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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이 권하는 책]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 둘 수는 없습니다 - 정정훈 변호사 ┗ 공감이 권하는 책 2008/11/04 15:26
1.
스물아홉 가을에 사법시험 공부를 생각했고, 서른아홉 가을에 다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사실 ‘다시’라는 말이 정확한 것은 아니다. 책이 내 책상에 배달되어 오기 전까지 나는 이 책을 읽었었다는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어느 술자리에서, 조영래 변호사가 생전에 썼던 신문 칼럼들을 읽어보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스치듯이 했고, “제가 보내줄게요”라는 후배의 대답에 뒤이어, 이 책은 내개 배달되었다. 책 표지를 보고는 기억해 냈다.
법에는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던 대학생 때, 별 성의 없이 읽었던 책이라는 것을.
사시 공부를 결심하면서 내 머리에 ‘조영래’라는 이름이 스쳐갔었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오히려 스물아홉에 나를 움직인 것은 김광석이었다. “서른 즈음에”, “일어나”를 노래하는 김광석은 내 무기력한 삶을 움직일 힘이었다.
2.
변호사로서 5년을 보낸 내가, 8년의 변호사를 끝으로 세상을 떠난 조영래의 글과 삶을 읽는다. 그리고 스물아홉 나의 김광석처럼, 이 우연한 만남이 ‘마흔 즈음’의 나를 다시 ‘일어나’게 하는 힘이 될 것이라는 짐작을 얻는다.
3.
그는 어느 칼럼의 제목을 이렇게 썼다. “80년대에 우리는 ‘민주’를 잃었고 ‘민주화’를 얻었다. ” 그 제목처럼, 오늘의 우리는 ‘조영래’를 잃고, ‘인권’을 얻었다. 조영래로 상징되는 시대정신이 분투한 ‘민주화’의 기반 위에서, 인권의 경계를 부단히 새롭게 재구성하려는 오늘의 노력들이 살아 있는 것이다.
조영래 변호사가 작고한 1990년, 미국에서 연수를 하던 그는 ‘낙태의 자유’, “동성애 사람들의 인권”이라는 문제를 접하고,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쓴다. “내가 고루해서 그런지, 어쨌든 이런 문제로 열을 내어가며 평생을 바친다는 것은 나로서는 내키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소.”, “차차 시간을 두고 내 생각을 재검토하고 새로 정리를 해보아야 할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가 마지막 섰던 자리에, 변변치 못한 내가, 오늘의 우리가 서있다. 조영래 변호사가 아직 세상에 있다면, 환갑을 넘긴 나이일지라도 당신께서 분명히 서 있을 그 자리에.
4.
한 사람에 대한 최대한의 애정이 극진한 추모사들.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을 움직이는 글은 권인숙의 추모사다.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와선 왠지 웃음이 헤퍼졌”고, “빈소의 사흘이 돌아가고만 싶은 날들로 기억된다”는 추모사에는 변호사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 그려져 있다.
한 나절을 접견실에 머물면서 의뢰인과 세상 이야기를 나누고, 변론을 하면서는 눈물 때문에 목이 메이는 변호사. 나의 5년으로는 감당조차 되지 않는, 그런 삶의 깊이가 무섭다. 그런데도 추모사는 이어진다. “생각이 앞서 있음을 가파르게 표현하지 않고 서서히 설득해 들어가며”, “상대방의 진의를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이해하는 그 진지함”으로 “대화를 하고 나면 세상일이 제자리를 찾으며 정리가 되곤 했다.”
세상은 그가 말보다 글을 더 잘 쓰는 변호사였다고 평가하지만, 그는 글보다 말이 더 깊었고, 삶이 더 넓었던 그런 사람이라고 권인숙은 쓰고 있다.
5.
조영래 변호사가 신문이나 잡지에 쓴 글들에는 “낙관할 것인가, 비관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많이 있다. 예외 없이 그 대답은 낙관이다. 언제나 희망은 있다고 말한다. ‘이성의 비관, 의지의 낙관’을 이야기한 그람시의 낙관이 아니라, 그는 세상에 대하여 이성으로도, 의지로도 진정 낙관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작고하기 1년 전 백련사에서 쓴 일기에서는 불혹을 넘긴 당신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내 인생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지친 것일까? 상해버렸나. 알 수 없으되 무언가 잃어가고 있는 것”
세상에 대한 낙관과 자신에 대한 회의에서 묘한 대조가 느껴지지만, 그건 하나의 뿌리를 같이하는 것. 나를 회의하고 또 지울 수 있기에 세상의 사람들을 믿고, 그런 세상을 믿기에 죽음까지도 태산같이 당당할 수 있는 것. 죽음까지도 덮는 그 낙관의 깊이가 또한 무섭다.
