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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여자, 처녀 아비삭을 위하여 / 은혜목회정보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권력 투쟁사를 살펴보면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권력투쟁과 그리고 군주주의 국가에서의 권력 투쟁은 그 양상이 상당히 다릅니다. 민주국가에서는 당대 당으로 집권 여당이 지금 권리를 장악하고 있다고 하면 그 다음에 야당이 그 권력을 빼앗아 보려고 국민의 지지를 얻으려고 애를 쓰기도 합니다. 또 그 당(黨) 안에서도 '네가 나으냐, 내가 나으냐' 하면서 개인과 개인의 인기로서 또 권력으로서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자기가 그 권력을 확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군주국가(君主國家) 이 왕국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당과 당이 따로 있을 수가 없고 그리고 어느 개인이 똑똑하다고 해서 왕위를 계승할 수는 없습니다. 이 군주주의 국가에서는 왕자들끼리 왕위를 물려받으려고 합니다. 그 적장자가 받음이 마땅하지만 때로는 그 동생이나 혹은 그 왕의 형제들이 있을 경우에 야심을 가졌다 라고 하면 이어 내려가야 될 왕위를 왕의 아들에게 주지 아니하고 조카를 없애거나 또 어렵게 만들고서 그 왕의 형제가 왕위를 찬탈하는 이런 참혹한 일도 많이 발생하게 됩니다.
오늘 이 성경에서 생각할 수 있는 권력 다툼은 민주주의 국가의 방식이 아니라 왕족들의 싸움인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다윗 왕이 심히 늙었습니다. 이제 신하들이 그 왕을 하루라도 더 살게 하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것은 다윗이 왕위에 있으면서 자기가 마음에 드는 사람들을 좌우에 앉혀 두었기 때문에 그 좌우에서 월급 받고 사는, 권리를 주장하고 사는 이 관료들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다윗이 하루라도 더 살면 자기들이 권세자리에 있고, 왕이 바꾸어지는 날에는 바꾸어지면서 또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관료를 다 바꾸어버리기 때문에 그저 최선을 다해서 자기의 지금 왕 다윗을 오래 살게 할 마음으로 싸늘히 식어가는 다윗 왕에게 이 신하들이 연구하여 아리따운 여성, 동녀를 처녀를 몸 따뜻한 처녀를 다윗 왕의 품에 안겨줍니다.
그래서 이 따뜻한 여인의 체온을 통해서 싸늘하게 식어가는 다윗의 몸을 데우고 또 그렇게 됨으로써 다윗이 하루라도 한 달이라도 더 버텨준다면 그 신하들은 그 나라의 권리들을 사용할 수 있는 그런 형편에 있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내용이 열왕기상 1장에 소개되어 있어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열왕기상 1장 5절부터 한번 살펴볼까 합니다. 5절-6절을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전배 오십인을 예비하니 저는 압살롬의 다음에 난 자요 체용이 심히 준수한 자라 그 부친이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하는 말로 한번도 저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이제 '아도니야가 자기 아버지 다윗의 왕위를 계승해 보려고 스스로 높이고 있다'라는 내용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5절에 보면 "때에 학깃의 아들" 이렇게 소개되어 있으니까 '학깃의 아들이 왜 또 다윗 아들도 아니면서 다윗왕의 위(位)를 빼앗으려고 이렇게 했는가' 그런 생각을 하시게 되겠습니다만 이 아도니야는 다윗왕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여기 '학깃의 아들'이라고 표현한 것은 다윗왕이 하도 많은 여자를 데리고 살았기 때문에 여러 여자를 통해서 아들들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아들을 설명하려고 하면 '다윗의 아들' 하면 줄줄이 너무 많고 그래서 여자의 이름을 갖다대면서 '누구의 아들' 이렇게 하면 구별이 잘 되었습니다. 그래서 학깃이라고 한 것은 남자 아버지의 이름이 아니라 아도니야의 어머니의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다윗 왕의 처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 다윗왕의 처가 되는 학깃의 아들, 실제로 여기에서 잠깐만 소개해 드린다면 다윗 왕에게는 아들이 적어도 한 6-7명 정도 있었지 않나 그렇게 생각되는데, 놀랍게도 6-7명 모두가 한 부인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거의 어머니를 달리하고 있습니다.
