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앞에는 양심도 없다
瓦也 정유순
우리나라가 경제개발계획에 따라 가파르게 성장하고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들의 인내와 협조도 중요한 몫을 차지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의 환경을 담보로 하였던 것은 사실이었다. 물론 일제강점기 때 우리 산의 좋은 목재를 무차별 벌목하여 산림의 피해가 많았으며, 더불어 1945년 해방과 1950년 한국전쟁이후 절대빈곤층이 많아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생활을 해야 했고, 난방과 취사의 연료로 나무를 베어 사용했기 때문에 헐벗은 산이 해마다 늘어나서 비가 조금이라도 오면 산사태(山沙汰)가 많이 발생하였다.
<산의 피복(숲)을 벗겨 버린 산>
그래서 산림녹화(山林綠化)도 국가의 중요한 정책의 하나였다. 지금의 푸른 산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은 그 결과로 얻어진 큰 소득이다. 빗물이 흐르던 마당으로 미꾸라지가 기어 올라오고, 항상 맑은 물이 흐르던 냇가에서 미역 감고 물장구치며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하였으며, 비개인 후 아름다운 무지개를 잡으러 다리 아픈 줄 모르고 무작정 걸었던 그 때, 밤이면 동산에 올라 별을 보고 동심을 노래하며 순수한 사랑을 나누었던 시절은 이미 오래된 전설이 되고 말았다.
<숲이 우거진 산>
1960년대 이후 ‘잘 살아 보자’라는 기치 아래 공업화가 시작 되면서 전국 곳곳에 공장이 들어서고, 도로와 철도·전력·통신·수자원확보 등 국가의 기간산업이 확충되면서 우리의 사정은 급하게 변하기 시작하였다. 도로가 산의 허리를 끊었고 산을 가로지르는 송전탑과 통신설비가 들어섰으며 웬만한 골자기마다 다목적 댐이 들어섰다. 군데군데 산업단지가 들어섰고 지방에서는 공장을 유치하기 위하여 서로 경쟁을 하여야 했으며 바다 연안까지 막아 대단위 제철소와 조선소 및 자동차공장 등을 지었다.
<팔당댐>
젊은 사람들은 취직을 하기 위해 공장지대로 몰려들어 농어촌은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여 일손이 모자랐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대가족사회가 도시중심의 핵가족사회로 전환되었다. 지금의 농어촌의 고령화가 된 것도 이러한 영향이 매우 크다. 그 결과 경제적으로 여유로워 졌지만 우리가 부담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은 엄청나게 늘어났다.
<오리가족>
우리나라도 공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자연은 착취의 대상이었다. 쾌적한 환경보다는 ‘더 많이 생산해서 더 많이 팔아’ 외화를 벌어들이는 일이 급했던 모양이었다. 외국에서는 공해산업으로 골치 아팠던 공장까지 유치해야 했고, 공장을 짓기 위해 설계도를 외국에 용역을 의뢰하면 두 개의 설계도가 들어 왔는데, 다른 하나는 오염된 물과 공기를 처리하는 공해방지시설의 설계도면 이었다고 한다.
<공업지역>
그러나 정부의 정책결정자 마저 그런 시설이 왜 필요하냐며 생산능력을 그만큼 더 늘렸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더욱이 공해나 오염을 걱정하는 사람이 있으면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장에서는 폐수와 나쁜 공기가 아무 거리낌 없이 흘러 나와 아름다운 강산을 더럽혔고 하늘의 공기마저 숨쉬기 곤란했다. 어느 공장지역을 지나칠 때는 악취가 진동했고 얼굴이 따가울 뿐만 아니라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폐수처리시설>
이러한 현상은 기업에서 깨끗하게 처리하여야 할 오염물질을 처리하지 않고 그 책임을 사회와 자연에게 떠 넘겼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즉 기업이나 개인이 부담하여야 할 비용을 사회로 전환 시켜 그 비용만큼 재산을 축재했다는 이야기고, 반대로 그 비용만큼 국민의 혈세로 부담한다는 것이다.
<그림-장영철화백>
그 당시 실제로 어떤 공장에 가 보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단속의 눈을 피해 무단방류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남이 잘 보지 않는 밤에나, 단속이 느슨해지는 공휴일에는 그 정도가 매우 심하였다. 이는 행위가 나쁜 줄 알면서도 처리하는 비용을 아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다. 한마디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양심도 저 버리는 행동이다.
<출렁다리>
방지시설을 설치해 놓고도 운영하는 비용을 아끼려고 가동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으며, 심지어는 비밀배출구를 만들어 폐수를 하천으로 마구 쏟아 붙는 사람도 있었다는 것이다. 한 때는 이렇게 돈을 번 사람들이 TV나 신문 등 매스컴에 등장하여 우리의 경제와 환경을 이야기하면서 사회지도층 인사로 행세하던 때도 있었던 것 같다.
<꽃무릇>
일반인도 마찬가지인 경우가 있다. 지금은 덜 하지만 오래전에 서울근교의 북한산에 환경캠페인을 하기 위해 쓰레기 줍기를 하러 간 적이 있었다. 환경에 대한 시민의식이 지금처럼 높지 않을 때이지만, 등산로 주변에 널려 있는 쓰레기는 그래도 줍기가 쉬웠는데 조금 깊고 외진 곳에 일부러 쑤셔 박은 쓰레기는 수거하기에 어려움을 겪은 일이 있었다.
<보리수열매>
더욱이 ‘쓰레기종량제’를 정부에서 실시한 이후에는 쓰레기봉투 값을 아끼려고 다른 비닐봉투에 담아 와서 산속이나 강가에 버리는 사례가 지금도 있다고 한다. 자동차를 운전하고 도로를 달리다 보면 차창 밖으로 담배꽁초를 버리는가 하면, 어린아이가 과자봉투 등 쓰레기를 엄마가 보는 앞에서 길거리에 버리는 일이 눈에 띄기도 한다. 이런 아이가 커서 어떤 사람이 될까 궁금해진다.
<내성천 외나무다리>
사용할 때는 고급스러웠던 폐가구와 폐전자제품 등 덩치가 조금 큰 것은 버리는 비용이 비싸서 그러는지 시골의 외진 곳에는 버려진 것이 많이 있다. 결국 이러한 것들은 해당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민들로부터 거둬들인 세금으로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들이 부자가 되었다면 그것은 자기의 양심을 버림으로써 얻어진 돈일 것이다. 돈 앞에서는 양심도 없는 사람들이다.
<성산일출봉>
자연을 사랑하고 환경을 지키는 일은 해박한 지식도, 높은 경지의 도덕관도 필요 없다. 남의 눈을 찌푸리지 않게 하고 불쾌감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아주 조그만 양심만 지켜준다면 얼마든지 실천이 가능한 일일 것이다. 내 자신의 양심으로 우리 강산 ‘더 맑게 더 푸르게…’
<도봉산오봉>
<영춘화>
<정유순의 “우리가 버린 봄 여름 가을 겨울” 중에서>
https://blog.naver.com/waya555/222924437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