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끄러운 살얼음 의상 능선 바윗길, 앗!
2월의 산길은 생각보다는 훨씬 미끄럽고 위험했다. 봄이 저만치 온다는 입춘 우수도 지나서 가벼운 마음으로 오른 북한산 북쪽 끄트머리 백화사에서 의상봉에 오르는 수직 바위길은 쇠줄을 잡고 오르더라도 해뜨기전 얼었던 바위 사잇길이나 반질반질 윤이난 바위 윗길 모두 미끄러워 위험하고 명절 고속도로 정체되 듯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물찬 바위 오를때는 말여 기장이 문제단 말여. 요즘 애들이사 영양가가 넘쳐 발이 길지만 우리 못살던 시대의 낀세대는 너무 짧아. 다음 쇠막대까지 발을 옮겨야 하는디 짧단 말여. 가랭이 찢어져”
처음에는 농담 반 진담 반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갈수록 더해가는 난이도에 ‘진짜루 장난이 아니다.’ 심각해져간다. 모두들 신중하게 한발 한발 봉우리를 향해서 안간힘을 쏟는다. 중간에 기다리는 틈새에 모두들 운동화 끈을 다시 한번 옭재워 매고 배낭 앞 멜빵도 단단히 묶는다.
“장갑이 미끄러질 염려가 있어요. 손이 쬐끔 시렵겠지만 맨손으로 쇠줄을 힘껏 잡으세요. 발이 미끄러지더라도 손으로 버텨야 합니다.”
이래서 겨울에는 바위가 없는 흙산에 눈이 쌓인 길을 뽀드득 싸부작 밟는 저기 태백산 소백산 가리왕산 개방산 선자령을 주로 가는 가 싶다. 북한산 바위는 쉽사리 그품에 오를 수 있게 가슴을 허락하지 않는다.
“북한산 북쪽 특히 산성 안에는 눈이 와서 쌓이면 잘 녹지 않습니다. 낮에 잠간 녹았다가도 다음날 아침이면 얼어 붙어 미끄럽습니다. 거기에 사람들이 지나간 족적따라 엄청 미끄러운 산길이 되는거죠.”
아마 예상 시간보다 거의 두배를 소모하고 가까스로 의상봉 정상에 올라왔지만 왼쪽 정상부근이나 오른쪽 비봉 능선은 안개에 가려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제 일단 의상 능선 시작길에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일곱 봉우리를 넘는데 봉우리를 피해 허릿길로 가더라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초보자들에게는 쪽팔린 소리가 되겠지만 오늘 상황이 그렇다. 이렇게 미끄럽지 않아도 의상 능선 한번 타면 제법 베테랑이다, 프로다라는 말은 듣는 코스다.
“북한산에서 가장아름다운 능선으로 알려진 의상능선입니다. 저아래 백화사나 산성입구에서 시작해 여기 의상봉을 거쳐 가사당암문, 용출봉, 용혈봉, 증취봉, 부왕동암문, 나월봉, 나한봉, 716봉, 청수동암문, 문수봉까지 이어집니다. 중간 지점엔 큰벼락 내렸던 봉우리에 소나무가 말라 죽은 흔적이 있죠.”,
다시 마음을 가라 앉치고 서둘러 능선길을 거쳐 봉우리를 채는데 가는 봉우리마다 아까 맨처음 고생했던 미끄러운 길의 재판이다. 나두 열댓번 이곳을 거쳐 갔지만 오늘 상황이 제일 어려웠던 길 같다. 그 언젠가 차라리 눈이 쌓여 아예 아이젠 매고 갔던 길이 더 나았던 듯하다.
“좌우로 아름다운 바위들이 많이 있는데 감상 못 시켜드려 지송합니다. 지는예 여기 오면 항상 강아지 바위 그 귀여운 모습을 보고 기분이 좋아 속세에 가면 로또 몇장씩 사곤 합니다.”
점심이라기 보다는 간식을 챙겨오라는 전갈이 있었으나 산위에 푸짐한 먹거리들이 펼쳐진다. 과메기 20인분을 막걸리와 함께 하며 지금까지의 위험은 저멀리 던져버린다. 다시 출발하는데 역시 마음이 놓이질 않는다. 모두들 긴장 또 긴장의 연속이다.
길은 멀고 시간은 지체되고 스물 댓명이라는 프로 등산객아닌 등산인들은 선두와 후미로 갈라져 기다리는 사람이나 쫒아 가는 사람들이 되고 태백산맥이나 지리산 빨치산 영화 찍는 전사가 되는 듯 싶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 사실 이런 미끄러운 상황이 있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습니다. 그러나 의상 능선이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고 계절 마다 변화 무쌍하고 아침 저녁이 딴모습입니다. 욕심 낸다면 매월 한번씩 오면 그 변화를 즐길 수 있죠”
대남문을 넘어 남쪽 구기동 계곡으로 내려 오는데 아직까지 아이젠 그대로 메고 오는 사람들 너무 많다.
“대남문 고개 넘어 남쪽에는 눈이라고는 없습니다. 그저 고실고실한 바위나 계단이 있을 뿐이죠. 아이젠 벗으시죠.”
두모습의 북한산은 계곡 이리저리 옮겨 내닫는 조그만 다리 7개를 건너 하산주가 기다리는 산울림에 도착할 때 쯤 안개가 걷힌 청아하고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