달리하고 있는데 제일 큰아들이 암논이고, 이 암논이 자기 누이를 겁간(劫姦)한 일로 인해서 압살롬에게 죽었지요.
그런데 이 죽은 압살롬도 다윗의 아들이요,
암논도 다윗의 아들이요.
그래서 첫째는 암논이요, 이 암논은 아히노암에게서 낳았고,
둘째는 길르압인데 이것은 아비가일이 낳았고,
그 다음에 압살롬은 마아가가 낳았고
또 그 다음에 아도니야 스바냐라
이렇게 가다가 아마 솔로몬은 여섯째나 일곱째쯤 되는데, 여러분 또 참고하시기 위해서 사무엘하 한번 살펴보실까요?
사무엘하 3장에서 보시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무엘하 3장 2절 이하를 보겠습니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아들들을 낳았으되 맏아들은 암논이라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의 소생이요 둘째는 길르압이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 되었던 아비가일의 소생이요 세째는 압살롬이라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의 아들이요 네째는 아도니야라 학깃의 아들이요 다섯째는 스바댜라 아비달의 아들이요 여섯째는 이드르암이라 다윗의 아내 이글라의 소생이니 이는 다윗이 헤브론에서 낳은 자들이더라"(삼하3:2-5)
아직까지는 솔로몬은 나타나지도 않지요. 그래서 솔로몬이 어디쯤에서 또 나오게 되는지, 하도 자식이 많아서. 사무엘하 5장 13절 이하
"다윗이 헤브론에서 올라온 후에 예루살렘에서 처첩들을 더 취하였으므로 아들과 딸들이 또 다윗에게서 나니 예루살렘에서 그에게서 난 자의 이름은 삼무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과 입할과 엘리수아와 네벡과 야비아와 엘리사마와 엘랴다와 엘리벨렛이었더라"(삼하 5:13-16)
이름도 복잡합니다. 대강 대강 참 많지요. 이렇게 솔로몬은 한참 후에 등장하게 됩니다. 이렇게 다윗이 건강해서 그랬는지 복잡하다 보니까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라"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아버지의 이름이 아니라 다윗왕의 한 여인의 이름을 사용해서 이 아도니야를 설명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아도니야가 자기 아버지 다윗이 몸이 차가워지면서 이제 소생할 수 없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그 아버지의 왕위를 자기가 차지해보려고 제사장도 마음에 드는 사람 오게 하고 또 많은 신하들도 모아서 군대를 마련하고서 '이제 나는 왕이 되었다'라고 하면서 스스로 높여서 이제 잔치를 베풀면서 이제 왕궁을 향하여 쳐들어오려는 바로 그 즈음에 이때 밧세바가 자기 아들 솔로몬을 위하여 정치를 하기 시작합니다.
다윗 집안에 여자 밧세바를 통하여 이제 마지막 대권을 빼앗아내는 그런 정치가 되는데, 열왕기상 1장 15절-31절 사이에 그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가 정치하는 정치을 잘 볼 수가 있습니다. 시간 관계상 다 읽지 아니하고 15절-31절 사이에 있는 내용을 잠시 소개해 드린다면 "왕이여, 왕이 전에 나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지 못합니까? 언제 왕께서 아도니야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말씀하였습니까?"
또 언제 그 왕위 계승식을 하였기로 아도니야가 이미 이 땅의 왕입니다. 다윗이여, 당신은 지금 이 땅의 왕이 아니라 아도니야가 왕입니다." 하면서 이 밧세바가 얼마나 지혜롭게 다윗의 마음을 흔들어댑니다.
