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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
1. 266p '만약 우리가 세계의 다른 지역들을 일별해 보면 동방에서는 아랍인들이 가장 숭고한 민족임을 알게 될 것이다.'
=칸트는 특정 나라의 인사법이나 그림의 형태, 습관등을 통해 미에 대한 감정, 숭고에 대한 감정을 유추해 나간다. 국가, 인종별로 사회가 다르고 미나 숭고에 대한 태도 역시 달라지겠지만 미의 보편적 표준이 존재한다면 국가나 인종보다 우선하여 나타날것이다.
2. 267p '최종적으로 거의 완전한 파괴로부터 다행스럽게도 부활을 통해 인간의 천채가 새롭게 등장된 후의 오늘날에 있어서 우리들은 예술과 과학 쌍방의 영역과 그리고 도덕에 있어서까지 아름다운 것과 고상한 것에 대한 취미가 만발하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역사적 사회학적으로 취미의 변화를 살펴보고있다. 미학이 무엇이고 어떠한 이론이 있어왔으며 이 이론에 대한 반박은 무엇이였고, 에 대한 논의 보다 심리적 사회적으로 미와 숭고를 살펴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도 미학의 흐름을 이해하기 쉽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것같다.
3. 268p '도덕적인 성질들 중에서 진정한 덕만이 숭고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만하고 아름다운 훌륭한 도덕적인 성질들이 있으며 그들이 덕과 조화되고 있는 한 비록 그들이 고유하게는 도덕적인 성향속에 포함 될 수는 없는 것이라도 고상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을것이다.'
=숭고를 인간의 도덕적 본성에 연결시켜 말하고있다. 숭고성은 초자연적은 현상을 목격했을때 인간이 느끼는 감정. 경외심이라 표현할수있는 sublime을 뜻한다. 이러한 감정? 느낌을 인간의 본성도 아닌 도덕적 본성과 관계짓고 있다. 도덕의 체계에서 본다면 도덕적 성질중 진정한 덕, 동양철학에서 본다면 인의예지 같은 진정한 덕을 보고 우리는 숭고하다고 한다. 어떤이가 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구하는 일은 숭고한일이다. 이러한 상황을 작품으로 옮겨놓는다면 우리는 그 그림을 보고 숭고함을 느낄것이다.
4. 270p '칸트 미학사상들을 그들의 문화적이고경험적인 배경으로부터 분리시킨다는 일은 칸트가 그의 비판자들로부터 때로는 근거도 없이 비난 받아온 바 합리주의적 추상이라는 바로 그 잘못을 저지르는 꼴이 된다.'
=미학 사상이 문화적이고 경험적인 배경과 함께 살펴본다는 것은 미학이 우리의 사회나 일상생활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는 뜻을 말한다. 즉 이것들을 분리시켜서 분석한다면 미학사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것이며 여기서 말하는 합리주의적 추상의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합리주의적 추상의 의미는 정확하게 알지는못하지만 아마도 논리적으로 논증되고 반박된 미학의 역사를 추상화시키는 일을 뜻하는것일것이다.
5. 271p '그렇다고 해서 미적 만족 혹은 미적 감정 오늘날의 말로 하면 미적 경험 이 감각적으로 유쾌하거나 혹은 정서적 반응과 혼동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그는 특히 강조하고 있다.'
=미적 경험은 우리가 미적인 것을 마주하고 그것에서 어떠한 것을 느꼈던 경험을 말한다. 미적경험이 많을수록 좋은 작품인지 어떤것이 가치가 더 높은지 구분할줄 아는 안목이 생긴다. 미적만족, 미적 감정 등의 미적 경험의 내용은 감상후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 포커스가 맞춰있다기 보다 작품 그자체의 느낌에 집중되어있다.
6. 273p '이처럼 미를 평가하는 취미판단이 전적으로 주관의 쾌, 불쾌의 감정에 관련되고 있음을 칸트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일층 강조하고 있다.'
=취미는 일상생활의 취미를 말하는것이 아니라 취하고 취하지 않는 기호적인 뜻을 말한다. 취미판단은 어떤 대상을 보고 쾌, 불쾌의 감정을 느끼며 대상을 판단하는것이다. 칸트는 취미판단을 했을 떄의 만족이 다른 경우와 달리 무관심적일때 진정한 판단이 가능해진다고도 이야기한다
7. 274p '진정한 예술적 창조의 원천은 이성이 아니라 창의적인 천재라는 생각을 수반하고 있다.'
=예술가는 타고 나는것일까 만들어지는것일까. 대부분 타고 나는것이라고 생각한다. 타고나는것이 일차적으로 전제되고 난후 이 천재성을 어떻게 교육시키느냐에 따라 결과적인 천재적 예술가로 완성되던가 천재성을 썩히면 능력을 펼쳐보지 못하고 평범한 사람과 같은 길을 걸어갈것이다. 그러하다면 창의성은 타고나는것일까 교육되어지는것일까. 창의성역시 모두 그 요소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그것을 외부적으로 꺼집어내는것은 교육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과거 예술은 권력의 수단으로 나타나거나 일상적인것을 표현하는 것으로 그쳤기에 이성적인 통찰력이 있으면 충분한 예술작품이 완성되었지만 오늘날은 새로운것, 다르게 바라보기, 기발한것을 원하는 흐름이기에 창의성은 반드시 필요하며 이성보다는 창의성이 더 먹어주는? 상황이다.
8. 275p '다음으로 독창적이지만 무의미한 것도 있을 수있으므로 천재의 소산은 동시에 모범적이지 않으면 안된다.'
= 동감한다. 그러나 독창성의 발현된 작품이 무의미한것인지 유의미한것인지는 누가 정하는가? 소위 예술계나 감상자, 사회의 흐름이 만드는 것이 아닐까싶다. 사실 브릴로박스를 쌓아놓은것. 이것은 독창적이지만 무의미하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대와 예술은 고상하다는 편견을 깨버렸다는 이유로 유의미한 예술의 한 획이 되었다. 나의 경우에도 유명 미술관에 가서 작품감상을 할때 모르는 작가의 이해할수없는 작품이 크게 전시되었을때 배경지식이 없으니 무의미하고 뭘 나타내기위해 만든거야 하는 의구심이 들지만 이렇게 전시된데에는 이유가 있을거야 하면서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곤한다. 무의미함과 유의미함은 곧 관심이자 그것이 전시된 공간과 작가의 유명성에 따라 생성되고 소멸된다.
