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포행 막차 / 박철
나는 요즘 천체물리학에 미쳐있다.
나는 내가 헛된 공상에 빠져 있다거나 한 때의 무료를 달래기 위해 가뭇없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요즘 우주나 하늘에 미쳐있다고도 말하고 싶지 않다. 물론 미쳐있다는 것이 내 스스로 느끼고 판단하며 어쩌면 그런 열정에 쌓이고 싶은 비원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하늘이나 공상이라는 말은 어쩐지 미숙과 미완을 떠올리게 하며 이는 가뜩이나 위축되어 있는 나에게 찬물을 끼얹는 일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사실 미쳐있다지만,그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가 없다. 체계적인 학습이 되어 있지 않은 나로서는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것이 학문이나 논리에 합당한 일인지조차 정확히 모르고 있으며 또한 그저 천체물리학에 미쳐 있다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천체물리인지 아니면 거기에‘물리’자를 붙여주어도 되는지 모를 정도이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저 신비스러운 우주의 천지창조에 미쳐있다. 아,천지창조라는 말도 무슨 종교색을 띠어서 불만이다. 하여튼 요즘 나는 그쪽에 미쳐있다 라고 말하고 싶다.
원래 나는 물리학과는 담 쌓을 일조차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내가 하늘의 별과 우주의 생성,그리고 생명의 신비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하다니. 이 얼마나 위대하고 또 대견스러운 나인가.
나는 한때 어느 출판사에서 기획위원이란 직함을 가지고 1년 남짓 직장생활을 했었다. 그러니까 벌써 8개월 전의 일이다. 출판계의 다크호스로 불리던 그 출판사는 해방 50주년에 맞추어 일본에 관한 책을 발간해서 떼돈을 벌어들인 신생 출판사인데 사장은 그 여세를 몰아 사세를 확장하고 네 명의 기획위원까지 두어 더욱 일을 벌일 판이었다. 기획위원은 각자의 전공에 맞게 영화,과학,민속,아동으로 갖추어졌으며 내가 맡은 부문은 아동이었다. 그러나 기획실이 만들어진지 반 년이 지나도록 별반 성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은 각자 업무를 맡은 기획위원 탓이라기보다 사장의 문제였다. 돈을 벌어들인 후 사장은 시내에 중형 서점을 개업하고 또 외국잡지의 한국판을 준비 중이었는데 두 사업에서 모두 손실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었다. 일 주일마다 열리는 기획회의에서 사장은 난감해 하다 못해 이제 애처로운 표정까지 지을 정도였다. 기획물이란 시리즈를 말하는 것이고 시리즈는 보통 한 분야에서 열 권 이상의 책을 출간해야 하는데 애써 만들어놓은 기획안에 사장은 성큼 싸인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저 매주 월요일 아침 회의를 마치고 일어서며 어색한 몸짓 속에 주고받는 무언의 대화는 바로 쉽게 번 돈은 쉽게 나간다는 명언 하나였다.
영화를 맡은 사람은 일찍 눈치를 채고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얼굴만 비치면서 월급만 챙길 뿐이었으며 민속을 맡은 사람은 자료를 수집한다고 늘 지방으로 떠돌았다. 과학과 아동만이 전화벨 소리조차 별반 없는 기획실에 덩그러니 앉아 시간을 보냈다.
과학 부문을 맡은 사람을 그냥 과학이라 부르자. 과학은 일류대 물리학과를 나와 마지막까지 복직되지 않은 해직교사의 한 사람이었다. 과학은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늘 손바닥만한 문고판 원서를 들고 나타나 하루종일 고개를 숙이고 책만 보다가 조용히 문을 열고 돌아갔다. 참으로 심심한 과학이었다. 과학과 나는 같은 방을 쓰면서도 한 주일에 한두 마디 주고받았으며 점심도 각자가 해결할 정도로 먼 사이였다.
그때도 나는 잡지에 들어갈 삽화를 그리고 있었다. 미대를 졸업한 지 5년,그 동안 발표된 삽화는 잡지에 실린 소설 서너 편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이제 한 명의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해도 될 만한 연륜이라 생각하고 미리 그려 두었던 몇 컷을 들고 아동물 전문 출판사에 보였다가 돌려받은 뒤였다. 나는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들은 바로 흔히 있는 일이라니까. 그때까진 참을 수 있는 일이었다. 삽화가가 청탁없이 그리는 그림이란 언제 열매 맺을지 모르는 나무의 씨를 뿌리는 농사와도 같다. 그래도 나는 쓰여질 곳 없는 신작을 그리느라고 땀을 흘렸다.
여의치 못한 나의 사정을 눈치 챈 과학은 그래도 펜대를 놓지 않는 내게 행여 방해라도 될까봐 조심스럽게 사무실을 오고 갔다. 과학은 바로 미세한 곳을 탐구하는 학문인 것이었다. 나는 과학의 그런 조용한 배려를 고마워하며 밤 늦도록 사무실에 홀로 앉아 다시 스무 편의 단편 컷과 두 편의 시사만평을 그렸다. 그리고 원고가 되면 한번 가져와 보라던 작은 출판사에 떨리는 마음으로 그 원고를 들고 찾아갔다. 그러나 편집장으로 있는 후배가 다시 그 원고를 들고 나를 찾아왔을 때 나는 이제 더 이상 갈 곳은 없다고 생각했다. 시작해보지도 못한 프리랜서로서의 일이 개점 폐업하는 순간이었다. 내 청춘의 여린 은하수에 중력이 붕괴되고 검은 구멍이 뚫어지는 찰라였다. 그리고 가혹한 좌절과 폭음의 날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막다른 골목에서 헤매이고 있던 어느 날,영민한 과학이 정말 오랜만에 내게 말을 건네왔다.
“일 끝나고 시간 있어요?”
얼마나 뜻밖의 이 한마디였는지 모른다. 나는 그가 나에게 무슨 좋지 않은 감정이라도 있는가 하여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을 정도였다.
