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1-15
실패에서 다시 일어서려면? / 이재철 목사
언약의 말씀을 믿고 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도저히 건널 수 없었던 요단강을 건넜고, 더구나 불가능했던 여리고성을 싸움 한 번 없이 정복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만만해 보이던 아이성과의 싸움에선 참패했습니다.
싸워보지도 못하고 36명의 생명을 잃었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일어난 걸까요?
실패의 원인은 공동체 안에 있었습니다.
아간이라는 사람의 범죄함, 즉 본문 1절에 하나님께 바쳐야할 물건(전리품, 외투 한 벌과 은·금덩이)을 보고, 탐심이 생긴 아간이 몰래 빼돌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엔 하나님 물건을 훔치거나 은닉하다 들키면, 그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12절 하반절에 '... 너희 가운데 전멸시켜 나, 주에게 바쳐야할 물건을 없애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않겠다'는 것, 즉 하나님은 결코 죄와 함께 계실 수 없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공동체 안에 있는 죄인을 그냥 놔둘 경우, 그 죄는 누룩처럼 빠르게 퍼져 공동체 전체를 부패하거나 썩게 만든다는 것을 하나님은 아셨습니다. 그래서 죄인을 가려내신 것입니다.
'아간'이라는 이름의 뜻은 '골치 아프다'입니다. 이름대로 아간은 골치 아픈 존재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아간은 자기 죄를 끝까지 감추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눈을 속일 순 없습니다.
결국 아간은 식솔들과 더불어 아골골짜기에서 돌에 맞고, 불로 태워지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은 의인 열 명이 없어, 불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BC 586년엔 예루살렘에 의인 한 명만 있으면 모든 도성을 구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구약시대엔 의인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엔 죄인을 용서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인을 찾았습니다.
◈ 실패에서 다시 일어서려면
① 승리 후 방심하면 안됩니다 (2~5절)
여리고성을 정복한 후,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 힘으로 이기기라도 한 듯, 도취돼 있었고,방심하고 있었습니다.
3절을 보면 '여리고성에 비하면 아이성은 상대로 안 된다고 얕잡아 보았습니다.
실제로 아이성은 주민이 1만2천명 밖에 안 되는 작은 성이긴 했습니다.
그러나 대 참패를 당했습니다. 자만에 빠져 방심했기 때문입니다.
방심하면 분별력이 흐려집니다.
분별력이 흐려진 정탐꾼들은 2~3천명만 가도 충분히 이길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3절)
그러나 4절에 '그러나 그들은 도리어 패하여 도망쳐 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방심의 결과는 부끄럽고 참담한 패배였습니다.
우리가 방심에 빠져있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내가 기도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욕심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합니다. 아간이 그랬습니다.
아간의 눈에는 좋은 옷과 은·금덩이 밖에 안보였습니다. 결국 훔쳤습니다, 숨겼습니다.
그러나 아간 때문에 전쟁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몰랐던 여호수아는
6절 - 슬피 울며 얼굴을 땅에 대고 저녁까지 기도했습니다.
7절 - 가슴을 치며 애통하며 기도합니다.
10절 -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일어나거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려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다시 일어서고 싶습니까?
엎드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그 뿐 아니라 다시 성결케 해주십니다 (13절)
성결한 사람에겐 내일이 있습니다. 또한 아이성을 다시 찾을 수도 있습니다.
② 즉시 죄를 시인하고 성결함 받아야 합니다.
자신의 죄를 즉시 시인하는 사람은 용서함을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켜 주십니다.
내가 어느 부분에 거리끼는 것이 있다면 변명하지 말고 즉시 시인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다 용서해주신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머리털까지 세시는 하나님, 우리 맘 깊은 곳까지 통찰하시는 하나님께서 왜 죄를 자백하라고 하신 걸까요?
그것은 우리가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 자각하고 있길 바라시기 때문이며, 또 자신의 죄를 모르는 사람은 아간처럼 골치 아픈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동시대에 살았던 사울도 죄를 지었고, 다윗도 죄었습니다.
어쩌면 양을 훔친 사울보다, 남의 아내를 빼앗고 그 남편까지 죽게 한 다윗의 죄가 누가 봐도 더 큰 죄악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용서받았지만 사울은 용서받지 못했습니다. 왜일까요?
다윗은 선지자 나단을 보냈을 때, '내가 여호와 앞에 범죄 하였노라'고 밤새 침상을 적시며 즉시 회개했지만 사울은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회개한 다윗에게 하나님은 솔로몬이라는 귀한 아들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요, 평안의 증거였습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자백하기만 하면 언제든 용서하실 준비가 되셨을 뿐 아니라, 다시 일으켜주시며, 평안까지 선물로 주시는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