9. 276p '재능의 창의성은 천재의 특질들 중 하나의 본질적 요건이 되는 것이므로 천박한 사람들은 일체의 규칙이 부과하는 속박에서 떠날 때 피어오르는 자기의천재를 가장 잘 과시할 수 있다고 믿으며 그래서 잘 훈련된 말을 타는것보다 광폭한 말을 타는것이 더욱 두각을 나타내 자랑할 수 있는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나의 패러다임이 바뀔 때에는 선구적 흐름이 중심이 되었다. 과거 아방가르드적 사람들의 선구자적 전위부대가 이러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형태는 천재성을 과시한다고 이야기 할 수 없다. 기존의 틀을 깨는 독특함은 개성이나 선구적 특징을 가지는 것이지 천재성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고 보여진다. 과거 루벤스나 라파엘로는 그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서 천재적이라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을 가장 잘따랐기 때문이였다.
10. 278p '즉 규율과 관례를 강조하는 고전주의적 전통과 자유와 창의성을 강조하는 낭만주의적 전통이 분명 적대적인것이기는 하나 실제로는 보완적인 것임을 선언하고자 한의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고전주의는 규율과 관례를 강조하며 틀안에서의 예술만을 허용하였지만 낭만주의는 자유와 창의성을 강조하며 초월적인 예술을 지향했다. 이 둘은 분명 반대의 경향을 가지고 서로 타협될수없다고 봤는데 보완적인것이라고 말한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고전주의나 낭만주의 둘다 고전주의적 전통에 대해서는 최종적인 공감을 표하고 있다고 한다. 진정한 취미가 생기려면 도덕적 감정과 합지 조화가 될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11. 280p '그는 이 예술이 지닌 매력을 인정하고는 있으나 그것의 과도함을 비난했고 보다 깊은 정신적 의미의 결핍 떄문에 보다 순수한것일 망정 그것을 혹평했다.'
=여기서 칸트가 비난한 예술은 인공품으로서 자유로운 예술과 비교된다. 순수한 예술이란 자유미의 순수한 미를 뜻하면서 종속미와 비교된다.
그치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우리가 소위 예술이라 부르는 것들은 모두 인공품이 아닐까한다. 예술이라는 틀안에 있고 작품이라는 말을 붙이게 되면서 그것은 화랑안에 존재하는 온실속 꽃이 된다. 자연상태의 꽃은 자유스럽고 순수하지만 규정된 개념하에 존재하는것이 아니다.
12. 281p '음악은 모든 예술 중에서 가장 순수한것이며 따라서 가장 자율적인 것이며 미적으로 가장 즐거운 것을 선언되고 있다.'
=음악은 어떠한 틀도 없고 자율적이다. 물론 도레미파솔라시 7계음이란 한계가 있지만 음악은 한계가 없다. 다양한 음들이 나오며 감상자에게 감동을 주고 위안을 준다. 또한 회화에서 처럼 원본과 모방본이란 개념도 없다.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된다는 점에서 계급구분도 미술보다 작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대단히 자율적이다. 소리란 원시적이고 기본적인것이라 음악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누구나 즐길수 있다는 평등성도 가지고 있다.
13. 282p '인간의 가장 중요한 경험은 단지 언어를 통해서만 표현, 전달될 수 있다고 하는 그의 합리주의적 사고 때문이다.'
=언어를 통해서만 중요한 경험을 할수있다는 것은 책을 통해서 하는 간접경험만이 중요한 경험이라는 말인지 궁금하다. 경험주의적 철학자가 이에 대해 말한다면 가장 중요한 경험은 책 밖에 있다고 말할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학교 밖에서 세상을 알게되고 진짜 지식을 배웠다고들 한다. 지적인 지식은 책 안에 있겠지만 사유하고 깨달음은 책밖에 있는것은 확실하다.
14. 283p '자극적 매력은 미의 필연적인 구성요소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고 불려지기에 충분한 것이라고 속이려는 입장에 대한 칸트의 비판적 태도는 그의 분석을 더욱 날카롭게 전개시켜주고 있다.'
=칸트의 입장에서 취미를 판단하려면 평온한 상태에서라야 정확한 결과가 나올것이다. 이때 자극적인 매력의 요소가 개입된다면 그것에 현혹되어 제대로 된 취미판단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한 취미는 야만적이라고까지 칸트는 이야기 한다.
15. 285p '장식이라고 하는 것조차도 다시 말하면 대상의 전표상의 구성요소로서 내적으로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외적인 부가물로서 취미의 만족을 증대시켜 주는 것조차도 실은 그 형식에 의해서만 그렇게 할 수 있다.'
=작품을 걸어주는 액자나 화려한 옷들, 가구에 붙어있는 장식품들은 대상과 하나되어 판단되어지는것이 아니라 분리되어져 취미의 증가를 일으키는 요소뿐이라고 생각한다. 장식이란 말 그대로 본래의 상태에서 좀더 업그레이드 시키거나 어떤 목적을 위해 덧붙여지는것을 말한다. 물론 이는 어떤 형식이 있고 대상이 있을때 가능한 이야기이다
16. 287p '그에 의하면 참된 도덕적 행위는 행복과 같은 목적을 갈망하는 자연적성향에 의해서가 아니라 도덕적 법칙에 대한 경외심때문에 행동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의지, 의무를 위해 의무를 다하는 의지에 따를 때만 가치가 있다.'
=이것이 칸트의 유명한 정언명법 너의 의지의 준칙이 우주적 입법의 원리로서 언제나 동시에 타당하도록 행동하라 는 것이다. 이 경지에 까지 오르려면 내의지는 곧 도덕법칙과 같은 성인의 경지에 올라야할것이다. 우리가 목적을 갈망할때는 내부적 본성에 충실하게 이행되는데 이렇게 되면 안되고 도덕법칙에 대한 경외심으로 그것을 따르려는 목적으로 행해야한다. 이때 부가적인 다른 목적때문에 이것을 따라서는 안되며 그 자체가 목적이 되야한다.
17. 288p '앞서 언급했듯, 인식할 수는 없으나 도덕적 근거위에서 그 존재를 믿지 않을 수 없는 이 같은 자유에 대한 사유로부터 칸트는 영혼의 불멸과 신의 존재를 추론해내고 있다.'
=도덕법칙의 준수자는 동시에 그 법칙의 입법자이기도 하다. 자신이 도덕법칙을 정하고 그것을 지키면서 참된인간에 가까워진다. 이렇게 보면 자율적 의지는 자유에 기초하고 있다.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은 있을수없다 왜냐하면 도덕법칙은 의지 스스로가 자기에게 부과한 법칙이기 때문이다. 인식하지 못한다면 도덕법칙을 구상해낼수도 행할수도 없을것이다.
18. 290p '우리의 인식능력들의 단계에 있어서 오성과 이성 사이에 매개고리를 형성하는 판단력은 과연 스스로를 위한 선천적인 원리들을 가지고 있는가의 여부 그리고 그 원리들이라 할 것이 구성적인가 아니면 단순히 규제적인가의 여부, 또한 판단력은 인식능력과 욕망능력의 매개고리가 되고 있는 쾌 불쾌의 감정에 대해서 선천적으로 규칙을 부여해 주는가의 여부였다.'
