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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을 밝혀 주는 등잔(금촛대)
출 25: 31-40
“너는 정금으로 등대를 쳐서 만들되,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을 한 덩이로 연하게 하고, 가지 여섯을 등대 곁에서 나오게 하되, 그 세 가지는 이편으로 나오고 그 세 가지는 저편으로 나오게 하며, 이편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저편 가지에도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여 등대에서 나온 여섯 가지를 같게 할지며, 등대 줄기에는 살구꽃 형상의 잔 넷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등대에서 나온 여섯 가지를 위하여 꽃받침이 있게 하되, 두 가지 아래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하게 하고, 그 꽃받침과 가지를 줄기와 연하게 하여 전부를 정금으로 쳐 만들고 등잔 일곱을 만들어 그 위에 두어 앞을 비추게 하며, 그 불집게와 불똥 그릇도 정금으로 만들지니 등대와 이 모든 기구를 정금 한 달란트로 만들되,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식양대로 할지니라.”
퀴즈를 하나 내겠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제일 먼저 창조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빛입니다. 창 1:3절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빛을 먼저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궁창을 만드셨고, 그리고 궁창속에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들을 만드셨습니다.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만드셨습니다.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모든 것은 순서가 있습니다. 다른 말이 아닙니다. 순서는 그 만한 이유가 있기에 순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순서에 빛이 없으면 모든 것은 살수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빛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빛을 강조하는 종교입니다.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셨고, 그리고 예수님께서 자신을 빛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의 빛이라고 하셨어요. 전깃불, 전기보일러, 전기 히터 뜨거워요. 그러나 전깃불에는 생명이 없어요. 식물이 광합성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생명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빛이십니다. 주님 앞으로 나오는 자는 영혼이 살아납니다. 우리 인간은 영혼의 햇빛 되신 예수님에게로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라죽습니다. 아무리 예수를 잘 믿던 사람들도 몇주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주님의 은혜를 떠나서 살면 죽어요. 영혼이 죽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날마다 주님의 빛되신 말씀 앞에 나아옴으로 우리의 영혼이 소생되는 은혜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한국 통계를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좀 통계가 틀리길 바래요. 한국에 청소년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것인데 약 30%가 성매매 제의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10명중에 3명은 받았다는 것입니다. 더 기가 차는 것은 30%속에 16%가 응했다는 것입니다. 몸을 팔고 살아간다는 거예요. 더럽고 추한 음란 사이트가 한국이 그렇게 많습니다. 자살사이트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몇 일전에도 어떤 여자 대학생이 청소년에게 함께 자살하자고 해서 경찰에 잡혔어요. 같이 죽자는 거예요. 이것은 너무나 경악스러운 것입니다. 아주 심각한 것입니다.
이것은 빛이 아니에요. 이것은 어두움입니다. 이것은 죄입니다. 죄질은 다르지만 죄는, 어두움은 인간에게 아주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한국에 여자 경찰관으로 참 좋은 일을 하는 김강자 경관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이 윤락녀라든지 잘못된 길로 빠진 청소년, 대학생들을 그렇게 돌보려고 한 대요. 그 좋지 못한 곳에서 빠져 나오게 그렇게 힘도 쓰고 애를 써 주고, 안되면 감옥에 며칠동안 가두어 두기도 하고 별것을 다했데요. 그분이 그래요. "자기가 하는 것으로서는 도저히 이 사회를 밝게 할 수 없다고 그래요" 자신의 방법으로 하는 일들이 그들에게 새로운 삶의 빛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요. 자기가 미아리에서 구하면, 영등포로 가고, 영등포에서 구하며 청량리로 가고, 그곳에서 구하면 천호동으로 가고. "도대체가 안 된다는 거예요. 전혀 자신이 하는 방법으로는 안 된다"고 말해요.
