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석이 이녀석이 되어간다.
지난 6월부터 나는 16번의 산을 올랐다. 약초산행이 아니라 정상에 오르는 등산이다. 녀석은 어제까지 11번째 산을 올랐다. 눈빛은 맑아졌고 혈색도 밝아졌다. 다소 힘들어보이기는 했지만 예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다. 6~7년 전 8시간 이상 걸려야만 간신히 오르내렸던 산을 5시간이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산행을 마칠 수 있었다.
녀석은 뇌전증을 앓고 있다. 자신도 모르게 쓰러져서 정신을 잃고 자신이 쓰러진 사실조차 몰랐다. 앞으로 쓰러지면 얼굴이 만신창이가 되었고 뒤로 쓰러지면 뒷통수가 퉁퉁 부었었다. 녀석의 뇌전증으로 인해 장모님을 모시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6~7년의 세월을 함께 하게 되었다. 장모님은 가끔 내게 말했었다.
"산에 좀 데리고 다닐 수는 없겠나?"
처음 그 말을 듣고 옆지기와 함께 셋이서 산에 올랐으나 녀석도 녀석이지만 나와 옆지기도 파김치가 되어 몸살을 앓았었다. 그 이후로 함께 산에 오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장모님이 가끔 부탁을 했었지만 기초체력이 없고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했었다. 그런데 지난 봄에 장모님이 느닷없이 하늘로 가시고 말았다.
몇달을 고심 끝에 결단을 내렸다. 십년 넘게 녀석의 머릿속에 기생하는 벌레를 잡아주고 싶었다. 아무리 큰 병원에서 좋은 약을 써도 머릿속의 벌레는 쉽게 잡히지 않았다. 벌레를 잡는 유일한 방법은 등산이라 생각했다. 처음에는 녀석과 나 그리고 딸과 함께 동행했다. 딸이 앞장서고 나는 뒤에서 녀석을 살피며 올랐다.
느닷없이 쓰러지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위험한 구간이 나오면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에 녀석을 가운데에서 걷게 했다. 그렇게 지난 6월부터 매주 1~2회 등산을 시작했다. 7번째 산행에서 딸은 취직이 되어 산행에서 이탈했고 녀석과 나 둘이서 점점 난이도를 높이며 산행을 이어갔다. 그렇게 9번째로 택한 산이 해남의 달마산 능선이었다.
녀석이 처음으로 포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구간도 구간이지만 무엇보다 지독한 폭염이 바위를 달궈 복사열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녀석은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나는 녀석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폭언을 퍼부었다. 그 따위 근성으로 어떻게 머릿속의 벌레를 잡을 수 있느냐고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을 퍼부었다. 9번째 만에 처음으로 산행에 실패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녀석은 그 이후로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어지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픽픽 쓰러지더니 급기야 끙끙 앓기 시작했다. 얼굴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했다. 그렇게 2주일 정도를 앓았다. 그렇게 앓은 후 연구실에 출근했는데 퉁퉁 부어있던 얼굴은 헬쓱해졌고 몸무게도 많이 빠져 있었다. 목아래 쇠골중심에는 빨갛게 열꽃이 다닥다닥 피어 있었다.
"둘 중에 하나야. 네 정신과 육체가 재부팅이 들어갔거나 아님 죽음꽃이다. 어차피 삶은 반반이다. 좋은 결과였으면 좋겠구나."
2~3일이 지나자 목주위의 열꽃이 거짓말처럼 없어졌다. 그리고 호모에렉투스 같던 몸짓이 사라지고 사피엔스 같은 움직임이 보였다. 약 기운으로 버티던 정신은 가끔 약을 먹지 않아도 버틸 수 있게 되었고 쓰러질 때 완전히 놓았던 정신을 잃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어제 11번째 등산을 오로지 자신의 의지만으로 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녀석이 이녀석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로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그녀석이 자신의 의지만으로 무사히 등산을 해내는 이녀석으로 재부팅이 된 것이다. 아무리 약이 좋아도 흘리는 땀보다 좋을 수는 없다. 지독했던 지난 여름의 폭염도 사람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다. 그녀석이 힘들어하며 포기할 때마다 나는 혼자서 더 독한 산을 오르며 의지가 무엇인지 녀석에게 보여주었다.
약은 달리 있는 것이 아니다. 의지가 바로 약이고 치료제다.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점차 약을 끊고 온전한 정신을 되찾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자신의 근성이 삶을 보다 자신감 있게 하고 그 자신감이 풍요롭고 행복함을 가져다주기를 바랄 뿐이다. 자신감은 건강한 육신에서 나옴을 지난 여름 지독한 폭염속에서 새삼 깨닫게 되었다.
해강.
약초연구소 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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