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섬
섬은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서 육지에서만 살았던 사람의 눈에는 고립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섬사람의 눈에 바다는 세상 모든 방향으로 열린 길이다. 이렇게 개방된 바다에 놓인 섬이 고립되고 갇히는 가장 큰 이유는 국가가 임의로 정하는 국경 때문이다. 국경은 대부분 강이나 바다를 경계로 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육지나 큰 반도, 혹은 큰 섬들이 있다. 그 곁에 놓여 주민들이 자유롭게 살아가던 섬들은 그 큰 땅덩어리들에 ‘부속토지’로 규정되어 변경의 섬이 되고 근처에 국경이 둘러쳐져 바닷길은 막히고 오로지 국가가 정한 중심부인 육지나 본토에 의존하고 기생하며 연명하도록 강요당한다.
국가가 한 섬의 운명을 어떻게 망치는지는 인도네시아의 Aceh의 경우를 통해서 잘 kf 수 있다. Aceh는 한 때 말래카 해협의 맹주였다. 그 위치가 수마트라 섬의 서북쪽 끝에 위치해서 오늘날 싱가포르처럼 인도양에서 중국해로 넘어오는 모든 선박들의 중요한 기항지였다. 그러나 Aceh가 인도네시아에 합병되고 나서 Aceh는 인도네시아 서북쪽 국경의 막다른 항구로 전락하자 그 국제적인 교통과 교역의 길은 끊기고 한낱 고립된 변경의 섬이 되어 쇠락해버렸다. 비슷한 대칭점인 말래카 반도 남단에 놓인 싱가포르는 섬의 개방성을 한껏 이용하여 세계 교역의 중심위치에 놓인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런 예를 들은 이유는 바로 가까이 놓여있는 우리나라와 일본·중국의 Aceh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바로 제주와 오키나와와 타이완이다.
제주와 오키나와는 각각 우리나라와 일본에 부속된 변방의 섬이요, 국경의 섬들이다. 이런 섬들의 주민들은 스스로 주변부 의식을 갖고 중앙으로 여겨지는 육지나 본섬을 바라보며 그들에 의존하여 살아가게 된다. 젊은이들은 중앙으로 진출해서 출세하고 싶어 하고 주민들은 빠져나간다. 기껏해야 찾아오는 사람들은 잠시잠깐 놀러오는 관광객들뿐이요 그나마 장기적으로 머무르려는 사람들은 휴식과 안식을 위해 찾아오는 병자들과 노인들뿐이다. 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노동인구는 더 빨리 감소한다. 자유롭고 개방적이었던 섬이 중앙정부에 부속되어 주변부로 규정되면서 나타나는 쇠락이다. 그 한 예로 일본의 가장 서쪽 끝에 있는 요나구니시마(興邦國島)를 들어보자. 이 섬은 일본 땅 오키나와 섬에서 520km가 떨어져있고 타이완으로부터는 불과 110km밖에 떨어져있지 않다. 가장 가까운 일본 섬인 이시가끼시마에서도 117km나 떨어진 것을 보면 이 섬은 오히려 이웃나라 타이완에 더 가까운 일본의 국경섬인 셈이다. 타이완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1940년대 후반만 해도 이 섬의 인구는 1만2000내지 1만7000명으로 번성했었다. 그러나 1945년 8월 일본이 패전을 하게 되어 오키나와가 미군정기로 들어가게 되었고 타이완은 같은 해 10월 장개석 정권이 지배하게 되자 타이완과 요나구니시마 사이에 국경선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국경감시나 통제가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요나구니시마는 밀무역의 거점이 되었고 오키나와, 타이완, 홍콩, 일본 등지에서 상인들이 모여들어 술집과 포장마차, 노점들이 번성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1950년 한국동란이 일어나자 미군은 오키나와의 미군기지로부터 군수물자 등이 요나구니시마를 통해 중국으로 밀매될 것을 염려하여 국경 감시를 엄격히 하게 되었고 요나구니시마는 더 이상 타이완과 중국대륙으로 가는 길이 막히게 되자 현재는 인구 1600명의 작은 마을로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 규모에 있어 차이가 있지만 제주와 오키나와도 요나구니시마와 같은 쇠락의 섬들이다.
제주도는 고려의 식민지가 되기 전까지 한반도뿐 아니라 중국대륙과 일본의 여러 섬들과 교역을 하는 개방된 섬이었고 오키나와도 19세기 일본에 합병되기 전만해도 중국과 일본, 조선과 무역을 하는 자유로운 섬나라였다. 이 번영했던 자유롭고 독립적인 섬들이 주변 강대국들에 의해 식민지가 되고 그 변방의 위치 때문에 국경의 섬이 되어 막장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 두 섬은 모두 주국으로부터 배신당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제주도는 고려가 원나라와의 싸움에 패하자 그 전쟁의 책임과 배상과 관련하여 원의 식민지로 공여되었고 오키나와는 일본이 미국에 전쟁을 일으켜 패배하여 미국이 군사기지 자리를 요구하자 오키나와를 미국에 넘겨준 것이다. 지금도 제주에는 원나라의 식민지 시절 이주한 말들의 후손들이 한라산 고원을 달리고 있고 오키나와에는 미군의 육중한 군용기들이 도심 한복판을 오르내리고 있다.
제주도와 오키나와의 산업은 가히 기생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자체로는 농수산물과 같은 1차 산업 이외의 생산기반이 거의 없고 오직 육지와 본섬 또 이웃나라 중국의 관광객들이 놀고 먹고 다니며 흘리는 돈을 주워서 먹고사는 관광산업이 전부다. 놀러오는 사람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고 그것도 항상 부족해서 중앙정부에 굽실거리며 보조금을 타내야만 연명할 수 있는 의존적인 산업구조다. 예전 같으면 없으면 없는 대로 살 수도 있었는데 이미 중앙정부가 들여놓은 돈맛에 인이 배겨서 끝없이 돈에 허기와 갈증을 느끼고 있다. 정치가들은 자신의 치적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중앙정부에 굽실거리고 재벌과 기업들에 손을 벌여 온갖 개발 사업들을 벌이고 그 결과 자연은 훼손되고 빚은 늘어간다. 중앙정부도 오만하고 무례한 태도로 주민들이 원하는 것보다 더 좋은 섬을 만들어 줄테니 잠자코 있으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시절 제주도를 하와이같이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누가 제주도가 하와이처럼 되고 싶어 한다고 했는가? 하와이의 진주만 해군기지처럼 강정에 해군기지를 만들어 기지 산업이 번성해 퇴폐윤락 업소들이 늘어나고 바다는 중금속으로 오염되는 미래를 제주도민 누가 선택하겠다고 했단 말인가?
제주도나 오키나와나 관광업과 군사기지 산업이라는 의존적인 경제구조가 심화되어가고 있다. 이는 한 번 체질변경이 되면 다시 전환하기 힘들기 때문에 심사숙고하여 신중히 결정해야할 사안이다. 두 섬은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사회가 붕괴되어 의존적이고 종속된 섬으로 전락해가고 있으며 열등하고 주변화 된 사회로 침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