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봉민근 사람은 고난 앞에 약하다. 고난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 예수님 앞에 소경의 소원은 눈을 뜨는 것이었다. 그들의 외침은 “보기를 원하나이다”였다. 불쌍히 여겨 달라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기도한다. 자신의 소원을 들어 달라는 기도다. 그렇다면 요셉의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노예에서 해방해 달라는 기도가 아니었을까? 그런 기도를 수도 없이 했을 것이다. 그는 기도하면 할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었다. 노예도 모자라 감옥에 갇히는 절망의 자리로 옮겨졌다. 하나님은 왜 그의 기도를 듣어주지 않으셨을까? 이유는 확실하다. 하나님의 계획이 계셨다. 기도한다고 모든 것을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구해야 들어주신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잊으면 기도하고도 절망하게 된다. 기도는 나의 소원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가 그러하셨다.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달라고 기도 하셨지만, 그러나 나의 원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기도하셨다. 믿음이란 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것이다. 내 뜻대로 안 된다고 원망하는 것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시시때때로 원망하는 것과 같다. 조금만 기다리고 기도하면 문제는 해결되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될 것을 사람들은 기도도 안 하고 조급해한다. 하나님께 모든 주권을 맡겨야 한다. 믿는 나는 이미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은 자다. 죽은 자가 무슨 원망이 있겠는가? 무슨 내 뜻이 있겠는가? 잠잠히 주님의 일하심을 바라보아야 한다. 주님의 때에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성경은 요셉이 원망했다는 말이 없다. 감옥 속에서도 잠잠히 주님의 때를 기다렸다. 그러기에 총리가 되어서도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형제를 용서할 수가 있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자.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