도대체 빛이 무엇입니까? 다른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빛이 없는데 이곳으로 어떻고, 저쪽으로 가면 어떻냐는 거예요. 여러분, 마음에 빛이 없는데 어디로 가야 하냐는 것입니다. 문제는 빛입니다. 빛이 없음이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 빛이 없으면 무엇이 그 사람을 주관하는지 아십니까? 바로 어두움이, 깜깜함이 그 사람의 마음을 지배합니다. 마음이 어두우니 어두움을 쫓아가게 되어 있어요. 어둠이 지배하데 되는 것입니다. 그 유명한 사도인 바울도 결국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자기도 이렇게 저렇게 힘써 보고 애를 써 보지만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고백하는 것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사도바울 조차 고백하는 것은 이 세상에 어떤 힘으로도, 내 힘으로 어둠을 쫒아낼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25절에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빛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Ah Ha, 이것이구나라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이 아니면 도저히 어두움을 쫓아 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의 어두움을 몰아낼 수 있습니까? 요한복음 8장 12절을 보면,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인간은 하나님의 빛이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이 아니면, 성령의 불빛이 비추어지지 아니하면 어둠을 쫒아낼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죄를 지으면 계속적으로 어두움이 그 사람을 지배합니다. 죄를 안 지으려고 하는 이유는 한가지예요. 하나님의 빛을 꺼트리지 않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죄는 우리의 행복의 불을 꺼버립니다. 여러분, 잘 아셔야 합니다. 우리 모든 문제는 질병이 아니에요. 가난이 아니에요. 실패가 아니에요. 죄가 우리의 행복을 앗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죄를 경홀히 여기면 안됩니다. 죄는 심각한 문제를 낳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죄로 말미암아 불행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꺼버린 불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켜기 위해서 오셨어요. 베들레헴에 예수님은 빛으로 오셨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멀리서 어떻게 왔다고 합니까? 빛을 쫓아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컴컴한 밤 양치던 목자들이 빛을 보고 쫒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이 빛으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오늘 찬양 96장
"온 세상이 캄캄하여서 참 빛이 없었더니
그 빛나는 영광 나타나 온 세게 비치었네
영광 영광의 주, 영광 영광의 주 밝은 그 빛 내게 비치었네
영광 영광의 주 영광 영광의 주 이 세상의 빛은 오직 주 예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의 마음의 어둠을 쫒아낼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문으로 들어오는 자녀는 빛의 자녀입니다.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번제단에서 자기 공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함으로,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어두움을 물러날 줄 믿습니다. 비록 세상에 살면서 먼지가 묻고, 때가 묻을 수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며 담대히 주앞으로 나오는 심령, 말씀을 의지하며, 십자가의 보혈을 다시 한번 의지하면서 나오는 그 심령에게 성결의 은혜, 정결의 은혜, 깨끗함의 은혜가 넘쳐 날줄 믿습니다.
여러분 오늘은 담대히 성소로 들어갑니다.
(그림)
성소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여러분, 오른쪽에서 떡상인 진설병이 놓여져 있고 왼쪽에는 등대 즉 금촛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성소 앞쪽에는 향단이 놓여 있습니다.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소에 있는 모든 것도 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무엇인가면 등대입니다.
(그림)에 나옵니다. 금으로 만들고 한줄기에서 나와 왼쪽으로 3가지, 오른쪽으로 세 가지 6개이고, 그리고 중간에 원줄기를 합치면 전체가 7개입니다.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고 그리고 그 잔에는 불이 비쳐지는데 오직 신령한 감람기름으로만 붙여지게 됩니다. 그리고 영원히 끊지 않게 불을 밝혀야 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한줄기에서, 한 등대에서 가지가 나오고 그리고 꽃받침과 꽃, 그리고 등불이 나옵니다. 밝게 비추게 되는 것입니다. 한 줄기입니다. 무엇이 생각납니다. 요한복음 15장 1절에서 주님은“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원줄기인데, 가지인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비로소 빛을 발하며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가지가 줄기에서 떨어져 나가면 그것은 죽은 것입니다. 불에 태워지게 되어요.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붙어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주여,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과 연합하게 하옵소서" .
이 성전 안에 첫 번째 살피는 등대, 금촛대는 무엇을 상징하는 가면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우리의 모든 삶은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지가 언제 열매를 맺는가?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열매를 맺길 원합니다. 생명을 다하여 주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떨어져 나가는 심령이 되면 안됩니다. 이것이 첫 번째 진리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서는 우리의 모든 삶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원하는 모양이 아닌, 주님이 원하시는 모양대로 우리를 이끌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 첫절이 참 중요한데 1절 "너는 정금으로 등대를 쳐서 만들되"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나 일단 등대로 만들어질 금덩어리가 여러 곳에서 모입니다. 한달란트의 정금인데 한사람이 그냥 다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하나님께 바쳐서 모아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의 금이 되어서 그때부터 모양을 만들어 내요. 끊임없이 외쪽도 치고, 저쪽도 치고 망치로 얻어맞게 되는데, 맞는 동안에 어떤 부분은 들어가게 되고, 어떤 부분은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계속 맞다가 보면, 그것이 점점 등대의 모양으로 변해서 나중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빛을 발하는 등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속함을 받은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줄기 되신 등대 되신 예수님의 손에 붙잡히면, 자기가 열심히 애쓰고 노력해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의해서 요렇게도 맞고, 저렇게도 맞고, 그러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자기의 모양을 잃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모양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성도라면, 성소 안으로 들어온 자라고 한다면 그가 원하든 원치 않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양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변화되는 것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간증을 참 많이 봅니다. "목사님, 제가 이렇게 변할 줄은 몰랐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거예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변화되는 거예요. 옛날과 너무나도 변해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귀한 등불이 되고 싶습니까? 그러면 먼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모양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양을 이루기 위해서 요렇게도 저렇게도 하나님이 사용하도록 자신의 몸을 드리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준비하고 다 마쳤어요. 그런데 메일이 왔어요. 어규철이에요. 저의 교회의 첫열매입니다. 참 이 형제가 예수를 믿게 된 것이 참 기적이에요. 가정에서 아무도 예수를 안 믿었어요. 그런데 우리 교회에서 끌어않았어요. 우리 가정하고 그 형제하고 이렇게 예배를 드렸어요.
