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의 러시아 상장지수펀드(ETF)인 'KINDEX 러시아MSCI(합성)'이 가까스로 상장폐지 위기에 넘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상품은 실제 주식을 담지 않고, 거래 상대 증권사(메리츠증권, NH투자증권)와의 스왑(정해진 시점에 약정한 수익률을 제공하기로 하는 장외파생상품) 계약을 통해 지수 성과를 추종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19일 인터넷 매체 비즈니스워치에 따르면 ETF를 굴리는 한국투자신탁운용(이하 한투운용)과 거래 상대 증권사(이하 증권사)는 상장 유지를 위한 최소 규모의 스왑 계약을 남기기로 했다. 이에 따라 'KINDEX 러시아MSCI(합성)' 펀드는 큰 변수가 없다면 내년 말까지 일단 상장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거래가 중단된 러시아ETF 가격 추이/네이버 금융 캡처
이 상품과 같은 합성 ETF는 스왑 등 장외파생상품을 활용해 ETF가 갖고 있는 자산과 거래 상대방(증권사)이 갖고 있는 자산의 수익률을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KINDEX 러시아MSCI(합성)'은 원래 미국 상장 러시아 ETF인 'iShares MSCI Russia(ERUS)'과 ‘유렉스 MSCI 러시아 선물’이 스왑 대상이다.
상장 폐지 위기가 시작된 것은 미국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이 지난 3월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이유로 러시아 지수를 0.00001로 평가하기로 하면서 부터. 스왑 대상인 '유렉스 MSCI 러시아 선물’ 의 가치가 사실상 0원이 됐다. 이에 국내에서도 한투운용과 증권사 간에 계약 종료가 가능해졌고, 계약이 종료되면 상장폐지 수순에 들어간다.
모스크바 거래소의 증시 지수 변화 추이표(년 단위). 오른쪽은 최근 열흘간의 등락/얀덱스 캡처
하지만, 한투운용과 증권사는 스왑거래를 원칙적으로 종료하지 않기로 했다. 최소한 헤지가 가능한 자산 범위 내에서 계약을 유지하기로 한 것. 상장 폐지 위기는 사라진 듯했다.
다음 위기도 바다 건너 ERUS(iShares MSCI Russia)로부터 날아왔다. ERUS를 운용하는 미국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지난 3일 상장폐지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남은 자산이 사라지니, 한투운용과 증권사간의 스왑 계약도 어쩔 수 없이 종료되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나왔다. 다행히 한투운용과 증권사가 투자자들의 투자금을 최대한 보전하기 위해 (헤지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스왑거래 지속 협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측(블랙록)은 ERUS의 상장폐지 계획을 발표하면서 보유한 현금성 자산을 지난 17일 먼저 지급하고, 내년 말까지 정리할 수 있는 주식을 차례대로 청산해 자산을 분배하겠다고 했다. 그 분배금을 국내 펀드의 순자산에 포함시켜 내년 말까지 계약을 유지하자는 게 한투운용-증권사 간의 협의 핵심이다.
양측의 계획대로 내년 말까지 상장이 유지된다면 현재 순자산가치에 ERUS 분배금이 더해져 투자자들이 회수할 수 있는 금액이 조금이나마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KINDEX 러시아MSCI(합성)'의 순자산가치는 러시아 지수를 0.00001로 계산한 값과 실시간 원화 대비 루블화 환율을 반영한 결과다. 18일 기준 순자산가치는 515.26원이다.
러시아 'KINDEX 러시아MSCI(합성)'에 대한 투자 손실이 커진 데에는 일부 투자자들의 성급한 판단도 미친 영향도 적지 않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며칠 만에 끝나면서 급락한 러시아 증시가 다시 회복할 것이라고 판단, 이 상품 매수에 나선 투자자들이 많은 손해를 본 것이다.
한국거래소/사진출처:홈페이지
한투운용과 한국거래소는 위기를 불사하는 투자자들에게 잇달아 경고 메시지를 내보기도 했다. 아예 거래소는 2월 28일 투자유의 종목 지정을 예고했다. 그리고 3월 2일 'KINDEX 러시아MSCI(합성)'를 투자유의 종목으로 지정하고, 닷새 후인 7일부터 거래정지했다. 그 사이에도 일부 투자자들은 물러서지 않았다고 한다. 3월 3일까지 개인 투자자들의 순매수 금액이 무려 278억원에 달한 이유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