=오성과 이성은 감성과 이성의 문제라고도 볼수있다. 이 둘사이른 연결하는 판단력은 타고나는것이다. 그치만 이것들의 경계선은 모호한것 같다. 오성은 느끼는것이고 이성은 사고하는것인데 느끼는것 역시 일차적으로 사고가 되어야 가능한것이며 사고를 한다면 느끼게 되는것은 당연하다. 인식능력과 욕망능력또한 마찬가지이다. 순서의 차이는 있겠지만 무자르듯 완벽히 둘로 구분지어 보기는 힘들것같다.
19. 292p '자연의 대상은 현상적인 것이나 그들의 조화 그리고 합목적성은 본체적이 되고 있음을 단언하고 있다. 따라서 칸트는 자연의 영역과 이념의 영역사이의 심연을 절대적인 것으로 양분시켜 놓지는 않고 있다.'
=여기서 본체적, 정확히 말하자면 의사 본체적이라는 말이 뜻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자연의 영역과 이념의 영역을 절대적으로 구분하고 있지 않는데에 대해서는 동의 한다. 자연개념에는 감성적 영역과 자유영역이 있는데 이것들은 사유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며 이것들을 통해 이념의 영역이 생긴다.
20. 294p '그는 미적 경험의 고유성을 가려내고자 했다. 그에 의하면 취미란 단순히 평가능력이지 산출 능력이 아니며 그러므로 취미에 적합한 것이 반드시 예술작품은 아니다.'
=순수한 미적 경험을 통해 나타나는 미란 즐거움이나 즐겁지 않음 일것이다. 이것은 취미판단으로 취함과 취하지 않음 쾌와 불쾌로 나뉘어지게 되어 대상에 대한 판단 기준이 된다. 이 취미는 같은 작품이더라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지 궁금하다. 진정 좋은 미를 표현한 작품이라면 모든사람이 쾌를 느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또한 이것을 통해 어떠한 결과물을 얻으려 산출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평가능력이라는 점을 인지해야 할것이다.
21. 296p '한마디로 취미란 그것이 나에게 즐거움을 준다 라고 하는 진술로 표현되는 식의 단순한 개인적 선호의 문제와 명백히 구별되어야 한다.'
=취미는 그 작품이 자신에게 쾌를 주는지, 불쾌를 주는지에 따라 판단하게 되는데 이것이 개인적 취향이자 선호도와는 다르게 봐야한다는 점이 새로웠다. 일반적으로 자쾌를 느끼면 좋아하고 불쾌를 주면 싫어하게 된다. 그런데 이를 개인적 선호의 문제와 별개로 봐야한다는 것은 작품이 선보이는 쾌와 불쾌로 인한 취미에서 그만둬야지 개인의 선호에 까지 작품의 성질을 개입시키면 안된다고 하는뜻인것같다.
22. 306p '자연미란 하나의 아름다운 사물이며 예술이란 하나의 사물에 관한 아름다운 표상이다. 예술은 자연에 있어서는 추하거나 혹은 불쾌한 사물들을 아름답게 묘사한다는 데 그 장점이 있다.'
=요즘에는 오히려 자연에서 쿨쾌하고 추한 사물들을 예술에서 더욱부각시켜서 감상자에게 거부감을 주는 의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예술은 현실과 달리 아름답게 묘사한다. 민중을 이끄는 여신의 작품을 보면 혁명이긴 하지만 사람들이 죽고 피묻은 상황이다. 그러나 작품은 그 상황을 고귀하고 아름답게 표현해놓아서 아름다움의 이면을 알아채지 못하게 해놓았다.
23. 308p '요컨대, 미가 특수한 종류의 객관적 성질을 기술하는 말이라고 한다면, 숭고는 주관의 심리적 상태를 기술해 주는 말이라는 주장이다.'
=미를 객관적 성질을 기술한다면 미라고 규정지을 수 있는 규칙이나 질서가 있다는 뜻일것이다.
반면 숭고는 주관적인 상태라 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어떤이는 작품에서 숭고를 느끼고 어떤이는 느끼지않는다. 숭고는 어떻게 규정지을 수 없는것이 인간의 감정이란 너무 폭넓고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24. 311p '첫째 한편으로는 예술미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미가 존재하게 되는 창조적 과정에 관해서이고 둘쨰로는 그러한 두 유형의 미에 대한 인간의 재창조적 반응에 관한 것이다.'
=예술이나 자연미를 창조과정에서 같은 위치에 있다고 보고있는데 아닌것같다. 자연미는 태초의 창조상태이여서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았지만 예술은 인간이 만드는것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예술이다 하는것은 예술이 굳이 인간의 손을 거치지 않아도 가능한것인지 궁금하다. 그렇게 된다면 자연미중에 으뜸되는것을 예술이라 하게되는것인데 미에도 우위를 나누게된다.
25. 312p '현상계의 법칙에 따라야 하는 존재임을 믿고 있었으므로 인간의 재창조적인 활동 뿐만 아니라 창조적인 활동까지도 이 같은 생리학적 과정의 입장에서 설명할수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었을 것이라 함은 분명한 일이다.'
=인간이란 재창조뿐만 아니라 생리학적으로 창조 역시 가능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창조라는 표현보다는 발명이라는 말을 써야하지 않을까 싶다. 창조는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유를 만들어나가는것이지만 인간의 창조 발명은 본래 있던것들을 알고 난 후 지식을 바탕으로 생성되는 것이며 본래 것들의 다른 조합으로 재창조를 만들어 내는것이다. 인간의 창조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9강>
1. 322p '철저한 경험주의적 입장에 설 때 모든 예술에 공유되어 있는 공통적인 특성이란 있을 수 없으며 따라서 예술의 정의를 구하고자 제기된 물음 곧 예술이란 무엇인가는 이미 그 자체가 잘못된 미학의 문제로서 설정된 것이라는 주장이 대두된다.'
=한학기 동안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공부하였다.
결국 결론은 내리지 못하였기에 질문 자체가 잘못된 질문에서 시작된 것인지 아니면 과정 자체에서 오는 여러 논의들을 의미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헷갈리지만 아마 후자가 더 가깝지 않을까싶다.
2. 323p '미학은 예술을 기본개념으로 하느냐 혹은 미를 기본개념으로 하느냐에 따라서 예술의 철학 혹은 미의 철학으로 발전되어 왔다는 점이다.'
=예술철학과 미의 철학을 따로 구분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러나 예술과 미의 차이는 아직 정확히 모르겠다. 미는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예술은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숭고함이나 추함까지 포용할수 있는것이 예술철학인것 같다.