“딴 약속은 없는데요.”
약속이 있어도 물리쳐야 할 판이었다. 다른 직원들이 일하기 싫어 몸을 비비꼬고 있을 저녁 무렵,과학은 내게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있듯 그렇게 엄숙하게 술자리를 청해왔다. 그리고 그 한마디는 마침 기획실을 폐쇄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던 차라 마치 마지막 이별의 한마디와도 같이 들렸다.
“웬 술을 여기서…….”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 슬며시 사무실을 빠져나간 과학이 대뜸 소주 두 병과 순대를 사가지고 들어온 것이다. 그와 처음 술자리를 하는 나로선 실망에 앞서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우리는 4층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간단하게 술자리는 만들어졌다. 그리고 예상과는 달리 과학의 입에서 마지막이라거나 곧 직장을 옮긴다든지 하는 따위의 말은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자리는 소심한 과학이 그저 내게 베푸는 최대한의 배려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림이 잘 안 그려집니까?”
과학답게 술잔을 움켜쥔 손놀림도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보였어요?”
나도 덩달아 목소리를 낮추었다.
“가끔 하늘이 무너질 듯이 한숨을 내쉬곤 했잖아요.”
“그랬습니까?”
내가 스스로를 못 믿겠다는 듯이 그를 향해 고개를 들자 과학은 물 마신 병아리처럼 더욱 고개를 쳐들어 밤하늘을 한 번 바라보고 다시 술잔을 움켜쥐었다. 생각보다 퍽 익숙한 술솜씨였다. 어느덧 하늘엔 별들이 반짝였고 그 아래 멀지 않은 곳에서 네온싸인이 지리멸렬하게 번쩍였다.
“인간이…… 하늘이 무너진다고 과학적으로 따지기 시작한 것은 겨우 1980년대에 들어서입니다.”
서로 술잔을 나눈 지 30여 분이 지나서였다. 벌써 소주 한 병이 다 비워진 상태였다. 그 동안 우리는 말없이 술잔을 홀짝이며 서로의 눈치를 살피는 꼴이었다. 그러다가 과학이 취했는지 그렇게 엉뚱한 말을 던졌다. 취하지 않고서야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과학자도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을 합니까?”
“빅뱅이라고 들어봤지요.”
“아,예 빅뱅.”
“빅뱅운동에서 은하들이 어떤 비율로 속도를 잃어가는지 1980년대 들어서서야 그 측정 방법을 결정지을 수 있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거지요.”
“……”
“자신을 너무 크게 생각하지 마세요.”
대뜸 그는 또 그렇게 말을 건네왔다. 정말 뜻밖의 말이었다. 그러나 왠지 그 작은 목소리에 불쾌한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막연했지만 분명 그로선 뭔가 의미를 담고 내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과학이 갑자기 다시 목을 쳐들더니 밤 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리온자리 가운데 베텔주스라는 알파성이 있어요. 지구에서 600광년이 떨어진 별이죠. 지금 우리가 망원경으로 그 별에서 누군가 술잔을 움켜쥐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그건 600여 년 전 징기스칸이 세계를 제패할 당시의 모습입니다.”
“녹화 방송이라도 한단 말입니까?”
“빛방울이라고 들어봤습니까? 저 별에서 지금 누군가 글을 쓰고 있다면 서기 2600년 쯤에 우리의 후손들이 그 모습을 보겠지요. 단 한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빛은 600광년이란 먼 거리를 달려오는 겁니다.”
“600광년이라…….”
나는 그때까지도 과학이 나의 그림에 대한,현실욕에 대한 조급성을 넌지시 질타하고,아울러 격려를 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물론 나는 1광년의 거리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존재였다.
“또 나가려고 그래요?”
“……”
엎드려서 궁둥이를 흔들며 걸레질을 하던 아내가 눈을 치켜뜨면서 이맛살을 구겼다. 나는 뒷덜미를 문지르다가 시계를 바라보았다.
11시 35분. 버스가 돌아올 시간인 것이다. 아내는 이부자리를 깔기 위해 걸레질을 하면서 나를 이리저리 밀치더니 정작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다시 신경질을 부리며 들었던 걸레를 놓았다. 숨이 차는지 여윈 어깨가 가늘게 들썩였다.
“하루 정도는 쉬어도 되잖아요. 그 양반도 피곤하겠네.”
“……”
“몰라요. 언제 당신이 내 말 들었수. 문이나 제대로 닫고 나가요.”
밖은 제법 찬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나는 옷깃을 여미고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골목 끝의 구멍가게에서 아직 전등빛이 새어나오고 있었지만 주위에 인적은 보이지 않았다. 큰길에서 자동차의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초저녁에 뿌리던 빗방울도 그쳐 거리는 한결 상쾌했다.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공기가 이렇게 맑은 밤은 나에게 가장 운이 좋은 날이다. 몇 주 전만해도 마을 사람들이 저녁상을 물리면 삼삼오오 몰려나와 모기불을 피워놓고 저녁 마실에 한창이었다. 서울이라지만 벌판 건너 경기도보다 못한 시골이 상사동이었다. 어느 날이었던가. 나는 술좌석에서 직장 동료들에게 상사동이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소리를지른 적이 있었다. 예상대로 손을 드는 이는 없었다. 10여 명이 넘는 회식 자리에서 상사동이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은 커녕 그런 동네가 당신의 만화가 아닌 서울에 실제 존재하냐는 표정들이었다. 아니면 지방의 어느 소도시에 있는 동네 이름이던가. 그러나 엄연히 상사동은 서울특별시에 있었으며 그것도 서울로 편입된 지가 35년이 넘는 동네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런 동네를 가보았다거나 들어본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별로 치면 우주의 저 편,끝자리 쯤에 놓여 있을 처지였다. 그런 숨어 있는 동네이니 만큼 모여 사는 사람도 웬간한 서울 변두리 풍경하고는 또 다른 면이 있었고 어쩔 수 없이 마을의 대부분은 타지 사람에게 넘겨 주었지만 그래도 몇 가구는 아직 대대로 물려받은 논과 밭을 일구며 고향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물론 다른 이들은 그 물려받은 논과 밭이 지금은 모두 남의 땅이 되어버린 처지였다. 잃어버린 땅을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풀리는가,고향 떠날 형편이 안되는가,그들은 마을서 가장 어두운 집들을 짓고 모여 살았다. 그런 이들이 해가 지면 옛모습 그대로 둘러앉아 모기를 쫓고 있는 것이었다.
