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 닭발
- 최희철
냉장고에 닭발 한 상자, 삼계(蔘鷄) 닭발이다.
공짜로 갖다 주거나, 겨우 개밥으로 취급될 뿐
주인이 없다.
누군가 삼계를 납품하고
짝이 맞지 않아 남겨진 것이리라.
姜사장도 자기 것이 아니라 한다.
며칠동안 서로 무관심했었는데
그게 삼계 닭발치곤 크기가 좀 크다는 게
언뜻 마음에 남았다.
나중에 보니 크기도 크기지만
껍질이 깨끗하게 벗겨져 있고
그것의 통통함이 뭉클
내게 욕망 한 사발 생기게 했다.
한 상자, 8000원에 팔아먹을 욕망.
거래처에 선심 쓰는 척
온전한 닭발과 함께 넣으며
5000원만 받아도 순전히 남는 장사라는 계산.
기대효과가 교환가치를 발생시킨 것이다.
나는 슬쩍 다른 닭 상자로 덮어
내 구역으로 밀어 놓는다.
효용가치는 인간의 욕망과 관련된 것 같습니다. 실제로도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처음에 그 효용가치로 하여 내 것 혹은 내가 된 것들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알게 된 것, 내가 가지게 된 것 모두가 꼭 돈으로 환산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효용가치에 대한 기대에서 취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효용가치를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효용가치가 효용에서만 끝나지 않고, 기대효과를 낳으며 교환가치로 변할 때는 사정이 달라지는 듯 합니다. 왜냐하면 그때부터 인간의 사회적 욕심이 겉잡을 수 없는 무엇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전까지는 "姜사장도 자기 것이 아니라 한다/ 며칠동안 서로 무관심"한 거치적거리는 무엇일 뿐이던 것이 다른 의미존재로 비로소 "내 구역으로"의 소유 대상이 되기 때입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싫든 좋든 '자연을 원자재로, 인간을 노동력으로' 상품화시키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별로 새삼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위 시는 그런 문제를 원칙적인 입장에서 다루는 것도 아닙니다. 이 시에서 문제삼는 것은, 정상적인 상품으로의 닭발에 못 미치는 삼계 닭발이 슬며시 상품이 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 '모든 것'을 상품화시켜 버릴 수 있는 자본주의적 관계의 필연적 타락입니다. 그 타락에는 상품에 대한 최소한의(혹 어떠한) 사회적 약속도 깨버리는 욕심이 작용합니다. "삼계 닭발치곤 크기가 좀 크다"에 끌리더니 "크기도 크기지만/ 껍질이 깨끗하게 벗겨져" 있는 상태가 눈에 띄고, 드디어 욕심이 자라 "선심 쓰는 척/ 온전한 닭발과 함께 넣으며/ 5000원만 받아도 순전히 남는 장사라는 계산"이 성립됩니다. 그 순간 우리가 필요악이라고 부르며 받아들였던 '자연을 원자재로, 인간을 노동력으로' 상품화시키는 자본주의는 결국 '모든 것'을 상품화시키는 철면피한 자본주의로 변화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상품화한다는 것은 돌아와 자기 자신조차 상품화되는 자기 파괴입니다. "나는 슬쩍 다른 닭 상자로 덮어/ 내 구역으로 밀어 놓는다"는 자기 행위를 의식한 시인이 스스로에게 가졌을 쓸쓸함을 생각해 보십시오(물론 그것을 뿌듯한 마음으로 했을 거라고 추측한다면 저는 유구무언입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자연을 원자재로, 인간을 노동력으로' 상품화시키는 것에서부터 반대합니다. 왜냐하면 이것과 '모든 것'을 상품화시키는 것은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질적인 차이가 아니므로 필연적으로 '모든 것'의 상품화로 진행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실제로 우리 사회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상품화가 일어나고 있다. 동회에 가도 이제는 우리를 '고객'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자연은 자연이고 인간은 인간일 뿐이지 결코 상품이 아닙니다.
- 글/ 오철수 시인
첫댓글 이렇듯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우리가 지금껏 그렇게 길들여져 생활해 왔기 때문에 작자의 감정도 그렇게 진행이 되었을 거예요.. 또한 한국 상인들의 끼워팔기 작전은 대외적으로도 유명한 좋지못한 관례이기도 하죠..작자의 진솔한 감정이 마음에 들었구요 누구라도 그 상황에 있다면 그렇게 할 거예요..프로의 세계에 있으니요 .. 그런 세계에 저도 물들어 있어 그런지는 몰라도 오래 물들여진 관습같은 모순을 힘 없는 소시민이기에 관망 할 수, 물들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마음 아프지만요 ..개인적으로 저도 닭발을 무지 좋아 하는데요... 와~닭발이란 말에 군침 한 번 삼킵니다... 비 오는 날에는 제격인데..^*^
이 시가 어떤 의미체계로 쓰여 졌을지 좀 알 것 같습니다.^^ 한창 바퀴벌레에 히스테리를 일으켰던 때 바퀴벌레 박멸화에 고민하다 무릎을 친 적이 있었어요. 바퀴벌레가 정력에 좋다는 소문이 매스컴을 통해 나돈다면 징그러운 바퀴벌레와 그 종족의 씨가 마르지 않을까 하는..