어떤 자매가 이런 글을 썼습니다. "목사님, 나를 돌아보더라도 내가 구원을 받고 난 그 날부터 깨끗하고 온전한 삶을 산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실수할 때나 잘못할 때도 많았지만, 그 때마다 사랑하는 주님께서 내 마음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나는 구원을 받고도 남을 비판하는 이야기를 곧잘 했었습니다. 그것이 내게 큰 괴로움이 되었는데, 어느 날 내가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가운데 그 마음이 버려지고 그 이후부터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을 비난하는 마음이 내게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내가 구원을 받기 전에는 스스로 변하려고 노력해 봤는데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는데, 주님의 손에 잡히고 난 이후에는 내가 변하려고 노력을 하지 않아도, 주님이 내 삶의 모든 부분을 변화시켜 주셔서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방법으로 나를 바꾸시고 인도하셨습니다.
말씀을 다시 읽습니다. 정금으로 쳐서 만든 그곳에 살구꽃 형상의 잔이, 꽃받침이, 꽃이 그리고 감람류의 신령한 것으로 불빛이 비추게 됩니다. "너는 정금으로 등대를 쳐서 만들되,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을 한 덩이로 연하게 하고, 가지 여섯을 등대 곁에서 나오게 하되, 그 세 가지는 이편으로 나오고 그 세 가지는 저편으로 나오게 하며, 이편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저편 가지에도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여 등대에서 나온 여섯 가지를 같게 할지며, 등대 줄기에는 살구꽃 형상의 잔 넷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등대에서 나온 여섯 가지를 위하여 꽃받침이 있게 하되, 두 가지 아래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하게 하고, 그 꽃받침과 가지를 줄기와 연하게 하여 전부를 정금으로 쳐 만들고 등잔 일곱을 만들어 그 위에 두어 앞을 비추게 하며,
하나님이 이렇게 쳐서 만들고, 저렇게 쳐서 만들고 하나님이 만드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만들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일하시고 있어요. 하나님은 역사 하시고 있어요. 저는 저희 교회를 사랑하고 우리 성도들을 사랑하며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등불의 역할을 감당할까? 우리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밝은 빛을 비출 것인가 이것을 참 고민합니다.
저희 교회가 새로운 성전으로 이사를 왔어요. 매번 마다 성전을 바꿀 때 은혜를 더하셨어요. 구원받는 수를 더하셨어요. 기쁨을 주셨어요. 그리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 우리 교회가 하나님이 귀하게 쓸 수 있도록 내어 맡기고 싶습니다. 우리 교회는 주님의 교회입니다. 목사의 교회도 아니요, 성도의 교회도 아니요, 주님이 만들어 가시는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I will build my church
주님의 교회를 세워 가시옵소서. 따라서 합시다. "주여, 주님의 교회를 세워 가시옵소서"
여러분, 교회는 이것 아셔야 합니다. 교회는 내가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주님의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어요. 우리가 할 수 잇는 것은 주님이 세울 수 있도록 우리의 것을 허락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헌신해야 합니다. 드려야 합니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에요. 감사함으로 하는 것입니다.
교회 예배처소에 대한 생각; 하나님은 저희 교회에 교회 예배처소를 바꾸시면서 항상 은혜를 더해 오셨습니다. 3년 7개월을 지내오면서 저는 일반 책들도 그래도 남들보다 많이 보려고 노력했어요. 수많은 목사님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을 새롭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성서를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되었어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했어요. 그리고 따라가려고 했어요. 사람에게도 그의 입, 코, 눈, 얼굴모습, 골격, 다 어디서 나오는 가면 여러분, DNA 유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 안에 어떤 DNA가 있는가에 얼굴의 모습과 형태와 모든 것이 결정되어 집니다. 우리는 인간에게 있는 DNA에 따라서 살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형상대로, 하나님의 DNA가 있다는 거예요. 성도는 세상의 DNA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DNA를 따라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교회가 어떻게 결정되는지 아세요? 저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DNA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특별히 목사가 무엇을 따라 살아가는지에 따라서 대부분 결정되어요.