그렇게 흔들어대었더니 "그래, 그놈이 내 말도 없이 자기가 왕 된 것처럼 신하를 모으고 잔치를 한다고? 그놈이 말을 타고 지금 왕성하여 내게로 들어오고 있다고? 세상에!" 이렇게 화가 날쯤에 또 솔로몬의 편이 되어 있던, 전에 밧세바 건(件)으로 인해서 다윗을 책망했던 나단 선지가 또 나타나서 "왕이여, 왕은 어느 때에 과연 아도니야를 왕으로 세우셨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그러합니까? 왕의 말도 없이 아도니야가 자기가 왕 되었다 라고 하는데도 왕은 이처럼 편안히 누워만 계실겁니까? 젊은 여자 하나 품에 끼었다고 그저 만족하십니까?" 이런식으로 이제 갖다 보태어 댑니다.
그랬더니 다윗이 가만히 이 밧세바의 말과 선지자의 말을 듣고 나서 화가 잔뜩 나서 다윗이 이제 말하기를 "나는 아도니야에게 왕위를 준 적이 없노라. 나는 사랑하는 밧세바 너의 아들 솔로몬에게 내 위를 물려주겠노라." 하면서 "제사장들을 불러라." 해서 거기서 이제 확실하게 인수인계를 하는 그같은 일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밧세바가 정치를 해 가지고서 여러 형제들 가운데 순위로 따진다면 솔모몬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차례도 아닙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그렇게 유명했던 것도 아닙니다. 그가 지혜가 좋았던 것은 나중에 하나님이 왕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셨기 때문에 된 것이지, 처음에는 아도니야를 이길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아버지의 사랑도 누가 더 받았습니까?
아도니야가 더 많았습니다. 그는 체용(體容)이 준수하고 그리고 그 아버지에게 일평생 '네가 왜 이렇게 나에게 섭섭한 일을 하였느냐' 하는 말 한번도 들은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점수를 따 두었던지, 그래서 자기 아버지 죽으면 아도니야는 왕이 되는 것은 누구든지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새 신하들이 아도니야에게 가서 줄을 섰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밧세바가 마지막 순간에 정치를 잘해서 자기 아들 솔로몬이 다윗의 왕위를 획득하는데 성공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열왕기상 1장 1절-4절까지와 15절에 한 여인의 이름이 자꾸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건과 이 기록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시려고 여인의 이름이 등장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열왕기상 1장 1절에
"다윗왕이 나이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그 신복들이 왕께 고하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저로 왕을 모셔 봉양하고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시게 하리이다 하고 이스라엘 사방 경내에 아리따운 동녀를 구하다가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왕께 데려왔으니 이 동녀는 심히 아리따운 자라 저가 왕을 봉양하며 수종하였으나 왕이 더불어 동침하지 아니하였더라"(왕상1:1-4)
그렇게 나가고 또 이제 밧세바가 왕에게 자기 아들 솔로몬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서 들어가서 제일 처음 누구를 만나느냐? 1장 15절에 봅시다.
