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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CRYSTAL님
주 안에서 평안하신지요.
님은 예배당을 제단이라고 부르는 것은 과연 옳은지를 질문하였습니다.
이는 님이 함께 하며 섬기는 교회의 예배 기도에서 기도하시는 분들이 ‘제단’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따른 의문에서입니다.
님은 “교회당 건물이 성전도 아닌데...”라고 하면서 “예배당 건물이 제단인가요?” 라고 물으며 이에 대한 성경적인 해답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도에서만이 아니라, 예배 찬송에서 즐겨 부르는 찬송가 361장인 ‘주의 주실 화평’을 소개하며 여기에 대해서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님 자신은 이미 옳은 이해를 가지고 있으며 그에 따른 옳은 대답을 알고 계십니다.
“교회당 건물이 성전도 아닌데...예배당 건물이 제단인가요?”
그렇습니다. 님 자신이 알고 있으며 반문하고 있는 질문에서와 같이 교회당 건물은 성전이 아니며, 교회당 건물은 성도들이 주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처소로 삼고 있는 건물에 불과한 ‘예배당’일 뿐입니다.
그래서 말이죠. 예전에는 ‘OO교회당’이라고 하거나, ‘OO예배당’이라고 교회 간판을 붙인 교회가 있었습니다. 내가 알기로는 지금도 모교회는 여전히 그렇게 불려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단’(祭壇)라는 용어는 “제사를 지내게 만들어 놓은 단”이라는 것으로, 기독교에서는 “미사를 드리는 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미사’(Missa)란 카톨릭에서 ‘예배’란 말을 대신하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그 뜻은 “천주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러니까 카톨릭에서는 주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하늘에 계신 하나님(천주)께 제사를 드린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죠. 이는 예배를 구약 시대의 제사적 의미에서 다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카톨릭에서는 천주께 제사를 드리는 단을 ‘제단’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개신교에서도 ‘제단’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으며, 그래서 입만 열면 ‘제단’이라는 말을 서슴치 않고 하는 것을 예배 설교에서나 또는 예배 기도에서도 그리고 대화에서도 쉽게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쉽게 ‘제단’이라는 말을 사용해도, 그래서 해도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제단’이란 말을 사용할 때는 그 단어를 사용해서 말을 해야만 하는 내용 가운데에서 되어져야 하는 것이지, ‘성전’을 ‘제단’이라고 말하거나 ‘예배당’을 ‘제단’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성전이나 예배당에 대한 개념과 그 의미를 알지 못하는 무지한 상태에서 하는 잘못된 것입니다.
‘제단’이란 말이죠.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제사를 지내게 만들어 놓은 단”으로서 제사와 관련하여 있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제사를 지내는 곳이란 생각에서 제단이라는 말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제사는 무엇 때문에 등장하는가 하면,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의 언약 관계에서입니다. 제사에 대한 규례를 다루고 있는 것이 구약성경 레위기입니다. 모세 오경에서 세 번째 책인 레위기는 ‘제사장들의 법’, ‘희생 제물의 율법 책’이라는 것에서 그러한 명칭으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기에서의 제사 제도의 규례를 통해서 대리의 희생에 의한 속죄의 원리를 모형과 예표로 계시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속하시는 작정에 따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대리되어지는 희생 제사를 통해서 인간의 죄악됨을 날마다 확인케 하십니다. 날마다 희생되는 제물을 통해서 ‘피’가 요구되고 있는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는 존재가 죄인인 인간입니다. 여기에 죄인을 대신하여 희생으로 드려지는 제물은 제사의 성격에 따라서 번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소제로 불려집니다.
그런데 말이죠. 하나님께서는 제물 된 짐승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한 여러 구절을 볼 수가 있습니다.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들리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치 아니하신다 하신지라”(시 40:6)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 51:16-17).
"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를 기쁘게 여기시느니라"(잠 21:3).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는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적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고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사 1:10-17).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6-8).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말 1:10).
하나님께서 제사의 규례를 주시고서 왜 정작 이를 기뻐하지 않으심을 나타내실까요? 하나님께서 제사의 규례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알리고자 하신 것은 제사에 드려질 제물로서 제사 지내는 단이 넘쳐 나는 것을 보고자 하는데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인간을 대신하여서 그렇게 희생되고 있는 제물을 통해서 그 희생 제물이 끊임없이 요구될 수 밖에 없는, 그래서 결국은 사망에 이를 수 밖에 없는 죄를 드러내시고 있는 것이며, 그러한 죄인인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사랑과 공의가 되셔서 그들이 구하는 계속되어져야 할 희생의 ‘피’를 영원히 단번에 끝낼 사랑과 공의의 온전함이 되심으로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참된 생명인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에게 나타나실 것이 대리되어지는 희생 제물에서 언약되고 있는 메시야, 곧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물이 아닌 그들의 상한 심령을 원하셨으며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셨으며, 이스라엘을 ‘제사로 맺어진 언약 백성’(시 50:5) 삼으신 까닭이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제사란 말이죠. 영속적(永續的)이 아닌 한시적(限時的)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제사란 그것이 모형하고 있으며 예표하고 있는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달린 자가 되셔서 친히 자신의 몸으로 희생 제물을 드리는 일을 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신 헌신 제사가 되어 하나님께 받아들여짐으로써 이제까지 그동안 해오신 구약의 희생 제물이 드려지는 모든 제사의 마침이 되셨습니다.