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세워주신 내쉬빌 연합 교회가 아름다운 DNA로 형성되길 바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저희 교회를 나와서 불평보다는, 염려보다는, 하나님께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그의 삶이 다시 한번 꿈과 희망으로 되살아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숫자는 중요하지 않아요. 100명 천명, 만 명이 모이면 뭐 합니까? 그 모든 것은 무엇이 결정하는가? 그 교회는 무엇이 결정하는가? DNA가 결정합니다.
이번 주 한 형제님과 이야기하면서 자신도 오래 믿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 교회를 사랑하더라구요. 아껴요. "목사님, 우리 교회만이 가지고 있는 그 무엇인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아 그러는데 꼭 집어서는 이야기 못하지만 마음에 와 닿아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광야 같은 이민의 삶속에서, 서로가 찢기고 다툼하고 갈라지고 아파하는 현장에서 아름다운 교회가 세워지길 원합니다. 이곳에서 더욱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지금까지 우리가 배워왔던 순순한 신앙, 주님을 사랑하는 신앙, 열정적인 신앙, 더욱더 예배를 사랑하고 기도를 소중히 하며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진심으로 원합니다. 세상에 빛의 자녀로서 감당하기 원합니다. 비추이고 싶어요. 그리고 환하게 비추고 싶어요.
(그림)
여러분 성소에 우리가 그냥 들어가서 보았어요. 성소는 그냥 지어진 것이 아니에요. 성소는 덮개를 4개로. 덮었습니다. 청색, 자색, 홍색으로 짠 세마포로 덮고요, 그 다음 흰 양털로 덮고, 세 번째 붉은 수양가죽으로 덮고, 네 번째는 해달의 가죽으로 덮었습니다. 여러분, 한 덮개만 덮어도 컴컴한데 그것이 4겹으로 덮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성소 안은 아주 컴컴합니다.
오늘 우리가 등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성소에 촛대를 배우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왜 하나님은 성소를 이렇게 컴컴하게 만들라고 하셨어요. 왜 그렇게 한 겹도 아니고 4겹으로 덮으라고 하셨어요. 하나님의 성전은, 우리의 마음의 성전은 이 세상의 빛으로 절대로 비출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이 만드신 신령한 빛, 감람류로 만드는 빛,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으로 비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이나 교회나 우리의 삶이나 모든 것이 우리의 빛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빛이 비추길 축원합니다. 저는 생각해요. 인위적으로 하고 싶지가 않아요. 교회를 때에 따라서 인위적으로 밝게 해서는 안됩니다. 교회는 영원히 하나님의 빛으로 신령한 빛으로 비추어야 합니다.
저희 교회가 신령한 감람류의 빛으로 충만하길 원합니다. 기도하셔야 합니다. 하나님, 저희 교회를 신령한 빛으로 비추어 주세요. 하나님 저희 성도들을 신령한 빛으로 비추어 주세요. 하나님 도와 주세요.
이럴 때 주님이 도와 주십니다. 우리 좋으신 성령님이 성령의 불꽃으로 타오르게 하십니다. 어둔 심령을 밝게 하기 위해서요.. 에베소서 5장 8절-20절까지 다같이 읽어보세요. "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10]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12]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성령의 빛이 비추면 예수의 빛이 비추면, 신령한 하나님의 빛이 비추면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죄짐 벗고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사극을 잘 보는데요, 사극에서 왕들을 보면 한결같이 공통점이 무엇인가면 왕들이 웃는 것을 못 보아요. 돈은 있고, 권력은 있고, 뭐가 있는 것 같은데 웃음이 없어요. 기쁨이 없어요. 첫째 부인, 둘째 부인, 셋째 부인, 아들이 아버지를 죽여요. 아버지가 아들을 죽입니다. 사약을 먹이고, 끝없이, 아들이 죽이든지, 어머니가 죽이든지...예수님을 핍박했던 헤롯이 그랬어요. 어두움 때문에 그래요.
어둠이란 절망이요, 죄요, 답답함이요, 어둠이에요. 악함, 우상숭배, 제 아무리, 좋은 집에 살아도, 어둔 인생입니다. 마음이 어두우면 모든 것이 어둡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밝은 곳을 찾아가고, 우리가 마음의 어둠을 제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의 마음을 밝게 누가 내 영혼을 밝게 합니까? 내 마음을 밝게 합니까? 한번 말씀해 보세요. 남편을 잘 만나면, 아내를 잘 만나면.. 자녀가 공부 잘 하면 밝아집니까? 아닙니다.
