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서 전도서의 저자는 수고의 피곤함을 피력한다. "내가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한다"(18) "모든 수고에 대하여 내가 내 마음에 실망하였도다"(20) "수고하였어도.. 헛된 것이며"(21) "수고가 무슨 소득이 있으랴"(22)
그 이유는? 자신이 수고한 것을 자신이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라고 결론(18-19,21)
그런데 26절은 이전에 등장한 헛됨과는 결이 다른 헛됨을 피력한다.
26절을 다같이 한 번 읽어보자.
공동번역본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신 눈에 드는 사람에게는 지혜를 주신다 알 것을 알아 즐거움을 누리게 해 주신다
그러나 하나님 눈에 들지 못한 사람은 애써 모아 들여도 결국 하나님 눈에 드는 사람의 좋은 일이나 하게 된다 그러니 이 또한 바람을 잡듯 헛된 일이다"라고 해석.
개역개정판과 공동번역본 모두에서 "헛되어 바람 잡는 일이다"라는 종결어로 26절을 마친다.
무슨 일이 헛되고 바람 잡는 일이라고 말씀? 성경을 읽는 내내 궁금했었다.
하나님께서는 26절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과 그렇치 않는 사람을 구분하여 대조하고 있다.
"기뻐하시는 자와 죄인"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는 즐거움을 주시고, 하나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는 무거운 짐을 주신다는 골자의 말씀이다.
좀 더 쉽게 풀이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의인에게는 지식과 지혜와 희락을 주신다. 하지만 악인에게는 모아 들이게는 하시지만, 악인이 모아 들이게 하신 것들을 의인들로 누리게 만드신다는 의미이다.
이런 사상이 지혜문학의 엑기스에 해당한다.
오늘날 우리도 이런 통념을 가지고 있다. 일종의 "권선징악" 사상이다.
유교에서도 권선징악을 중요한 덕목으로 가르친다. 선한 일을 권하고 악한 일에는 징계가 따른다는 의미.
그래서 우리도 "착하게 살아야 복을 받고 악하게 살면 벌을 받는다"는 식의 통념을 가지고 있다.
가끔 국도를 운전하다보면 아주 오래전에 세워둔 돌비석을 볼수 있다. 거기에 "착하게 살자"라고 적혀있다.
성경에서도 이런 사실을 강조한다. 특히 지혜문학에서 이 사실을 더 더욱이 강조한다.
지혜문학이라 함은? 구약성경의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를 일컫는 용어이다.
이런 성경책에서는 옛 선현들이 선포한 지혜를 중심주제로 다루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 시편37편1-2절을 찾아서 읽겠다.
주일날 아침에 저와 김목사님 가정이 예배를 드린다.
교회 사역자들이 주일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함께 모여 말씀으로 교제한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그 시간에는 저와 김목사님이 번갈아 말씀을 준비한다.
이번 달에 제가 준비한 말씀이 바로 시편37편이다.
주된 메세지가 "악인들은 망할 것이다"이다(1-2) 그리고 "선인들은 구원받는다"(27)는 말씀.
우리가 잘 아는 시편1편에서도 선인과 악인을 대조한다.
선인은 복을 받고 악인은 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렇게 성경 또한 악인과 의인을 대조하여 모름직이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전도자는 "이 또한 헛된 일이다"라고 말한다(26)
하나님께서는 착한 사람에게는 복을, 악한 사람에게는 벌을 주신다는 사실 또한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이 헛되다라고 말씀한다.
영어 번역본에서도 "this also is vanity"(KJV) "헛되다" "this is meaningless too"(NIV) "의미 없다"
전도자는 의인은 복을 받고 악인을 벌을 받는다는 사실 또한 헛되어 바람 잡는 일이나 다를게 없다고 선언한다.
즉 전도자는 일반적인 통념을 부정한다.
전도자의 의도는? 이 구절은 무슨 의미일까?
"인생은 이리 살아도 저리 살아도 헛되다" "악인이나 선인이나 한평생 살다 죽으니 매 한가지다"라는 정도의 의미일까요?
저는 고심끝에 이런 결론을 내렸다.
우리 인생을 선과 악, 의인과 죄인이라는 단순한 용어로 해석하고 판단하는 일이 헛된 일이다라는 의미이다.
우리 인생이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 인생 전체를 해석하고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한다.
판단과 보응은 하나님의 몫이다.
권선징악이라는 사자성어로 우리 인생이 해석이 될까요? 원인과 이유를 밝힐수 있을까요?
