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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노인 인구와 더불어 다문화가정, 결손가정, 조손가정이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사회복지 관련 직업의 수요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 그중 식물을 매개로 피상담자의 아픈 마음을 보듬고 치유해주는 이들이 있다. 바로 ‘원예치료사’다. 자기 계발과 부수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주부들 사이에 인기라는데…. 원예치료사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과 하는 일을 알아봤다.
노인을 대상으로 한 재활센터에서 봉숭아 꽃물 들이기가 한창이다. 느린 동작으로 봉숭아 꽃잎을 찧고 손톱에 가지런히 올리다가 그토록 말이 없던 한 할머니가 활짝 웃었다. 그리곤 어린 시절 할머니 가슴속에 꽁꽁 묻어둔 응어리를 풀어냈다. “수업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이에요. 6개월 내내 한 마디도 안 하던 할머니가 웃으며 말씀하시는데 제 가슴도 먹먹했죠.” 도시원예치료연구소 박여원 소장의 말이다. 사회가 급변하고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가족에게 상처 받거나 우울증으로 신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에 따라 사회복지 관련 직종 또한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 “노인 인구와 이혼율, 다문화가정 등이 증가하면서 사회복지와 연계된 각종 치료사의 수요가 전반적으로 늘고 있다”고 한국고용정보원 직업연구센터 박상철 부연구원은 말한다. 음악 치료, 미술 치료 등 다양한 치료사들이 속속 등장하는 가운데 꽃과 식물을 좋아하는 주부나 전업을 꿈꾸는 직장인들 사이에 ‘원예치료사’가 주목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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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예치료사=플로리스트? No! 원예·사회복지 전공자면 더 좋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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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원예치료복지협회 조원근 사무총장은 “10여 년 전 원예 치료가 국내에 처음 도입을 때 수강자들 중에는 ‘원예 치료’라는 말 때문에 ‘식물을 치료하는 직업’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말한다. 게다가 최근에는 드라마나 언론에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이 소개되면서 박 소장에게 “꽃꽂이 자격증이 있으니 바로 원예 치료 수업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묻는 이도 있다고. 물론 이는 모두 잘못된 생각이다. 박 소장은 “수업마다 식물을 다루기는 하지만 플로리스트일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주요 활동이 새싹채소 심기, 쪽파 파전 만들기, 향주머니 만들기 등 수업마다 식물을 다뤄야 하기 때문에 식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 조원근 사무총장은 “수강자들이 대부분 꽃이나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며 “취미도 살리면서 부업으로 도전하는 주부나 전업을 계획하는 직장인들이 대부분”이라고 전한다. 원예 전공이 필수 사항은 아니지만, 항상 식물을 다뤄야 하기 때문에 전공자에게 유리하다. 사회복지 전공 또한 주 활동 무대가 사회복지 기관이다 보니 유리한 것이 사실. 하지만 “전공자에게 우선권을 주거나 특혜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조 사무총장은 말한다. 원예 치료는 1997년 한국원예치료연구회가 발족되면서 국내에 처음 도입되었다. 이듬해 대학원 과정이 개설되었고, 2000년 국내 최초로 원예치료사 2급 자격증이 발급되면서 ‘원예치료사’라는 직업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원예치료사 1천300여 명이 병원, 노인·지적장애 관련 기관, 보건소, 방과 후 교실, 사회복지시설 등 전국 1천200여 기관에서 활동 중이다. 원예 치료 프로그램은 크게 4개 영역으로 구분된다. 인지장애나 치매 노인·신체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재활 프로그램, 정신장애와 알코올의존증·ADHD·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상담 프로그램, 조손가정이나 생활보호대상자·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예방 프로그램, 사회교육과 아동교육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박 소장은 “종전 프로그램이 재활이나 상담 쪽에 집중되었다면 최근에는 수학 놀이와 연계한 교육 프로그램이나 과학 탐구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있다”면서 원예 프로그램의 저변 확대와 그에 따른 수요는 점점 더 증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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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봉 월 100만 원 선, 임상과 추후 활동 도울 수 있는 곳 선택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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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예치료사는 ‘원예복지사, 원예치료사 2급, 원예치료사 1급’으로 구분한다. 우선 대학 부설 평생교육원 등에 개설된 원예치료사 과정을 수료하고, 2급 자격시험 합격 후 급수별로 요구하는 워크숍과 임상을 거쳐야 한다. 학회 논문 발표 또한 2급은 1건, 1급은 2건 이상을 요구한다. 조 사무총장은 “1급 자격을 취득한 사람은 전국에 100여 명, 2급 취득자는 1천200여 명”이라며 “현장에서 활동하는 대부분 2급 자격이고 1급 원예치료사는 강의나 슈퍼바이저로 활동”하고 있다고 전한다. 