서울의 변두리이지만 그 고향 땅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은 나 혼자였다. 인근 마을까지 포함해서 그래도 유세를 부리며 살던 사람들이 하나둘 고향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는데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나만이 다시 고향 땅으로 돌아왔다.
“당신은 밸도 없는 사람이우? 창피하지도 않아?”
합정동에서 주인이 전세값을 올려달라고 할 때 나는 성큼 고향 땅을 떠올렸다. 막 출판사를 그만둔 무렵이었다. 그리고 상사동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말에 아내는 기가 차다는 눈빛이었다. 아내가 들은 바로 고향에선 비록 시골집이지만 제 집을 지니고 살던 사람이 그래 나이가 들어 금의환향은 못할지언정 세를 얻어 다시 들어간단 말인가. 누가 들어도 기가 찬 얘기였고 아내의 친정이나 친구들에겐 차마 말 못할 부끄러움이 될만한 일이었다.
“그래도 그 방값에 공기 맑은 곳은 상사동이 제일이야. 부끄럽긴 뭐가 부끄럽나. 남 안보이는 곳에서 비굴하게 사는 게 더 부끄러운 일이야. 그리고 이젠 고향 사람도 별반 없다구. 당신이 더 먼곳에서 출퇴근 하려면 아예 성남이나 수원으로 가도 좋지. 알아서 해.”
나는 그때도 하늘의 별을 생각했다. 내가 뭐 그리 대단하단 말인가. 그 기나긴 세월을 외롭게 달려와 저렇게 잠깐 빛나는 별도 있는데. 밤 하늘의 별은 내가 궁지에 몰렸을 때 늘 구석에서 쉽게 빠져나가는 길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보이는 태양계 밖의 별 가운데 가장 가까이 있는 별은 큰개자리의 시리우스야. 8.7광년의 거리이지. 시리우스는 큰개 모양의 그림에서 주둥이에 해당되는 별이야. 하지만 주둥이와 눈에 해당하는 별은 우리가 선으로 그어놓은 것처럼 그렇게 가까이에 있지 않아. 평면으로 나란히 이웃하고 있지 않다는 말이야. 과천과 부산에 한 사람씩 세워놓고 서울에서 바라보며 두 사람이 나란히 붙어 있다고 우기는 꼴이지. 나참 어딜 보고 있는지.”
이렇게 모든 미련을 뿌리쳐 보려고 궤변으로 아내를 달랬다. 결국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아내로선 투정을 부리듯 외쳐대는 말에 언제나 가볍게 넘어갔다. 그리고 또 아내가 어쩔 수 없이 붙들린 것은 바로 교통문제였다. 아내는 간혹 아르바이트로 시내 백화점에 나가 용돈을 벌고 있었는데 그 일이 교통과 상당히 연관이 있었던 것이다. 아내는 물러섰다. 그렇게 해서 다시 찾아 들어온 고향 땅에는 아직도 나를 반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건강이 안좋아서 쉬어요.”
만화를 그린다거나 그림을 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언젠가 젊은 아낙에게 슬며시 만화 얘기를 비쳤더니 대뜸 하는 소리가‘방랑자’를 보았느냐,‘밤의 대통령’이란 만화책이 있느냐,있으면 좀 빌려달라 하고 덤비는 통에 혼쭐이 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내가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공연히 순박한 고향 사람을 속이는 꼴만 되는 것같아 좀처럼 그렇게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들이 아는 한 만화가는 모두 유명하거나 늘 바쁘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이 안됐구만,영특했는데 어릴 때부터 늘 몸이 약해서 탈이드만 여직 그러는가.”
그런 마을 사람을 대문 밖에서 만나는 것은 나로선 일상의 가장 큰 고역이었다. 아내가 이미 우려하던 바였으나 나로선 정말 예기치 못한 삶의 무게였다. 가을이 다가오면서 골목 안에 사람의 발길은 뜸해지기 시작했고 비가 온 날은 마을 전체가 조용했다. 그런 길목을 빠져나오는 나의 마음은 세상 전부를 얻은 것처럼 가볍고 신이 났다.
버스를 타러 가는 것이다. 이 시간,신촌을 지나 공항을 지나 김포로 가는 막차를 타러 가는 것이다. 이 일은 벌써 반년 가까이 계속되었다. 3일에 한 번,아니면 하루 정도를 늦출까. 밤이 깊으면 나는 어김없이 길거리에 나가섰다. 그리고 막차가 나를 실어갔다.
버스는 궤도를 도는 행성처럼 이 땅에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쉬지 않고 자신의 길을 지나갔다. 가끔 궤도를 이탈한 떠돌이 별과 마주쳐 상처를 입기도 했으나 곧 자신의 주어진 길을 되찾고 굳건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건 아득히 먼 옛날부터 까맣게 먼 미래까지 주어진 그의 운명이었으며 버스는 그 운명에 충실했다.
상사동으로 돌아온 지 두 달여. 모처럼만에 시내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광화문에서 막차를 타고 취기에 흔들거리고 섰는데 버스 운전사가 백밀러로 뒤에 섰는 나를 연신 바라보는 것이었다. 취중이었지만 처음에 나는 또 그 소심한 마음이 작동을 했다. 분명히 차비는 냈는데 저 운전수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가 보다,가슴을 졸이며 망설이다가 결국 다시 주머니를 뒤져 차비를 낼 생각이었다.
