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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일’ 동안 총 ‘453시간 45분!’ 생방송 대기록
사실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우리가 평소에 보는 프로그램처럼 정해진 시간에 일정 분량을 방영하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첫 주에는 8.시간‧12시간씩 매일 방송 했고, 보름 후부터는 매주 금‧토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하여 16시간‧19시간씩 자정을 넘기면서 방송을 이어갔다. 추석에는 연속 5일간 특집으로 방송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138일간 총 453시간 45분이라는 기록이 생긴 것이다. 시간으로 따지면 1회 1시간 분량의 454부작 대작 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분량은 과거 KBS드라마 태조왕건(200회)과 용의 눈물(159회), 불멸의 이순신(104회) 세 편을 이어 방영한 것과 맞먹는다. Telethon(텔레비전+마라톤)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방송 신청 ‘100,952건’, 최고 시청률 ‘78%’
당시 한국갤럽조사연구소가 1,45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생방송은 최고 78%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국민 4명 중 3명은 방송을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6월 30일에 시작해 7월 12일에 마감한 방송 신청은 100,952건을 기록했다. 10만건이 넘는 가족 찾기 벽보가 KBS 본관과 앞마당, 여의도 공원 일대를 뒤덮은 광경은 그만큼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보여준다.
당시 남한 국민 4천만 명 중 1천만 명이 이산가족으로 추산될 정도였으며, 이는 4명 중 1명꼴로 한국전쟁의 비극을 경험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또한 나의 평범한 이웃이 직접 TV에 나와 가족을 찾고 울부짖는 모습은,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세대까지 함께 공감하며 이산가족의 아픔과 상봉에 동참하게 만들었다.
방송 3일째부터는 학생·주부·일반 시민을 주축으로 한글을 잘 모르는 어르신들을 위한 신청서 대필, 안내나 의료 자원봉사가 줄을 이었다. 방송분을 다시보기 할 수 있는 컬러 TV, 이산가족을 위한 철도/버스 무임승차권, 공중전화, 생수와 빵 등을 기탁하는 기업체도 줄을 이었다.
각 기업체의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에게는 특별 휴가가 부여되기도 했다. 정부 또한 북한에 1천만 이산가족문제 해결을 위해 남북적십자사 회담을 재개할 것을 촉구하고, 만남의 광장을 설립해 남한 내 이산가족 상봉을 지원했다. 한편 미국 ABC 나이트라인의 이산가족 상봉 생중계를 비롯해 25개국의 기자들이 KBS 본관에 상주하며 상봉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등 한국을 넘어 해외에서도 이산가족 찾기를 주목하고 응원했다.
가슴으로 함께한 순간, 상봉률 ‘19.2%’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방송을 통해 53,536건의 사연이 소개되고 그중 10,189건의 가족이 상봉했다. 이 수치는 26년 후에 성사된 2009년 ‘남북이산가족’의 상봉률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이다. 특히 그 전에 라디오나 신문, 치안본부의 컴퓨터 조회를 통한 가족 찾기 시도가 2%대의 성공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대단한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남한에 살면서도 소식을 몰랐던 혈육과의 만남은 그렇게도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이산가족 중에서는 가족과 헤어질 당시 너무 어려, 가족의 얼굴과 이름도 모르거나 입양이 되면서 자신의 원래 이름도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방송에서는 화면으로 이마의 흉터 자국을 보고 함께 불렀던 노래를 들으면서 내 누이, 내 오빠임을 알아볼 수가 있었다! 1980년대 들어 보급된 컬러 TV의 생생한 화면 덕분이었다. 위성을 이용한 지역 간 이원중계 도입은 미국에 입양된 딸과 한국의 어머니도 TV를 통해 얼굴을 마주 볼 수 있게 해주었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경찰청 DB를 연결한 컴퓨터 조회는 과학적인 예측을 통해 상봉률을 견인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글‧이민지(KBS 아카이브 관리부) 일러스트‧이근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