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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설 명절 연휴는 잘 보내고 계신가요?
제법 길다고 생각했던 설 연휴가 어느새 하루밖에 안 남았네요.
아니지, 아직 오늘 다 안 지났으니 이틀인가?
여하튼 올해 들어 두 번째로 등록하는 책 감상문입니다.
꾸준히 독자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는 작품, 2권도 나온 작품, 제법 최신작!
이번에 서평으로 추천할 책은, 뚜둥~!
바로 아래의 2권입니다.
도서명: 불편한 편의점 1, 2
저자: 김호연
* 이 작품은 모두 시각장애인을 위한 재활통신망 넓은마을 도서관에 데이지도서로 제작되어 있습니다.
1권은 한국점자도서관에 점자도서로도 제작되어 있어요.
* 소개글 서평
풍문으로는 많이 들어온 책이다. 이름하여, 《불편한 편의점》은 그랬다. 듣기만 했다. 읽어야지 읽어봐야지 해놓고 정작 읽을 짬이 없었다. 나와 함께 일하는 근로지원인 선생님은 업무상 교열이라도 봤지, 나는 그 책 교정을 볼 여유도 없었다. 나는 당시 업무상 다른 거 했고, 《불편한 편의점》은 다른 누군가에게 교정 일감으로 배당되었다. 나 그 책에 흥미 있다고, 나 보고 싶다고, 언제까지나 기다려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어쩔 수 없었다.
교정사로 일하면서 업무 중 재미있는 작품 접하는 게 그나마 낙인데 말이다. 뭐, 이제라도 데이지도서로 접하게 됐으니까 됐지.
사진: CU 편의점 앞에 필자.
- 이곳은 광화문 광장 인근임.
《불편한 편의점》 - 푸른 언덕 동네에 있는, 마치 구멍가게 같은 이상한 편의점
“맞아요. 주우신 분인가요? 어디시죠?”
염영숙 여사는 기차에서 깨달았다. 그녀가 파우치를 분실했다는 것을. 중요한 내용이 적힌 수첩, 지갑 등이 들어 있는,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심장이 쿵 떨어질 만큼의 충격을 안기는 분홍색 파우치.
어째야 하나 허둥지둥 당황하고 있을 때 염 여사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온다. 그리고 들리는 낯선 목소리, 어눌하게 말까지 더듬는다. 하지만 그 내용만큼은 희소식이었으니, 그녀의 파우치를 보관하고 있으니 찾으러 와달라는 것이었다. 어느 선량한 시민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서울역의 터주신 비슷한 존재, 비둘기의 친우, ‘홈리스’ 사나이였다.
“저...... 선생님, 배가 고파서요...... 편의점...... 도시락...... 아, 안 돼요?”
얼마나 굶주렸는지 전화로 염영숙 여사에게 도시락 애원을 하는 노숙자 사내에게 그녀는 처음에는 동정을 보낸다. 그리고 주민번호 불러보라며 본인 확인 확실히 하는 면모, 파우치를 노리며 덤벼드는 하이에나 같은 노숙자 무리로부터 혼자서 고군분투했던 그에게 염영숙 여사는 호감과 호기심을 느낀다.
그런 덕인지 파우치를 찾아준 인연에서 끝나지 않는다. 창파동에서 ‘올웨이즈(ALWAYS)’ 편의점을 운영 중인 염 여사는 특이하지만 ‘경우 있는’ 사내, 본명인지 별명인지 알 수 없지만 ‘독고’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내를 편의점 야간 알바로 채용한다. 과연 독고 씨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니, 그 전에 약간 서울역 야생 곰 같은 독고 씨의 사회화는 잘 이루어질 수 있을까?
“아저씨 이제 말 잘한다. 이제 과거도 떠오르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집이나 가족, 직업 그런 거 기억 안 나요?”
아무리 사장의 지시라고 해도 말이다. 얼마 전까지 서울역 한켠을 숙소 삼고 살아온 노숙자를 선뜻 동료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더구나 과거가 불투명하고, 자신에 대한 기억도 없어서 뭔가 수상한 인상과 불안감을 조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장님이 그러자고 하는데, 영숙 언니가 채용한다고 하는데, 뭐 어쩌겠는가.
