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규님 페북에서)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관련해서, 많은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착각하고 있는 게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핵심은 정규직/비정규직보다도 대기업/중소기업 간의 임금 격차다. 이건 정이환 선생의 연구에서부터 이미 나온 이야기다. 그 뒤로도 권현지 선생 등 많은 노동시장 전문가들이 이야기한 것이고.
그냥 간단한 데이터를 하나 제시하겠다. 올해 4월에 발표된 2019년 기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대기업 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을 100으로 봤을때 대기업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은 64.5이고, 중소기업 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은 57.0이며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은 42.7이다.
게다가 이건 300인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즉 300인 이하는 모두 중소기업으로 분류한 것인데, 사실 100인 이상 정도만 되어도 중소기업 중에선 꽤 나은 수준이다. 100인 이하를 기준으로 했다면 기업간 임금 격차는 더 커질 것이다.
이게 뜻하는 바가 뭔가? 중소기업 정규직은 대기업 비정규직보다도 훨씬 열악하다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는 대기업 비정규직 이전에 중소기업 정규직이다. (대기업 비정규직은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는 건 아니지만, 중소기업은 정규직조차 그보다 훨씬 더 약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운동조차 그간 이른바 대기업이나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더 집중했다. 물론 이것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은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건 기업별 노조 체제로는 해결이 거의 어렵다. 대기업이나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알아서 임금인상을 자제하는 등 이른바 '양보'를 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그렇게 해서 대기업에서 '여유'가 생겨본들, 대기업이 알아서 중소기업에 하청단가를 더 쳐주는 등 중소기업과 상생한다는 보장이 없고 중소기업의 자본가 역시 그걸 중소기업 노동자들에게 준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즉 개별 기업 단위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어떤 노력도, 사용자 및 노동자가 다르고 직접적인 근로계약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를 해소하기 어렵다.
그런데 여기 대해 기본적인 해답은 이미 나와있다. 지난 여름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이 요구한 핵심 사안이 무엇이었는가? 원청이 직접 나와서 교섭하라는 것이었다. 원청이 교섭하지 않는 한 하청기업과 교섭해봐야 답이 없다. 기성금이 뻔히 정해져 있어서, 하청기업은 실제로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댓가를 쳐줄 지불능력이 없다.
그리고 안전운임제의 사례도 있다. 부분적으로 개선할 점이 있다지만 안전운임제는 원청인 화주와 운수사업자, 화물운송 노동자들이 함께 참여하여 운임을 결정한다. 즉 원청과 하청기업 및 하청노동자가 함께 참여하는 구조다.
결론적으로 원청 대기업과 하청 중소기업의 노사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산별 교섭이 이루어져야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 즉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해결될 수 있다. 당장 전면적인 산별 교섭이 어렵다면 하다못해 원하청 관계로 묶여있는 단위에서부터라도 원청과 하청의 노사 모두가 참여하는 교섭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게 바로 노조법 2조 개정의 핵심 중 하나이기도 하다. 원청 사용자를 단체교섭의 대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 즉 노조법 2조 개정은 산별 교섭이 이루어지기 위한 일종의 발판이기도 하다. 더 좋은 것은 대기업에게 산별 사용자단체 구성 및 산별교섭을 의무화하는 것, 나아가서 여기서 이루어진 산별교섭의 결과 즉 단체협약의 효력을 비조합원에게까지 확장하는 것이지만 (프랑스 등은 이렇게 한다) 당장은 그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적어도 원하청 공동교섭 정도는 의무화해야,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해 말로만이 아니고 약간이라도 노력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거 하나도 안 하면서 무슨 얼어죽을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냐? 사기꾼 같으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