그에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의 구속 사역을 이루신 신약 시대에서는 더 이상 구약에서 행해져 온 제사가 드려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는 이러한 사실로 절기를 좇아 성전에서 행해져온 제사 제도를 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실증으로써 제사 제도를 위해서 존재해왔던 성전을 완전히 무너뜨리셨으며, 절기 또한 더 이상 지켜 좇지 않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요 2:19-22).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 24:1-2).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평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 2:13-17).
하나님께서는 구약에서 자신을 모형하고 예표해온 성전된 예수님의 몸을 십자가에서 무너뜨려 헐어버리셨으므로 더 이상 지상에서 성전된 건물도, 여기에서 행해져 왔던 절기도 존재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에 따라서 주후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은 완전히 훼파되었습니다.
그리고서 하나님은 참된 성전인 새성전을 사람의 손이 아닌 자신의 손으로 땅에서가 아닌 하늘에서 직접 지으셨습니다. 그것이 새예루살렘으로 말해지고 있는 하늘에 있는 자나 땅에 있는 자나 모두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된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하나님께는 하늘이 보좌요 땅이 발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에는 거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예배드리는 어린양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구속받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로 새예루살렘을 이루고서 이곳 어디에서나 그들과 함께 하십니다. 이러한 천상적 성전의 개념을 갖는 것이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교회는 말이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통해서 이루실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받들어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의 모든 죄를 없애신 그리스도의 승리로 이 땅에서 더 이상 의문(儀文)에 쓴 율법의 종[노예]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고발하는 율법의 모든 조항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박아 무효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정죄를 받지 않고 심판에 이르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지금도 여전히 율법을 지켜 행할 것을 말하며, 제사를 말하고 성전을 말하며 절기를 좇는다고 하면 그는 다만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부인하고서 그리스도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을 좇는 일을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참으로 어리석죠.
그럼에도 이미 존재하지 않는 성전을 예배당이 성전이라고 말하며, 이미 존재하지 않는 제사를 예배가 제사라고 말하며, 이미 존재하지 않는 절기를 다른 절기의 이름으로 임의로 만들어 이것을 기독교의 절기라고 말하는 행태를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말입니다. 제사와 성전과 절기가 존재하지 않는 오늘날에서는 구약에서 제사를 지내는 단으로 있었던 제단이라는 말을 여전히 사용하는 것을 전혀 옳지 않습니다. 여전히 구약의 율법 아래 있으면서 성전을 갖고 절기를 따라 짐승을 잡아 피 흘리는 제사를 드리는 죄의 종[노예]된 자들이라면 그 속에서 사니까 제단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살겠지만, 율법의 종된 자에서 자유한 자의 아들로 있는 그리스도인, 곧 그리스도의 교회의 성도라고 하면 구약의 연속과 그때 사용되고 있는 개념에서 제단을 말하여 예배당을 제단이라고 말하거나 또는 예배를 위해서 목사가 설교하는 단상을 제단이라고 말하여서는 옳지 않기 때문에 안 됩니다. 예배당(禮拜堂)은 그저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모임을 갖는 필요에 의해서 사용하고 있는 장소[처소]일 뿐이며, 그래서 그리스도의 교회로 모임을 갖는 곳이기에 교회당(敎會堂)일 뿐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건물과 장소에는 성전이라든지 제단이라는 개념을 전혀 갖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예배당, 또는 교회당에는 성전이라거나 제단이라는 말을 사용하여서는 안 되며, 이는 또한 예배에서 목사가 설교하는 단상[교단이나 강단 따위]을 제단이라고 여기면서 그렇게 말하여서는 안 됩니다.