점원인 시현과 선숙은 불만이 없지는 않으나, 별반 도리 없이 독고를 편의점 야간 알바로 맞이한다. 그나마 둘 중 호의적인 시현이 그의 직원 교육을 맡게 된다. 그런데 의외로 독고 씨가 그녀의 난처함, 일명 JS와, 그것도 JS of JS와의 문제를 퇴치해준 게 아닌가!
그 일을 계기로 시현은 독고를 신뢰하게 되고, 그가 던지는 어눌하지만 담백한 한마디 한마디를 받아들이게 된다. 자신도 모르게 장래를 불안해하는 시현의 속내를 정확히 짚어준 응원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독고가 그녀의 고민을 알아채고 한 조언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끔 상대가 순수한 호의로 건넨 별것 아닌 말이 큰 힘이 될 때가 있다. 나아가 삶을 바꾸는 데 큰 힌트, 전환점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소설 속에서 시현은 그녀 자신의 사소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자신의 일은 엄연히 도움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니까. 그로 인해 시작하게 된 유튜브 채널이 그녀의 삶을 크게 바꿔놓기도 한다.
비단 시현뿐만이 아니다. 선숙도 독고의 얼렁뚱땅 조언으로 관계 회복의 계기를 갖게 된다. 선숙은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불안정한 영화 사업에 뛰어든 아들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외무고시 준비를 강력 추천했더니, 방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는 아들의 행태에 쌓이는 건 울화요, 넘치는 건 심화일 뿐이었다.
그러나 독고의 한마디로 자신의 내심을 깨닫고, 삼각김밥과 함께 아들의 굳게 닫힌 방을 노크한다.
편의점 안에서의 변화는 곧 편의점 밖으로까지 이어진다.
사실 창파동에 딱 한 개밖에 없는 ALWAYS 편의점은 동네에서 소설 제목 그대로 ‘불편한 편의점’으로 명성이 높았다. 할인 행사 빵빵한 여타 편의점과 달리 영세한 편의점 ALWAYS는 그런 게 없다시피 했다. 또 물건이나 상품의 종류도 다양하지 않아 고객이 찾는 상품이 없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렇기에 불편한 편의점이 된 것.
그런데 최근 새로운 불편함이 추가됐다. 바로 야간 알바 독고 씨였다. 편의점 점원들은 그의 꺼림칙한 출신 등으로 인해 불편을 느꼈다면, 손님들은 느리고 어눌한 말투로 이런저런 걸 질문하거나 호의를 내비치는 독고의 행동에 불편함을 느낀다.
그러나 독고 씨는 염 여사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아주 열심히 업무에 임했을 따름이었다. 가령, 동네 할머니들을 위한 상품 배달 서비스라든가, 술 단골 손님의 건강을 생각해 권하는 옥수수 수염차라든가, 겨울철에도 야외 테이블을 애용하는 쌍둥이 아빠를 위한 열풍기 설치, 희극 작가를 위한 도시락 숨겨놓기 등등.
옛날에 좀 괴짜스러운 친구에게 놀리는 소리로 이런 말이 유행했었다. “너 그러다 나중에 언덕 위에 하얀 집 간다?”
편의점 ALWAYS는 독고 씨의 적극적인 영업으로 푸른 언덕 아래에 이상한 편의점이 되어 가는 듯한?
사진: GS25 편의점 배경으로 필자.
- 여기도 광화문 광장 근처임.
불편한데 끌리는 그곳 - 《불편한 편의점》
“고맙습니다. 컵이랑...... 열풍기요.”
사람들은 호의를 바란다. 누군가의 상냥함이나 친절을 받길 은연중 기대한다. 배려를 받아서 기분 나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지만 막상 그 호의를 받으면, 예상치 못한 친절함을 겪으면, 상냥함을 마주하면, 기분은 안 나쁜데, 그렇게 어색하고 민망하고, 또 불편할 수가 없다. 저 사람이 나한테 왜 이러지? 뭐 원하는 게 있나? 왜 괜히 친한 척이지? 쓸데없는 참견일까, 오지랖이 넓은 걸까?
