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주는 자가 받는 자 보다 복이 있다 눅6:38 행20:33-38
록펠러하면 20세기 초 ‘미국의 석유 왕’ 이라고 불리기 전까지 그의 행보는 현대의 어떤 기업들도 흉내내기 힘든 대단한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1881년 록펠러는 미국에서 생산되는 석유를 손에 쥐고 있었다. 당대를 같이 살았던 미국의 신화적인 부자들인 앤드류 카네기, J. P. 모건과 더불어 록펠러라는 이름은 현대 경영자들에게 별과도 같은 존재이다. 자산가치는 현재의 빌 게이츠의 3배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엄청난 기부금을 낸 자선사업가이기도 하다. 고래 기름으로 등잔을 밝히던 시대에 태어난 록펠러는 석유를 원료로 하는 내연기관 시대에서 그의 사업은 번창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95%를 독점한 록펠러는 기업인으로서 지금 이 자리까지 오기 까지 젊은 시절 록펠러는 너무 가난해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저를 부자가 되게 해 주세요." 사실 록펠러는 뉴욕에서 부자도 가난하지도 않은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인생에 결정적인 순간은 1855년 클리블랜드의 센트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9월 26일 ‘휴이트 앤드 터틀’에 경리과 직원으로 입사해 ‘회계장부 A’를 기입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록펠러는 첫 직장에 취업하면서 주급 4달러로 처음 일을 시작했지”“그는 매주 싸구려 하숙집의 집세로 1달러를 지불하는 것 외에도 소액기부 모임에 75센트를, 그리고 이리 스트리트 침례교회의 주일학교에 5센트, 빈민구제 활동에 10센트, 해외선교 활동에 10센트를 헌금했다.” 그는 4달러 주급 시절부터 기독교 정신의 핵심인 십일조, 즉 자신의 수입의 10%를 헌금으로 평생을 낸 독실한 신자였다. 그리고 서른세살에 백만장자가 되었고 마흔세살에 미국 최대의 부자가 되었고, 쉰세살에는 돈을 벌려는 욕심과 돈을 지키려는 염려로 걱정이 많아져 위장병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신경쇠약에 걸렸고 53세에 세계 최대의 갑부가된 록펠러, 하지만 그는 늘 무언가에 쫓기는 기분이었고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는 쉰다섯살이 됐을때 죽을 병에 걸렸고, 일년이상 살지 못한다는 선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처럼 악착같이 모았던 재산도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록펠러가 마지막 검진을 받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병원에 왔을 때 마침 로비에 걸려있던 액자가 그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는 글귀가 적힌 액자였습니다. 그것을 읽는 순간 록펠러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가 터져 나온다. "하나님! 제가 가난할 때는 잘 살게 해 달라고 해서 돈을 벌었는데, 지금은 돈 때문에 제가 죽게 생겼습니다." 마음속에 감동이 밀려오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탐심을 물리치고 남을 위해 좋은 일에 써라." 그렇게 많은 부를 쌓는 동안 한번도 남을 돕지 않았던 지나온 삶을 되돌아 봤던 것입니다. 잠시 후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허름한 옷차림의 여자가 병원 관계자들과 다투고 있었습니다. 병원 측은 병원비가 없으니 입원이 안된다고 하고 환자의 어머니는 제발 딸좀 살려달라고 울며 사정하고 있었습니다. 이 상황을 본 록펠러는 비서를 시켜 병원비를 지불하게하고 누가 지불했는지는 아무도 모르게 했습니다. 얼마후 록펠러가 은밀하게 도왔던 소녀는 기적적으로 회복할 수 있었고 같은 병원에서 조용히 소녀를 지켜보던 록펠러는 매우 기뻤습니다. 후에 그는 자서전에 이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저는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삶이 있는지 미처 몰랐습니다." 이후 록펠러는 가난한 이들을 도우며 나눔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신기하게 그의 병도 사라졌다. 그 뒤 그는 98세까지 재단을 통해 선한 일을 하는데 힘썼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이렇게 회고 했습니다. "갑부로 살던 인생 전반기 55년 동안 나는 늘 쫓기며 살았지만 나누며 살던 후반기 43년은 정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인생 후반부는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나는 시기다. 록펠러는 미국에서 최고의 부호로 알려진 사람에 비하여 그의 신앙에 대하여 알려진 것은 별로 없다. 그런데 실제로 록펠러는 우리가 본 받아야 할 믿음의 사람이다. 록펠러는 98년 동안 살면서 록펠러 재단을 설립하여 많은 선한 일과 사회사업에 힘썼다. 그 중에 특별히 4,928개의 교회를 세워 복음 사역에 앞장을 섰다. 그리고 24개의 대학을 설립하여 후진을 양성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록펠러가 76세가 되었을 때 어느 기자가 세계 최고의 부자로 성공하게 된 비결이 무엇입니까?” 라고 그에게 물었을 때 그가 대답하기를 어머니로부터 세 가지 신앙의 유산을 받아 순종한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대답하였다. 그가 어머니로부터 받은 세가지 신앙의 유산은, 첫째 맨 앞자리에 앉아 예배드리는 것 -하나님과의 관계 둘째 목사님의 사역에 순종하는 것 -사람과의 관례 셋째 반드시 십일조를 드리는 생활 -물질에 대한 관점 록펠러는 이와 같은 어머니의 말씀을 신앙의 유산으로 생각하고 전적으로 순종하였다. 그의 이런 순종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길이었다. 이런 그의 삶은 결국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한 사람의 영적 승리의 간증이 수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였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가 가르친 내용을 보면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교회당을 지어라. 