6.
조영래 변호사가 작고하기 전, 무정부주의자로 유명한 중국 소설가 바진(巴金, 파금)에 심취 했다는 이야기를 술자리에서 들은 적이 있다. 무정부주의, 바진! 세상에 대한 깊은 신뢰와 자신에 대한 도저한 회의, ‘변호사/조영래’라는 내게는 왠지 낯설게 느껴지는 조합과도 잘 어울려 보인다.
중문학을 전공(?)한 나도 아직 바진의 소설을 읽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날인가는 또 이 책처럼 우연히, 바진의 소설도 내 손에 들려질 것 같기는 하다. 공익변호사그룹공감, 조영래변호사, 정정훈변호사, 진실을영원히감옥에가두어둘수는없습니다, 서평이 포스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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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이 권하는 책]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 염형국 변호사 ┗ 공감이 권하는 책 2008/10/14 14:44
라면에 대한 단상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최장집, 2005, 후마니타스)
염형국 변호사
1.
라면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장 즐겨먹는 음식 중의 하나이다. 밤늦게 출출할 때, 식사 준비하기 귀찮을 때, 야외에 놀러갔을 때 등 어느 때에도 라면이 빠지지 않는 것은 우리에게 간편함과 먹는 즐거움을 선사해주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그 맛있는 라면을 더 이상 먹지 않겠다고 끊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라면 스프에 쇠고기 분말이 들어가 있고, 그 쇠고기 분말이 미국산 쇠고기로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는 이유 때문이다.
2.
올해 상반기 우리나라는 미국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시위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길거리로 나선 국민들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는 헌법 제1조의 국민주권을 목놓아 외쳤다. 이는 국민의 위임을 받은 대통령과 국회가 국민의 의사를 적절히 반영한 정책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는 대의민주주의의 위기가 도래한 시점에 주권자인 국민들이 직접행동에 나선 것이라고 한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저자인 최장집 교수는 1987년 민주화 이후에 우리 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졌다고 진단한다. 저자는 민주화된 이후 더 열악해진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또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3.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 되는 정치체제이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이루어졌던 시민권자들이 민회를 구성하여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직접 민주주의는 더 이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늘날 민주국가를 표방하는 나라에서는 국민들이 자신을 대신하여 정책결정을 할 대표를 선거를 통해 선출하고 그 대표인 국회와 대통령이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대의민주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사회가 서로 갈등하는 이해와 의견의 차이로 이루어져 있는 조건에서 이들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는 데 그 존재이유가 있는 정치체제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내재된 주요한 갈등이 정치적으로 표출되어 조정되는 기제가 잘 작동되지 못하기 때문에 민주화가 되었음에도 민주주의는 퇴행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는 시민의 ‘참여’와 정당에 의한 ‘대표’를 그 핵심으로 한다. 그러나 유권자 다수가 시민권의 행사, 즉 선거에 있어서의 투표를 거부하여 갈수록 투표율이 바닥으로 치닫고 있다. 가장 최근의 선거였던 지난 7월 30일 행해진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는 15.5%의 투표율을 기록하였다. 이러한 참여의 위기는 ‘대표성의 위기’를 낳게 되고 그로 인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더욱 퇴행하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 젊은이들의 정치적 무관심과 남을 고려하지 않는 이기심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늘어가고 있으나, 젊은 세대들의 신세대 의식․개인주의적 사고보다 이들이 우리 사회 공동체의 문제에 열정을 가질 수 있는 통로와 대안이 배제된 정치가 더 큰 문제이다.
4.
나 또한 라면에 들어간 쇠고기 스프가 걱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끊지 못하게 하는 라면의 마력 때문에 여전히 먹고 있다. 한편 라면을 좋아하던 사람들이 라면을 더 이상 먹지 않겠다고 하는 모습을 보면 참 안타깝다. 이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사람들 중의 대다수가 미국산 쇠고기로 만든 쇠고기 스프가 들어갔을 지도 모르는 라면을, 그리고 설렁탕을 먹지 않는
‘소극적 시민’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획득하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다. 우리 사회는 ‘소극적 시민’에 머물러 있지 말고 보다 나은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적극적 시민’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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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이 권하는 책] 광장의 문화에서 현실의 정치로 - 정정훈 변호사 ┗ 공감이 권하는 책 2008/10/14 14:41
[공감이 권하는 책]
소송하는 사회, 불평하는 주체에 대한 단상
『광장의 문화에서 현실의 정치로』
(당대비평기획위원회, 2008, 산책자)
정정훈 변호사
1.
