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도서관(목회칼럼)
예전에 애창했던 복음성가 “작은 불꽃 하나가 큰 불을 일으키어 곧 주위 사람들 그 불에 몸 녹이듯이 주님의 사랑 이같이 한번 경험하면 그의 사랑 모두에게 전하고 싶으리.” 불러본다.
우리는 도서관을 만들려고 지난 가을에 바자회를 했다. 故최곤필원로목사님, 우리교회의 집사님들, 우리 동네 사람들이 책을 기증해주셨다. 그리고 서점에 가서 충분하지는 않지만 책을 샀다. 40년 전 학창시절에는 부모를 졸라서 책을 샀다. 고등학교 때 읽은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은 봉건사회에서 여자가 하녀로 들어가서 주인에게 갖은 학대를 받는 내용이었는데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그 책을 계기로 여자를 성적인 대상이 아닌 한 인격체로 생각하였다. 80년대에는 젊은이들이 책을 가방에 넣지 않고 옆구리에 끼고 다니면 고상하게 여겼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책을 박물관에 보관하는 것으로 여긴다. 학생들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 있다. 어디를 가나 좀비처럼 똑같은 각도로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만진다. 길을 가면서, 차를 운전하면서, 잠을 자면서, 스마트폰을 통해 자신을 위로받는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만들어 파는 애플사의 직원들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스마트폰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면 뇌가 굳어서 사고가 경직되고, 집중력이 떨어져 과잉행동장애를 일으킨다고 한다.
한권의 책을 통해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이 평생 연구한 내용을 짧은 시간에 배울 수 있다. 책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책을 보고 생각이 살아 있으면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비극적인 현실을 산다. 학생들에게 무조건 암기하여 답만 찾도록 만든다.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로봇으로 만든다. 그렇게 해서는 대학을 가는데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세계화 시대에 경쟁력이 없다. 한 평생 사람답게 살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 한평생 우물 안에 갇혀 산다면 얼마나 큰 손실일까?
우리교회는 겨자씨 도서관을 통해 우리 동네의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로 삼으려고 한다. 도서관에서 세상을 품고, 고민을 나누고, 고민을 해결하고, 사람을 만나려고 한다. 아직은 작고 부족하다. 하지만 점점 자라나서 큰 나무가 될 것이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와서 쉼을 얻고, 자신과 이웃을 만나고, 하나님을 만날 것이다. 겨자씨가 잘 자라도록 관심과 기도를 부탁한다. 아니 우리의 일이니 함께 겨자씨가 자라도록 사랑을 듬뿍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