오직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심령이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학업이, 우리의 생활이 빛의 자녀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원뿌리에서 떨어진 가지나 줄기는 자기의 기술이나 재주로 말미암아 견고하게 서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너무 어렵고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등대와 같이 밑판이 든든히 세워주기 때문에 줄기나 가지들은 서 있으려고 의식하지 않아도 그냥 서 있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밑판으로 삼고 그리스도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주님을 기억하고 주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예배할 때, 찬양할 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믿음을 견고하게 세워줍니다. 우리는 넘어질 수 있어요. 그러나 등대되신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의 기준이 되어주시고 우리의 중심이 되어 주셔서 우리는 비록 세상에서 넘어질지라도 그곳에서 좌절하지 않아요. 다시 견고하게 설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합시다.
잠언 24장 16절에,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일어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축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이 밝아지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DNA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든든히 서길 원합니다. 모든 삶이 그리스도를 닮아가길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순금 등대
25: 31-40
31. 너는 정금으로 등대를 쳐서 만들되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을 한 덩이로 연하게 하고
32. 가지 여섯을 등대 곁에서 나오게 하되 그 세 가지는 이편으로 나오고 그 세 가지는 저편으로 나오게 하며
33. 이편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저편 가지에도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여 등대에서 나온 여섯 가지를 같게 할찌며
34. 등대 줄기에는 살구꽃 형상의 잔 넷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35. 등대에서 나온 여섯 가지를 위하여 꽃받침이 있게 하되 두 가지 아래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하게 하며 또 두 가지 아래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하게 하며 또 두 가지 아래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하게 하고
36. 그 꽃받침과 가지를 줄기와 연하게 하여 전부를 정금으로 쳐 만들고
37. 등잔 일곱을 만들어 그 위에 두어 앞을 비추게 하며
38. 그 불집게와 불똥 그릇도 정금으로 만들찌니
39. 등대와 이 모든 기구를 정금 한 달란트로 만들되
40.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식양대로 할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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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출애굽기에 나타난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를 배우는 중입니다.
그중 성소와 그 기구들에 나타난 계시가 그리스도의 어떤 면을 보여주는지 관찰하면서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계시를 듣고 있습니다.
성소에 들어가면, 오른쪽에는 만민의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는 떡 상이 있다는 것을 지난 주일에 설명하면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계시를 전해드렸습니다. 오늘은 그 맞은편에 있는 등대에 관해 살펴보면서 이 등대를 통하여 어떻게 그리스도를 계시 하시는지 찾아보겠습니다.
이 등대는 법궤나 떡 상처럼 바탕은 조각목으로 짜고, 겉만 금으로 싸는 것이 아니라 오직 금으로만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거기에 들어가는 금은 한 달란트인데, 순금 3.4킬로그램쯤 됩니다. 중심에 줄기가 하나 있고, 거기서 양 옆으로 가지가 셋씩 나와서 일곱 가닥이 되는데, 한 가지에 잔 하나와 등잔 받침인 꽃받침과 살구꽃이 하나씩 있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잔은 등에 불을 켜는 기름을 담는 곳이고, 꽃받침은 등 받침이고, 꽃 위에 등잔을 두어 불을 밝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부집게와 불똥그릇도 정금으로 만들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자세하게 계시한 다음에 마지막 절에서 하나님은 다시 한 번, 내가 보여준 도형 그대로 만들라고 주의를 주셨습니다.
이미 아시는 대로 이 기구들의 모양과 규격과 재료와 배치는 모두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왜 등대와 등잔을 순금으로 만들게 하셨을까요? 오직 순금으로만 만들라고 하신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가 세상에 유일한 빛이 되시는 사실은 과거나 현재나 영원한 미래에도 변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계시입니다. 세상의 빛과 진리는 시대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럼 왜 등잔을 살구꽃 형상으로 만들게 하셨을까요? 살구꽃은 히브리말로 ‘샤케드’ 라고 하는데, 살구꽃은 봄에 가장 먼저 피는 꽃이어서 유대인들은 그 꽃을 깨어있는 꽃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 성막과 기구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계시하시는 주인공 그리스도는 속히 오신다는 것을 계시하는 것입니다. 죄와 절망으로 어두워진 세상은 빛 되신 그리스도가 오셔서 대신 죽으시고 대속해 주셔야만 인간에게 희망의 빛이 생기게 되어있고, 그리스도가 재림하셔야 어두운 인간의 역사가 막을 내리고 찬란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오시는 일은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성도의 최대의 관심사인 것입니다. 이 순금등대의 특징들을 몇 가지 더 살펴봅시다.
첫째, 성막 안에는 오직 이 등불만이 비취게 하라.
