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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겨진 이야기 스크랩 문학 제로섬(Zero Sum)
노란장미 추천 0 조회 55 06.10.15 17:0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제로 섬 (Zero Sum)

                                                           


 경영학 용어에 제로섬 게임이란 말이 있다. 시장에서 이득을 취한 측이 있으면 반드시 손해를 보는 측이 발생하는데 「그 시장에 유통되는 재화(財貨)의 총화(總和)는 제로(zero)」라는 것이다. 이것이 그 이론이며 자신의 비지니스를 성공적으로 이룩하기 위해서  상대편 비지니스의 재화손실 까지도 예측하여 경영적 대책[윈윈(win win)전략]을 미리 강구해야 한다는 천재 수학자 존 내쉬(Jonh Nash)의  학설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물리학에서는 이 이론과 맥을 같이 하는 키르호프(Kirchoff)의 법칙이란 것이 있으니 그에 의하면 「전기적 회로망에서 한 지점(node)에 유입되고 유출되는 전류의 총화는 제로(zero)이다」라는 이론이 있다.

 인생살이에서도 이들 이론과 다를 바가 없음을 알 수가 있다. 「인간 상호간의 관계를 인간 네트워크라고 한다면 자연인을 인간 네트워크의 한 매듭(node)이라고 볼 때 이 매듭(인간)에 유입되고 유출되는 모든 기운(氣運)의 총화는 제로」인 것이다. 또한 이 매듭에서 나가는 기운이 행복하고 온화한 기운이면 들어오는 기운도 역시 행복하고 온화한 것이어서 그 몸(매듭)이 행복하고 온화해 지는 것이다.


 몸에서 나가는 기운이 선한 것이 아니라면 그 몸은 어떻게 될까?

 재직 시절 존경하는 상사가 있었다. 업무수행에 있어 매우 엄격하여 부하직원들이 그분 밑에서 전전긍긍 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 누구도 감히 잘못을 저지르려 하지 않았으나 행여 업무상 과실이 있어 그분의  리스트에 오르기만 하면 살아남는 직원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그분의 마음은 얼마나 아픈 상처[업(業)]를 쌓았을까? 그 매듭(node)에 나쁜 기운을 흘리어 보내고 또 받아서인지 환갑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이별하였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고향 선장에 쓰레기 매립장(埋立場)이 들어서도록 관할 시청으로 부터 결정이  났었다. 마을의 환경조건이 최악의 상태로 되려 할 때 몸과 마음과 돈을 드리어 이러한 시청의 시도를 저지(沮止)하여 고향마을 사람들에게 쾌적한 삶을 돼 찾아 준 한 선배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때에 내가 향우회장을 맡고 있었던 터라  많은 날들을 발품을 팔아 고향을 오가며 도와 준 기억이 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그 일을 하는데 항상 좋은 일만 있었겠는가? 매립장이 유치되면 인근 주민 중에는 토지와 환경피해에 대한 일련(一連)의 보상을 기대했던 사람들도 일부는 있었다. 그런 생각을 가진 몇몇이 고향을 살리려는 우리의 노력에 훼방(毁謗)을 부리곤 했었다. 꽃밭을 아름답게 가꾸려면 때로는 잡초를 제거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일을 하는 과정에서 시기질투 하는  이들로 부터 선배가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상처를 받았겠는가.

 세월이 흘러서 힘겨웠던 지난 일을 생각하며 그간에 받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주길 바라지만 과연 그들이 이분의 심신을 정화시켜 주고 실추된 명예를 회복 시켜 줄 수 있을까?  좋은 사회를 이룩하고자 열심히 땀 흘려 노력 하였거늘  이분에게 돌아 온 것이 무엇이었던가!

 정신적 고통과 신체적 괴로움만 얻었을 것이다.

 세상 현실 참여를 꺼려했던 노장사상가(老壯思想家)들이 현세에 공헌하고 백성에 봉사하려는 공맹사상가(孔孟思想家)들을 빗대어 우습게 보았던 이유도 이런 곳에서 찾아 볼 수 있음직 하다.


 인간 네트워크속의 매듭(몸)에서 선(善)한 정기(精氣)가 흘러 나가면 반드시 선한 정기가 흘러 들어오게 되어있다.

 성직자(聖職者)의 표정을 보라. 이들은 항상 아름다운 마음과 선한 정기를 그의 신도들에게 흘리어 보내고 있다. 얼마나 맑고 깨끗하고 평화로운 모습인가.

 매듭(몸)에 흐르는 정기의 합이 제로일지라도 그 점(node)에 나타나는 빛의 색깔은 보라색 일 수도 있고 분홍색 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세파에 찌들어 멍든 보라색 보다는 차라리 세상을 모르는 가녀린 분홍색을 더 좋아 한다. 성직자들의 모습에서 이런 분홍색을 찾아 볼 수가 있다.


 우리는 잡다한 모임을 갖고 살아간다. 그중에 가슴 설레며 기다려지는 모임은 아마도 초등학교 동창 모임일 것이다. 그곳에는 어린 시절 함께 병정놀이 하던 친구도 있을 터이고 철부지 시절 짝사랑 하던 소녀도 있을 터이니 말이다.

  이제 예순 중간 허리를 넘는 우리는 한 결 같이 축복 받은 행운아 들이다. 인생의 육십은 제이의 인생을 시작하는 출발점이라지 않는가.

 이 모임에서는 얼굴 붉힐 일이 없다. 누구라도 얼굴 붉힐 일 있으면 곧 후회하게 될 것을 알기 때문에 어리석은 짓을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분홍빛 선한 기운(氣運)만을 보내는 모습들이다. 우리 모두는 제로섬 이론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일까!

 우리 이웃 사이에서도 서로 양보하고 돕는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정다운 이웃이 될 수 있을까. 서로에게 좋은 기운을 내어 보내어 온화하고 평안한 기운이 점점 확산되면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이 이룩되지는 않을까!

 근세(近世)에 이름 있는 한 노승이 있었으니 제자들이 그에게 인생이란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다. 세상을 하직하며 대답하는 말이 「인생은 무(無)」이니라 하더란다. 지금 말로 하면 「인생은 제로섬(zero sum)」이니라 이었을 것이다.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고 했던가? 세상만사는 있으면서도 없는 것이고 없으면서도 있는 것 이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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