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까 초등학교 2학년 아니면 3학년
때였지. 아빠가 살던 집은 볏짚으로 지붕을 만드는 아담한
초가집이었단다. 그런 초가집은 2년 혹은 3년마다 지붕을 새로
만들곤하였지. 왜냐하면 빗물과 햇빛으로 인해 볏짚이 썩기
때문이란다. 그렇게 잿빛으로 변한 초가지붕을 동네 아저씨들이
여럿 모여 새로운 지붕으로 만들 때는 아빠의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볏짚으로 이엉을 만들고 석가래를 만들어 새롭게 단장한
초가 지붕을 보노라면 마치 새집으로 이사온 기분이었거든.
그렇게 갈아낸 썩은 볏짚에는 하얀 굼벵이들도 있었지.
그러던 어느 해엔가 초가지붕을 기와지붕으로 바꾸는 공사가
시작되었지. 그것은 동네 아저씨들의 솜씨로는 하기 힘든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아저씨들이 하는 일이었어.
기와를 다 올리고 마지막으로 처마 끝으로 흘러내리는 빗물을
받기 위해 양철(함석이라고도 함)로 된 빗물받이를 만들곤 하였는데
아빠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아저씨들이 일하는 광경을 바라보았단다.
그런데 어떤 아저씨가 철판을 자르는 가위로 커다란 함석판을
이리저리 오리더니 커다란 새를 여러 마리 만드는 것이었어.
날개와 부리를 나름대로의 모양으로 오려서는 납을 녹여가며
붙이면 양철 새가 만들어지는데.
양철로 만든 새의 입은 커다란 구멍을 가지고 있어서 빗물을
한 곳으로 모아 땅으로 떨어지게 하는 역활을 하는 것이었지.
드디어 아저씨는 양철로 만든 새를 처마 끝에 매달면서 아빠에게
이렇게 말 하였지.
'이 새는 10년이 되면 하늘로 날아 간단다.'
아빠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동네 친구들에게 새롭게
단장한 집을 자랑해야지 하는 마음에 들떠있었단다.
또 양철로 만든 새는 집집마다 어떤 것이 더 멋있는지 비교하기도
하는 재미나는 풍경 중에 하나였어.
그리고 해마다 기와지붕 속에 둥지를 짓고 사는 후투티라는 신비한
새를 보면서 그 아저씨의 말은 잊고 말았단다.
그렇게 십 수년이 지나 아빠가 청년이 된 어느 날이었어.
아빠는 문득 처마 끝의 양철로 만든 새들을 바라보았단다.
양철 새는 빗물에 거의 다 녹슬어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셔져 있었지.
아빠는 그 때에서야 십 수년 전, 양철 새를 만들던 아저씨의 말이
떠올랐지.
'이 새는 10년이 되면 하늘로 날아간다'라는
아저씨의 말이 생각난거야.
정말이지 양철로 만든 새는 빗물과 따가운 햇살에 녹슬고
부셔지면서 하나 둘 날개가 없어지고, 부리가 없어지고, 몸이
사라지면서 하늘로 날아간 것이었지.
아빠는 그 날 뒤뜰이며, 집안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양철로
만든 새들을 바라보았단다.
그것은 분명 해마다 기와지붕에 둥지를 틀고 나타나는 후투티란
새보다 아름다운 새였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따가운 햇살의 여름철에도... 심지어는
바람이 심하게 부는 태풍 끝에도.. 혹은 사람들의 왕래가 뜸한
뒤뜰의 한적한 처마 끝에서도 양철로 만든 새는 자기 자리를
지키며 말없이 자기 할 일을 다하고 있었던 거야.
장마철 억수로 내리는 빗물을 고스란히 모아서 자기 입으로 퀄퀄
토해내고.... 드디어 온 몸이 녹슬고, 볼품 없어지는 날...
양철 새는 그렇게 소리없이 하늘로 날라 간 것이지.
아빠는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아름다움이란 결코 외면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자신을 희생해야 얻어질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단다.
아빠는 동준이도 한 마리 아름다운 새가 되어지길 바란단다.
그것은 비록 남들이 알아 주지 않아도, 다른 이들이 볼 수 없는
곳에서도 묵묵히 자기 할 일을 다하는 것이지.
외모가 아니라 내면으로 아름다움을 지닌 그런 사람이지.
아빠는 가끔 그 양철 새가 그리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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