성막 안에는 창문이 하나도 없었고, 다른 빛도 없었습니다. 오직 이 등불 하나 뿐 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성막을 설계해 주시면서 외부로부터는 빛이 한 가닥도 들어오지 못하게 설계를 해 주셨을까요? 하나님의 설계 실수일까요?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기에 실수할 수 없는 분이고,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계시가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빛, 사람들을 밝게 할 진리의 빛은 이 세상에 하나뿐이라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계시합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빛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옛 성현들의 말씀이라든지, 인간이 만든 종교라든지, 과학이라는 빛을 통해서도 참된 진리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때는 진화론이 과학이라고 주장하면서 사람이 원숭이에서 진화된 것이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을 밝히는 빛이 아니고 사람을 더욱 어둡게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 가설이 진리인 것처럼 보이던 시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 때문에 사실을 알지 못하고 헤맸고, 인간의 근본과 하나님을 찾지 못하고 죽어가게 만들었습니다.
이성의 빛이라는 것을 통해서도 인생이 제 길을 갈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도 인간의 이성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과학이라는 잣대로 재고 자르고 분석해서, 성경을 하나의 고대의 문서들의 합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구절은 어디서 따온 것 같고, 이 구절은 무슨 문서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고, 이 부분은 어떤 문서에서 따온 것이라면서 구약을 다 난도질했습니다. 신약도 복음서외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관계없고 복음서 중에도 예수님이 말씀하셨다는 대목이 좀 믿을 만하고, 그것도 예수님이 참으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알 수가 없고 하는 식으로 성경을 난도질 하고는 결국 성경은 믿을 것이 못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인간이 따라갈 절대 진리는 없다는 결론을 그들 나름대로 내린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주신 절대 진리를 인정하지 않으니 더 이상 믿고 따라갈 진리가 없어지고 말았고, 그 결과 사람들은 각자 자기에게 유익한 대로 살려고 하고, 그러다보니 사람과 사람사이에 분쟁이 끊이지 않고, 국제사회는 전쟁에 휩싸이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진리의 빛을 인정하지 않고 이성이라는 희미한 빛을 신뢰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이성은 인간을 행복과 확신과 구원으로 이끌지 못합니다. 인간이성에서 나온 법과 제도와 문화화 풍습은 점점 더 인간세상을 어둡게 하고 절망의 골짜기로 몰아넣고 있을 뿐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그리고 그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간의 근본과 가야할 길과 구원의 길을 밝혀주는 참 빛이요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나와함께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대천의 한 목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신학교에 다닐 때는 토요일 교회에 가는 것이 죽으러 가는 것처럼 힘들었습니다. 일주일 내내 성경을 분석 하고 비판하다가, 주일날 가서는 그 말씀이 진리라고 증거 해야만 하니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은 학교에 와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과 그 진리를 확신하고 참 목회가 무엇인지를 배우니, 교회로 내려가는 길이 힘이 납니다.” 그 목사님이 지금은 지방교회에서 목회를 아주 잘 한다고, 그 이웃교회 친구에게서 듣고 있습니다. 목회고 인간 삶이고 성경을 하나님이 주신 절대 진리요 세상의 빛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바르고 행복한 미래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요즘은 감정이라는 것을 인간이 나아갈 빛을 삼고자 하는 시도가 시작되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지 자기 느낌에 끌리는 대로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감정은 선하지도 않고 객관적이지도 않으며, 속되고 음란하고 온갖 허망한 욕심에 오염된 감정일 뿐입니다.
성선설을 말하는 철학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통해서 경험해본 결과, 인간의 마음속에는 악한 것들로 꽉 차있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입니다.
과학적으로 보니 내세는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소련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은 우주를 며칠 날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하늘을 날면서 아무리 살펴보아도 하나님은 없더라.”고 했습니다. 하늘의 자외선도 맨 눈으로는 볼 수가 없는데, 하나님을 맨 눈으로 보지 못했으니 하나님이 없다는 말이 과학적인 말입니까? 자신의 무지를 증거 한 말일 뿐입니다.
피조물의 한 조각에 불과한 인간의 두뇌와 이성으로는 이 넓은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 자신과, 그분이 하시는 일을 다 알지 못하거니와, 영적 일은 더욱 달라서 영적으로라야 분별하는 것입니다.
고전2:14에 “육에 속한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그분이 준비하신 우리 구원의 길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계시의 빛을 통해서일 뿐입니다.
시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빛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고, 성경의 약속을 실현하려고 오신 그리스도 예수뿐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요, 우리 인생의 영원하고 유일한 빛이 되십니다.
요1:9 이하에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단언합니다. 요9:5에서는 “나는 세상에 빛이로다.” 라고 하셨습니다.
옳습니다. 예수님은 흑암에 싸여 살아가는 소경을 눈뜨게 하셨고, 죄와 어둠의 권세에 매인 자들을 풀어주셨으며, 무지와 불행과 억눌림의 어두움에서도 사람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는 참 빛이십니다. 그는 인간의 가장 큰 절망인 사망을 극복하시고 부활의 약속으로 참된 소망의 빛을 주신 참 빛이십니다.
