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 1,20―2,4ㄱ; 마르 7,1-13
+ 오소서 성령님
오늘은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이면서 세계 병자의 날입니다. 성모님께서는 1858년 2월 11일부터 프랑스 루르드에서 여러 차례 발현하셨는데,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1992년부터 이 발현 첫날을 ‘세계 병자의 날’로 지내도록 정하셨습니다. 세계 병자의 날을 맞아 병 중에 계신 분들과 가족들, 의료진과 간병인, 요양보호사 등 환자를 돌보는 분들에게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한편, 대전교구는 루르드의 성모님을 주보로 모시고 있습니다. 2020년부터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을 제2주보로 함께 모시고 있는데요, 루르드의 성모님을 주보로 모시기 시작한 것은, 초대 교구장이셨던 원형근 아드리아노 주교님께서 계실 때부터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프랑스에서 태어나셔서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사제로 1907년에 우리나라에 오신 라리보 신부님은 원형근이라는 한국 이름을 쓰시고 충청도 지방 40개 공소를 다니시며 사목하셨습니다.
1911년에 우리나라에 하나뿐이던 조선대목구는 오늘날 서울대교구의 전신인 경성대목구와 대구대목구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1926년 주교품을 받고 부주교가 되신 원 주교님은 1933년부터 1942년까지 경성대목구장을 맡으셨는데, 일제강점기이던 당시, 일제가 일본인 주교를 후임 대목구장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있자, 비밀리에 교황청에 특사를 보내어 한국인 노기남 주교님을 후임 대목구장으로 임명하도록 하고 은퇴하셨습니다.
그러다가 1948년에 대전지목구가 설정되자 지목구장을 맡으셨고, 1962년에 대전교구가 설정될 때까지 대전지목구장, 대전대목구장, 그리고 대전교구장으로 봉직하시다가 1964년에 은퇴하셨습니다.
대전교구의 주보 축일인 오늘, 루르드에서 발현하신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의 전구 안에서, 하느님께서 우리 교구를 보호해 주시고 당신의 이끄심에 순종하도록 은총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제33차 세계 병자의 날을 맞아 발표하신 담화문에서 ‘하느님께서 고통받는 이들 곁에 계시는 세 가지 특별한 방식, 곧 만남, 선물, 나눔’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만남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많이 만나신 사람들은 병자입니다. 병은 우리에게 고통스럽고 이해하기 어려운 실재이지만, 고통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을 만나 뵙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둘째는 선물입니다. 희망은 주님에게서 온다는 사실을 고통이 깨닫게 해줍니다.
셋째는 나눔입니다. 고통의 자리는 서로를 풍요롭게 하는 나눔의 자리가 되기도 합니다. 교황님은 말씀하십니다. “환자, 의사, 간호사, 가족, 친구, 사제, 수도자 등 어떤 모습이든, 또한 가정, 진료소, 요양원, 병원, 의료 센터 등 어떤 장소에 있든,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희망의 ‘천사’이자 하느님의 메신저임을 깨닫습니다.”
‘희망의 천사’, ‘하느님의 메신저’ 곧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이라는 말씀이 많이 와닿는데요, 우리가 병중에 있는 분들에게 인간적 위로가 아니라 하느님의 위로를 전할 때 하느님의 메신저가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서를 인용하시며 바리사이과 율법학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우리가 미사 때에 드리는 기도가, 입술로는 하느님을 공경하면서도 마음으로는 하느님에게서 떠나 있는 사람들의 기도가 되지 않기를,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진심 어린 기도가 되기를 빕니다.
오늘 1독서의 말씀처럼 하느님의 말씀은 다른 존재를 살리는 말씀입니다. 이에 비해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말은 남을 판단하는 말, 죽이는 말입니다.
우리가 주고받는 말들이, 그 안에서 하느님께서 말씀하실 수 있는 사랑과 위로의 언어가 되기를, 그리하여 우리가 이기심의 메신저가 아니라 하느님의 메신저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원죄없이 잉태되신 루르드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으소서. 아멘.
비르질리오 토제띠, 루르드의 성모님, 1877년.
출처: File:Virgilio Tojetti 1877 Our Lady of Lourdes.jpg - Wikimedia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