하지만 우리는 그 동안 이런 통념을 가지고 살아왔다. 누군가가 성공하거나 출세했다는 소식을 접하는 순간, 우리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오르거나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 사람 기도 많이 해서, 착하게 살아서 복을 받는 거야"
반면에 누군가가 큰 사고를 당했거나 그 가정에 우환이 자주 일어났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그 사람 평소 그렇게 악하게 살더니 벌을 받은 것이다"라고 말한다.
여러분들은 이런 해석과 판단을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착하게 살면 모두가 복을 받는가? 그렇다면 지금 현재 복 받은 상태에 놓여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그 동안 착하게 살아 왔기 때문인가?
반면에 지금 현재 힘들게 사시는 분들은 모조리 그동안의 시간에 악한 일을 많이 했길래 그런 고생을 하는 것이라고 해석해도 무방한가?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마음을 돌려 착하게만 살면 지금 이후부터의 삶은 예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수 있게 되는 것인가?
이런 논리에 정당성을 부여한다면 기독교와 유교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래서 이 즈음에서 우리는 교훈 하나를 획득할 수 있다.
"우리 인생의 가치는 성공과 실패 여부에 달려있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있다"(24)
우리가 우리 인생이나 타인의 인생을 스스로의 손으로 이룩한 선이나 악 혹은 성공과 실패라는 채널로 그들의 인생을 판단하는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가치가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제가 알고 있는 어느 장로님이 계신다. 장로로써 교회를 개척했고, 노회장을 역임했다.
그 분의 전성기때 부산지역 교계에서 그 분의 이름을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로 유명하신 분이다.
많은 분들로부터 칭찬과 칭송을 받았다. 그 분이 이룩하신 업적도 대단했다.
하지만 지금은 병이 들어 자신이 개척한 교회 담임목회자와 등을 지고는 교회 출석도 제대로 못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장로님은 부동산 사업으로 많은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각종 기독교 사업에 헌신하셨다.
정말 수고하신 장로님이시다. 저도 한때 존경했던 분이다.
하지만 이런 소식을 듣고는 그동안 장로님이 하셨던 사업과 교회 봉사가 무슨 소용이 있고 무슨 의미가 있느냐?라는 결론을 내렸다.
본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것 역시 헛되어 바람 잡는 것이다"라고 평가할수 있을 것 같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의 가치는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손에서 나왔다는 사실 하나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의 가치는 동일하고, 그 가치를 아무도 평가할 수 없다.
우리 인생의 가치를 만들어 주는 요인은 우리가 이룩한 사업이나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이시기 때문이다.
각자의 인생의 가치를 연봉이나 직업 그리고 성공여부나 업적으로 평가하고 가치를 매기는 일은 부질없는 행위이며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신다.
선인은 복을 받고 악인은 징벌을 받는다는 단순한 논리로 우리 인생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설명하고 해석할수 없다.
이런 행위 조차 헛되어 바람 잡는 일이다.
우리 인생은 마치 재단사가 옷을 재단하듯이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래서 대단히 복잡하고 다단하다.
하나님의 듯을 모르고는 각자의 인생의 이야기와 사건들을 설명할수도 판단할수도 없다.
한 시절의 어려움으로 자신의 인생의 가치를 평가하거나 그런 뭇 사람들의 평가에 마음 두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한때의 부요함으로 오만한 자리에 앉는 어리석음도 피해야 한다.
어려워도 지금의 그 어려움이 우리 인생의 가치가 아니며, 부요해도 그 부요함이 우리 인생의 가치가 아니다.
그러므로 어려울 때 어려움으로 인해 한숨을 짓고 누굴 원망하는 행위나, 부요할 때 그 부요함으로 인해 마치 무언가가 된 것처럼 다른 이를 무시하고 평가절하하는 행위 모두 부질 없는 짓이며 바람 잡는 일에 불과하다.
어려울때도 부요할 때에도 우리의 진정한 가치는 하나님의 손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예수 잘 맏는 사람은 교만하지도 비굴하지도 않는다.
열등감이나 우월감을 가지지 않는다.
지금 이대로의 모습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한다.
그러니 간절한 마음으로 권면한다.
상황이나 바램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마라. 자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나 앞으로 이루고자 하는 바램은 일시적일 뿐이다. 상황과 바램이 언제 변할지 우리 조차 모른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나 바램으로 인해 우리 인생의 가치가 결정되지 않는다.
인생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선물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러니 우리 인생은 우리를 선물로 주신 분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