성막 안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바깥에 아무리 해가 밝아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오직 촛대를 통해서 밝혀지는 그 빛으로만 사물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사는 사람, 영생의 소망을 가진 성도는 세상의 지식이나 과학이나 이성의 빛에 의지해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그것이 과학적이냐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내게 필요한가도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냐 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학적이라는 말이 얼마나 허구에 찬 말인지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얼마 전까지 암은 유전이 아니라고 하더니, 다음에는 유전이라고 하다가, 요즘에는 유전이 아니라고 합니다. 언제는 된장이 암을 유발한다더니, 요즈음에는 된장엔 항암제가 들어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것이 진짜 과학적 답변입니까?
과학이란 결코 진리가 아니며, 지금까지의 지식에 근거한 가설에 불과하고, 인생이 그것에 의지하여 자기 미래를 열어 갈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연과학은 그렇다 치고, 사회과학은 어떻습니까? 오늘날 분배가 최고의 미덕이고, 분배만 잘 되면 유토피아가 올 것처럼 말하는데, 그럴까요? 유럽의 분배 잘하던 나라들은 분배를 앞세우다 보니 나라 경제가 바닥나서 이젠 분배를 포기하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오셔서 말씀하신 그 말씀, 즉 계시만이 우리를 밝히는 빛이며, 그분 자신만이 인류의 소망의 빛이십니다. 이 빛 가운데에서 살아가면 시대가 아무리 험하고 아무리 힘든 일이 닥쳐온다 해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빛으로 인정하고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445장). 여러분은 오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서 해결하려 하십니까? 누구의 말입니까? 그 때의 감정이나 기분입니까?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둘째, 등대에는 정한 감람유를 공급하라.(행10:38)
그리스도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구약시대에 왕이나 제사장, 선지자를 임직할 때에 기름을 부어서 임직식을 했습니다. 오늘도 교회에서 성직인 목사와 장로를 세울 때에도 안수하면서 기름을 부은 다고 말하는데, 구약에서 임직할 때 기름을 부은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출27:20, 21에 보면, 그 등대에는 감람으로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사용하라고 하셨습니다. 순결한 올리브기름이 일곱 가닥으로 된 등대의 잔에 공급되어 끊임없이 그 등대가 불을 밝히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등대에 순결한 기름을 공급하라 하신 것은 예수를 “그리스도”라 부를 것을 예고한 것이고, 그가 기름부음으로 세워지는 세 가지의 직분을 감당하러 오실 것을 예고하는 계시입니다. 기름을 부어 세우는 직분은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였습니다.
그에게 부어지는 기름은 성령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그의 사명을 넉넉히 감당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여 몸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셨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아무런 가치가 없는 죄인들을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드려서 인생의 죄를 속죄하는 대제사장이 되셨으며, 그는 인생들에게 진리와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쳐주는 참 선지자가 되셨고, 그는 자신을 믿어 영접한 사람들을 영원히 의로 통치하실 영원한 왕이 되신다는 계시입니다. 그리스도가 왕 중의 왕이며, 참되고 영원한 제사장이시며, 진리를 밝히 가르치고 우리의 때를 알려줄 참된 선지자로 일하실 것을 계시하는 모양이 이 순금 등대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세상의 빛으로 살아갈 모든 신자들에게 성령의 기름을 끊임없이 공급해 주실 것을 계시하기도 합니다. 요16장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어 주신다고 약속하셨고 약속대로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셋째, 한 줄기에서 일곱 가닥이 나오게 하여 일곱 개의 등불을 켜라.
이 등대는 중심에는 본체가 있고, 옆구리에서 양쪽으로 세 가지씩이 나와서 일곱 가지가 되도록 만들게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주님은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사이에 다니시는 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 일곱 금 촛대는 일곱 교회라고 해석해주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세상의 등대라는 계시입니다.
이 등의 일곱 가지는 본체의 옆구리에서 나왔습니다. 세상의 등대인 교회는 그리스도가 창에 찔린 옆구리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의 결과로 생겨날 것임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에게서 나와서 그분과 하나가 되었고, 그분의 진리를 전파하는 역할을 그리스도 대신에 하는 기구가 세상의 빛인 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을 설명해 주는 계시입이다. 그리스도가 세상의 빛이고, 그의 몸인 교회도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순금등대의 원 줄기는 하나이고, 가지는 여섯이어서 합이 일곱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신성과 주권을 의미하는 숫자이고(창1:1, 신6:4, 요1:3). 여섯은 인간을 나타내는 숫자입니다. 그리고 일곱은 완전을 나타내는 숫자입니다. 여섯인 인간은, 하나이신 하나님과 연결될 때에만 완전해 질 수 있고,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사명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당신만 빛이라고 하지 아니하시고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마5:14) 라고 하셨고, 마5:16에는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에게 속한 성도들이 세상의 빛이 되려면 그에게 붙어있어야 합니다. 요15:5에 보면, “나는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나에게 붙어있어야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교회라는 포도나무가 맺어야 하는 열매는 그리스도의 진리를 전파하여 세상에 진리의 빛을 비추는 일입니다.
