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법원 정문을 나서면서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세 번째 이혼을 하고 나서는 길이었다. 올려다본 하늘은 어이없게도 햇발 가득 맑았다. 흰 구름 몇 조각이 조각배처럼 떠가고 있었다. 무심한 듯 맑은 하늘과 흰 구름 몇 조각. 도리어 그것들이 한숨을 자아내게 할 뿐 이제 더 이상의 어떤 것도 없었다.
세 번째의 이혼…… 그것이 보이지 않는 꼬리표로 달려 있을 뿐이지 사실상 이제는 서러워할 그 무엇도, 탄식할 그 무엇도 없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만성과 타성이 적당히 뒤섞여 굳어버린 것일까.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듯한 허전함과 앞으로의 삶에 대한 막막함과 바늘로 심장을 찌르는 듯한 아픔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더 이상 몸부림쳐야 될 그 무엇도 없는 것이고, 어느 한편 홀가분하기 까지 했다. 모든 것 다 떨쳐버리고 난 뒤 텅 빈 공간에서 찾아오는 탈진 상태의 평온이랄까.
물론 첫 번째 이혼을 하게 되었을 때는 지금처럼 덤덤하게 넘길 수가 없었다. 이혼이라는 것 자체가 받아들여지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들이 견딜 수가 없었고 자신의 인생이 거기서 끝나 버리는 것만 같았었다. 이혼이라니. 남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던 그것이 어떻게 자신에게 닥쳐왔는가, 그 사실만 붙잡고 버둥대는 데에만도 일 년을 소비해야 했고, 이혼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끝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아 많은 시간을 낭비해야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숨 한번 크게 내쉬면 그만일 뿐이었다. 세월과 반복해 치르는 경험은 그만큼 사람을 마모시키면서도 한편으로는 단단하게 만드는 법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턱도 없는 배고픔에 시달렸다. 배고픔이라니, 새로운 증상(?)이었다. 첫 번째 이혼을 하고 돌아올 때는 그저 두 눈이 퉁퉁 붓도록 우느라고 정신이 없었고 몇 날 며칠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배고픈 줄을 몰랐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이혼을 하고 돌아올 때는 그저 자신의 신세가 한탄스러웠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그저 먹먹하니 누워 있기만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배고픔이라니, 그 사이에 사람 어지간히 망가지고 무디어졌구나 싶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거의 아무렇지도 않게, 여느 날과 다름없이 팔을 걷어 부치고 조리를 시작했다. 냉장고에 준비되어 있던 아귀탕 재료들. 그녀는 아주 익숙한 솜씨로 준비되어 있던 그 재료들을 순서대로 냄비에 넣고 아귀탕을 끓였다.
아귀탕을 다 끓여 가지고 식탁 앞에 앉았을 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아, 하고 신음을 삼켰다. 식탁에 마주앉아 그 아귀탕을 함께 먹어 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 그것이 비로소 이혼을 했다는 것을 자각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공교롭게도 그녀가 이혼 사실을 저미도록 자각하는 것은 바로 그 식탁 앞에서였고 음식 앞에서였다. 한 때 어떤 가수가 이혼을 하고서 혼자뿐인 식사는 이미 식어 버렸다는 노래를 지어 불렀지만 그런 것 말고도 바로 그 ‘요리’라는 것 앞에서 그녀는 다시 한번 길게 한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아귀탕……! 그것을 잘 끓이기 위해 그녀는 무던히도 애를 썼었다. 요리책을 사다가 뒤적이고, 잘 한다는 음식점에 가 사 먹으며 세세히 살피기도 하고, 요리사를 찾아가 배우기도 하고…. 물론 남자가 아귀탕을 좋아하는 까닭이었다. 그리하여 애를 쓰고 쓴 끝에 이제는 어디에다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만큼 끓일 수 있게 되었다 싶자 그만 그 남자와 갈라서게 된 것이었다. 하고보니 그동안 헤어진 세 남자의 경우가 거의 비슷했다.