3.327p '결과적으로 그에게 있어 시의 목적은 즐거움이요 미는 우리의 마음에 경험되는 즐거움에 관여되지 않고서는 성립되지 않게 되었다.'
=시나 미 둘다 목적이 즐거움이라는 이야기이다. 시는 읽음으로서 간접경험을 하게 해주고 고귀함을 느끼게 되어 얻는 즐거움이며 미는 아름다움을 보고 마땅히 좋아하고 취하게 되는 즐거움을 얻게된다. 고대의 시는 목적이 즐거움에 있었지만 현대의 시는 현대시대의 모습을 나타내거나 개인의 아픔을 나타내어 즐거움을 얻는데 그치지 않고 동감이나 수용자의 마음을 울리는 역할을 한다.
4. 328p '미는 이성에 의해서 파악되는 초월적 존재나 경험적인 성질이 아니라 한낱 생리학적 용어에 불과했던 취미에 의하여 평가되는 주관적인 즐거움을 지시하는 말에 불과한것이 되었다.'
=미는 초월적 존재이거나 경험적 성질이 아닐것이다. 미를 보고 느끼는 즐거움은 인간의 감정의 하나이며 너무 우상화 시켜도 안되는 인간의 주관적 감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물론 그 감정이 삶을 윤택하게 해주고 기쁨을 주긴 하지만 말이다.
5. 330p '즉 상상력이라든가 감정의 영역에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 일반적으로 널리 인식되고 있던 때였다.'
=고대에는 예술과 미를 인간의 감정 능력 측면에서 철저히 배제한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에 자연스럽게 예술의 개념이 생겨난것이 아니라 상위계층에서 이성과 절대성을 통해 접근했기 때문에 감성적 측면을 발견하기 까지 시간이 걸린것 같다. 생활과 예술의 차단이 문제인것 같다.
6. 333p '철학이 이념을 파악하는 지적 활동이라고 할 때 이념의 파악과 기본적인 관계에 있는 인간의 예술활동이 철학체계 속에 자리를 잡고 구성되어야 할 것임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여기서 이념이라는 뜻은 사회사상 같은 이념을 말하는지 한 개인의 이념, 가치관들을 말하는 것인지 헷갈린다.
철학은 이념을 파악하는 활동인데 예술활동에서의 이념 파악은 어떤것일까 이념을 예술속에 집어넣어 활동한 나치시대나 구소련시대의 정치수단으로서 예술활동을 말하는지 말이다.
7. 334p '예술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는 것 같은 그의 설득력때문에 그것의 영향은 실로 지대했다.'
=설득시키는 힘을 가져도 그것이 타당한 이론인지 얻는것은 철학의 문제로 넘어가는 것 같다. 만약 설득을 당했다면 그것은 타당한거이고 설득되지 않는다면 타당한것이 아닌것 아닐까. 설득당한다는 것 자체가 그것에 대한 평가가 아닐까. 다시 그것을 정의하려 하는지 모르겠다.
8. 335p '예컨대 대양의 파도라든가 눈 덮인 알프스 산 등을 바라보는 데서 갖게 되는 즐거움을 똑같이 아름답다는 말로 부를 수 없다는 점에서 숭고의 개념을 발전시ㅣ고는 있었다.'
=자연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경외심이 즐거움과 같은 것일까.
즐거움이란 어떤것을 바라보고 느낄때 오는 쾌의 감정이다. 경외심과 쾌는 다르다고 생각된다. 쾌는 말그대로 기분이 좋아지며 아드레날린이 도는 그런 상대이지만 경외심, 숭고를 대할때는 가슴벅참 같은 쾌보다 더 벅찬상태이다.
9. 336p '즉 미는 지극히 관범위하고 애매하게 사용되는 말이므로 공통적으로 특유한 어떤 성질들을 말함으로써 아름다운 대상을 국한시키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논리적 논의가 대두된것이다.'
=아름다운 대상을 국한 시키지 못한다는것은 아름다움을 국한시키지 못한다는 뜻이며 이는 곧 미는 정의할 수 없다는 뜻과같다. 초기에 미는 균형적 비례적 대칭적인 것에서 시작되어 범위가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예술의 범위는 늘어가고 결국 오늘날에 와서는 미를 하나로 정의할수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10. 337p '말하자면 미라고 하는 말은 어떤 대상이 어떤 경험을 유발시켜 주었다는 사실을 기록해 주는 것 이외에 여하한 대상의 성질도 지시해 주는 것이 아니므로 미를 결정해 주는 객관적인 기준이라는 의미로서의 원리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라는 것은 어떤 경험을 일으키는 것이라는 점은 이해가 되는데 그 사실을 기록해준다는 것이라는건 무엇을 뜻하는것인지 잘모르겠다.. 경험을 유발시키는 것이 기록된 형태라는 말인가? 이제껏 미는 쾌라는 경험을 불러들이는 것이라고 배웠는데 쾌를 일으키는 객관적인 기준을 정하는것이 참 어려운것 같다. 쾌만 해도 즐거움과 숭고가 있고 이것들 조차 정확히 정의하기어려우니 말이다.
11. 339p '그것은 사물의 외형의 모방이건 그 본질의 모방이건 간에 예술이 모방이라는 고전주의적인 예술관이 유일하게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라는 점의 인식이 그 첫째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예술은 모방이다라는 말에 대해 코웃음치며 생각하곤 했는데 고전주의 시대에는 이러한 생각이 당연할수밖에 없다는것을 이해한다 지금은 . 그당시 예술은 창조적 개념이 아니라 일상의 한장면을 화폭속에 담거나 우상을 담고, 종교적 의무를 띄거나 권력을 부양하는 수단으로서 찬양 모방을 그려내곤했다. 그러나 어떻게 생각해보면 오늘날 창조적 예술작품또한 아무리 창조적이라고 해도 자신의 머릿속 생각을 모방하는것이라는 점에서 모방품일수있지않을까. 회화는 다른이에게 화가의 생각을 전단하기위해 일단 생각을 모방하여 최대한 가깝게 캔버스에 옮겨 그려야한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12. 339p '마지막으로 이러한 사실들 떄문에 근대적 전통의 화인아트로서의 예술의 개념과 체제는 미학에 불필요한 장애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화인아트는 현대미학의 흐름에 장애요소가 되고있다고 하는데 화인아트를 알음으로서 어떻게 예술이 처음 형성되고 받아들여졌는지 알수 있다.
fine art는 순수예술로서 예술의 원시적인 기본적인 시작을 알수있다.
13. 340p '데스아의 표현을 빌리면 이제 미학은 위로부터의 미학이 아니라 안으로부터의 미학이 되어야 한다는것이다.'
