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국인 제2부』
512회. 우리말을 좀 더 사랑하자
일본말이 많이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일본말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입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어려서부터 입에 익어 그 말이 일본말인지조차도 모르면서 사용하는 경우마저 적지 않다. 보다 좋은 우리말을 두고서도 습관적으로 쓰고 있는 그런 대표적인 일본말들을 몇 개 소개해보면 다음과 같다.
노가다(どかた)→노동자/막노동꾼, 다대기(たたき)→다진양념, 단도리(だんどり)→준비/ 단속, 단스(たんす)→서랍장/옷장, 데모도(てもと)→허드레일꾼, 뗑깡(てんかん)→생떼/행패/억지, 땡땡이가라(てんてんがら)→방울무늬, 똔똔(とんとん)→득실없음/본전, 마호병(まほうびん)→보온병, 멕기(めっき)→도금, 모찌(もち)→찹쌀떡, 분빠이(ぶんぱい)→분배, 사라(さら)→접시, 가께우동(かけうどん)→가락국수, 곤색(紺色, こんいろ)→진남색/감청색, 기스(きず)→흠/상처, 소데나시(そでなし)→민소매, 소라색 (そらいろ)→하늘색, 시다(した)→보조원, 시보리(しぼり)→물수건, 아나고(あなご)→붕장어, 아다리(あたり)→적중/단수, 야끼만두(やきまんじゆう)→군만두, 에리(えり)→옷깃, 엥꼬(えんこ)→바닥남/떨어짐, 오뎅(おでん)→생선묵, 요지(ようじ)→이쑤시개, 우라(うら)→안감, 우와기(うわぎ)→저고리/상의, 유도리(ゆとり)→융통성/여유, 입빠이(いつぱい)→가득, 짬뽕(ちやんぽん)→뒤섞음, 찌라시(ちらし)→광고지, 히야시(ひやし)→차게 함, 등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또 일제강점 후 일본은 일상용어조차도 일본식으로 쓰도록 강제했고 그래서 아래 예문에서 보듯 우리 지식인이란 사람들도 비판없이 그대로 썼던 말들이 정말 많다. 가봉(假縫, かりぬい)→시침질, 가처분(假處分, かりしょぶん)→임시처분, 각서(覺書, おぼえがき)→다짐글, 견습(見習, みならい)→수습, 견적(見積, みつもり)→어림셈, 견출지(見出紙, みだし紙)→찾음표, 계주(繼走, けいそう)→이어달리기, 고수부지(高水敷地, しきち)→강턱, 고지(告知, こくち)→알림, 고참(古參, こさん)→선임자, 공임(工賃, こうちん)→품삯, 구좌(口座, こうざ)→계좌, 기합(氣合, きあい)→혼내기, 등등은 그런 대표적인 말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한문을 쓰는 것이 말을 줄여 쓸 수 있어서 오히려 좋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고수부지→강턱, 매점매석→사재기, 엘리베이터→승강기, 에스컬레이터→자동계단, 할증료→웃돈, 공장도가격→공장값”처럼 오히려 우리말이 더 짧은 경우도 많아 설득력이 없다. 더욱이 앞으로 우리말을 국민적, 국가적 차원에서 사랑하고 발전시켜간다면 보다 더 간단하고도 뜻 좋은 말들은 얼마든지 생겨날 것이다.
현실이 이런데도 우리말을 갈고 닦을 생각을 하기는커녕 새로운 외국어를 우리말화하려는 사람들, 특히 언론인들과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너무 많다. 당장 신문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외래어들은 얼마든지 우리말로 바꿀 수 있는 말들이다. 다스(dosen)/타(打)는 묶음으로, 레자(leather)는 인조가죽으로, 돈까스(豚pork-cutlet)는 돈육튀김으로, 만땅(滿-tank)은 가득채움으로, 레미콘(ready-mixed-concret)은 양회반죽으로, 백미러(rear-view-mirror)는 뒷거울로, 맘모스(mammoth)는 대형으로, 오바(over coat)는 외투로, 츄리닝(training)은 운동복으로, 메리야스(madias:스페인어)는 속옷으로, 미싱(sewing machine)은 재봉틀로, 빵꾸(punchure)는 구멍으로, 엑기스(extract)는 농축액으로, 조끼(jug)는 큰잔으로, 후앙(fan)은 환풍기로 바꾸면 무슨 큰 탈이라도 난단 말인가?
요즈음은 일본어대신 신문방송마다, 유명인사들의 연설마다 원어민이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엉터리 영어가 차고 넘친다. 리모콘(remocon)의 영어식 표현은 remote control이고, 아파트(apart)는 apartment이고, 와이셔츠(Y-shirts)는 shirts/dress shirts이고, 클락션(Klaxon)은 horn이고, 디카(Dica)는 digicam이고, 오토바이(Autobai)는 motorcycle/motorbike이고, 핸들(Handle)은 steering wheel이고, 스텐(stain)은 stainless이고, 핸드폰은 cellular phone/mobile phone이고, 탤런트(Talent)는 TV actor/TV star이고, 원룸(One Room)은 studio apartment/studio이고, 웹툰(Webtoon)은 web comic이다. 또 코로나사태가 몰고 온 유행어인 언택트(Untact)는 비접촉이고, 팬데믹(pandemic)은 대유행/대재앙이다. 이런 외래어들은 수도 없이 많고 미국과 서구의 영향력이 크면 클수록 이런 외래어는 갈수록 범람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훈민정음을 “언문(諺文), 가갸글, 조선글”처럼 다양하게 부르던 것을 “한글”이라고 통일해 부르도록 한 주시경(周時經, 1876~1914년) 선생에게 정부가 그의 공훈을 기려 1980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한 것은 우리말과 글을 더욱 사랑하자는 뜻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 1840~1897년)의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The Last Lesson)”에서 보듯 나라 말과 글을 잃는다는 것은 그 나라 그 민족의 얼과 혼을 잃는다는 말이다.
지금처럼 우리의 말과 글을 잃어 간다면 머지않아 한국인의 얼과 혼도 사라지지 않을까? 나부터 너부터 나아가 신문방송과 정부부터 앞장서서 우리말을 좀 더 아끼고 사랑하자.
(페이스 북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