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아파트 문화에서는 생소하지만 과거 개인주택 시절에는 일반화되었던 사실.
그것은 각 집마다 대문에 그 집 대표자의 이름을 기록한 문패를 달았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나무로, 좀 사는 사람들은 대리석으로 만든 문패를 걸었다.
편지 배달을 하거나 검침원 등 다른 사람이 그 집을 찾을 땐 그 문패로 확인한다.
개개 인간에도 대표자가 있다. 무슨 말인가?
“나는 주체적 인격이고, 이 주체적 인격의 주인은 당연히 나 자신이지 무슨 대표자가 있다는 말인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세계관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출발한다.
그것은 자기가 주인이자 신이 된 자아의 세계에서 자기가 중심이 되고
자기 외의 다른 인간이나 사회나 환경이 자기 주변에 배치된 구조다.
거기서 필연적으로 나오는 신념이 자기본위다.
그는 자기 외의 누군가가 자기의 주인이나 신이 된다는 사실을 상상도 못하거니와 원하지도 않는다.
자기가 주인 된 자기 세계 안에서 자기 뜻을 따라 자기 욕망을 따라 자기 관심을 따라
자기 만족과 자기 영광을 목표로 영위하는 자기의 생애.
그런 구조를 고수하는 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거니와 믿을 수도 없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 경외하기를 거부한다. 자기 외에 주권자나 신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옳은 것일까?
그랬던 그에게 자신이 다스릴 수 없는 시간이 흐르고 자신이 다스릴 수 없는 생애가 명멸해 간다.
병이 찾아온다. 실패가 찾아온다. 불행이 찾아온다. 이별이 찾아온다. 슬픔이 찾아온다.
이런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미미하게 해결되는 것도 있다.
그러나 가족의 죽음, 세월의 흐름, 인간의 마음, 중병, 재난, 고독, 불안 등
자신은 손가락 하나 건드릴 수 없는 문제들이 널려있다는 것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죽음과 마주한다.
어느 누구도 그를 도울 수 없다. 왕이자 신이었던 자기도 자신을 돕지 못하는 판에 누가 그를 도울 수 있겠는가?
지옥으로 빠져들어 사악한 눈빛을 가진 악마들의 면전에서도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할 것인가?
주장한들 통하겠는가? 이것이 자기본위 세계관의 종말이다. 이것이 자기 이름의 문패를 단 존재의 종말이다.
말하자면 그는 평생을 자기기만 속에 살았던 것이다.
자기는 자기에게 생명을 줄 수 없다. 그런데도 자신의 주인이란 말인가?
자기는 자기에게 삶의 목적을 부여할 수 없다. 그런데도 자신의 주인이란 말인가?
그는 지옥에서 자신을 건져낼 수 없다. 그래도 신이란 말인가?
아, 그렇다. 이 우주의 대문에는 주님 이름의 문패가 걸려있는 것이며,
자아의 현관문에는 더더욱 주님 이름의 문패가 걸려 있어야 했던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당신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 예수님이 바로 그 문패의 주인인 것이다.
기억하라, 이것이 가감할 수 없는 존재의 진실이라는 것을. 그러나 어디 존재의 진실뿐이기만 하겠는가.
이 진실을 받아들인 자에겐 영원한 생명과 정체성과 자유와 평온과 기쁨과 천국이 주어진다.
주님이 나의 주인이시다. 그것이 진실이다.
2018. 3. 18
이 호 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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