이런 생각들로 눈초리가 가늘어진다. 부담감이 들고 어째 부채감도 들고, 내가 해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괜한 짓을 해서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한 상대가 불편해지기도 한다.
나 같은 경우, ‘장애인’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도움을 받으면, 죄책감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지금도 좀 소심해지고 위축될 때는 괜스레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모순적이다. 이상하기 짝이 없다.
우리는 분명 어렸을 때 배웠다. 도움을 받으면 고맙다, 감사하다, 진심 어린 인사를 하라고. 나중에 그 사람이 도움이 필요할 때 보답하건 어쩌건, 그런 건 우선 차치하고, 친절을 받았으면 인사를 하라고.
그렇다. 상냥함과 호의를 마주했을 때 교과서, 어른들은 고맙다고 인사하라고 했지, 그 도움이 어떤 의도인지 무슨 이유에서 그런 배려를 하는지 등을 따지며 불편해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물론 세상이 험하니 경계는 하라고 배웠지만, 모든 호의에 불편함을 느끼라는 대목은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상대의 관심을 받으면 긴장하게 된다. 의도를 먼저 헤아린다. 그리고 거리를 둔다.
그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심적인 부담감을 느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거리를 두는 게 불편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러면서도 막연하게 상냥함을 바란다. 친절을 마냥 받아들이지 못하면서도, 호의를 기대하는 속마음이라니.
그런 의미에서 소설 《불편한 편의점》의 무대가 편의점이라는 사실이 꽤나 의미심장했다. 보통 편의점 하면 나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이거다. 띡~ 하는 소리와 함께 “ㅇㅇ원입니다” 하는 계산 소리. 편리하지만 기계적인 소리. 편리하고 간편한 인상은 들지만, 정은 안 느껴지는 소리.
편의점 이전에 있었던 동네 가게, 구멍가게든, 가게 같은 소규모 슈퍼와는 전혀 다르다. 그곳은 더 친숙했고, 다정했고, 자주 얼굴 보는 사이가 되면 아저씨 혹은 아주머니가 과자 사러 갈 때마다 종종 100원짜리 초콜릿이나 사탕을 덤으로 손에 쥐어주기도 하는 곳이었다. 문 옆에는 인형 뽑기나 두더지 잡기 게임기가 놓여 있어서 우리들의 지갑 잔돈을 알뜰하게 챙겨 가기도 했던 장소였다. 손님 없이 한산한 날이나 시간이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화투를 치기도 했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그 특유의 효과음을 들었다.
그런데 나는 소설 《불편한 편의점》의 ‘올웨이즈(ALWAYS)’ 편의점에서 예전 동네 가게에서 느꼈던 정취를 떠올렸다. 편리함은 좀 떨어질 수도 있지만, 이제는 어색해져 버린 친절함이 어쩐지 좀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이 마냥 싫지만은 않은 곳.
그것은 백곰을 닮고 야생의 곰을 닮고, 굼뜨고 말도 더듬지만, 그래도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점원 덕분일 것이다. 물론 수수께끼가 많은 독고 역시 과거에는 좀 ‘나뿐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곁의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고, 자기 자신에게조차 관심을 주지 못했고, 그로 인해 스스로를 잃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ALWAYS에서의 야간 알바를 통해, 손님 접객을 통해 그는 잊고 있던 혹은 잃었던 기억을 되찾는다. 편의점 동료들과 손님들뿐 아니라, 자신도 변하게 된 것.
그 해답은 ‘관계’에 있었다. 그리고 ‘소통’에 있었다. 거리를 두지 않고 다가서는 것에 있었다. 우리 출판사 대표님, 아니 관장님이 맨날 강조하는 소통! 그리고 관계!
