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편단심 민들레네요
명의왕후 유씨 단 한명하고만 사이에 7남 4녀 출산 (후덜덜...--;;)
글구...고려왕실 가계도를 살펴보니...유독 이 시기에
사뭇 이채로운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문종 (순종,선종,헌종 생략) - 숙종-예종-인종으로 이어지는
이 핏줄이...
이것도 무슨 유전인지...유독 일편단심 민들레형 가계도(?)를 보여주고 있네요
우선 문종의 경우엔 물론 다른 왕비와 사이에서도 아들 셋을 더 낳긴 했지만
인예왕후 이씨와의 사이에서만 무려 10남 2녀 출산 (이중 순종,선종,숙종 즉위)
숙종의 경우 명의왕후 유씨와의 사이에셔 7남 4녀 출산
예종도 순덕왕후 이씨와의 사이에서만 1남 2녀 출산
인종은 공예왕후 임씨와의 사이에서 5남 4녀 출산
물론 예종,인종 시기는 이자겸이 외척으로 발호하던 특수한 시기임도
감안해야겠지만
공교롭게도 정작 예종은 이자겸의 딸하고 사이에서만 1남2녀를 낳았는데
인종은 이자겸의 난으로 이모뻘인 첫번째,두번째 왕비는 모두 폐위되고
그 뒤에 들어온 공예왕후 임씨하고 사이에서만 5남 4녀를 낳은 셈이네요
글구...고려시대엔 일부일처제였다는 주장들이 언제부터인가 계속 나오던데
근거가 있는건가요 ? 솔직히 좀 납득이 안 가는게
가령 기왕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이자겸의 경우만 해도 자손이 최소한 7남 4녀입니다.
그리고 그 할아버지 이자연도 4남3녀고...
헌데 이 모두가 과연 한명의 여성에게서만 나온 자손이라고 볼수 있을지
그 정도 권세를 가진 인물들이 과연 다른 부인을 두지 않았을까요 ?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보시는지
또 한가지...명의왕후 유씨가...숙종이 즉위하고도 4년이 지나서야 왕비로
책봉될수 있었던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걸까요 ?
숙종도 세조처럼 어린조카 밀어내고 왕위에 오른 특수한 상황을 감안해야하긴 하지만
딱히 특별한 이유없이 4년씩이나 왕비 책봉이 미뤄진건...
좀 납득이 안 가네요
첫댓글 고려는 일부일처가 맞습니다. 일부일처를 일부다처로 하자는 사람을 아줌마들이 길거리에서 손가락질 했기 때문입니다. -역시 대단한 아주머니- 다만 위의경우는 조선의 서자 얼자를 그대로 자식으로 넣은 것으로 보면 됩니다. 고려도 후궁출신 국왕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그들이 왕이 되면 어머니를 왕비로 추증했기 때문에 조선에 비해 고려시대 왕들은 왕비가 많습니다
고려 조선 둘 다 일부일처였으나 조선은 엄격했고 고려는 덜 엄격했습니다. 적서차별도 마찬가지고요. 그럼 좋은것 같겠지만... 대신 조선은 여인을 남편이 함부로 내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서얼들에게도 출사의 제약은 가해졌으나 재산 상속 같이 일정부분 권리는 획득했습니다. 고려는 아빠가 나 저 자식 몰라 하면 그 뿐이었습니다. 다 일장일단
일부 일처가 맞지만 권세가의 경우 첩을 두는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고 보면 될 겁니다.
그리고 인종의 경우 이자겸이 죽이려고 들었을때 이자겸의 딸인 황후가 막아줬는데, 결국 이자겸 죽고나니 황후들 다 폐위.....ㅎㅎ 아이러니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