학교를 세워라. 무슨 위대한 일을 해라. 이런 게 아니다. 록펠러가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것은 누구나 행할 수 있는 신앙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면에 충실하였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약한 사람들을 도우며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라고 하신 주 예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문구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며,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사도행전 20장 35절에 기록된 주님의 말씀으로, 나눔과 구제가 신앙인의 중요한 사명임을 강조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단순히 물질을 주는 행위를 넘어, 약한 사람을 돕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복음의 핵심 사명임을 나타냅니다. 주는 행위가 물건을 잃는 손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흘려보내며 얻는 영적인 만족과 기쁨이라는 관점입니다. 세상은 받는 것을 복이라 여기지만, 성경은 주는 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더 큰 채워짐을 경험한다는 역설을 제시합니다. 바울이 스스로 수고하여 다른 이들의 필요를 채웠던 것처럼, 나눔을 통해 성숙한 신앙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는 예화를 한가지 말하고자 합니다.
옛날 희랍에 한 왕이 살았다. 그는 태평성대를 누리면서 호색과 탐닉으로 자신을 더욱 즐겁게 하려고, 이를 위해 큰 상금을 걸고 쾌락과 행복의 길을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모든 일을 다 해보았고 가지고 싶은 것도 모두 손에 넣어봤지만 만족하지 못했다. 이에 더 높은 행복과 기쁨을 얻기 위한 방법을 간구하였지만, 오히려 불만과 갈증은 더 커졌다.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실망감도 늘어가며 끝없이 향락과 기쁨을 찾아봤으나 언제나 어딘가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소녀가 왕 앞에 나타나 자신이 왕에게서 진정한 행복과 기쁨을 찾을 비결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당돌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며 왕에게 다가왔다. "왕은 결코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세요. 왜냐하면 남을 행복하게 하거나 기쁘게 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진정한 행복을 원하신다면 다른 사람을 먼저 행복하게 해보세요. 그런 다음에야 왕 스스로도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소녀의 말에 왕은 깊이 생각하고 오랜 고민 끝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딸아, 그대의 말이 옳다. 그대의 가르침에 깊이 감사하며 보상을 주겠다." 이렇게 왕은 그녀의 말을 받아들이고 보상을 주었다고 한다. 남을 행복하게 함으로써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워렌 버핏은 미국의 투자가이자 기업인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부유한 사람 중 하나로 인정받았다. 그는 돈을 깨끗한 방식으로 벌어서 그의 부유함에 대한 평가를 받았으며, 특히 워렌 버핏이 중시하던 것이 바로 '기부'였는데, 친구인 빌 게이츠와 함께 부자들에게 기부와 자선 활동을 권유하는 역할을 했으며, 자신의 재산의 대부분을 기부할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또한 그는 부의 책임과 윤리를 강조하며, 지식을 이용한 사기나 부정한 행동을 비판하는 발언으로 미국의 부자들에게 집적 경고를 내놓았다. 그는 어려운 상황에서 도움을 주는 사례로도 알려져 있으며, 그의 행동은 사회적 영향력을 획득하며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는 건전한 시장 경제와 기회의 평등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동시에 건전한 가치와 노력을 강조하는 인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워렌 버핏은 부의 즐거움보다는 사회에 기여하는 것의 가치를 강조하며, 세계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기부왕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미시간대 학자들은 최근 5년 동안 400명의 노인 부부를 조사한 결과,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수명이 더 긴 경향을 보였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연구를 주도한 브라운 교수는 "타인 도움은 자신의 생명을 연장시킨다"고 강조했다. 1999년 캘리포니아대에서 2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다른 조사 결과도 이와 부합한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두 개 이상의 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약 63%가 5년 동안 더 살게 된다고 알려졌다고 한다. 이로써 타인을 돕는 행위가 개인의 건강과 행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침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주는 행위의 가치를 상기시켜 준다. 옛 왕의 이야기부터 워렌 버핏의 긍정적인 모델링까지, 타인을 행복하게 하고 돕는 일이 진정한 행복의 열쇠임을 알 수 있다.