“태맹이 아냐?”
“……”
내 이름은 태명이었고 어린 시절 놀림 반,사투리 반으로 불러대던 태맹이를 아는 사람은 분명 나를 아는 자였다. 처음 나는 그 목소리가 어디서 흘러나왔는지 몰라 두리번대다가 그 출처가 바로 앞 운전수임을 알고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운전수 역시 거울을 향해 두 눈을 치켜올리고 있었다. 낯이 익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의 옆모습을 훑었다. 영규였다. 초등학교 때만해도 한 마을에 살던 고향 친구 영규였다. 적지않은 세월이 흘렀지만 눈가에 아직 모습이 남아 있었다. 옛 시절에 비하면 워낙 커진 덩치에 굵은 팔뚝이 도저히 어린 영규하고는 인연이 없는 사람으로 보였지만 틀림없는 고향 친구 영규였다.
“응?”
나는 다가가 눈을 껌벅거리며 어설프게 20여 년 만의 해후를 했다. 영규는 나를 확인하자 다시 앞을 보며 세차게 운전대를 돌리고 또 정류장에 서고 차문을 열었다가 닫고 하며 운전에 몰두했다.
“맞지,태명이. 이게 얼마만인가. 어쩐 일이야. 지금 어디 사는데 이 차를 탔어. 이 시간에.”
“영규 아냐. 응,상사동으로 이사를 왔어.”
“다시? 그래에?”
그의 팔이 다시 운전대 위에서 세차게 오른쪽으로 흔들렸다. 그렇게 해서 운전수 노릇을 하고 있는 영규와의 만남은 이루어졌다. 내가 고향으로 다시 찾아들고 영규가 그 길을 오가는 버스를 운전하는 한 언젠가는 만날 일이었지만 하루하루 무료를 달래던 차에 나로선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첫 만남에서부터 달라붙은 쪽은 바로 나였다. 물론 취기였다.
“언제 끝나?”
나는 한 잔 더하고 싶은 마음에 먼저 그의 퇴근 시간부터 물었다. 반가움도 있었다.
“막차야. 이제 들어가야지.”
“집이 어딘데?”
“김포읍이야. 이거 진짜 오래간만이다. 한 잔 했나보다.”
“그래. 술 해? 일 끝나면 바로 집에 들어가나?”
“왜? 한 잔 할래? 읍에서 나오는 택시는 많아.”
버스가 내촌을 지나 김포 벌판을 지날 때 승객들은 반 이상이 줄어 있었다. 나는 영규의 뒷자석에 앉았다. 상가들이 있는 주택가를 지나 들판에 들어서자 차창 밖은 갑자기 암흑으로 변했다. 멀리 산 아래 인천의 신시가지가 별빛처럼 반짝였지만 멀어지는 그 불빛이 주위를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
“건강이 안 좋다면서 술을 먹나?”
일을 마치고 포장마차에 들어선 영규는 앉자마자 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도 내가 약골로 보였던 것이다.
“몸이 좋지 않아서 쉬고 있어.”
이 말이 이젠 나의 이력이요 명함이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한 발작씩 물러서며 더 이상 직업에 대해선 묻지 않았다. 그런데 영규는 달랐다. 다른 사람들이 그런 말을 들었을 때는 일단 예의상으로라도 동정의 표시를 하거나 좀더 병세를 묻는 것이었으나 영규는 그 한 마디를 던지고 무심히 지나치는 것이었다. 날씨가 추운데 얇은 옷을 입었느냐는 식이었다.
고향 친구를 만나면 늘 그렇듯 우리는 곧,잠시 20여 년 전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빨리 돌아왔다. 웬지 서로가 원하는 바였다. 그때는 그때이고 현실은 포장마차 안이었다.
“이런 젠장,일찍 좀 일어나서 싱싱한 놈들 갔다놓으면 안돼? 이거 어제 치잖아.”
영규는 국수물에 데쳐나온 꼴뚜기를 고추장에 서너 마리 뒤척이며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그의 갑작스런 목소리에 기가 질려 남아 있던 취기가 달아났다. 그런데 그 소리를 들은 여주인은 만사 태평이었다.
“아휴,괜찮아. 그 속은 더 할텐데 뭘 그래.”
“뱅어 안 나와? 횟감 나올때니 한번 돌아보라구.”
“때 되면 어련히 알아서 할라구. 지가 먼저 야단이야.”
한 번 돌아보라는 곳은 그녀가 아침마다 나가는 대명리 포구였고 영규는 여주인의 말을 밀치며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틀 일하고 하루 쉬고 그래. 벌써 10년이 넘었다. 처음엔 영업용 택시했는데 월급이 버스가 좋아. 마음도 편하고.”
나는 잠시 영규가 택시운전을 하기 전에는 무엇을 했을까 생각했다. 내가 알기로 그는 야간 고등학교를 그만 두고 일찍 객지 생활을 했었다.
“너는 무슨 일을 하냐? 그래도 뭔가 해야 입에 풀칠을 할 것 아냐. 마누라가 벌어? 참,너 대학 나왔지.”
영규는 말을 던져놓고 또 딴청을 부렸다. 그는 힘있게 일어나 안쪽에 있는 소주병을 집어왔다. 영규는 모든 대화를 쉽게 하는 버릇이 있어 보였다. 나는 처음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친구에게 뭔가 무시 당하는 느낌이었다.
“그림을 그려. 화가야.”
나는 녀석이 당당하게 처신만 하지 않았어도 그렇게 대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계속 건강을 핑계대며 이리저리 말을 돌리다가 그만 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위축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친구가 알 만한 만화 한 권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응? 그래?”
영규는 응수를 하며 술잔을 털어넣었다. 이번엔 쉽게 넘어가지 않고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뜻밖이라는 표정이었다.