=과거 미학은 정부나 권력으로부터 전개되고 구속되어 있었다. 위로부터의 명령을 받아 생성되는 미학이 아니라 미학 스스로 내부적 발전과정속에서 일어나는 발전이 있어야 한다. 모더니즘부터 포스트모더니즘까지의 미학역사는 안으로부터 생성과 소멸이 반복되며 성장을 거듭해왔다.
안으로부터 생성되면 수동적인 미학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자각하고 창조하게 될것이다.
14. 340p '그 무엇을 본질로 하고 있는 예술에 대한 설명들이라는 점에서 이른바 생물학적 발생 인류학적 기원 심리학적 작용 및 효과 사회학적 기능 생리학적 반응 등의 연구성과들도 예술학의 자료로서 수용될 수 있게 된다.'
=예술이 우리 삶 속에서 많은 영역들을 차지하고 있으며 효과를 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된다. 생물학적 발생측면은 잘모르겠지만 인류학적 기원은 고대 벽화나 미술품 같은 것을 통해 우리는 고대 원시인들의 삶의 방식을 추측해보고 환경을 예측해볼수 있다. 심리학적 작용과 효과는 오늘날 심리치료에 예술이 많이 쓰이는 것을 보면 알수있다. 문제집의 경우에도 맨뒷장같은데 보면 집중잘되는 그림이라고 해서 어떤 작품을 넣어놓기도 한것을 보았다. 사회학적으로는 예술이 사회적 선동이나 정치이념을 표현하기위해 쓰이곤 하는것을 뜻한다. 북한의 미술작품들은 주로 노동의 신성성을 나타내고 김일성, 김정일 위원장의 숭고함등을 표현하고 있다. 예전 소련에서 제3 인터내셔널 철근구조물 같은 경우에도 실패는 하였지만 사람들에게 이데올로기를 함축한 예술작품을 통해 이념을 고취시키고자 하는 노력들이 많았다. 색을 보고 식욕이 땡기거나 감소하거나 작품을 보고 두근거리거나 황당하거나 하는 생리학적 반응역시 이끌어낼수있다.
15. 343p '그러므로 앞으로 태어날 예술철학은 경험적 기초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경험주의에 입각하는 일도 피해야 할 일이며 그렇다고 다시 관념론 같은 형이상학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입장에서 구성되지 않으면 안된다.'
=경험주의에 의해 예술은 지각하고나서의 느낌들, 감정들이 쾌, 불쾌나 다른 감정들로 나타나는것을 알수있다. 형이상학적으로도 더 높은 이상향 추구를 위해 예술을 하며 다른 감정들과 섞이지 못하게 철저히 이상주의적으로 나아가서는 안될것이다. 감정을 긍정하되 경험주의에 빠져서는 안되고 개인, 화가의 이상향을 추구하되 절대적이고 공격받지 못하는 이상향만을 추구하는것은 안된다.
16.344p '미학 용어에 대한 개념 분석을 하는 사람들도 예술론이나 비평에서 사용되고 있는 주도적인 용어들의 애매성을 지적하고 추론이 논리적으로 타당한가의 여부를 밝히며 혹은 설문자체가 잘못된 것이나 아닌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일을 그들의 과제로 삼고있다.'
=비트켄슈타인이 대표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친것같다.
놀이라는 측면에서 가족유사성을 이야기하며 예술 역시 그렇게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미학의 용어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러한 문제는 비트켄슈타인의 이론으로 정의내릴수 있을것이다.
17. 345p '이러한 점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게임에 비교하고 있다. 언어란 게임에서와 같이 그것이 언어가 되기 위한 어떤 공통성을 갖고 있는것이 아니라 단지 유사성들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수학적기호로 말하면 a,b,c,d등의 여러 비교대상들이 존재할 때 이들을 묶어주는 건 교집합의 공통특성이 아니라 U라는 커다란 틀안에 있다는 것이 그들을 묶어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야구 축구 블록쌓기 공놀이 가위바위보 등의 것들은 어떤 규칙의 공통점이 존재하는것이 아니라 놀이라는 특성안에 존재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이다.
18. 346P '즉 예술은 개방된 혹은 열려진 개념이지 폐쇄된 혹은 닫힌 개념이 아님에도 체계적인 미학에서는 그것을 마치 닫힌 개념인 양 상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현대예술은 예술의 경계점이 모호하고 예술과 일상적인것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고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닫혀있는 예술보다 오늘날 열린예술이 더 발전을 일으킬수 있다는 점에서 나은것 같다.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고 예술작품이 될수있다.
19. 347P '스톨니쯔는 비평가의 진술이 예술작품에 대한 올바른 진술이 되기 위해서는 비평가의 태도가 무엇보다도 미적태도를 취할때의 미적 경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고 비평가의 진술이 고유한 비평의 진술이기 위해서는 그것은 미적 대상에 국한된것이라야 한다는 것이 비어즐리의 주장이다.'
=예술작품에 대한 올바른 비평이 되려면 비평가의 비평ㅇ이 미적 대상에 국한된것이여야 하지 비평가으 ㅣ미적 태도나 경험에 초점을 두어서는 안된다. 비어즐리의 입장이 당연하지만 스톨니쯔처럼 비평가의 성향을 무시하기엔 그것이 주는 영향력이 크다. 현실적으로 비평가의 성향에 맞춰 비평을 받아들여야 할지 이상적으로 미적대상에 국한된 비평을 받아들이는게 더 나은것인지 모르겠다.
20. 349P '이러한 입장에 설 때 과학적 미학과 분석적이 님학이 뿌리로부터 송두리째 붕괴시키고자 했던 것은 일체의 예술철학이 아니라 절대정신이나 궁극적 존재와 같은 초월적 실재를 가정해 놓은 입장에서 예술의 본질을 논해 왔던 형이상학적인 예술의 철학이 아닌가'
=형이상학적 예술철학은 이상에 대한 초월적, 이데아 선에 대한 절대정신 , 신이라는 절대자, 궁극적 존재자에 대한것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들을 피해야만 진정한 미학에 대한 논의가 시작 될 수 있을것이다.
21. 350P '오히려 예술은 인간 정신으 가장 기본적인 지적인 정신활동이 됨으로써 오히려 철학이 예술에 근거를 ㄷ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것이 크로체의 예술철학에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생각이다.'
=어떻게 보면 예술은 경험적이고 그것에서 지각하고 지적 정신활동을 한다하여도 범위가 그 작품안에서 그쳐버리는게 대부분이다. 반면 철학은 이론과 인간의 삶, 현상에 바탕을 두고 좀 더 고차원적으로 파고드는 인식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예술활동은 기본적인 지적 활동일수 있으며 철학은 좀 더 깊은 인식활동이라 할 수있다.
22. 351P '따라서 크로체에게 있어서 물리적인 예술작품의 제작은 예술의 본질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채 순전히 기술적인 활동이 되고있다.'