왕은 자신의 욕망과 탐욕으로만 쾌락을 찾으려 했지만 진정한 만족은 남을 행복하게 하는 데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워렌 버핏은 돈을 벌고 기부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가치와 행복을 발견했다. 록펠러는 인생의 후반부를 남을 도와주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 교회를 5000여개나 세웠고 대학교도 24개나 세웠다. 즉, 타인을 돕고 행복하게 하는 행위가 우리 자신에게도 큰 보상을 주는 것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진리다. 이런 관점에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 라는 말을 기억하고 우리가 자신의 손을 내밀어 도우며 나눔의 마음을 실천할 때,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찾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눅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라는 이 말씀은 비울 때 비로소 채워지는 천국의 법칙입니다. 내 것을 내어주고 나눌 때 진정한 채워짐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내 손에 있는 작은 것을 주님 뜻대로 이웃과 나눌 때 우리의 손은 비로소 하나님의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됩니다. 나눔은 내 소유가 줄어드는 손해가 아니라, 하나님의 '넘치는 채우심'을 경험하는 통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나눔을 보시고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주신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친히 '나눔의 본'이 되셨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삶 자체가 거대한 '나눔' 이었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시간과 사랑, 눈물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셨고 마침내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물과 피,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다 내어주셨습니다. 우리가 그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아 구원을 얻었기에, 우리 역시 삶의 자리에서 작은 예수가 되어 나눔을 실천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 내 주위에 나의 작은 나눔이 필요한 곳은 어디인지 살피고 주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복된 통로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가 행복을 원한다면 나눔을 통해 항상 기뻐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실천하고 산다면 가장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삶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방금 위에서 록펠러와 어느 왕의 이야기를 통해서 오늘 본문 말씀인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도다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주려고 오셨습니다. 내 목숨은 천하보다 더 귀한 것인데 그 귀한 목숨을 인류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9-11). 그러므로 예수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조용히 살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3년동안 에베소교회에서 눈물과 기도로 양육한 에베소 교회를 떠나면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며,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을 기억하라고 권면했습니다. 단순히 물질을 주는 행위를 넘어, 약한 사람을 돕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복음의 핵심 사명임을 권면하는 것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을 통해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살펴보고 그 실천 방법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복음성가에서 사랑은 참으로 주는 것이란 노래가 있지요.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버리는 것 버리는 것 참으로 더 가지지 않는 것 이상하다 동전 한 닢 움켜 잡으면 없어지고 쓰고 빌려주면 풍성해져 땅위에 가득하네. 오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버리는 것 버리는 것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더 가지지 않는 것 자 내일 걱정일랑 버리고 모든 염려 주님께 맡기세요.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더 가지지 않는 것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더 가지지 않는 것이라고 노래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첫째는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생명을 더 풍성히 얻게 하려함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한 목자로 오셔서 나는 양의 문이라고 하시며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생명을 주시고 더 풍성하게 하시기 위해 오셨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9장13절에서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기 위해 오셨다고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9장10절에서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의 근본 목적을 예수님께서 친히 증명해 주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모습으로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오신 것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에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하시며 대신 죽어주기 위해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17절에서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려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하려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고 요한복음 18장37절에서는 “진리에 대해 증언하기 위해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참고로 사도 바울도 사도행전 20장24절에서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라고 하며 복음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자기 생명까지도 아깝지 않다!