“잘 안돼.”
나는 물러섰다.
“그래? 왜? 그럼 시간 많겠구나. 가끔 만나서 술 한 잔씩 하자. 예술도 쉽지는 않을 거야. 사는 게 다 그런거지 뭐. 이제 우리도 적은 나이가 아니라구.”
시간이 많겠다는 말에 다시 자존심이 상했지만 영규의 말뜻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움직여. 자꾸 움직이라구. 너 같은 사람일수록 자꾸 움직여야 돼.”
영규는 그림 그리는 일을 해보기라도 한 사람처럼 단정적으로 말해왔다.
“맞아.”
“야. 술잔도 이렇게 쭉 펼쳤다가 마시고 말야. 안주도 어구적거리며 씹으라구. 저런 여편네한테 큰 소리도 치고 말이야.”
“주접 떠네.”
파를 쓸고 있던 여주인이 고개를 들지 않은 채 한 마디를 했다. 그날 영규의 말이 많아지고 거칠어질수록 나는 오그라들었다. 영규의 취기가 오를수록 나는 술이 깼다.
“막차가 상사동을 지날 때는 12시 20분쯤 될거야. 심심하면 나오라구. 반갑다. 정말 반가워.”
포장마차 여주인과의 허물없는 대화,그리고 드나들던 다른 기사들과의 육두문자가 술잔 위로 난무한 뒤 우리는 빈병이 치워지듯 미련없이 거리로 나섰다. 포장마차를 나서니 하늘이 높았고 별이 빛났다. 수없이 깔린 별이라니. 고향이 좋은 것은 별을 머리 위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눈 앞에서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별을 보자 유쾌했다. 그 동안 별들이야말로 나의 진정한 친구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옛친구를 만난 것이다. 저만치 떨어져 오줌을 누고 있는 영규의 등에서 별들이 솟아올라 하늘로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막차를 기다렸다. 물론 그림은 그리지 않았다. 아내의 투정도 없었다. 아내의 적은 수입이 또 그 만큼의 적은 생활비를 막아냈다. 처음 한두 차례 나는 막차가 돌아가는 시간에 맞추어 영규를 기다렸다. 그리고 종점으로 돌아가 포장마차와 해장국집을 전전했다. 그러다가 나는 막차가 돌아가는 시간이 아니라 시내를 향해 나가는 시간에 맞추어 정류장으로 갔다. 그리고 영규를 확인한 후 차에 올랐다.
“이 시간에 어디 나가?”
다시 3일 만이지만 영규는 언제나 나를 반겼다.
“아니,그냥 네 차 타고 한 바퀴 돌라구.”
“그래?”
영규는 무료한 나의 사정을 아는지라 쉽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게 막차를 탄 나의 밤여행이 시작되었다. 그 동안의 일상이란 물론 달랐다. 아침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가 시내로 나간다. 사람을 만나고 세상 일에 대해 이야기 한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고 유자차를 몇 잔 마실 것이다. 돈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고 정류장에 설 것이다. 설레는 마음은 사라지고 산다는 일이 더욱 힘들게 느껴질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몸과 마음은 지칠대로 지쳐 발걸음조차 무거워진다. 이것이 나의 외출의 전부였다. 그것에 비하면 자가용은 아니지만 영규의 뒷좌석에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도는 심야 드라이브는 꿈 같은 일이었다. 흔들리며 돌아오는 직장인,잠에 쫓기는 입시생,열애 중인 처녀,가슴이 넓은 청년,아름다운 사람,슬픈 사람,즐거운 사람,심심한 사람,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대하고 차창 밖엔 빠르게 세상이 스쳐 지나갔다. 차창 밖의 세상이라니. 차창 밖에 스쳐가는 밤 하늘의 별들이라니. 이 얼마나 멀고도 가까운 벗이었던가. 나는 전부터 유별나게 차창에 기대어 밖을 내다보는 것이 좋았다.
“사고낸 적 없냐?”
막차가 광화문을 돌아칠 때쯤 나는 손잡이에 턱을 고인다.
“사고? 택시 하다가 한 번 냈지. 병원에 두 달 있었어. 음주운전을 하던 대학생 놈이 내 차를 박았는데 내가 뒤집어 쓰더라구. 그 놈 아버지가 변호사래요. 그 놈이 많이 다쳤지. 나중에 병원서 한 잠 자고 나니 음주운전은 온데 간데 없더라구. 나도 별 것 아닌데 버텼지. 쓸데없이 두 달 있었던 거야. 그런 놈들이 변호사 하는 세상이니 말 다했지.”
“그럼 사고를 낸 것이 아니네. 네가 당한 거지. 운전 잘 하는구나.”
나는 영규의 거친 행동으로 보아 그렇게 사고가 없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택시도 했는데 버스야 더 쉽지. 운전도 우리 사는 것하고 비슷한가 봐. 앞차 보면서 길만 따라 쭉 가면 되니까. 그게 제일 안전하지. 욕심부리면 사고나. 아,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 그런 농담도 있잖아. 하하.”
어느덧 영규도 나와의 만남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는 막차에서 나를 만나면 그는 활기를 되찾는 것처럼 보였다. 음식값은 꼭 영규가 냈다. 모처럼 주머니에 돈이 있어 내가 낼라치면 그는 완강히 막아섰다.
“우리 같은 사람은 돈을 쓰면서 살아야 돼. 이렇게라도 안 쓰면 딴 마음을 먹어. 여자 아니면 도박이지. 나둬라 푼돈이나마 내가 쓰게.”
분명 나의 사정을 헤아리는 꼴이었다. 나는 영규의 말에 이의를 달 수 없었다.