한편, 성도들이 즐겨 부르는 예배 찬송가에는 ‘주의 주실 화평’(361장)이란 노래가 있는데 3절을 모두 부르는 동안에 그 가사에는 ‘제사’와 ‘제단’이라는 단어를 무려 8번이나 말하여 사용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1. 주의 주실 화평 믿음 얻기 위해 너는 정성껏 기도했나
주의 제단 앞에 모두 바치기 전 복을 받을 줄 생각 마라
주의 제단에 산 제사 드린 후에 주 네 맘을 주장하여
주의 뜻을 따라 그와 동행하면 영생 복락을 누리겠네
2. 주의 밝은 빛에 항상 활동하며 선한 사업을 힘쓰겠나
자유 얻으려면 주의 뜻을 좇아 너의 모든 것 희생하라
주의 제단에 산 제사 드린 후에 주 네 맘을 주장하여
주의 뜻을 따라 그와 동행하면 영생 복락을 누리겠네
3. 주의 제단 앞에 모두 바친 후에 주와 온전히 사귀겠네
주의 주신 기쁨 또한 그의 사랑 어찌 말로 다 형용하랴
주의 제단에 산 제사 드린 후에 주 네 맘을 주장하여
주의 뜻을 따라 그와 동행하면 영생 복락을 누리겠네
앞서 ‘제단’ 또는 ‘제사’란 말을 사용할 때에는 성경에서 그 말이 사용되고 있는 내용에 의해서 이 말들을 설명하거나 이 말들이 이야기되고 있는 데 따라서 사용해야 할 필요에 의해서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이 아니라 찬송가 361장 ‘주의 주실 화평’에서 보는 대로 이 찬송을 부르는 성도들의 인식에 교회(당), 강단(교단)을 제단으로 여기게 하고 있고 예배를 제사로 생각하게 하는 노래말(가사)은 지극히 부적절한 표현이며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도들이 즐겨 부르는 찬송임에도 불구하고, 또 찬송 가사를 통해서 전달하여 의미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불구하고, 제단이라거나 제사라는 말을 아무 것에서나, 그리고 아무 곳에서나, 또한 아무 때에서나 함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아는 분들은 이 찬송을 부르는데 있어서는 의도적으로 주저하게 되며 회피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너무나 친숙하고 입에 익숙해 있는 찬송 가사이기에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흥얼거리며 제단이라는 말과 제사라는 말을 하게 되니, 참으로 죄의 힘이 무섭고 큽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을 잘못되었다고 보지를 않고 성도들이 쉽게 갖는 것은 로마서 12장 1절과 관련해서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여기에서 말씀되고 있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의 산 제사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와 연계해서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이 권면하고 있는 ‘산 제사’는 구약에서의 성전에서 드려졌던 그 제사의 개념에서가 아닙니다. 바울은 여기서 말하고 있는 ‘산 제사’란 말은 이것의 원어의 의미가 ‘희생’을 뜻하는 것으로 문자적으로, 또는 상징적으로 희생 행위나 희생 제물을 말하는 것인데, 바울이 이 말을 쓰는 것은 구약의 희생 제물의 개념을 끌어다가 “(너희도 그 희생 제물처럼)너희 몸을 거룩한 희생 제물로 삼아 바쳐라”는 것에서가 아닌 - 구약의 희생 제물에서의 개념에서 몸을 희생하는 것은 오직 한 분 그리스도에게 적용되는 것임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 “너희 몸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좇아 살아라”는 것에서입니다. 그래서 2절에서는 그에 대한 설명으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하는, 그러니까 “너희는 이 세상 사람들의 행동이나 관습을 본받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며, 이것이 1절에서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의 ‘영적 예배’에서 ‘영적’이란 말은 성경 원어로는 ‘합리적인(또는 논리적인)’을 의미하는 것으로 ‘합당한 예배’, ‘마땅한 예배’, ‘진정한 예배’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원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그들에게 행해짐으로 해서 이 세상 사람들의 행동이나 관심을 본받지 않는 것이기에 그리스도인인 성도들은 마땅히(당연히) 그 권면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우리말 개역성경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도의 존재를 희생 제물의 개념에서 적용하여 ‘산 제사’로 번역하였으며, 또한 이를 ‘영적 예배’에로 연결시켰습니다. 그래서 제사와 예배의 개념을 동일시하게 하는 그릇된 이해를 갖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약의 제사와 신약의 예배는 전혀 다릅니다(성경에 있는 제사와 예배의 차이점에 대하여서 알고자 한면 본 질문과답방에 올려져 있는 364번의 답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말 개역성경을 읽고 말함에 있어서 로마서 12장 1절을 읽은 것을 가지고 이 본문의 내용을 말할 때는 여기에 있는 그대로 ‘산 제사’란 말과 ‘영적 예배’란 말을 할지라도 이것이 어떤 의미에서 이렇게 사용되어서 말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이해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와 예배를 동일시하며, 제사, 제물, 제단, 그리고 이와 관련한 성전과 절기 등의 말을 지금도 여전히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아무런 생각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니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농으로도 말하는 경우도 흔치 않게 있는데, 이런 것조차 무관심적으로 사용되어도 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답변 드린 설명을 통해서 ‘제단’이란 말이 예배 설교에서나 예배 기도에서아무렇지도 않게 사용되어 말해질 수 없는 것임을 잘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교회는 예배 찬송에서 이러한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 찬송을 선별해내어 보다 예배 찬송에 합당한 노래가 불려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며, 혹 찬송에서 그러한 용어가 사용되고 있을지라도 전체적인 가사 내용에서 전하는 성경 말씀과 부합되어 사용하거나 또는 부득이 사용할 경우가 생길지라도 그에 대한 구별과 올바른 이해에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상으로 답글을 마칩니다.
진리의 영께서 함께 하셔서
진리 가운데 거하며
진리와 함께 행하게 하실 것을
주께 구합니다.
첫댓글 이천우 목사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제 해답을 찾은거 같습니다. 마음이 시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