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의 놀토인데 함께 놀 사람이 없어 산사모에 끼어서 단양 수리봉(1,019m)에 다녀왔다.
수리봉(守理峰)은 소백산맥의 능선에 솟아있는 한 봉우리인데 등산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수리봉의 왼쪽에서는 월악산 영봉이 맹렬한 기세로 솟구치고, 오른편엔 소백산 연화봉이 바라보고 있었다
모진 세월에 씻기운 기암괴석과 그 사이에서 자라고 있는 노송들은 산행의 즐거움을 배가시켜 주었다
(산행코스) 윗점마을-수리봉(1,019m)-신선봉-남봉-황정산-영인봉-원통암-대흥사 <8km, 6시간>
윗점마을
여명이 트기도 전인 아침 6시에 전주를 출발하여 계룡휴게소에서 아침밥을 먹고, 약 4시간을 달린 끝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수리봉 산행의 들머리인 충북 단양군 대강면 윗점마을에서 가파른 경사길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대슬램지대
등산로에서 30여분 오르막을 오르니 암반지대인 대슬램이 나타났다
마치 암벽등반 하듯이 밧줄을 잡고 오르니 암반 끝에는 무수한 세월의 풍파에 시달린 노송 한그루가 반겨 주었다
수리봉 정상(1,019m)
우리나라에는 수리봉이란 이름을 가진 산이 많은데 그 유래는 독수리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그러나 이곳 수리봉(守理峰)은 한자의 뜻으로 볼 때 좀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수리봉은 소백산의 주맥들이 외성처럼 둘러싸고 있어 단양의 명산들을 두루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하지만 무성한 숲에 가려서 조망이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에 아쉬움을 가득 안고 수리봉을 떠났다
위령비
천길 낭떠리지를 떠받치고 있는 암릉 위에는 최근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위령비가 놓여 있었다
황정에서 산이 되어버린 천일이의 명복을 빌면서 위령비를 세운 사람들의 애틋한 마음을 헤아려 보았다
용아릉(龍牙陵)
수리봉 정상을 넘어서자 기암괴봉들이 줄지어 서있는 듯한 바위 능선이 기운차게 뻗어 있었다.
설악산의 용아장릉을 옮겨놓은듯 하여 '수리봉 용아릉'이라 일컬어지는데 기운차면서도 아름다운 산세를 이루고 있었다
신선봉(990m)
용아릉을 건너고도 밧줄에 의지한채 비지땀을 한참 흘려야 신선봉에 다다를 수 있었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신선이 살 만한 절경으로 보였지만 정상에는 널따른 평지가 있어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남봉(南峰)
남봉은 울창한 소나무 숲 속에 자리잡고 있어 봉우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점심 식사를 마친 직후라 목이 매우 탔으나 여기저기에서 내미는 오이와 사과로 갈증을 달랠 수 있었다
코끼리바위(?)
남봉을 내려서자마자 기묘한 형상의 거대한 바위가 길목에 떠억 버티고 서있었다
지도에도 없는 바위지만 우리는 코끼리바위라 명명하고 짝을 지어서 흔적을 남기고 떠나왔다.
황정산(黃庭山, 959m)
황정산은 단양팔경의 그늘에 가려 그동안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산인데 최근에 많은 이들이 찾기 시작하였다
황정(黃庭)이란 옥황상제가 근무하는 광한루의 앞마당이란 뜻으로 하늘의 정원같이 아름다운 산이란 뜻이다
누운 소나무
황정산 산행의 또다른 매력은 기기묘묘한 바위와 잘 생긴 노송과의 은밀한 동거를 바라보는 것이다.
산행 지도에도 나와 있는 누운소나무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멋스럽게 풍겼으며 아래의 조망도 환상적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암릉
황정산은 암릉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이 노송과의 조화가 절묘한 바위산이다.
10여m씩 밧줄을 잡고 하강해야 하는 암릉 구간이 쉼없이 나타나서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영인봉(825m)
영인봉은 오늘 넘어야 할 다섯 개의 봉우리 중 마지막 봉우리다.
숲속에 표지판만 우뚝 서 있어 자칫 지나치기 쉽지만 산행객들에겐 이제 하산한다는 기쁨을 주는 표식이었다
칠성암(七星岩)
가을 가뭄으로 먼지가 풀풀 날리는 급경사를 40여분 내려오니 거대한 바위가 우릴 반겨 주었다
최근 제2단양팔경의 하나로 지정되어 사람들의 발길을 많이 끌어들이는 칠성암이다
마치 부처님의 손바닥 모양을 하고 있어 칠성암이라 부르는데, 사람 소리를 듣고 나온 스님과 기념 쵤영을 하였다
원통암(圓通庵)
칠성암 앞에는 초라한 형색의 암자가 있었는데 젊은 스님 혼자서 지키고 있었다.
원통암은 공민왕 2년(1353) 나옹화상이 창건하여 폐사와 중창이 반복되다가 1997년 화재로 완전 소실되었다.
처음엔 스님이 암자에 빗장을 걸고 등산객의 출입을 막았지만 나중엔 물도 떠다주면서 아주 많은 미야기를 하였다.
암자 뒤 절벽에서 술이 나와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었는데 욕심 많은 고을의 태수가 성질이 급해 구멍을 크게 뚫어버렸다고 한다
그 뒤 샘술은 보통 물로 변해버렸다고 하며, 이에 사람들이 원통한 일이라고 하여 원통암이라 불렀다는 말이 전해온다.
대흥사(大興寺)
산행의 끝자락에 위치한 대흥사는 202칸의 큰 절이었으나 왜병과 의병의 교전 중에 불타버렸다고 한다.
승려가 100여명이었다는 대흥사는 최근에 중창되기 시작하여 상당한 규모를 이루어가고 있었다
하산주
대흥사가 올려다 보이는 주차장에 주저앉아 오뎅탕에 밥말아서 시원한 맥주를 연거푸 들이켰다.
오후 6시에 대흥사를 출발하여 저녁 11시가 다 되어 전주에 도착하였지만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간 기쁨이 있었다
첫댓글 우리 백작 총무님 좋은 추억 많이 남기세요.
좋은 곳에 다녀오셨군요 그리 멀지 않은 곳이지만 충주쪽에 좋은 산들이 참 많답니다...
바다코끼리가 산에 올랐다가 바위가 되었지요.충주쪽 산들은 조심해서 다녀야합니다.잘못하면 산이 되어버리니 ..
예~ 아찔한 코스가 한두 군데가 아니었어요
놀토 뜻있게 보냈군요. 기회가 되면 가보고 싶군요.
좋은 글.. 행복한 풍경... 가슴가득 담아갑니다... 보는것만으로도 일상의 피로가 화아악 뻥 날아가네요.
잉~여기도 하산주가~~끝내주는군요...담에 나도 한번 따라갈볼까???
버스 기사가 하산주 안주로 찌개를 끓여놓으니 얼마나 좋은지...우리도 고려해봐야겠어요
하산주 땀을 흘리고 먹는맛 좋죠
항상 건강한 모습으로 이산 저산에 발자국 남기시는 백작 오라버니!!! 담엔 또 어느산이 지둘리고 있을까요????
글쎄요...? 산이 부르면 언제나 달려갈 준비가 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