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한다고 복음증거의 사명을 존귀히 여겼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내가 좋은 것만을 달라고 매달리지 말고 예수님이 오신 목적과 그 목적에 따라 사는 방법을 세워햐 하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들의 삶의 방향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0장35절에 보면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 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찌니라”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다 가는 것이 참으로 복된 삶일까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라는 말은 오랜 세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가 깨달은 삶의 지혜이자 진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하셨는데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것 또한 진리입니다. 주는 것은 단순히 물질을 나누는 행위를 넘어 ‘주는 삶’이 몇가지 교훈을 줍니다. 우리가 잘 아시지만 “똑같은 조건의 음식과 국자가 있는 데 천국과 지옥에 간 사람들의 큰 차이는 지옥에 가보니 빠싹 말라 죽어가는 데 천국에 가보니 살이 통통하게 찌고 행복에 가득해 살더라는 예화가 있습니다. 알고보니 지옥은 긴 국자로 자기만 먹고 살려고 혼자 입에다 넣으려고 하다 자신도 못먹지만 천국은 서로 먹여 주니 살도 찌고 건강한 삶을 누리더란 것입니다. 혼자만 잘 살려고 하면 안 됩니다. 심리학에서도 남을 돕는 행위가 뇌의 기쁨과 중추를 자극해 신체적은 물론 정신적 활력을 준다고 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가져 갈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인생의 마지막 가는 길에 남는 것은 ”내가 무엇을 얼마나 가졌느냐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남에게 많이 베풀고 사랑을 주었느냐“입니다.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볼 가치있는 사실은 사해처럼 ”흘러가지 않고 고인 물은 썩지만 갈릴리바다처럼 끊임없이 흘러가는 물은 늘 맑고 새롭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나누는 삶을 생활화하도록 힘씁시다. 그리고 주는 것은 물질과 복음과 사랑을 주는 것인데 어떻게 주어야 할까요?
첫째는 물질의 무상공급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물질을 돈을 많이 모으고 돈을 저축하는 것이 복된 삶으로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물질을 나누어 주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구제하는 삶을 더 가치있고 복된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살아생전에 내가 얼마나 벌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디에 어떻게 사용했느냐가 중요한 것이라고 교훈하십니다. 그리고 둘째로 복음은 영혼을 살리는 것이므로 물질을 주는 것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18절에서 “그런 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라고 복음을 값없이 전하는 기쁨을 누렸던 것입니다. 끝으로 사랑 또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 여러 가지 예배와 전도와 선행과 교육 등 교회자체는 물론 이웃을 향하여 할 일이 많지
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37절에 보면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라는 말씀을 볼 때 에베소교인들을 얼마나 뜨겁게 사랑했는지 가히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물질을 주고 복음을 주고 사랑을 주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복음 성가 사랑을 부르고 오늘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도 교만도 아니하며 사랑은 모든 것 감싸주고 바라고 믿고 참아내며 사랑은 영원토록 변함없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이 세상 끝까지 영원한 것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나누어 주면 소모되는 것도 있지만 나누어 주면 더 풍성해지는 것도 있습니다. 나누어주면 더 풍성해져 땅위에 가득한 것이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라는 오늘 은혜받은 말씀은
1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생명을 더 풍성히 얻게 하려함입니다.
2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습니다.
3 특히, 물질과 복음과 사랑을 주는 것이 복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대로 주는 삶을 살 때 주님께서 물질과 복음과 사랑을 주며 살다가 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천국의 주인공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