막차에서의 영규와 나의 만남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었다. 처음 아내는 고개를 저었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어린애도 아니고 지금 당신이 친구하고 잡담으로 세월을 보낼 때냐고 다그쳤다. 일부러 신문은 구독을 하지 않았지만 어쩌다가 포장지로 묻어온 신문에 만화에 대한 기사라도 있으면 아내는 슬며시 그 지면을 펴서 밀쳐놓았다. 보고 자극 좀 받으라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나의 막차을 향한 외출은 멈추어지지 않았다. 끝내 아내는 나의 행동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아내가 그렇게 생각보다 쉽게 손을 든 데에는 나의 변화 때문이었다. 나는 영규와의 만남 이후 나날이 생활의 활기를 찾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웃는 얼굴은 곧 가정의 평화와 직결되었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짖던 일도 없어졌다. 무엇보다 없는 살림에 천문학에 관한 책을 사다 나르는 일이 없어졌다. 영규를 만나는 일엔 돈도 들지 않았다. 물론 매번 술값은 영규가 지불하는 것이었다. 힘든 살림이지만 아내는 늘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나의 생활이 밝아지면서 아르바이트로 일을 나갈 때 아내 역시 밝은 표정으로 집을 나섰다. 모두 내가 영규의 막차를 탄 이후의 일이었으며 병으로 치자면 나의 병세가 호전되고 있는 것이었다.
어느덧 나로선 막차를 기다리는 일이 나의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이틀 동안 방에 틀어박혀 백지를 끄적였지만 마음은 늘 영규의 막차 안에서 달리고 있었다. 그 일은 몇 가지 이유에서 나를 사로잡았다. 버스 안에 앉아 있노라면 그것도 보통 땐 만원으로 인해 쉽게 앉기 어려운 일반버스에 앉을 수 있어 자가용이 부럽지 않았으며,막차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표정 또한 그 동안 내가 보아온 어느 때보다 가장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네온사인 현란한 시내를 지날 때는 이 시대의 안과 밖이 들여다 보였다. 삶의 활기도 느껴졌다. 시내를 빠져나와 들판을 지날 때 나는 밤하늘의 별을 보게 된다. 이 단 두 시간 동안의 변화무상은 나를 늘 흥분시켰다. 마음 속엔 분노와 고요의 바다가 공존했다. 그러나 영규의 거친 입담은 나로선 처음 대해 보는 사람 사는 세상의 속살과도 같았다. 영규는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의 실체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아마 그는 인생에 대한 뚜렷한 철학이나 의식의 부재에 놓여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에게 본질이 인식을 규정한다는 따위의 말은 필요없었다. 영규에게 인생이란 하나의 짐을 나르는 지게와도 같았다. 그는 나뭇꾼이었으며 그의 지게는 당연히 그의 어깨에서 움직였다. 나처럼 지게에 생활이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생활을 어깨에 메고 다니는 것이 영규였다. 자신의 삶을 당당히 이끌고 가는 영규의 목소리는 언제나 우렁차게 버스 안에 울려퍼졌다.
“할머니 저 안으로 들어가세요. 거기,학생 좀 일어나.”
이런 정도는 예사였다. 가끔 술취한 승객이나 노인네가 들판을 건널 때 소변을 호소해 오면 영규는 지체없이 버스를 멈추었다.
“벌써 벼가 싹이 텄네. 조금 쉬었다가 갑시다.”
그의 굵은 목소리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언젠가 나는 승객의 한 사람으로 그의 불규칙한 버스 운행에 불만을 품고 털어놓았다.
“버스 운행 시간을 정확히 지켜야 승객이 불편하지 않지. 이렇게 불규칙하게 오가니 버스가 한꺼번에 몰리기도 하고 또 한동안 깜깜 소식이잖아.”
“맞아,그래야지.”
영규는 능청스럽게 한 마디를 던지고는 또 딴청을 부렸다. 그에겐 공염불이었다 싶어 나는 차창 밖에 시선을 주었다.
“그런데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 사정이 그렇지 않아. 사람마다 오르내리는 시간도 제 각각이고. 아직 그 정도 불편을 참아야지. 우리 때만해도 웬만하면 이 벌판을 걸어서 건너지 않았니. 이젠 10분이면 벌판을 건너지. 그래도 사람들은 늦었다고 발을 굴러. 아마 우리의 자식들은 전철을 타고 벌판을 지날거야. 그땐 빠르고 시간도 정확하겠지. 빠르니까 오줌 정도는 참을 수 있겠지. 잠시니까 자리 양보도 필요없을 거야. 우리 손자녀석 때는 비행기를 타고 벌판을 건널지도 몰라. 그게 꼭 좋겠니?”
“왜? 네 밥줄 떨어질까봐?”
나도 영규식으로 응수를 해보았다.
“승객들의 얼굴을 좀 봐. 10년 다르고 5년 다르고 또 지금 달라.”
“왜?”
“얼굴이 점점 굳어 가고 있어. 이젠 빈 버스 안에 저 혼자 앉아서도 인상을 쓰고 있어.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들판을 걷던 밤길하곤 영 딴 세상이지. 시간이야 빠르지. 걸을 때보단 2시간마다 다니던 시영버스가 좋았을테고 시영버스보다는 시내버스가 좋았을 테고 이젠 버스가 크고 깨끗하기도 하잖아. 냄새도 별로 없어. 그런데 사람들 얼굴은 갈수록 굳어진단 말이야. 옆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것은 이제 경범죄라도 되는 줄 아나 봐.”
“그야. 그만큼 세상 살기가 쉽지 않으니까 그렇지.”
“그래,갈수록 세상 살기가 쉽지 않아. 빨리 간다고 세상이 나아지는 게 아니라구.”
그때도 나는 차창 밖으로 별을 바라보았다. 우리 모두가 너무 조급하고 각박하게 살아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느덧 나는 별을 관찰하는 방법이 바뀌어 있었다. 나는 이제 차창을 통해 별을 바라보았다. 버스의 유리창이 나의 천체망원경이었다. 망원경은 크고 시야가 넓어 좋았다.
“망원경은 안 사기로 했으니 그 돈을 써.”