=크로체에 따르면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나 요즘 예술계의 흐름인 디지털아트라든가 미디어 아트등은 순전히 기술적 활동이 된다.
그러나 예술은 캔버스에만 담겨있는것이 아니다. 옷을 찟는 퍼포먼스도 예술이 되는 시대엔 예술을 도덕과 감정으로 분리시킬수도 없으며 기술과 미디엄으로 부터도 분리될 수 없다.
23. 352P '그에 의하면 인간의 지성이란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발전되어 실재를 가공하기 위해 언어나 상징들을 개발하는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 지성은 궁극적인 실재로서의 생명과정 그 자체를 포착하기에는 부적합한 방식으로 간주되고 있다.'
=지성은 자연스럽게 나타나는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진화과정에서 주어진 것이라는 말이 흥미로웠다. 지성이란 인간이라면 타고나는 당영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원시인들은 지성이 현대인보다 부족했었다. 생존걱정이 없는 현대에 와서는 지성이 본질적 생존문제가 아니라 실력간 생존문제로 업그레이드 되어 경쟁되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24. 353P '오늘날 과학으 발달로 무너져가는 영혼의 신비를 옹호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강력한 보루로서 신봉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그러나 경험적으로 도저히 믿기 어려운 초월적 실재나 근원적 존재등의 개념에 기초한 예술철학을 그렇다고 그냥 받아들일 수가 있을까.'
=영혼의 신비, 형이상학적 주제 역시 예술이 될 수는 있다. 그들은 예술의 한영역에 속하게 될것이며 그 영역은 고대의 예술흐름, 더 이상 추구되지 않고 이어져오지 않는 영역일것이다. 물론 이들이 자신들의 영역 이외의 예술은 예술이 아니라고 함부로 말할수는 없을것이다. 형이상학적 주제가 에술이 될 수는 있겠지만 오늘날 예술 흐름에서는 비주류를 차지할 수 밖에 없다.
25.355P '그럼에도 그러한 인간상을 정상적인 인간으로 간주하여 그것을 이상적 인간상으로 설정한 것이 서구 철학의 기존가정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그러한 편향된 사고를 버리고 인간을 올바르게 파악하는 데서 새로운 철학을 출발시켜야 한다.'
=근원적인 차원의 인간의 모습은 어떨까. 아마 감정에 충실한 모습일것이다.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고 생각을 거치지 않고 있는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 이성을 통한 의식적 활동을 하는것은 근원적 차원의 모습을 넘어선 인간의 모습일것이다.
<10강>
1. 360p '모방자 혹은 이미지의 제작자는 진실된 존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외관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림이나 소묘 및 모방 일반은 그 일을 완수하는 데 있어서 진리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소산을 산출해 내고 있다.'
=진정한 모방자는 외관뿐만 아니라 진실된 존재에 까지 아는 사람이다. 다빈치의 경우 인체를 그리고 모형하기 위해 직접해부학을 공부하였다. 동물의 형상을 그릴때도 마찬가지였다. 단순한 모방자는 외형만 모방하는 것이지만 작품으로서의 모방은 어찌보면 창조보다 더 물리적인 힘을 들여야하고 공부해야 가능해진다.
2. 361p '니체로부터 하이데거에 이르기까지 많은 철학적 문장은 더 이상 수학적 진술과 같은 투명함을 지니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그 속에 순수한 과학적 사유를 초월하는 깊이와 맥박이 뛰며 형식적 논리보다는 상상적 표현의 방식을 취하고있다.'
=이성적이고 정직한 문장에서 감정을 일으키는 문장으로의 변함은 무엇을 의미할까.
시적표현을 철학적 사유에서 쓰면 더 알아듣기가 쉬울까. 아니면 표현하는 방식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것일까
철학의 분야에 예술, 미학이 들어오면서 예술에 속해있던 시의 영향을 받은것같다.
3. 362p '그런 만큼 이것은 타인과의 소통과 사고가 어떻게 지각의 영역 곧 우리에게 진리를 전수해 주는 영역에 자리를 잡았다가 그 영역을 넘어서는지를 보여주는 일이 주요 관심사가 되고 있었던 그의 영역을 넘어서는지를 보여주는일'
=역시 철학자들은 뭔가 다르다는걸 또 한번 느낀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나역시도 다른이와의 소통을 할때 상대의 말을 지각하고 이해하고 조언을 해주거나 부탁을 들어주는 등 외부적 행동으로 반응이 나타난다. 그러나 메를로 퐁티는 어떻게 소통 과정이 지각에 자리 잡았다가 그 지각의 영역을 넘어서는지를 철학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당연히 인식을 하면 외부적 행동이 따르거나 단순한 인식 상태에 머무르거나 하는것이라 생각했는데 역시 철학은 사소한것도 그냥 넘어갈수없다.
4. 363p '이것은 과학이 구성적인 활동이고 그것은 그것이 만들어낸 것만을 다룰 수 있음을 의미하는것이다.'
=과학은 그것이 만들어낸것만 다룰수있다는것은 어떤의미일까 과학은 이성적이며 답이 나오는 학문이다. 구성을 달리 함에 따라 다른 답이 도출되며 과학을 통해 어떤 기계를 만들어 냈다면 그 과학은 그 기계에 한해서만 작동이 되고 파악되는 것이다. 오늘날이야 멀티가 가능해져 리모콘 하나로도 다 작동이 가능하지만 그 시대는 하나의 과학에 하나의 기계만 가능했을것이다.
5. 364p '그리고 이렇게 근원적 존재로 회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이론적인 이유 떄문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자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과학의 자기 이해가 점증적인 기술의 발전을 통해 인간마저 조작할 수 있음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과학모습과 미래 과학의 문제점은 과학 스스로의 자율성이다. 퐁티가 이것을 알고 말한것인지 우연으 ㅣ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날의 상황과 같다. 인공지능이 발달한다면 과학은 그들 스스로 자율적 존재로 변모할것이다. 과학의 발전을 그만두고 본래의 목적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메를로 퐁티는 이야기하고 있다.
6.365p '회화는 세계를 정지시켜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반면 글을 쓰는 사람들은 세계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래서 세계를 액면 그대로 보여주기보다는 그에 대해 응답해야한다. 그러므로 문학은 책임을 가진다.'
=문학, 수필등 글을 쓰는 이유는 시간을 포착하는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왜 포착하는지 상황적 흐름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런과정에서 작가의 세계관 어떻게 사건을 바라보고 있는지, 직접간접적으로 표현된다. 또 그것에 대한 책임이 뒤따른다.
그렇다면 회화는 책임을 가지지 않는것일까. 판메이헤런사건을 보면 책임을 진다는 사실을 알수있다. 정지된 세계를 표현한것이라 해도 하필 왜 그장면이지, 의도가 무엇인지 충분히 질문받을수있다.
