 잡아 끌고 교회 입구에 내가 사용하는 방으로 들어갔는데, 방에 깔아 놓은 밍크담요에다가 뱃속에 있는 오물을 다 쏟아내는게 아닌가!
술냄새에 본드냄새가 어우러진 냄새는 도무지 역겨워 감당할 수가 없었지만 어쩌겠는가! 내 방이니 내가 치울 수 밖에....
밍크담요를 둘둘 말아 내 놓고 걸레로 닦고, 휴지로 오돈이의 입까지 닦아 주면서 나는 그 아이의 눈을 보며 웃어 주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그 이후로 오돈이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을 했는데, 교회에 오지 말라고 아이들을 내쫓던 아이가 제 휘하에 있는
덩치 큰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를 나오는 것이었다. 그것도 한 명 두명이 아니라 점점 숫자가 많아지는 것이었다.
나는 그 여세를 몰아 문학의 밤, 학생 수련회, 성가대 칸타타, 전 교인 체육대회를 기획했고, 그 효과는 엄청나게 나타나 학생회가 60-70명이 회집되는
부흥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 때, 나의 가르침을 받으며 학생회 부흥을 위해 뛰던 아이들!
그 때, 고등부 2학년이던 아이들이 올해로 52세, 중학교 3학년이던 아이들이 50세가 되어 어제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장안동에 살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전국 각지로 흩어져 살고 있는 아이들이 나를 만난다는 설레임으로 달려왔는데, 이미 SNS에 BAND를 만들어
지난 이야기들을 이야기하며 분위기를 만들어 왔고, 내가 모시고 있던 차종필원로목사님께도 전화를 드려 소식을 전해 드렸었다.
제자중에 목사가 되고 사모가 된 사람이 여럿이고, 스스로 탕자라고 말하며 신앙생활을 멀리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음을 보았고,
우리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다가 2월 초에 2차 모임을 갖는데, 제자 중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선교사로 사역하는 김신섭목사가 입국하는 때
영성교회에서 현 담임목사에게 연락을 해서 모이기로 하고 헤어져 돌아왔다.
나의 의중은 스스로를 탕자라고 말하며 교회를 등지고 있는 몇 몇 아이들을 다시금 주님 앞에 무릎 꿇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인데, 오늘 새벽부터
그들을 위한 기도가 시작되었다. 벌써부터 그 아이들을 다시 만날 2월 초가 기다려진다. 2014년 1월 4일 아침에 민흥식목사가
첫댓글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목사님! 가슴 벅찬 시간을 보내셨겠네요.
아내가 그런 말을 하더군요!
" 당신 요즘 너무 행복해 보여요 "
32년 반만에 소식이 끊겼던 제자들을 만난다는게
이렇게 큰 기쁨일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답니다.^^
정말로 즐거우신 시간을 보내셨네요.. 아주 뜻깊은 자리인거 같습니다.... 이글을 읽다보니 저도추억이 떠오르면서 보고싶은 사람들이 생각이 납니다.. 기도의 응답이 빨리 오길 함께 기도합니다.
거기는 우리 동네가 추억의 현장 아니유?^^
옛 추억 당진에서 있었던 일들이 떠오르네요.... 마치 저도 목사님 사역지에 있었던 것 처럼 글을 썼네요... 죄송합니다. ㅎㅎ
옛시절이 떠오른다는건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라죠?^^
그래도 떠오르는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억의 기능 때문이겠죠!^^
미숙했지만 그럼에도 멋지게 성장한 아이들을 바라보면 정말 기쁘죠^^
52세에서 50세까지의 사람들이니, 아이들이라 하기엔
삭은 친구들이지만 사내녀석들과 진한 포옹을 나누었답니다.
설레임으로 달려가서 밥 사주고 왔죠!^^
사은회가 아니라 선생님이 한 턱 쏘셨군요. 32년 전에도 주머니 털어 풀빵 사주시지 않았던가요?
헌데 도통 사제지간이라곤 믿기지 않네요. 동창이라면 몰라도.....
ㅋㅋ 세월이 만들어 놓은 흔적이 아니겠어요?
저도 그런 생각 했는데...ㅋㅋ
같이 늙어 가는게 맞나 봅니다. 저도 모교회에서 주일학교와 중고둥부에서 만났던 아이들(?) 중에 목사나 선교사가 6명, 목사 아내가 3명인가 되었습니다.
어느날 목사가 된 수제자가 "형님"하는데 처음엔 당황스러웠는데 이젠 호형호제가 정겹습니다.
그러시군요~ 그런데 제자가 형님이라고 하는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하기사 모교회이니.... 이젠 같이 늙어가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