지금 세상은 어둡기 한이 없습니다. 온갖 범죄와 두려운 소식들이 뉴스의 대부분입니다. 엊그제는 대낮에 서울의 쇼핑센터에서 여중생들이 다른 친구를 담뱃불로 얼굴을 지지고 파이프로 구타하는 데도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회가 점점 더 어두워져가고 있습니다. 한국에만 그런 현상이 있습니까? 전 세계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빛이 어디에 있나요?
여러분은 금년 말에 있을 대통령선거에 얼마나 큰 기대를 걸고 계십니까? 정말 훌륭한 지도자가 대통령으로 뽑힐 것이라고 믿으십니까? 그리고 그분이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많이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하십니까? 최선을 다해서 훌륭한 사람을 뽑아야 하겠지만 결과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금물입니다.
어떤 신문에서 대선은 정치인들이 자기의 모든 것을 다 거는 도박판이라고 하는 글을 읽었습니다. 자기가 민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평생 건달로 살아온 세월을 청산하고 한몫 잡을 수 있고, 자기가 민 사람이 대통령이 되지 못하면 또 쪽박 차는 신세가 되기 때문에, 자기 당이 정권을 잡아서 정치를 바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올인 한 후보가 당선되어야 대박 터진다는 생각뿐이어서 이명박, 박근혜 둘 중 하나에 줄서기 도박만 열중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저에게 정치현실에 관한 눈을 뜨게 해준 글이었습니다.
정치도 경제도 교육도 법도 사람들의 마음을 바른길로 인도할 만한 빛이 되지 못합니다. 내가 훌륭하니 나를 따르라고 할 빛이 된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발견한 진리가 사람들을 살려내고 이 사회를 치료할 수 있으니 나를 따르라고 할 사람이 있고 그런 진리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전혀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 우리의 빛이요 세상을 인도하는 빛입니다. 이 빛으로 나아오게 전도합시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고 세상에 전해줄 유일한 빛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리스도와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자랑하는데 몰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산 값비싼 물건을 자랑하고, 자기가 사는 집을 자랑하고, 자식을 자랑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기를 자랑하는 사람을 사람들이 좋아할까요? 부러워할까요? 천만에요. 비 호감, 밥맛이라고 칩니다. 그래도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자랑은 어린 손자손녀를 자랑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오늘아침에 우리 손자가 그 고사리 손으로 내 뺨을 만져 주어서 너무 좋아서 기절할 뻔 했다.”고 자랑하는 할머니는 너무 행복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많이 자주하면 들어주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손자 자랑하려면 돈 만원을 내고 자랑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자랑이 무엇일까요? 가장 순수하고 가장 진지하고 가장 선하고 가장 위대한 영향을 끼치는 자랑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세상의 빛이요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바울 같은 사람도 나는 만삭되어 나지 못한 자 같다고 하였고, 죄인의 괴수라고 하였습니다. 하물며 우리에게 무슨 자랑거리가 있겠습니까? 저 잘난 맛에 살던 습관과 생각을 다 버리고, 오직 주님만 자랑하는 사람이 됩시다. 빌 3:3에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 당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빛이 되는 길은,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를 만민에게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하려면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기름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지원받아서 바르게 살아서 빛을 발하되, 빛이신 그리스도만 자랑하는 사람이 됩시다.
이 세상의 과학도, 정치도, 인간 이성도 빛이 될 수 없고 된 적도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 우리의 빛이십니다. 이 사실을 증거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주변에 전하는 전도를 생활화해야 하고, 이 사실을 저 먼 나라에도 효과적으로 전해야 합니다. 그것을 선교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일을 잘 감당하고 계십니까? 선교를 위해서 헌금을 열심히 감당하십니까? 선교사를 위해서 계속 기도하셨습니까? 한 달 후에 태신자를 작정할 텐데 준비는 되어 있습니까? 이 일도 내 힘으로는 잘 못합니다. 성령께서 내 마음에 지혜와 열정과 능력을 부어주셔야만 육신의 욕심을 따라서 내게 유익한 것만을 하려는 행동을 자제할 수 있고, 진리를 따르고 진리를 증거 하는 일에 자신을 헌신 할 수 있습니다.
등불을 켜는 이유는 빛을 비추기 위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교회를 세우신 이유는 세상에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한 것입니다. 진리에 순종하는 삶으로 이웃에게 빛을 보여주고, 입술로 이 진리를 전파해서 세상에 빛을 전하여 순금등대의 역할을 감당하는 한가람 교회와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