"밧세바가 이에 침실에 들어가 왕에게 이르니 왕이 심히 늙었으므로 수넴 여자 아비삭이 시종하였더라 밧세바가 몸을 굽혀 왕께 절하니 왕이 이르되 어찜이냐 저가 왕께 대답하되 내 주여 왕이 전에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가리켜 계집종에게 맹세하시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정녕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위에 앉으리라 하셨거늘 이제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어도 주 왕은 알지 못하시나이다"(왕상1:16-18)
이렇게 하면서 이제 울며불며 얘기를 하게 되는데, 여기에 젊은 동녀 아비삭의 얘기가 열왕기상 1장에 제일 처음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아내였던 솔로몬을 낳았던 이 밧세바가 자기 남편에게 들어갔을 때 이 여인이 자기 남편을 위해서 시종 들고 있는 것을 발견한 내용을 별로 그 말을 쓰지 않아도 될텐데, 써 두고 있습니다. 무엇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려하고 있나 하는 것을 꼭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 더러 많은 분들은 우리 한국적인 개념을 가지고서 '참 아리따운 처녀를 다윗의 품에 넣어주었으나 하나님을 섬기는 다윗은 그 처녀와 동침하지 않았다. 품에 넣어 주어서 서로 품고 한 이불 밑에 넣어주어서 같이 지냈으나 다윗은 동침하지 않았다'라는 4절에 있는 말씀을 붙들고서 더러 말하기를 '다윗은 역시 훌륭한 사람이다. 여인을 품에 안겨주어도 동침하지 않았으니 얼마나 깨끗한 사람인가' 해서 다윗이 깨끗하다는 정절을 지켰다는 이런 의미에서 큰 무게를 싣고 '다윗은 훌륭한 사람이다' 이것을 많이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이 갖고 있는 본 뜻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지금 시대의 눈으로 성경을 보려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당시에 다윗의 입장에서는 왕의 입장에서는 이 여자를 품고 동침을 하든지 안 하든지, 그것은 왕이 깨끗하고 안 깨끗한 데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밧세바를 취하여다가 억지로 자기 아내 삼은 경우보다는 신하들이 정식으로 간택해서 이 여자를 왕의 첩으로 왕에게 정식으로 제공한 여인이기 때문에 동침을 했다고 해서 이 왕에게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동침을 아니했다고 해서 이 왕이 깨끗하다는 어떤 평(評)을 들을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다윗 왕에게 있어서 이 아비삭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많은 여인들이 있었는데, 그 여인들 가운데는 처녀의 아내도 있었고 그리고 남의 아내 된 사람을 탈취하여 온 경우도 2-3건이나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왕에게 정식으로 아내가 될 수 있도록 처와 첩이 될 수 있도록 공식으로 해 준 여자들이기 때문에 동침을 했던지, 안 했던지 하는 것은 그의 깨끗하거나 인품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 내용입니다.
여기에서 열왕기상 1장 1절-4절에 이 뜻은 왜 나타났는가? '다윗이 죽을 때가 되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동침치 못했다는 사실을 기록해 둔 것입니다.
아리따운 젊은 여자이지만 다윗이 동침하지 아니했던 이 사건을 통해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가? '왕위가 넘어가겠구나' 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이제 다윗왕은 죽을 날이 다 되었구나. 젊은 여자를 품에 안겨 주었어도 동침할 수 없는 형편이 되었구나' 하는 것을 설명하려고 이것을 1절-4절까지 실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사실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오는지 보십시오. 열왕기상 1장 1절-4절까지 아비삭에 대하여 말하고 그리고 이 아비삭을 품고 동침하지 못했다는 말이 나오자 마자 5절에 가서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전배 오십인을 예비하니 저는 압살롬의 다음에 난 자요 체용이 심히 준수한자라"(왕상1:5-6)
바로 무슨 얘기로 이어집니까?
정권다툼으로 이어지는 얘기입니다.
이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다윗은 죽어간다'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늙었다'라는 뜻을 설명하기 위해서 1절-4절이 있었던 것이라 그것입니다. 다윗이 동침 아니한 것은 아무런 개인에게 도움을 줄 그런 일은 아닙니다. 늙어 죽어가는 왕으로서 동침치 못했다는 사실을 아비삭을 통해서 듣게 되면 이제는 아들 중에 누군가가 '왕위는 내 것이다' 하고 나올 수 있게 되었던 그것으로서 설명이 되어진다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15절에 가서 또 아비삭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밧세바가 이에 침실에 들어가 왕에게 이르니 왕이 심히 늙었으므로 수넴 여자 아비삭이 시종하였더라"
그런데 이 밧세바의 경우를 살펴보면 마지막 왕의 사랑을 받은 여인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일로 늙어 죽어가는 남편에게 들어갔더니 그 동안 부르지를 않아서 통 못 갔다가 남편에게 들어갔더니 젊은 여자를 품에 끼고 있습니다. 그때 마음이 즐겁겠습니까? 여인은 그 특유의 질투가 다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질투가 있지만 거기서 질투 부리다가는 무엇을 못할 형편입니까? 아들을 출세시킬 수가 없어서 이 질투심이 일어나지만 꾹 참고 왕 앞에 무릎을 꿇고 "왕이여, 내 아들 솔로몬에게 위(位)를 주신다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언제 아도니야를 왕으로 세웠습니까?" 하면서 자기의 감정을 다 억누르고 이제 아들의 일만을 부탁했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여기에서 한가지 재미난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밧세바의 노력에 의해서 솔로몬이 왕위를 획득하게 됩니다.