큰 아이의 다리 보철을 갈아야 한다는 말에 나는 선뜻 그 동안 천체망원경을 사기 위해 모아온 돈을 내놓았다. 아내는 움찔했다.
“아니야. 이젠 망원경 없이도 별이 잘 보여. 여긴 공기가 맑잖아.”
영규의 막차를 타고 들판을 건널 때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 동안 나름대로 수집해온 별자리에 대한 조사도 모두 벽장 깊숙히 처박아버렸다. 버스에 오르내리는 승객 모두가 하나의 별자리라고 생각했다. 그 별들은 작게 또는 크게 빛났다. 때론 밝게 때론 구름에 가리워 어두웠다. 그러나 수많은 별들의 모습은 너무도 가까이에서 뚜렷하게 보였다.
“아이의 다리가 좋지 않아? 괜찮아. 나아질거야.”
영규의 이 말은 국립대학병원의 특진교수와 같은 소리였다. 영규는 늘 모든 일을 괜찮다고 표현했다.
“점점 나아지니까. 조금만 더 노력하면 보철기를 떼어내도 될거야.”
“네가 잘 하니까. 나아지겠지. 괜찮아.”
영규는 치료과정을 알지도 못하면서 내게 낯뜨거운 공치사를 했다. 만사를 쉽게 생각하는 영규의 버릇이었다.
“내 마누라 있지?”
영규가 갑자기 마누라를 들먹였다. 나는 언젠가 전화기를 통해 들어본 그녀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막차를 기다렸으나 정작 그 차의 운전수는 영규가 아니었을 때 나는 그의 집에 전화를 했었다. 그때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도 밝고 명랑했다. 그 남편에 그 아내라고 생각했었다. 집에 꼭 한번 놀러오라는 그녀의 인사말을 나는 잊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영규가 늘상 나로 인해 술을 마시고 들어가는 턱에 내 스스로 송구스러워 친구의 집을 방문한다는 것은 멀리 생각했다.
들판을 다 지날 때 승객이 둘만 남아 있던 한가한 날이었다.
“내 마누라도 소아마비야. 사람 좋아.”
대뜸 그는 또 특유의 긍정론을 폈다.
“내 마누라도 좋아.”
나는 차창에 기대었던 몸을 바로 세웠다.
“마누라를 이 벌판에서 만났지.”
“벌판에서?”
“맞아. 얼마나 놀랬는지.”
영규는 말을 끊고 차창을 열어 바람을 쐬었다.
“무슨 소리야.”
“종점으로 돌아오는데 저기 다리 지나서 웬 여자가 길 한복판에 버젓이 서있는 거야. 처음엔 귀신인가 했어. 나중엔 머리가 돈 여잔줄 알았고.”
“왜 그랬대.”
“뻔하지 죽으려고 그랬대요. 나참,그렇게 서 있으면 사람이 죽나. 또 죽는다해도 엄한 운전수 하나 잡아먹는 거 아냐. 공장에서 쫓겨나고 살기 힘들어 그랬다는데 다 어려서 그렇지. 그래 살기 힘들다고 다들 길 위에 섰으면 이거 누구 운전해 먹겠나. 그 인연으로 결혼했어.”
“그러니까. 네 마누라가 달리는 버스를 세워 너를 낚아챈 것이로구나.”
“그런 셈이지. 하하.”
달리는 버스 안에서는 세상의 온갖 희노애락이 함께 달려나갔다. 마치 밤하늘에 별똥별이 사라지듯 버스도 그 속에 실려가는 사람들도 그렇게 일순간에 사라져 가는 듯싶었다. 나는 영규와 술을 마신 다음날에는 정좌를 하고 앉은뱅이 책상 앞에 앉을 수 있었다. 그와 함께 말과 술을 흠뻑 마신 다음날엔 머리속이 맑아졌다. 다시 올 이틀 후를 기다리며 나는 그림에 몰두할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세상 전부가 차분히 내려앉아 보였다. 그런 설레임 속에 다가온 어느 날이었다.
“오늘 회의가 있으니 먼저 가서 한 잔 하고 있어.”
영규는 버스표 통을 뽑아들고 빠르게 사라졌다. 나는 해장국집에 들어가 혼자 술을 청했다. 혼자 청해보는 술맛이 괜찮았다. 얼마 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옆 자리가 시끄러워졌다. 청년 둘이 아가씨 한 명을 앉혀놓고 상소리를 해대고 있었다. 여자는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었다. 곁눈질로 바라보니 여자의 콧등에서 하나둘 눈물 방울이 떨어졌다. 두 손을 비벼대는 그녀의 꼴이 여간 겁에 질린 모습이 아니었다.
“알았어? 너 지현이년 하고 함께 안오면 너희집 쑥밭이 될줄 알아. 엉.”
그냥 넘기고 싶었으나 너무 가까운 거리였기에 자꾸 눈길이 옆으로 흘렀다. 나도 모르게 그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뭘 자꾸 봐,새끼야.”
“……”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이번엔 여자가 내 쪽을 바라보았다.
“알았어?”
한 사내가 다시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바람에 나는 또 부지불식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내가 다시 나를 노려보았다.
“야,너 저기로 가서 먹어.”
그는 한참 떨어진 구석자리를 가리켰다. 나는 겁이 났으나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설 수도 없었다.
“여기가 내 자린데 어떻게.”
“저리 못 가?”
사내가 일어나며 나의 앞자리에 있던 철제의자를 발길로 걷어찼다. 그 바람에 의자가 쓰러지고 술을 마시던 실내의 모든 사람이 나를 응시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나의 편이 되어줄 사람은 없었다.
“말이 안들려?”
사내는 한쪽 팔을 들어 보이며 다시 한 번 나를 향해 얼굴을 구겼다. 나를 향해 주먹이라도 날릴 기세였다.
“왜 그래?”
