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스겔 19:1~14 애가에 담긴 하나님의 애끓는 사랑
오늘의 말씀요약
하나님이 이스라엘 고관들을 위해 애가를 지으라 하십니다.
암사자가 낳은 새끼가 자라 사람을 삼키자, 이방이 그를 잡아 애굽으로 끌고 갑니다.
또 다른 새끼가 젊은 사자가 되어 사람을 삼키자 이방이 그를 바벨론 옥에 가두고,
물가에 심긴 포도나무는 뽑혀 불에 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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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젊은 사자 비유(19:1~9)
영적 지도자는 책임 의식을 지녀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고관들을 위한 애가를 두 마리 사자 비유로
말씀하게 하십니다. 어미 사자가 우두머리가 될 만한 새끼 사자를 선택해서 키웁니다.
그런데 장성한 사자는 물어뜯기를 배워 사람들을 삼키다가 애굽 땅으로 끌려갑니다. 이는 백성을 압제하다가
애굽에 사로잡혀 간 여호아하스 왕을 상징합니다. 어미 사자가 새끼 하나를 또 골라 키웠더니,
젊은 사자가 되자 역시 사람을 삼키고 궁궐들을 헐고 성읍들을 부수어 땅을 황폐하게 만들다가 바벨론 왕에게 잡혀 옥에 갇힙니다. 이는 여호야김 왕이 다른 나라들을 의지하며 백성을 학대하다가 바벨론으로 끌려간 것을 비유합니다.
지도자는 자신을 그 자리에 두신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겸손히 다른 사람을 섬김으로 자신의 책무를 다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첫 번째 젊은 사자와 두 번째 젊은 사자의 공통점은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하나님이 내게 맡겨 주신 사람들에게 섬김의 리더십을 어떻게 발휘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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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나무 가지 비유(19:10~14)
하나님의 은혜가 떠난 곳은 가물고 메마른 광야와 같습니다. 다윗 왕조는 물가에 심긴 포도나무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풍요로워지고 세력이 번성했습니다. 그 나무에 키가 큰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님의 분노를 사서,그 포도나무는 뽑혀 땅에 던져지고 열매는 뜨거운 동풍에 마르고 가지는 불타 버립니다.
이제 포도나무는 광야에 심겼는데, 그 가지에서 불이 나와 열매를 태워 버립니다. 포도나무는 유다를,
가지는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를 상징합니다. 시드기야는 하나님의 은혜로 왕위에 올랐지만
하나님 뜻을 거슬러 행하다가 심판을 받았고 그로 인해 유다는 바벨론에 멸망당합니다.
지도자가 잘못하면 공동체가 고통당합니다.
- 묵상 질문: 물가에 심긴 포도나무 비유에서 유다의 어떤 역사를 알 수 있나요?
- 적용 질문: 나를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그 뜻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더 섬기고 낮아지라고 영적 리더십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을 잊고,
타인 위에 군림하려는 오만한 모습으로 리더의 자리에 있진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매 순간 인정하며, 예수님의 리더십을 깊이 묵상하게 하소서.
8월16일 전도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애가를 지어 부르라고 하셨는데 본문은
왕에 대한 애가(1~9절)와 백성에 대한 애가(10~14)로 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사자에 대한 애가
먼저 암사자는 젊은 사자(여호아하스)를 한마리 키웠는데
악하게 통치하자 이방(애굽의 바로)이 듣고 젊은 사자를
갈고리에 꿰어 애굽으로 끌고 갑니다.
젊은 왕 여호아하스의 불신앙과 악한 통치는 자신과 백성이
애굽의 노예가 되는 수치와 패망으로 이어집니다.
지금 한국 사회와 교회 지도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8월16일 전도
두 번째 사자에 대한 애가
암사자는 애굽으로 끌려간 사자를 기다리다 또 다른 젊은 사자를 키우지만
그도 악행을 일삼다 이번엔 바벨론으로 끌려가는데 유다가 다른 왕을
세우지만 그도 역시 악한 통치를 하다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선대의 불신앙과 악행이 심판으로 이어진 것을 보고도
하나님께로 돌아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한 무감각증과 영적 건망증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포도나무에 대한 애가
이제 비유가 바뀌어 포도나무에 대한 애가가 시작됩니다.
유다는 물가에 심긴 포도나무처럼 열매(백성)와 가지(뒤를 이을 통치자)가
많은 무성한 나무가 되었지만 뿌리가 뽑혀 마르게 되었고
가지에서 나온 불로 완전히 파멸되었습니다.
진정한 왕이신 하니님께 불순종한 유다가 완전히 망한 것입니다.
신앙을 버리면 우리는 애가의 주인공이 됩니다.
반면 회개할 때 애가는 기쁨의 노래로 바뀝니다.
신앙의 길에는 애가와 찬양이 함께 있을 수 있지만
그 길을 슬픈 노래로 마쳐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슬픔을 영원한 기쁨으로 바꾸신 주님을 바라보며 나아갈 때
우리 삶은 반드시 영광의 기쁜 노래로 마치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슬픔의 베옷이 기쁨의 화관으로 바꾸어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