다윗의 위를 획득하고 다윗은 이제 죽었습니다. 죽었을 때에 이 솔로몬의 형이 되는 아도니야가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습니까? 자기가 왕 다 된 줄 알고 잔치까지 베풀었는데 어느새 여자가 들어가서 공작을 하고 나더니 어느날 갑자기 솔로몬이 왕이 되었다고 손을 들어 주어버린 겁니다. 법적으로 왕위를 넘겨버린 겁니다.
그랬더니 이 아도니야가 얼마나 기분이 나빠서 '내가 힘을 합해서 저 솔로몬을 쳐야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으로서 상당히 불화하고 있었습니다. 언제 사건이 터질지 모릅니다. 그러니 솔로몬으로서도 하나님에게 지혜를 구하지 아니하면, 저 아도니야나 자기 형들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구하지 아니하면 솔로몬은 버텨나가기 힘든 것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권력 두고서는 서로 권력을 차지하려고 얼마나 몸부림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로서는 자기 아들 솔로몬을 왕위로 올려놓았지만 겁이 납니다. 아도니야가 겁이 납니다. 압살롬이 겁이 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아들들이 겁이 납니다. 언제 이 아들들이 자기 유약한 솔로몬을 치고 왕위를 빼앗으려고 살인 사건이 일어날지 정말 걱정입니다.
그렇게 걱정을 하고 있는 중에 아도니야가 밧세바에게 나타납니다. 왕위를 갑자기 빼앗겼던 아도니야가 밧세바에게 나타납니다. 밧세바가 깜작 놀라서 "화평을 위해서 왔느냐?" 그렇게 묻습니다. "그렇습니다." 하고 설명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열왕기상 2장 13절 이하를 잠시 읽어보겠습니다.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솔로몬의 모친 밧세바에게 나아온지라 밧세바가 이르되 네가 화평한 목적으로 왔느뇨 대답하되 화평한 목적이니이다 또 가로되 내가 말씀할 일이 있나이다 밧세바가 가로되 말하라 저가 가로되 당신도 아시는바여니와 이 왕위는 내 것이었고 온 이스라엘은 다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왕을 삼으려 하였는데 그 왕위가 돌이켜 내 아우의 것이 되었음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니이다 이제 내가 한가지 소원을 당신에게 구하오니 내 얼굴을 괄시하지 마옵소서 밧세바가 가로되 말하라 가로되 청컨대 솔로몬왕에게 말씀하여 저로 수넴 여자 아비삭을 내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 왕이 당신의 얼굴을 괄시치 아니하리이다 밧세바가 가로되 좋다 내가 너를 위하여 왕께 말하리라"(왕상2:13-18) 이것 참 재미난 얘기입니다.
밧세바가 그 아들 때문에 언제 형제들한테 맞아 죽을까 걱정하고 있는 터에 아도니야가 척 나타납니다. 첫 마디가 "화평을 목적으로 왔느냐?" "그렇습니다. 화평할 목적으로 왔습니다. 제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나는 왕위를 받을 자격이 있었고 그리고 온 이스라엘 민족은 내가 왕이 되는 줄 알고 그 얼굴을 내게로 향하지 아니했습니까.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내 아우 솔로몬이 왕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여호와의 뜻인 줄로 믿습니다." 그럽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그 어머니가 '휴, 휴…. 이놈이 신앙이 있던가배…' 그런 생각을 막 하려던 중입니다. "그것은 여호와로 말미암은 것인 줄로 저는 인정합니다 그것 이제 재론(再論)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소원이 있사온데 내 아비가 품고 있던 동녀 아리따운 여인 아비삭을 내 아내 삼게 솔로몬 왕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내가 가서 이 말하면 그 놈이 열 받을 것이고 어머니가 말씀을 하게 되면 어머니를 무시하지 못할 것이니, 괄시하지 아니할 것이니 그 일이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어머님들께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밧세바가 말하기를 "좋다. 솔로몬에게 가서 그 말 해 주겠다." 그랬습니다.