7. 366p '그러므로 정확히 말해 신체는 양자가 결속되어 있는 장소이다. 나는 나의 눈을 움직임으로써 보며 내가 하는 움직임 떄문에 본다. 역으로 나의 움직임은 봄에 의해 알려지며 나의 눈은 보기위해 움직여진다 이처럼 신체는 봄과 움직임이 서로 얽혀있고 그처럼 얽혀 있는 가운데 역전성과 반사성의 구조로 되어있는 장소이다.'
=나의 몸은 가만히 있고 눈도 한 곳을 응시하고 있을 때 나는 움직이지 않는 상태이다. 내 눈을 통해 움직이는 사람들 사물들을 포착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일이 아니다. 세상은 계속 움직이기 떄문이다. 이때 신체와 봄은 결속되어 있지 않은 것이 아닐까 지각되고 인식되는것 역시 신체의 움직임에 포함되는 활동일까?
8. 367p '메를로 퐁티가 말하듯 사물들의 외면적 가시성은 내밀한 가시성에 의해 신체속에서 반복되고 있음에 틀림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연은 내면에 있다라고 세잔은 말한바있다. 이처럼 사물들은 내속에 그들의 내적인 등가물을 갖고있다.'
=세잔은 빛의 다양성을 포착하기 위해 똑같은 사물을 오전 오후의 빛의 세기에 따라 여러번 그렸다 이러한 외부적으로 보이는 변화는 내면적으로 변화가였기에 그러하게 보인다는것일까. 사르트르는 구토에서 자신의 일기한구절에 이렇게 썼다. 창밖 풍경은 계속 변화하고 있고 이 변화를 기록하기 위해 일기를 쓴다 하였다. 그런데 진짜 변한건 외부적인것일까 자신일까 고민하다가 바뀐것은 자신이라고 정의내린다. 이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며 기분 나쁜 해결책이기도 하다하였다. 이 둘이 맞닿아 변화하는것같다.
9.368p '그러나 내가 그림을 본다는 것은 내가 빛과 음영과 반사와 색들의 유희를 통해 그것을 바라보는 것임을 뜻한다. 사물은 이 같은 유희를 통하여 생성된다 그러나 사물 자체를 보기 위해서라면 나는 빛과 음영의 유희를 보지 않는것이 오히려 낫다.'
=빛과 음영이 있어야 그림을 볼 수가 있다. 아무리 좋은 그림이고 그 자체로 보는것이 좋은것이라해도 빛이 없으면 그것은 볼 수가 없다. 우리가 시각장애인이라서 점자로 그림을 느낄수 없는 이상 빛은 그림을 방해하더라도 그림을 일단 보기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10. 369p '요컨대 본다는 일 곧 비전이란 전에 비가시적이었던 것을 가시적이게 하는 일이요 회화란 우리의 일상적인 시각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가시적인채로 는 것을 가시적이게 하는 작업이다 가시적인것과 비가시적인것 이것이야말로 메를로퐁티가 회화에 대한 그의 논의를 통해 보여 주고자 했던 대조였다.'
=가시적인것과 비가시적인것은 보임과 보이지 않음 인식과 인식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일까 회화로 옮겨진것은 일상의 비가시적인것이 가시화되는 작업이다. 이렇게 본다면 단순 모방일뿐이라는 회화는 인식의 과정을 통해 사물을 그려내는 것이므로 단순모방이 아니라 인식과정, 지각과정을 거친활동인것이다.
11. 370p '그래서 그는 봄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세계를 그려내는 회화와 과학을 대비시켜 놓고 과학과는 다른 세계를 드러내 보이는회화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것이다. 그렇다면 회화와 철학간에는 구조적 유사성이 있어야한다.'
=회화와 철학간의 유사점, 일단 순수성을 띈다. 자신의 영역으로 가져오려면 그 대상의 본연의 순수함을 파악해야 그려내든 철학적으로 고찰을 하는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회화는 사물을 표현한다면 철학은 그것을 재현하는 것이다. 철학이 그것을 합리적 사고를 통해 사유하듯 회화는 그리는 작업을 통해 사유한다.'
12.372p '따라서 데카르트에 있어서 빛이란 장님의 지팡이에 가해진 사물의 작용이나 다름없는 접촉에 의한 작용이다. 데카르트에 의하면 실제로 장님은 그들의 손을 가지고 본다. 따라서 비전에 대한 데카르트의 개념은 촉각을 모델로 하고있다.'
=과학에서 빛이 어떻게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과정은 빛-사물-눈으로 반사되어 작용되는데 이 반사를 데카르트는 접촉으로 보았다. 장님은 그들의 손, 지팡이를 통해 사물을 바라보고 우리는 사물에 접촉된 빛을 통해 인식한다.
13. 373p '그러므로 데카르트에 있어 유사성은 지각의 결과이지 지각의 근원이 아니다 그런 즉 부재하는 것을 우리에게 현존하게 해 주는 어떤 심적 이미지 조차 존재의 심장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통찰과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인식하기 전에는 그 사물들이 존재하는지 그것들이 유사한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이라면 우리가 인식전에, 지각하기 전에는 이세계조차 존재하는지 확실하게 결론내릴수 없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자기자신조차 무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주체를 외부에서 찾는게 아니라 자기자신을 잡으므로서 외부는 모두 부정될 수 있다.
14. 375p '왜냐하면 비전이란 그것이 좋아하는대로 자유롭게 그것의 기호들을 해독하거나 그들을 자기 앞에 나타나게 하는 사고의 작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다. 즉 비전은 스스로 좋고 싫음의 마음이 일어나 사물에 이입해 해석하여 그대로 보여지는것이 아니다.
기호 법칙은 우리의 마음에 의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세워진것이다. 기호는 단독적인 영역을 가지고 우리가 휘저어 놓을 수 없다.
15. 376p '첫째로 데카르트가 말하는 비전이다 그것은 내가 반성한 비전으로서 마음의 탐구나 판단또는 기호들의 해독인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생각해 볼 수 없는 비전이다. 다음으로 실제로 일어나는 비전으로서 이것은 비전 자신의 신체속에 세워진 사고로서의 비전이다.'
=신체의 움직임을 본다는것은 어떤의미일까 내가 움직이는 내자신의 몸을 이전 하기에 인식되는것일까 남의 신체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내 신체 역시 비슷할것이라 유추를 통해 인식되는 것일까. 내신체는 직접 볼 수 없기에 사유와 공간의 틈이 생기고 사고로서의 비전이 가능해진다.
16. 376p '다라서 우리의 신체적 기관들은 더 이상 사유로서의 비전의 도구들이 아니다 말하자면 이제 신체는 비전의 수단이자 동시에 비전의 주체이다.'