“강한 놈이 오래 가는 게 아니라 오래가는 놈이 강한거드라.” 영화 '짝패'에서 이범수의 날렵한 대사. 광장의 촛불은 꺼‘졌다’. 축제의 끝에서 당장 축배를 들고 있는 쪽은 시민들은 아니다. 그러나 ‘정권’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 정권을 결정하는 시민들이 오래 갈 뿐. 그것이 광장에서 시민들이 다시 선언한 헌법 제1조의 의미다. 촛불집회가 우리 사회에 던진 질문들은 그렇게 짧은 호흡의 것이 아니었다. 광장의 의미를 둘러싼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다.
『광장의 문화에서 현실의 정치로』는 ‘민주화 20년’이라는 긴 호흡으로, 광장 이후의 민주주의를 다시 사고하는 질문들을 모색한다. 민주화 체제 20년, 권력의 형상들은 무엇이고, 당대의 정치가 자리하는 지형은 어떠한지, 시대를 살아가는 주체들은 어떠한 모습인지를 묻고 대답한다.
‘당비의 생각’이라는 연속 단행본의 기획으로 모인 12편의 글들은 모두 고루 읽는 즐거움이 있다. 도발적으로 새로운 글들이 있는 반면, 차분하게 갈무리하는 글들도 있다. 『당대비평』 폐간의 아쉬움을 해소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2.
그 중에서도 서동진의 「소송하는 사회, 불평하는 주체」는 개인적인 관심과 겹쳐져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글이었다. 서동진의 글을 거칠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 법과 정의는 분리되었고, 더 이상 법은 정의를 표상하지 않는다. 단적인 예가 법률서비스를 (노골적으로) 상품화하는 로스쿨의 논리다.
이런 상황에서 ‘법대로 하자’는 말은 이전과는 다른 울림을 갖는다. 법과 정의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느낌은 사라지고, 복잡하고 귀찮은 타인과의 윤리적 갈등을 (쿨하게) 회피하는 몸짓이 되어버렸다. 불평하는 주체들의 소송하는 사회에서의 법의 풍경이다. 법이 더 이상 정의의 윤리를 대표하지 않고(과소대표) 이해관계만을 대표(과잉대표)하듯이, 정치의 풍경도 마찬가지이다.
서동진의 ‘소송사회’에 대한 진단에는 중요한 통찰들이 빛난다. 그러나 나는 또 다른 방향에서 다르게 생각해 보고 싶다. 법과 선(善)의 관계에 대하여 들뢰즈는 다음과 같이 분석한 바 있다. 플라톤 이래 과거에는 선(정의, 윤리)이 법을 규정했지만, 칸트 이후의 근대에는 법이 선을 규정한다. ‘법으로부터 선이 도출되는 것이지 그 역은 아니다.’(『차이와 타자』, 서동욱) 법과 정의의 분리(단락)라는 서동진의 진단 역시, 법과 선의 관계에 대한 들뢰즈의 법 분석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방점이 찍혀야 하는 지점은 법과 정의의 ‘분리’라기 보다는, 분리 이후의 전도된 관계다. 법과 선이, 법과 정의가 분리됨으로써 오히려 법 그 자체가 선이 되고, 정의가 되어버렸다는 점에 주목하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ς 법이 윤리를 떠난 이해관계만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법이 이해관계를 윤리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ς 소송사회는 이해관계가 윤리가 되고, 법이 정의로 인식되는 사회의 다른 모습은 아닐까
생각의 차이는 서있는 자리가 다르고, 사회를 보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법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나는, 우리 (근대)사회의 가장 강력하고 상징적인 헤게모니는 ‘법’에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법을 ‘통한’ 실천이 아니라, 법에 ‘대한’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는다. 상투적이만 여전히, 법이라는 매끄러운 정의의 형식이 은폐하는 이데올로기를 끄집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법과 정의를 더욱 명확하게 분리시키는 윤리적 실천에서 소송사회에 대한 해답의 방향을 찾고 싶다.
광장의문화에서현실의정치로, 서평, 정정훈변호사, 공감이 포스트를.. 덧글 2개 엮인글 쓰기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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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첵읽은지 한 10년은 된 것 같습니다. 카페지기님이 구입하여 우리 돌려읽으면 어떨까요..워낙 궁짜껴서..
좋으신 안 입니다. 소인이 돌려 보도록 하겠읍니다.
좋은책은 읽어야 하는데,,,,,, 좋은글 올려 주신 부검조님께 감사!
고맙습니다. 빠른 시일내에 빌리러 가겠습니다. 남아일언중천금..
조영래변호사 읽어보고 싶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사서 볼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