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방큰돌고래
현택훈
강정 바다 헤엄치는 제주남방큰돌고래
점점 전설이 되려고 하는 물결과 푸른 유영
바닷가 마을에는 사람이 살았고
바다 속에는 제주남방큰돌고래가 살았다는
전설이 밀물로 밀려와서야 되겠는가
무리 지어 살면서
따뜻한 제주 연안을 떠나지 못하는데
검은 그물에 걸려서 바동거린다
사람들은 자빠져 주저앉아서 팔다리를 내저었고
그물에 걸려 살점이 찢기고 피눈물 난다
죄 없는 사람들 잡아가서
거짓 춤을 추게 할 것인가
불법 포획 당한 민주주의
그물에 들어가지 않는 구럼비 부숴버리고
무자년 제주바다 붉게 물들인 날로
다시 우리를 끌고 가려 하느냐
평화가 멸종위기로 분류된 지 오래
푸른 바닷가 마을로 방생되고 싶은
강정 사람들
범섬 넘실거리는 제주도 원래 그 자리로
헤엄쳐 가고 싶은 것이다
평화 속 헤엄쳐 다니는 제주남방큰돌고래
초음파 이용해 평화가 전설이 되지 않기를
푸른 지느러미 물결치며 신호를 보내오는데……
내 마음의 순력도
현택훈
내 마음의 순력도를 펼쳐놓고
현재 나의 경로를 짚어봅니다.
청포도가 있던 집이 있던 곳에서
기억의 환해장성이 드리운 섬까지
순력도를 그리며 삽니다.
동복 삼거리, 민방위 훈련 때문에 정차한 차들,
시외버스 차창 박으 표정은 나른한 평화,
죽은 누이와 치마 같은 가을 햇볕.
일주도로처럼 내 마음 속을 나는
까마귀 한 마리 있어
나는 포수가 되고 싶지만
외로운 성을 혼자 지키는 포졸인 걸.
버스는 정의현을 지나 사귀진까진 갈 것입니다.
핸드폰을 켜 지난 문자들을 확인합니다.
-어쩌면 우주의 수명은 내리는 빗방울 수만큼일 것 같아
-우자가 자동차 바퀴들 사이에서 촤아악 소리를 내며 부서지고 있네요.
비 오는 저녁 퇴근길 짙은 피로가 만들어낸 발신과 수신.
문자의 순환이나 수요일의 심야영화나
토요일의 제주소년블루스나
모두 허세집(虛世集)에 기록될 작은 섬일 뿐이지요.
더 이상 발 디딜 수 없는 포구에서
돌아서듯 살아온 시간들.
저어새는 연해주까지 날아가고
택시를 타면 공항에 갈 수 있는데
제주시청 목관아 술집 골목으로만 모이는 마음이여.
-오늘 밤엔 빗소리가 있으니 음악을 틀 필요가 없겠어.
문자를 입력했다가 지워버립니다.
마음은 언제나
명진슈퍼에 간장 사러 가는 거리 즈음
멀리 가지 못하고,
- 『남방큰돌고래』(한국문연, 2013)
* 현택훈 : 제주 출생. 『시와정신』으로 등단. 지용신인문학상, 수주문학상 수상. 시집 『지구레코드』, 『남방큰돌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