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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신료 고향 … 동남아 맛 종합세트 |
문득 어딘가 멀리 떠나고 싶은 것처럼, 새로운 것을 먹고 싶다는 욕구 또한 불현듯 찾아온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불안감을 주기는 하지만 마음을 설레게 한다. 음식에 대한 탐험도 그러하다. 이국적인 정취에 취하듯 이국적인 맛을 음미하는 것도 일상에 안주하고 있는 미각을 일깨우기에 충분하다. 겨울철, 환상적인 섬 발리에 머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도 없을 듯하다. 서울 이태원동 인도네시아 음식 전문 식당 ‘발리’로 떠나는 맛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한다.
인도네시아는 향신료의 고향이다. 고대부터 동서양의 미각을 사로잡았던 정향과 육두구가 나는 몰루카제도가 그곳에 있다. 생강과 강황의 원산지이기도 하다. 예전에 황금보다도 비싼 그 향신료들은 지상의 맛이 아니라 천상의 맛이었을 것이다. 스파이스 루트를 타고 기나긴 항해 끝에 아라비아반도에 도착한 향신료들은 낙타 등에 실려 유럽인들에게 이국적인 풍미를 전해주었다. 15세기 유럽인들이 인도로의 직항로를 발견하려 했던 이유는 향신료 때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물론 궁극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서였지만, 그 뒤에는 이국적인 맛에 대한 본능적 욕구가 꿈틀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발리’에 들어서면, 잔잔히 흐르는 인도네시아 음악이 색다른 풍경으로 이끌어준다. 넓은 테라스 창 너머로 보이는 이태원의 뒷골목 정경 또한 이국적 분위기를 돋우기에 부족하지 않다. 식탁에 앉아 차림표를 펼치고 낯선 음식 이름들을 읽어 내려가면서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은 시작된다.
입맛을 열어주기 위해 나온 ‘룸피아 고렝과 빵싯 고렝’이라 불리는 인도네시아 스프링롤과 튀김만두는 그리 낯설지 않다. 이미 알고 있는 춘권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아마도 인도네시아 음식이 인도, 중국, 동남아시아 음식들을 두루 아우르기 때문일 것이다. 각각 야채와 닭고기를 주 재료로 한 소를 넣은 튀김만두는 느끼하지 않고 깔끔해 입맛을 돋우기에 알맞다. 다음 전채요리로 나온, 어단·닭고기·새우·야채 등을 해산물 육수에 볶아낸 ‘짭 짜이’ 역시 아직은 인도네시아 음식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사떼 아얌’은 땅콩 소스와 곁들여 먹는 닭고기 꼬치구이다. 한국의 고기산적과도 같은 ‘사떼’는 닭고기와 양고기·쇠고기 중 한 가지를 선택해 알맞은 크기로 꼬치에 꿰어 구운 뒤, 땅콩과 팜유·라자와당·정향·라임 등을 넣어 만든 소스와 곁들여 먹는 대표적인 인도네시아 음식이다. 소스에 들어간 다양한 향신료와 양념만큼이나 맛이 다채롭다. 땅콩 소스와 어우러진 구운 고기를 씹는 맛이 부드럽고 고소하다. 은은하게 입안에 감도는 이국적인 맛이 지금까지 베일에 싸여 있던 남국의 자태를 살포시 드러나게 한다.
인도네시아 음식은 돼지고기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이는 회교도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볶고 튀기는 음식이 대부분인 이유는 더운 날씨와 냉장 시설 부족에 기인한다고 한다. 음식이란 이렇듯 그 음식이 태어난 자연환경과 문화를 벗어날 수 없고, 그렇기에 독특한 식문화가 형성되는 것이다. ‘나시 고렝’은 볶음밥으로, 가장 보편적이고 대표적인 음식이다. 닭고기 또는 해산물, 야채 등을 넣은 철판볶음밥이라고 할까. 중국식 볶음밥과 비슷해 보이지만 그보다 덜 느끼하고, 강하지 않은 특유의 향이 느껴진다. 매콤한 고추 맛이 너무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뒷맛을 개운하게 한다. 나시 고렝에는 새우 페이스트가 반드시 들어가야 제 맛을 낸다고 한다. 국수와 해산물을 같이 볶아내는 ‘미 고렝 시푸드’ 역시 매력적이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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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과일 소스로 만든 매콤달콤한 대하 볶음요리인 ‘우당 빠당’에 이르면, 지금까지 은근히 드러내던 자태가 확연히 드러난다. 진한 듯하면서도 다양한 맛을 선보이는 소스와 함께 왕새우를 먹으면 여행은 절정에 이른다. 마침내 그곳에서 향신료의 세계가 다채롭게 열린다. 하지만 인도나 태국 음식에서와 같은 강한 느낌이 아니다. 병어를 통째로 튀겨 열대과일 소스로 만든 ‘바왈 고렝’에서도 그렇다. 어쩌면 향신료의 고향 인도네시아에서는 고향집처럼 푸근하고 따뜻하도록 향과 맛을 느끼게 하는 모양이다. 열대과일과 코코넛 밀크 등을 사용한 디저트와 음료들은 그곳을 떠나는 여행객에게 아름다운 추억과 아쉬움을 남겨준다.
‘발리’를 운영하는 주인은 인도네시아어를 전공하고 2년여 동안 인도네시아를 배낭여행하면서 그곳의 문화와 음식에 푹 빠졌다고 한다. 가능한 한 인도네시아 음식 고유의 맛을 전하려는 그의 열정은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넓은 땅덩어리만큼이나 다양한 문화와 음식을 갖춘 인도네시아를 소개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때로는 자부심을 갖고 전통적인 맛을 한껏 살려낸 음식이 이방인들에게는 낯설기만 한 것이 아쉬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타자’와 ‘차이’에 대한 이해와 포용이 넓어질수록 다른 음식에 대한 우리의 미각은 한없이 열려갈 것이다.
● 울 이태원동 ‘발리’
-위치: 이태원역 1번 출구로 나와 KFC 옆 골목으로 들어가 왼쪽으로 돈 뒤 100m 정도 직진. -연락처: 02-749-5271 -추천 메뉴: 사떼 아얌(8000원), 나시 고렝(8000원), 미 고렝 시푸드(1만3000원), 바왈 고렝(2만3000원), 코스 요리(2인 기준, 6만원부터) -영업시간: 11:30~22:00 -휴무: 매주 월요일, 지정 주차장 이용, 신용카드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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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jparis@hanmail.net |
발행일 : 2005 년 03 월 01 일 (474 호) |
쪽수 : 86 ~ 87 쪽 |
주간동아 / 474호(2005.3.1.) / http://weekly.donga.com/ /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