밧세바가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자기 남편이 데리고 있던 여인인데, 자기와 마찬가지 반열에 속한 한 여인이고 자기보다는 오히려 정식으로 자기 남편에게 들어간 여인인데, 그 여인을 아들 중에 하나가 자기 아내로 삼겠다고 하는데 자기 남편의 명예를 생각한다면 그리하라 할 수 있겠느냐 그것입니다.
그런데 "그리하라." 그랬어요. 무엇 때문이 이 여자가 엄청난 말을 했을까요?
그 아들 아도니야. 자기 아들은 아니지만 이복(異腹)아들이라도 배다른 형제라도 아들입니다. '이놈아 네가 인간이냐' 이렇게 해야지 않겠습니까? '너의 아비의 여자를 아내로 삼겠다니?' 불호령이 떨어져야 될텐데, "좋다 말해줄게." 그렇게 되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 여자가 자기 남편의 명예가 땅에 추락할 수밖에 없는 남편의 아내를 아들이 아내 삼겠다 라고 하는데 도와주겠다고 했을까요?
대답은 여러분 스스로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특유한 여성의 성격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 밧세바는 이제 자기 아들 솔로몬 왕에게 가서 부탁을 하게 되는데 어떤 부탁을 하게 되는지 봅시다. 열왕기상 2장 19절 이하에 "밧세바가 이에 아도니야를 위하여 말하려고 솔로몬왕에게 이르니 왕이 일어나 영접하여 절한 후에 다시 위에 앉고 그 모친을 위하여 자리를 베풀게 하고 그 우편에 앉게 하는지라" 얼마나 그 어머니를 지금 귀히 모시는지 모릅니다. 거기까지는 아주 좋았습니다.
20절에
"밧세바가 이르되 내가 한 가지 작은 일로 왕께 구하오니 내 얼굴을 괄시하지 마소서 왕이 대답하되 내 어머니여 구하시옵소서 내가 어머니의 얼굴을 괄시하지 아니하리이다 가로되 청컨대 수넴 여자 아비삭을 아도니야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왕상2:20-21)
그렇게 됩니다.
거기에 대해서 이제 반응이 어떻게 나오느냐? 솔로몬의 반응을 통해서 오늘 우리가 무엇인가를 배울까 생각합니다.
22절에
"솔로몬왕이 그 모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하여 아도니야를 위하여 수넴 여자 아비삭을 구하시나이까 저는 나의 형이오니 저를 위하여 왕위도 구하옵소서 저뿐 아니라 제사장 아비아달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도 위하여 구하옵소서" 이것은 다 한편이 되었던 사람입니다.
"위하여 구하옵소서 하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아도니야가 이런 말을 하였은즉 그 생명을 잃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이다 나를 세워 내 부친 다윗의 위에 오르게 하시고 허락하신 말씀대로 나를 위하여 집을 세우신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아도니야는 오늘날 죽임을 당하리라 하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매 저가 아도니야를 쳐서 죽였더라"(왕상2:23-25)
아도니야의 생각과 솔로몬의 생각이 전혀 다르며,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의 생각과 그 아들 솔로몬의 생각이 전혀 다른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솔로몬이 생각한 것은 무엇이냐?
'아비삭은 내 아버지의 아내인데, 어쩌면 내 어머니를 우리 아버지가 취할 때보다도 훨씬 정식으로 받아들인 여자인데, 내 아버지의 아내를 내 형이 아들로서 자기 아내 삼겠다고 한다면 아비의 체면은 무엇이 되느냐' 그것입니다.