물론 말이 좋고 말이 쉽지, 소통과 관계는 참 어려운 거다. 특히 거리를 두는 게 예의이자 기본 에티켓이 된 코로나 시대에서는 더욱. 상대의 얼굴이나 표정이 아닌 마스크가 더 익숙해져 버린 오늘에서는.
그런 뜻에서 김호연 작가는 일부러 편의성을 대표 상품으로 하는 편의점을 무대로 삼아 이야기를 전개한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편의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불편해져 버린 것을 되새기게 하는 편의점으로 말이다.
여담인데, 소설 속에 편의점 이름이 ALWAYS인 것도 좀 의미심장한 것 같다. always의 뜻은 언제나, 줄곧, 늘.
인간은 언제나 관계와 소통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곤란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늘 소통을, 교류를 원하게 된다. 친절이 부담이 되어 불편함으로 다가오는 오늘에서도.
순전히 내 추측이지만, 뭐 이런 의미를 담은 게 아닐까?
한편 소설은 독자에게 소통의 부재를 타인의 탓으로 돌리지는 않는지 묻고 있는 것 같다. 상대가 먼저 다가오지 않아서, 묻지 않아서,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서 이렇게 됐다고 여기지 말라고. 상대의 호의와 관심과 상냥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멈춰선 건 당신일지도 모른다고, 이제라도 먼저 용기를 내 다가서라고.
그런 부분이 특히 강조되는 게《불편한 편의점 2》이지 않나 싶다. 1권에서 주요 캐릭터인 독고 씨가 대구로 떠나고, ALWAYS 편의점에 새로운 야간 알바가 된, 명찰에는 ‘홍금보’라고 적혀 있는 황근배의 이야기.
“하나만 드셔. 얼마든지 여기 있어도 좋으니까.”
독고와 달리 수다맨, TMY인 그는 독고의 자리를 이어받아 ALWAYS 편의점의 변화를 더욱 굳건하게 만든다. 인심 후해서 투 플러스 원 상품을 마구마구 권하고, 수다맨이라 편의점에서 읽을 책과 독서토론까지 제공한다. 헐~!
그리고 있을 곳을 원하는 누군가에게 기꺼이 자리를 내어준다. 관계를 허락하고, 소통에 주저함이 없다.
코로나19 때문에, 마스크 탓에, 잘 몰라서, 말하면 싸울까 봐, 말해도 통하지 않아서, 이제 와서 대화를 해봤자 아무 소용 없어서 등등.
관계와 소통을 가로막는 건 이렇게나 다양하다. 어색하게 만드는 이유는 수십 가지도 넘을 것이다. 저마다의 고민의 개수만큼.
그러나 어느새 마스크가 아니면 생활이 불편하게 된 환경에서도 우리는 소통을 바라고, 관계를 원한다는 것도 진실이다. 어색해도 먼저 말하지 않으면 상대는 알기 힘들다. 아니, 알 수 없다.
그러니 힘들어도 더 늦기 전에 편의는 잠시 내려두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때가 된 게 아닐까. 만약 마스크가 있어 전달이 원활하지 않다면, 더 크게 또박또박 말하면 되지 않겠는가.
덧붙여 소설 《불편한 편의점》에 나온 ‘산해진미 도시락’이나 참깨라면, 참치 삼각김밥, 참이슬 소주로 이루어진 ‘참참참 세트’ 등도 소설 읽는 데 재미를 선사한다. 원 플러스 원이나 투 플러스 원 상품은 내가 어쩌다 그 상품을 골라서 득템했을 때의 기분 좋음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 데이지도서의 단점은 하나뿐이다. 오탈자!
걔, 출몰 빈도가 좀 많다.
PS. 세븐일레븐 편의점은 찾지 못해서 사진을 찍을 수 없었음. 여기까지가 나의 한계! 세븐일레븐 따시킬 의도 전혀 없음!
첫댓글 무심코 이용하던 편의점에 수많은 사연이 생길 수 있다는것에 놀랍다. 어쨌든 그곳도 사람사는 곳이지. 구멍가게의 추억도 뒤새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