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 이전의 사회는 절대왕정의 여러 모순을 내포하고 있던 시대라는 의미에서 '앙시앙 레짐'(Ancien r gime, 구제도)이라고 부른다. 혁명 이전 프랑스 사회는 세 개의 신분으로 구성된 신분사회였다. 제1신분의 성직자와 제2신분의 귀족이 지배자 층을 구성했다. 전체 인구 약 2300만 중 성직자는 약 12만, 귀족은 약 40만에 불과했으나 그들은 전국의 약 40%의 넓은 토지를 보유한 봉건영주로서 여러 종류의 봉건적 권리를 갖고 있는 이외에도 국왕으로부터의 면세, 연금 기타의 특권을 부여받은 특권신분이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도 이미 이해 대립이 나타나고 있었으며, 고급성직자(사교 수도원장 등)와 하급성직자 또 오래된 봉건영주(지방귀족) 및 궁정귀족과 신(新) 귀족은 생활이나 정서 차원을 넘어 여러 분야에서 견해를 달리하고 있었다.
제3신분은 농민과 부르주아지로 불리는 시민계층으로 이들은 전체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했다. 농민의 대다수는 이미 노예신분으로부터 해방되어 소토지 소유를 인정받고 있었으나 아직도 많은 봉건적 의무를 지고 있던 연유로 생활도 대체로 어려웠고 자영농, 소작농 등으로 분해가 전개되어 이해가 대립되고 있었다. 이에 반해 시민은 18세기 상공업 발전의 혜택으로 많은 부를 축적한 상층 부르주아지는 특권적 지배계층과 결탁해 있었으나, 계몽사상을 수용한 대다수의 중간 부르주아 계층은 경제적 지위에 상응하는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며 구제도의 사회적 모순을 개혁하고자 했다.
제3신분의 대표로 프랑스 혁명의 지도자가 된 것이 바로 이들 중산 시민이었다. 하층시민(소시민)도 적지 않았으나 자본주의 발달이 아직 충분치 않았고 분명한 계급의식도 없어서 오히려 농민과 더불어 반자본주의적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