'이놈이 왕위를 얻지 못하더니 자기 아버지의 아내인 부모 반열에 있는 아비삭을 자기 아내 삼음으로써 어쩌면 솔로몬 왕 나보다 은근히 높은 것처럼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인가' 그런 계산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솔로몬이 아도니야를 죽이기까지 되었던 이 엄청난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서 다윗의 품에 들어갔던 아비삭이 1장에서 소개된 것이지 동침하지 안 했다 했다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동침하지 아니했다는 사실로 다윗이 죽어간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였지, 정식으로 들어간 여러 아내들 중에 마지막 여인과 동침하지 아니했다 해서 다윗이 훌륭할 일이 없고, 동침했다고 해서 죄가 되는 것이 전혀 아닌 것이 그때 그 나라의 사실 현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솔로몬은 자기 형 아도니야의 말한 이 말로 인하여 이미 아비삭을 데리고 가서 자기가 취하지 아니했다 하더라도 "이 말만으로서도 저는 죽어 마땅하니라." 해서 사람을 보내서 쳐죽였습니다.
저기 어머니에 대해서는 어쩌지 못했지만 '어머니여, 어찌하여 어머니가 자식과 동침하려 합니까' 그 뜻입니다. "어머니는 내 아버지 다윗의 아내가 아닙니까? 아비삭도 내 아버지 다윗의 아내가 아닙니까? 그 외 많은 여인들은 내 아버지 왕의 아내이거늘 왕의 아내를 함부로 자식이 취하다니요? 그렇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어머니는 어찌하여 아도니야를 위하여 같은 반열에 있는 아비삭을 주라 하십니까? 그러면 어머니가 가시지요." 이것은 엄청난 표현이었습니다.
솔로몬의 이런 행위가 어디에서 나왔느냐? 다시 한번 성경을 통해 열왕기상 2장 23절 이하를 봅시다.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아도니야가 이런 말을 하였은즉 그 생명을 잃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내게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도다" 그렇습니다.
이 솔로몬은 개인의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벌을 내리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뭡니까? "자기 아버지 다윗왕의 그 위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그가 왕이기 때문에 많은 여자를 취할 자격이 있어서 그 여자를 취했는데, 왕의 아내를 함부로 빼앗겠다고 한다면 바로 그 왕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리자 함이 아니뇨?"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보면, 이것을 내가 그냥 둔다면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실 것이라." 그것입니다.
교회에는 많은 직분자들이 있습니다. 그 직분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 개인이 약간의 실수가 있어도 그 직분에 대하여 우리는 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나 혹은 그의 자식들을 가지고서 그 직분에 피해를 끼치는 사람은 더러 있습니다. 물론 아도니야 같은 사람을 두고 볼 때에는 왕도 잘 해야 되겠지만 여자들도 잘해야 되겠습니다. 사모도 잘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이 솔로몬이 보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 왕은 죽었지만 아버지 왕은 죽었지만 그의 아내에 대해서 욕되게 한다는 것은 바로 내 아버지를 욕되게 하는 것이고 왕위를 욕되게 하는 것이면, 그 왕위를 주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니 하나님이 벌을 내리실 것이라." 했습니다. 이것은 부모에게 불효차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게 벌을 내리실 것이라." 그랬습니다.
어떤 교회들 보면 목사는 괜찮은데 교인들이 목사의 부인을 잡고 문제를 삼아 가지고서 교회를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로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입니다. 이 교회를 어렵게 만드는 경우는 얼마든지 보는데 '아도니야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하는 그것입니다.
본인도 잘해야 되겠지만 그러나 그 가족과 그 백성들도 이 문제는 하나님이 주신 권위에 대해서 무릎을 꿇어야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형제들 가운데 또 자식 가운데 아들이 목사가 되어 있으면 그 아들 목사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존경을 하면서 그 가족에 대해서 마구 공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엇이 발동한 것입니까? 아도니야의 기질이 발동한 것이지요. 이것을 성경이 말해주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아도니야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벌하실 것이라' 하는 그것이었고 그 다음에 또 솔로몬의 얘기를 또 다시 들어봅니다.