그때였다. 영규가 들어온 것이다. 바람을 일으키며 안에 들어선 영규의 덩치를 보자 순간,턱주가리를 치켜 세웠던 사내의 기운이 슬며시 한풀 꺾여지며 실내에 팽팽한 기장이 감돌았다.
“왜 그래.”
영규가 이번엔 내게 물었다.
“응. 나보고 저쪽에 가서 먹으라는군.”
나는 아이가 어른에게 고해바치듯 목소리를 죽여 눈을 껌벅거렸다.
“뭐? 이유도 없이?”
일순 영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더니 한동안 두 사내를 위 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때까지 여자는 눈시울을 만지고 있었다.
“너,벌말 사는 깡아리 동생이지? 나 몰라? 나 알지?”
“네.”
사내가 어깨를 움추렸다.
“너희 이리 앉아봐. 이 여자 왜 그래.”
우리는 여자에게서 대충의 이야기를 들었다.
“너희 다시 한 번 이 바닥에서 그 따위 짓 했다간 내장 긁어버리는 줄 알아. 나는 한 번 말한다. 가 봐.”
험악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영규의 그렇게 엄숙하고 험상궂은 얼굴은 처음이자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어서 나는 등골이 오싹할 정도였다. 영규가 내 앞에서 그런 당당한 모습을 보인 것은 사실 처음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시절 그는 나의 방패나 마찬가지였다. 등하교 길에서 나를 괴롭히는 아이들이 있으면 언제나 영규가 나서 일을 해결했다. 상급생 아이들에게도 서슴없이 달려들어 나를 구해주었다. 언젠가 타동네에 사는 덩치 큰 아이에게 걸려서 곤욕을 치루는 나를 보고 달려와 그냥 그 녀석의 사타구니를 내지르던 기억이 생생할 정도이다. 이제 두 아이의 애비인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그의 그늘에 있는 것이었다. 그 그늘은 이제 물리적인 힘의 세계가 아니었다. 바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이며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였다.
“난 예술이 뭔지 잘 몰라. 대학을 나온 네가 하는 일이니 어려운 일이겠지. 일이 어렵다는 것은 그 만큼 남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낸다는 말이 아니겠니. 원래 너는 강한 아이였으니 잘 하리라 본다. 솔직히 말해 나는 너 같은 친구가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워.”
영규가 어울리지 않게 목소리에 물기를 뿜었다. 배차 문제로 상무와 한 판 싸웠다는 말도 어구적거리며 오이 껍질 속에 묻어버렸다.
“내가 강했다구?”
나로선 가당치 않은 말이었다.
“아직 상사동 언덕에 그 큰 미루나무가 있을까? 너 그 미루나무 생각나?”
“아마 있을 걸. 왜?”
“너 그 미루나무 꼭대기에 올라갔던 일 기억해?”
어렴풋이 기억이 되살아났다.
“까치집 말이야. 미루나무 꼭대기에 있는 까치집에 알이 있느냐 없느냐로 아이들끼리 내기를 했잖아. 어쩌다가 네가 그 곳에 올라가기로 결정이 났지. 미루나무 꼭대기가 너무 높아 모두 두려워했을 때인데 말이야. 결국 너는 해냈어. 미루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까치알을 들어 보였잖아. 확실히 내가 보기에도 너는 강한 아이였어.”
온통 겁에 질려 미루나무에 오르는 나의 곁에 영규가 서 있던 기억이 났다. 아마 그때도 그의 믿음직스런 눈빛이 나에게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
“그땐 영영 하늘로 올라가버리는 줄 알았지. 솔직히 겁이 났어. 땅에 내려와선 우리가 땅에 발을 붙이고 산다는 게 그렇게 좋아보일 수가 없더라구.”
“그래도 결국 해냈지 않아. 혹시 네가 한다는 예술도 그런 일 아니냐. 두렵고 힘들지만 결국 올라가야 하는 키 큰 미루나무 꼭대기처럼 말이야. 너는 아마 다 잘 해낼 거야.”
영규가 술잔을 건넸다. 그가 몸을 움직이자 옷에서 기름냄새가 났다. 그 동안 느끼지 못하던 일터의 냄새였다. 기름냄새를 느끼자 갑자기 영규의 일도 쉽지가 않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언제나 영규는 당당했다. 그에게 미루나무 꼭대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었다. 힘겨운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그에겐 남다른 정열과 힘이 있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도 가지고 있었다. 물론 하늘의 별과 같이 그의 말과 행동은 빛이 났다. 나로선 그 빛나는 별을 관찰한다는 일이 더없이 행복했다. 그 행복을 움켜쥐고 싶었다.
기억에 의하면 지난 날,유년의 언젠가 나는 미루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까치알을 들어 올렸었다. 분명 그 꼭대기는 하늘과 맞닿아 있었으리라. 나는 하늘로 올라가 별을 따는 심정으로 가슴을 조이며 두렵게 나무를 기어올랐을 것이다. 결국 나는 해냈다고 한다.
이제 다시 나는 새로운 미루나무의 중턱에 올라 앉아 있다. 그리고 그 나무의 끝을 보고 있다. 오늘도 가지 끝에는 내 유년의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그 별들은 밤하늘에만 반짝이는 것이 아니다. 김포행 막차라는 은하계에 우리의 수많은 유성들이 명멸하고 별들은 크고 작게 때론 멀리서 생성의 기쁨을 전해온다. 그 별들 중에는 영규라는 유난히 빛나는 별도 있다. 그리고 나도 있다. 아,나는 어디서 어떻게 빛나는 별이던가.
별이 아니면 태양의 열기도 한갓 헛된 몸짓에 불과한 것이다.
박철
1960년 서울 출생
단국대 국문학과 졸업
1987년《창작과 비평》으로 시 등단
1997년《현대문학》에「조국에 드리는 탑」으로 소설 등단
시집『김포행 막차』,『밤거리의 갑과을』,『새의 全部』,『너무 멀리 걸어왔다』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