또 2급과 1급이 각각 60회와 200회 이상 임상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취미 생활에 그칠 것이 아니라면 임상과 추후 활동을 도울 수 있는 곳을 선택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주간보호센터와 학교 등에서 원예치료사로 활동 중인 허해숙(47·경기 파주시 적성면) 원예치료사는 원예치료사의 길을 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임상과 워크숍이에요. 임상을 통해 수업의 노하우도 얻지만, 자신이 얼마만큼 열정적이고 이 일을 잘할 수 있는지 보여줘야 합니다.” 때문에 자격증 취득만 강조하고 추후 활동을 도울 수 없는 곳은 피해야 한다. 허 원예치료사 역시 임상 기간에 강의 제안을 받아 일을 시작한 케이스. 수강은 대학 부설 평생교육원에서 수강 가능하다. 현재 고려대학교, 건국대학교, 단국대학교를 비롯하여 전국 20여 대학에 개설되었다. 자격증 시험은 해마다 1월과 7월에 실시된다. 수강은 2급의 경우 한 학기 과정이며, 재료비 포함 60만~70만 원으로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수입은 시간당 강의료가 책정되며, 위탁 기관에 따라 다르지만 월 100만 원 선이다. “제 경우는 2급으로 활동하고, 위탁 기관에 따라 시간당 10만~15만 원을 받아요. 일정하지는 않지만 월 평균 100만~150만 원이 되는 셈이에요.” 허 원예치료사의 말이다. 대부분 프리랜서로 활동하기 때문에 취미도 살리면서 육아와 병행할 수 있어 아이를 키우는 주부들이 자기 계발을 하기에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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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와 소통하려는 마음이 우선되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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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예 치료의 주 대상은 치매 노인이나 장애인, 알코올의존자, 심리적으로 방황을 겪는 청소년들이 대부분이다. 마음에 상처를 당한 이들이기 때문에 결코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원예치료사가 먼저 다가가고 마음을 오픈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가족에게 버림 받았다고 생각하는 할머니가 계셨어요. 말씀도 안 하고 웃지도 않으셨죠. 수업할 때마다 그분을 꼭 제 옆에 앉게 했어요. 스킨십도 자주 했지요. 그랬더니 어느 날인가 말문을 여시더라고요. 어찌나 좋은지 ‘나이스!’ 하면서 소리쳤어요.” 허 원예치료사가 전하는 경험담이다. 마음의 상처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게 원예치료사가 할 일. 따라서 “봉사하는 마음과 상대와 소통하려는 마음이 자격증을 따는 일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허 원예치료사는 강조한다. 또 하나, 식물 심기를 비롯한 원예 활동이 주 수업이다 보니 수업의 소재가 되는 재료를 원예치료사가 직접 구매해야 한다. “무거운 자재를 운반하는 일이 종종 있다 보니 때론 ‘내가 짐꾼이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재료를 구입하기 위해 뒤늦게 운전면허도 땄다는 허 원예치료사. 수업의 재료 중에는 가벼운 식물도 있지만 흙이나 화분, 돌처럼 무거운 것들도 적지 않아서 건강한 체력이 요구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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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 Interview 원예치료사 허해숙 “취미 살리며 즐겁게 일하니 행복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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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예치료사로 활동한 계기는? 유치원 교사로 활동하다가 13년 동안 서점에서 매니저로 일했다. 서점에서 일하며 원예 치료에 관한 책들을 접했다. 식물을 좋아해서 취미도 살리고 나중까지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2004년(당시 41세) 서점을 그만두고 사회복지를 전공했다. 그 후 평생교육원에서 원예 치료 과정을 이수했다. 2급 자격증 취득 후 임상 실습을 하던 중 강의가 들어와 현재 중학교 상담복지실, 주간보호센터 등에서 프리랜서로 일한다.
강의 자리를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지역 내 봉사 활동도 열심히 하고, 문화센터 등에서 인맥도 형성했다. 자격증을 땄다고 해서 곧장 강의 요청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자격증 취득 후 워크숍 등의 활동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열정적이고 성실한지 보여주는 일이 더 중요하다.
원예치료사라는 직업의 매력은? 사람은 본능적으로 식물을 좋아한다. 참으로 신기한 게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아도 식물을 통해 교감하다 보면 마음이 순화된다. 10~12회 수업을 하고 나면 수업을 하던 사람들이 저절로 활짝 마음의 문을 연다.
주부라서 유리한 점이 있다면? 시어머니가 뇌졸중으로 20년간 병상에 있다 돌아가셨다. 치매 노인들의 재활 치료를 할 때면 어머님 생각에 눈물부터 나온다. 치료가 필요한 이들에게 다가갈 때도 좀더 열린 마음으로 손 내밀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겪은 갖가지 에피소드는 중학교 상담복지실에서 수업할 때 도움이 많이 됐다. 아이들에게 비슷한 경험담을 들려주면 훨씬 빨리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온다.
월수입은? 시간당 10만~15만 원을 받는다. 월 평균 100만~150만 원 선이다. 기관마다 강의 계약이 끝나면 재계약을 해야 하는 등 수입이 일정하지는 않다. 새로 일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욕심을 내기보다는 봉사하는 마음으로 임하기 바란다.
원예치료사로 활동하면서 가장 보람된 점은?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이들이 6개월쯤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스스로 마음을 열고 다가온다. 그들이 웃고 말을 하기 시작할 때가 가장 기쁘다. 따뜻한 마음으로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큰 보람이다. | |
| 내일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