24절을 봅시다. "나를 세워 내 부친 다윗의 위에 오르게 하시고 허락하신 말씀대로 나를 위하여 집을 세우신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아도니야는 오늘날 죽임을 당하리라 …"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 무엇을 지어드린 왕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집을 지어바친 왕이었습니다. 그 거대한 솔로몬 성전을 하나님 앞에 지어바친 그런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솔로몬은 그 거대한 성전을 하나님 앞에 지어 바치고서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지어 바쳤다고 하지 않습니다.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성전 짓기를 허락하셨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를 위하여 허락하신 말씀대로 내가 성전을 짓도록 살려주시고 재물도 주셨으니 이것은 나를 위한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 이 예배를 성공적으로 드리려 하시는 여러분이여, 하나님 앞에 성공적으로 드리면 곧 내게 유익이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려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만 곧 누구를 위한 것이냐? 받으시겠다는 하나님은 나를 위하여 받으시려 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갖다 바치라 한 것은 하나님께서 바치라 하셨지만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위한 것이었으며, 사르밧 땅의 과부에게 떡을 가져 오라 한 것 '하나님의 종 엘리야를 먹여 살려라' 한 것이겠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사르밧 과부를 위하여 엘리야를 보내셨던 것을 여러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헌신하고 찬양하고 우리가 헌금하고 모든 일을 주님 앞에 바쳐드리는데,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면 어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도 하나님의 큰 일을 감당하실 여러분이여,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시거든 나를 위하여 이 사명 주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혜를 주께서 쓰시려 하십니까?
재물을 쓰시려 하십니까?
여러분의 사회적인 명예와 권력을 하나님이 쓰시려 하십니까?
나는 주를 위하여 한다는 말 물론 하겠습니다만 '나는 주를 위하여 이 전을 지어바치리라' 하겠습니다만 그러나 솔로몬의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나를 위하여 주께서 받으시기로 하셨다는 것, 주님 앞에 바쳐두면 이 세상에 버리고 갈 것 잠시 사용하여 천국을 얻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겠다고 주의 날 주의 전에 오셔서 우리의 드리는 이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예배 받으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솔로몬의 아비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사울왕의 왕위가 폐위(廢位)된 줄 압니다. 자기가 왕이 되도록 사무엘을 통하여 기름부음 받았으니 자기는 왕의 자리를 향하여 가고 있음을 믿고 있었습니다. 사울 왕은 이미 폐위 되었고 이미 허수아비 왕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죽일 수 있는 자리에도 죽이지 못한 것은 하나님께서 한때 왕으로 세웠던 자이니 나와 내 부하가 이 사람을 죽이지 못할 것이라. 하나님께서 처리 하실지언정 나의 내 부하의 칼로서 이 왕을 죽이지 못 할 것이라."
그래서 사울왕을 죽이고 온 사람을 자기 부하로 삼지 아니하고 바로 죽여버린 것을 보게 됩니다. 그의 아버지는 폐위된 사울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한번 세운바가 있었던 사울왕이라 하여 그를 죽이지 못하는 아버지였고, 그 아버지의 아들 솔로몬은 자기 아버지의 아내 아비삭을 아름답고 처녀라 하여, 갖기를 원한다면 아도니야보다 왕권을 가지고 있는 솔로몬이 훨씬 더 취하고 싶었겠지요.
그러나 그 아비삭은 아무나 취할 수 있는 그런 여인이 아니라 자기 아비의 여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아비의 여자를 취한다는 것은 아비의 명예를 취하는 것이고, 아버지의 명예를 취한다는 것은 왕의 명예를 추락시키는 것이고, 왕의 명예를 추락시키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셨으니 하나님의 명예에 도전하는 것인즉 내가 이 사람을 죽이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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