=데카르트에 의하면 우리의 신체기관이나 우리는 사유에 의해 존재가 인정되는, 인정받아야하는 위치였다. 메를로 퐁티는 인정되는 위치가 아니라 인정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 역설한다. 신체는 비전을 가능하게 하는 주체로서의 역할을 한다.
17. 377p '그것은 공간성의 영점 혹은 영도로서 나로부터 출발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그러한 공간이다. 그래서 나는 그 외부의 덮개에 따라 보지 않으며 내부로부터 그 속에 살고 있는 그러한 공간이다. 결국 세계란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것이지 내앞에 놓여 있는것이 아니다.'
=보이는것이 전부는 아니다. 보이는 것 역시 고정된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귾임없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세계는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내주변을 둘러쌓고 있는 환경과 생활 그 자체라는 말이다.
18. 378p '마지막으로 운동은 위치의 변경이 아니라 진동이나 방출이다 그림속에서의 운동은 사진이 포착하는 식을 진행과정의 한 순간을 포착한 결과로서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운동감은 묘사되어 있는 신체 각부분들 간의 내적인 불일치가 있게 될 때 일어난다.'
=진동이나 방출은 내적인 불일치가 있을 때 일어나게 되는것이다. 운동하는 모습을 포착한 사진은 한 다리가 올라가 있거나 손이 움직이고 있는 불균형 상태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가 불안해보여서 더 움직임이 있어보인다. 위치의 변경은 운동이라 할 수없다. 그치만 진동과 방출 또한 동영상이 아닌 그림이나 사진을 통해서는 확실히 알지 못한다.
19. 379p '왜냐하면 현대 회화나 현대철학을 통해서 드러나기는 하지만 역사는 오직 하나의 진행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양자는 그 모두가 과거로부터 요구된 현재의 상황의 입장에서 그것에 대한 의의를 다른 형태로 포착한 것일 뿐이다.'
=역사는 흐름이고 그 흐름속에 회화, 사유가 줄기로 분리되어 나온것이기에 그것은 맥을 같이 하며 역사의 흐름과 함께 각 분파에서 발전을 거듭한다
어떤 분야든 그 사회나 상황에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미학도 그렇고 철학도 마찬가지다.
20. 380p '본다는 행위는 사유의 방식이 아니며 자아에 대해 무엇을 현존하게 하는 방식도 아니다. 그것은 자아가 부재하기 위해 내게 주어진 수단이요 그리하여 내부로부터 일어나는 존재의 분열에 현존하기 위해 내게 주어진 수단이라고 쓰고있다.'
=본다는 것은 어느 목적을 위해 내게 주어진 수단이라고 한다. 비전이 있으므로 자아가 존재를 알 수있고 계속 변화하는 내면속에서 그 것을 파악하고 자아가 살아남게 해준다. 본다는 행위는 직접적으로 어던것을 행하게 연계시켜 주는것이 아니라 그 자체도 독립적이지만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쓸수있는 존재다.
21. 381p '그러므로 메를로 퐁티에 의하면 보편적인 회화라든가 전체로서의 회화라든가 혹은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성취된 회화라는 생각은 아예 무의미 한 말이다.'
=여기서 존재의 열개의 결과라는 것은 인식과 지각의 결과로 회화가 가능하기 때문인것 같다. 아직까진 화가들에겐 세계를 그리는 것은 보이는데로 수동적으로 그리는 것이다. 물론 회화에서 예술의 개념으로 넘어가면 세계를 이끌어가는 형태로 변화하지만 말이다. 회화는 세계의 모습만을 바라보고 모습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에 회화 그 자체로서의 보편적 회화 전체로서의 회화는 무의미 하다고 한것이다.
22.382p '왜냐하면 회화에 있어 진보를 말할수없는 것은 어떤 운명이 우리를 뒤로 잡아당기고 있기 떄문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 최초의 회화가 미래의 가장 먼곳에 이른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회화는 진보가 아니라 과거를 확인하는 작업, 과거를 뒤돌아보는 행위가 아닐까 물론 회화가 모방작품이라는 전제에서 말이다. 회화라는 본질이 가지는 특성인 재현이라는 면에서 앞으로 나아간다기 보다 사오항들을 다시 과거로 회기시켜 연상한 것을 작품으로 옮긴것이라는 한계점을 가지기 때문이다.
23. 383p '즉 지각에 관련된 입장에서 인식의 자격이란 무엇인가, 만약 이 진리가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인것이라고 한다면 이 공통서의 근거는 무엇인가라고 하는 문제들이 모두 역사에서 그 공통적인 해답을 찾고있다.'
=사람들은 아무리 멀리 떨어져서 살고 있다 하더라도 일정부분 비슷한 사회와 삶을 유지하며 살아가는것을 살펴볼수있다. 우리와 반대편나라와 우리나라는 교류가 없었던 시대에도 각자 집을 짓고, 가축을 키우고 계급이 나눠져잇고 일을하며, 살생을 금하는등 비슷한 삶을 영위하고 있엇다. 진리 또한 마찬가지인것같다. 비슷한 삶을 통해 비슷한 경험을 하고 깨달음을 얻고 살생을 금하고 거짓말을 하면 안되는 등, 진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통용된다.
24. 384p '이것은 철학이 말한것을 말할 수 있음에 비해 회화는 그린것을 그릴 수 없음을 뜻한다.'
=철학은 말의 예술이고 회화는 비전의 예술이다 말은 계속 돌고 돌며 범위가 제한적이지 않다. 말한것을 다시 논의할 수 있고 그 내용을 또 말할수있는 등 이어질수있다. 반면 회화는 그린것은 그것으로 끝난다. 생산적인 활동이라기 보다 소모적인 활동이다. 그린것을 다시 그리면 모방품이 되고 그것을 그림 연습으로서는 의의를 지니나 회화에 도움이 되는 활동은 아니다. 회화는 계속 새로운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철학이 계속 파고드는 분야라면 회화는 옆으로 넓게 퍼져나가는 분야이다.
25. 385p '이 점에서 우리는 말해질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켜야 한다는 비트겐 슈타인을 상기하게 된다. 이것은 비트겐슈타인 역시 메를로 퐁티의 말을 빌리자면 침묵의 목소리로 표현될 수 밖에 없는 보다 깊은 경험의 차원이 있음을 주장하고 있는 말이다.'
=말해질 수 없는것, 지각 결과에 대한 확신이 없거나 지각이 되지 않은 사물에 대해 말할 떄에는 말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알 수 있고 지각 가능한 것은 일단 말을 하여 확실하지 않아도 논의를 하다 보면 해답에 가까워질텐데. 인지할 수조차 없는것에 대한 것은 침묵이 더 나은것같다. 공자도 귀신이나, 신 사후의 세계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고 알 수없는것에는 논의 자체를 하지 말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