사실 요리엔 젬병인 그녀였다. 조리대 앞에만 서면 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고 시험지를 받아든 학생처럼 막막해지곤 했다. 딴에는 맛깔스럽게 한다고 땀을 흘려가며 하지만 다 만들어놓고 보면 형편없었다. 그것은 어쩌면 내력인지도 몰랐다. 어머니는 음식을 못한다고 늘 아버지로부터 퉁박이었다. 같은 재료 같은 양념을 쓰고도 형편없는 음식을 만들어 내 놓는 것은 어머니나 그녀나 똑같았다.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고 살기 위해 먹는 거라면 되는대로 먹고 기운을 낼 수 있으면 되지 무슨 상관이냐고 나름대로의 주장을 펴 보기도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결혼을 하면서 마딱드린 것은 요리솜씨가 없다는 것이었다. 열과 성을 다해 음식을 차려놓은 식탁 앞에서 남자가 음식을 떠먹어 보고 이맛살을 찌푸리고 몇 수저 뜨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녀는 자신이 절망스러워지곤 했다. 더군다나 그 남자는 냉면을 좋아했다. 이틀이 멀다 하고 물냉면 비빔냉면을 찾았다. 그녀는 기를 쓰고 냉면 요리법을 배웠다. 흔한 말대로 공부를 그렇게 했더라면 지금쯤 큰 학자가 되었다 싶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육수 내는 법, 양념 배합, 면 삶기…. 워낙 솜씨가 없다 보니 먹을 만한 냉면 요리가 나오기 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려야 했다. 그녀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했다. 노력한 만큼 댓가는 나오는 법. 그녀는 어디다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냉면에 만은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냉면에 자신을 갖게 되자 그만 남자와 이혼을 하게 되었다. 첫 번째 남자였다.
두 번째 남자는 홍어찜이었다. 홍어찜은 냉면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우선 톡 쏘는 맛을 내기 위해 썩히는(발효) 과정이 관건이었다. 냉면에 들였던 것 보다 몇 갑절의 노력을 기울였다. 매일 홍어 한 마리씩이 쓰레기통 속으로 쑤셔 박혔다. 그렇게 수 없이 많은 홍어를 버리고 나서야 홍어찜 다운 홍어찜을 요리해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홍어찜에 자신 있다 싶자 두 번째 남자와도 헤어지게 되었다.
참으로 묘하고도 이상한 일이었다. 냉면과 홍어찜과 아귀탕과, 그리고 그것들에 자신감이 생기자 이혼을 하게 되다니. 왜 진작 그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일까?
그녀는 천정을 바라보고 멍하니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한껏 치장을 하고 가장 아끼던 옷을 걸치고서 현관문을 나서며 그녀는 방백하듯 중얼거렸다.
<그래, 다시 결혼을 하는 거야. 그러나 이번에는 어떤 요리도 배우지 않을 거야.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없다고 늘 퉁박을 당하면서도 아버지와 평생을 살고 있지 않은가. 바로 그거였어. 그거였다고. 퉁박이 도리어 삶의 중요 요소라는 거……>▣
Erste Liebe Meines Lebens / Monika Martin
첫댓글
세번의 이혼이란 주제
아이고 무섭네요
그 여자가 계룡산에 기거하는지요
천천히 읽어 볼게요
그런데 사진을 멋지게 잘 담으셔요
계룡이 이렇게 멋졌나
생각해 봅니다
여자분들은 아직도 어는 친구분인지 모르지만
수다 떨면서 함께 할수 있어서 좋은하루를
보내셨군요. 이글은 전에 한번 개재한것입니다.
부디 예쁘게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행운
아니요
고향 한해 선배지만
그냥 친구지요
불광동에 살아서 전철 한 코스라 교통수단도 좋아요
뭘 그리 챙겨 왔어요
아무래도 요즘의 실정이 그렇다 보니요
오늘의 글 요즘 현실에 직시하신 듯요
뭘 이혼이 요즘은 그리 심각성에 치우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요즘엔 자식에도 옛날처럼
기대하지 않으니요
우리 아이도 이제 아이에 대한 욕심을 내는 것 같아서
그래 자식은 둬야 한다
이제 외 할머니를 기대합니다
이 세월에요 ㅎㅎ
@행운
지금 추천을 눌러보니
새벽에 그냥 나갔네요
어제 꽃게 잡아먹다가
손가락에 찔려서 좀 불편하지만
그러나 저러나 타법은 독수리인 걸요 ㅎ
요즘 사진이 부쩍 더 멋져요
@양떼 네 정신없이 바삐 다녀오는라고
4시에 출발해서 7시쯤 귀가를 했답니다
어제는 제주도 갈치를 택배로 받아 보았는데
주변 시장보다 저렴하고.신선하더군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