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테의 혼돈
허 열 웅
살아갈수록 어려워지는 것, 그게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를 먹을수록 세상을 바라보는 분별력과 삶에 대한 애착이 깊어지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갈 수도, 다시 시작해볼 수도 없는 편도 열차이기에 종착역에서 내려야한다. 우리나라는 독특하게 태어나면 한 살이 되고 이후부터는 새해가 돌아오면 떡국을 먹고 또 한 살이 보태진다. 그래서 나이종류가 여러 가지다. 집 나이, 만 나이(서양식 나이), 연 나이로 구분 되어몇 살인지 헷갈린다.
나이를 말할 때 공자의 논어 위정(爲政)에 15세는 학문에 뜻을 둔다 하여 지학(志學), 20세는 비교적 젊은 나이라 하여 약관(弱冠), 30세는 뜻을 세우는 나이라 하여 이립(而立)이라 했다. 40세는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을 나이라 하여 불혹(不惑), 50세는 하늘의 뜻을 안다 하여 지천명(知天命), 60세는 천지만물의 이치에 통달하고 듣는 대로 모두 이해한다 하여 이순(耳順)이라고 부른다. 70이 되면 어떤 일을 행해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아야한다 하여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라고 한다. 이를 줄여 나이 종심(從心)이라한다.
나이를 보태는 연륜이 아니라 생각하는 수준이나 판단력을 기준으로 하는 정신적 나이, 건강상태의 상황에 따라 구분하는 신체적 나이로 구분하기도 한다. 어른 같은 아이. 아이 같은 노인들도 있다. 103세에도 강연을 다니시는 김형석 교수가 계시는가 하면 70세도 안 되어 식물인간처럼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떠나신 이건희 삼성회장도 있었다. 세대별 나이로MZ세대, 중년, 장년, 노년 또는 꼰대 세대로 분별도 한다. 흔히 말하는 이팔청춘은 28세가 아니라 16세(2 x 8)이고, 77세는 희수(喜壽), 88세를 미수(米壽)라 하고, 백수(百壽)는 100세가 아니라 백(百)에서 1을 뺀 백수(白壽) 즉 99세를 의미한다. 나이가 들면 중후함이 요구되고 실수를 변명할 수 없기에 어른의 나이를 말할 때 연세(年歲) 또는 춘추(春秋)라는 말을 사용한다.
2023년 6월부터 만 나이(생일이 돌아와야 한 살을 보탠다)로 통일되어 공식적인 행정에 적용된다. 그러다보니 한, 두 살이 줄어드는 경우가 발생되기도 할 것 같다. 사실 나이라는 게 젊었을 적에는 남자들은 성숙하게 보이려고 보태는 경향이 있기도 했고 나이가 들면 한 살이라도 젊어지고 싶어 줄이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나도 젊었을 때에는 형(兄)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 나이를 보태어 말한 적도 있었다. 이제 줄여 서 말하고 싶을 때도 있다. 시대가 변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29세 시집 못 간 처녀가 3~4년 동안 스물아홉 살이라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
이사를 다니다보니 테니스모임에 새로 가입할 경우가 있었다. 나이 70세가 넘으면 회원가입에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 클럽들도 있다. 그래서 나이를 두 살 정도 내려서 가입한 적이 있다. 그러다보니 나보다 두 살 아래인 회원들로부터 반말도 듣고 심부름도 들어야했다. 그러다가 회원들과 섬에 놀러갔다가 배를 탈 때 주민등록증을 제시할 경우가 생겨 들통 난 적도 있다. 이런 호적상 나이보다는 내 정신적인 나이에 고민하고 있다.
나는 나이가 들면 나는 저절로 훌륭하고 의젓하여 철이 들 줄 알았다. 마음도 넓어지고 생각은 깊어지고, 욕심에서 벗어날 줄 알았다. 남에게는 너그럽고, 자신에게는 엄격할 줄 알았다. 지나간 섭섭했던 것에 대한 미움도 사라지고 어지간하면 용서가 될 줄 알았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 오히려 옹졸해지고 사소한 일에 간섭하고 별일도 아닌 것에 화도 내고 점점 철부지가 되어가는 느낌이 든다. 자식들을 내리사랑하고 이해하며 보듬으며 살아갈 줄 알았다. 그러나 성장한 아이들의 사고방식에 대해 아쉽고 섭섭하고 때로는 분노가 비치기도 하여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가끔 있다.
평균수명에 가까워지니 아무한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외로움과 슬픔이 새벽안개처럼 몰려와 가슴이 답답할 때가 가끔 있다. 인생이 허무하고 덧없다는 생각에 가슴앓이를 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삶의 강을 건너야 하는 죽음이 두려워진다. 누군가가 말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고 하지만 얼마를 머물러야하는지도 모르고 마음대로 떠날 수 없는 것이 한 생명의 운명이 아니겠는가?
이제 몸에서 힘을 빼고 바람이 불면 슬쩍 드러누웠다가 바람이 지나면 다시 일어 날줄 아는 부드러운 풀잎처럼 살아야 하지 않을 까? 사람은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멋이 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물과 올무를 내던진 사냥꾼처럼 마음을 비워가며 좋은 포도주처럼 익어가야 한다고들 말하지만 쉽게 되지 않는 게 범인들의 삶인 것 같다. 저녁노을에 곱게 익은 홍시같이 늙어가야 하는데 시고 떫은 풋과일이 되어가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해마다 그어놓은 나이테가 선명하지도 중후重厚하지도 않아 부끄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