그러면 먹는 것은 남자가 먹고, 잡아다가 요리하는 것은 여자가 하고?...ㅋㅋㅋ
슬쩍 덮어 놓았을 뿐 돈 받고 팔진 않았습니다. 닭 많이 파는 거래처에 그냥 주었습니다. 거래처에서 큰 것은 골라 팔고, 작은 것은 육수용으로 넘겼을 겁니다. 장사가 쪼그라들면서 내 생각의 폭도 쪼그라들고, 실제 삶의 영역 또한 쪼그라드는 것 같습니다. 장사치라는 게 좀 그렇더라고요, 눈치도 빨라야하고, 나는 그런 면에서 훌륭한 장사치는 아니지만, 이 글을 적을 때 조금은 자랑(?)스러웠지요, 어쨌든 내가 가진 욕망을 잘 드러내 보였으니까요, 그리고 뻔뻔스러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읽어 보면 선생님의 말씀대로 씁쓸합니다. 지금은 그 씁쓸함의 안개가 잔뜩 세상을 덮었습니다. 뿌리도, 가지도, 꽃도 모두..
내가 바뀌었는지, 글의 행간이 가지고 있는 밀도가 바뀌었는지...욕망이 부족함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자 함’에서 발생한다면 이 글에서 말하는 욕망도 아주 사소하고, 우습긴 하지만 ‘하고자 함’이라 생각합니다. 그 ‘하고자 함’을 잘 키워내야겠죠. 나는 그런 면에서 ‘하고자 함’이 제법 강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소하고, 우스운 욕망에서부터 거대하고, 옹골찬 욕망까지 우린 살아가면서 많이 만나게, 아니 생산하게 될 겁니다. 그때마다 우리의 힘을 그것에 잔뜩 실어 주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삶을 긍정하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고요
제발 나 같은 빈대떡은 우습고, 사소한 욕망만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튼튼하고, 좋은 욕망들은 모두 여러분들이 가져가십시오. 하여, 부정적이고, 경직된 지층의 문턱을 넘어 새로운 희망을 보여 주십시오. 나는 열심히 따라 갈게요.
희철님의 서정은 참 특별해요. 여러번 읽으며 부러워 합니다. 예전에 닭발에 대해서 장근님이 시로 썼던가요? 아주 매운 닭발이 먹고싶어지는 저녁.
어떤 욕망이든 그 근본은 같겠지요.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욕망을 일으키며 살아가게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참되게 생성시킬 수 있는 욕망으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욕망도 잘 다스리면 생의 긍정적 힘으로 만들 수 있겠지요. 닭은 참 모든 부위를 온전하게 내어주는 것 같습니다. 목, 날개, 다리, 똥집, 닭발... 슬리퍼 끌고나가 포자마차에 가서 이런 닭처럼 자신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친구와 닭발을 먹으면 참 맛나겠습니다.^^
희철님의 시를 몇편밖에 볼 수 없었는데 매 편마다 강하게 각인되어 오는 이유는 뭘까요? 도계장에서,잡어,어떤개 그리고 삼계닭발..한참전에 항문에 대하여 란 시도 봤었구요. 소재의 독특함과 진정한 체험이라고 생각하는데 알고 보면 그 독특한 소재란 것도 시인의 체험에서 진하게 우러나왔기 때문에 바다나 닭이 상투성이나 바다일반,닭일반으로 추락하지 않은 이유일겁니다. 이곳 아모르파티에서 확실한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 나가고 계셔서 자주는 안 나오시지만 기대가 됩니다 ^^
나도 그래요. 강철같이 단단한 느낌이예요. 삶에서 우러나오는 철학이 시에 녹아있어요^^
고럼...그렇게 집요한 구석이 있어야쥐^^ 그래야 아모르파티스트지^^
희철님의, 그 동안의 시를 보아오면서 아,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희철님만의 영역이다! 그 영역을 존중하고 이해하도록만 노력하자! 대단한 개성이다!..라는 생각이었는데요...위 시의, 쓸쓸함으로 결론 되는 일반적인 욕망에 안심(?)했어요. 역시 색이 분명한 희철님~ 짱!!^^*
이시는 다래언니가 보면 단박에 말할수 있을것 같아요.현실속에서 살아가야하지만 긍정적이고 본성적인 욕망을 꽃피도록 하는 길을 위해 소유적이익과 아상의 집착을 희미해지도록 하는 길밖에 없는것 같아요 희철님의 시는 어떤 남성적인 힘이 느껴져요.
동감^^
브로크리가 색깔이 변해서 10짝을 버리게 되었어요.먹을 수는 있고 돈 받고 팔 수 없는 상태가 된거죠.단골할머니께 드리면서 다듬어서 팔아가지시라고 했습니다.이렇듯 장사란 늘 뒤를 보고 하기에 소비자가 생각하듯 악날하지는 못 하답니다.장사꾼 만큼 양심적인 사람 없다고 우린 스스로 장담 한답니다.희철님의 맘을 백번 공감합니다.
저는 많이 다르게 읽었는데..ㅜ.ㅜ.. 하지만 해석이 여러갈래로 나오면서도 감동이 있다면... 좋은시가 분명하겠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