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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악! “제 아들 좀 잡아가주세요
강력반에 근무하는 형사들이 가장 입에 담기 꺼려하는 것은 바로 가족간에 일어나는 패륜사건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피를 나눈 가족이라는 점 때문이다. 특히 부모 자식 간에 발생하는 패륜살인은 사건의 참혹함을 넘어 한 집안의 비극인 탓에 사건의 전모를 밝혀낸 형사들조차 차마 거론하기 조심스럽다고 한다.
이번에 부천중부경찰서 강력2팀 손은호 팀장이 전하는 사건도 바로 그런 것으로, 자신의 어머니와 할머니를 살해한 것도 모자라 형과 아버지마저 살해하려했던 한 ‘무도한’ 청년에 대한 얘기다. 혈육을 상대로 끔찍한 패륜살인을 저지르고 스물세 살의 나이에 ‘사형수’가 된 청년은 한때 꿈 많고 전도유망했던 연극영화학도였다.
좀갚아달라니까요!
그 정도 해줬으면 됐지.
너도 양심이 있어야 할 것 아니냐.
감당이 안돼서 그래요. 한 번만 더 해줘요.
돈 무서운 줄 모르고 써대더니 꼴 좋다. 아버지가 알면 당장 난리난다.”
부모가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자식이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은 상관않고 자기 체면만 지키려는 거예요?”
언제 정신차릴래? 더이상은 안된다.
지난 2003년 6월 9일 밤 10시경, 부천시 원미구 원미동의 한 가정집에서는 한바탕 큰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카드빚을 갚아달라는 아들 김승민 씨(가명·22)와 그것을 거절하는 어머니(49) 간의 다툼이었다. 오랜만에 집에 들어온 아들 김 씨가 대뜸 카드빚 얘기를 꺼내니 어머니는 그간의 일들을 끄집어내며 김 씨를 나무라기 시작했고 야속한 마음에 김 씨는 온갖 행패를 부리며 떼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김 씨의 카드빚에 크게 데인 적이 있던 어머니에게는 통하지 않는 일이었다. 카드대금 문제를 놓고 모자간에 이처럼 심한 언쟁을 벌이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다음은 손 팀장의 얘기.
김승민은 유명대학 연극영화과 2학년을 마치고 휴학 중인 상태였다. 준수한 외모를 지니고 있던 김 씨는 그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훌륭한 연기자를 꿈꾸는 꿈 많은 연극영화학도였다. 문제는 김 씨의 헤픈 씀씀이 때문에 발생했다. 평소에도 씀씀이가 컸던 김 씨는 대학에 진학해 여자친구를 사귀면서 지출이 더욱 커졌다. 비싼 명품 의류를 구입하고 유흥비 등에 카드를 마구 긁어댔던 것이다. 여자친구에게 200만 원이 넘는 옷을 사주기도 하는 등 김 씨의 씀씀이에는 거침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 아들을 지켜보는 부모 마음이 편할 리 있었겠는가.”
헤픈 씀씀이와 카드대금 문제로 김 씨는 부모와 심한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김 씨는 자신을 나무라는 부모를 피해 몇 번이나 가출까지 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김 씨의 씀씀이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고 ‘돌려막기’와 ‘카드깡’으로 인해 카드값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게 됐다. 이어지는 손 팀장의 얘기.
학생신분으로 수입이 없었던 김 씨는 카드값을 감당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게 되고 보다 못한 김 씨의 아버지가 4000만 원에 달하는 카드연체금을 갚아주었다. 이 일이 있은 뒤로 김 씨와 부모의 갈등은 점점 깊어졌다. 그러나 김 씨는 그 후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또다시 카드를 긁어댔다. 당시 김승민의 카드연체금은 무려 8000만 원에 달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자 김 씨는 또다시 부모에게 카드대금을 갚아줄 것을 요구했던 것이었다. 이미 한 차례 대금을 갚아준 적이 있는 김 씨의 부모로서는 펄쩍 뛰고도 남을 일이 아니었겠나.”
김 씨가 카드를 만든 후 2년 동안 쓴 금액은 무려 1억 2000만 원에 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건 당일 김 씨는 카드대금을 갚아달라고 떼를 써댔으나 어머니의 태도는 완강했다. 자신을 호되게 나무라는 어머니의 태도에 분을 참지 못한 김 씨는 결국 순간적으로 끔찍한 범행을 결심하고 만다.
김 씨는 안방에 있는 어머니의 등 뒤로 다가가 왼팔로 목을 휘감아 졸랐다. 그리고 어머니를 넘어뜨린 후 베개로 얼굴을 눌러 살해하고 만다. 그리고 곧바로 작은방으로 가서 할머니(87)도 같은 방법으로 살해했다. 순식간에 두 명을 살해한 김 씨는 이미 제 정신이 아니었다. 자신에 의해 살해되어 널부러져 있는 어머니와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도 아무런 죄의식조차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식구들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그의 눈은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분노는 남은 가족을 상대로 한 끔찍한 범행으로 이어지게 된다. 다음은 손 팀장의 얘기.
얼마 후 친형이 귀가하는 소리가 들리자 김승민은 부엌에서 18cm길이의 부엌칼을 들고 현관문 옆에 숨어있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방으로 들어가려는 형에게 달려들었다. 얼마나 놀랐겠는가. 그는 형의 가슴과 어깨 부위를 무려 15차례나 찔러 살해하려했다. 갑작스런 동생의 칼부림에 김 씨의 형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다가 그 자리에서 많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하지만 김 씨의 칼부림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때마침 귀가하는 아버지의 인기척을 느낀 김 씨는 거실 형광등을 끈 뒤 부엌칼을 들고 문 옆에 숨어 아버지가 거실로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김 씨의 아버지가 집안에 들어선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아버지가 도망가려하자 다급해진 김 씨는 ‘빨리 들어오라. 안들어오면 형이 죽는다’며 아버지를 협박했다. 하지만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김 씨의 아버지는 그 길로 빠져나와 신고를 했다고 한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 김 씨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집에는 두 구의 시신 및 초죽음이 된 채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김 씨의 형이 쓰러져 있을 뿐이었다.
수사팀은 즉시 김 씨의 행방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김 씨의 동창 및 지인들을 상대로 탐문 수사를 벌인 수사팀은 김 씨가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와 또다른 내연녀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과 이메일을 통해 접촉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어지는 손 팀장의 얘기.
추적 결과 김승민은 부천과 인천 일대 PC방에서 거의 살고 있더라. 형사 16명이 300곳이 넘는 인근 PC방들을 이잡듯이 뒤지고 다녔다. 같은 PC방을 하루에 네 번씩 찾아가서 뒤질 정도였으니 형사들의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하지만 김 씨가 여러 곳의 PC방을 전전하고 다니는 것이 확인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당시 범행 직후 애인 등에게 보낸 김 씨의 이메일이 확인됐는데 그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다 죽일 수 있었는데 작업(살인)에 실패했다’ ‘형이랑 아버지까지 죽일 수 있었는데…’라는 메일은 눈으로 보고도 한동안 믿기 힘들었다. 뿐만 아니라 ‘나는 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다’며 경찰 추적을 비웃는 내용도 있었다.
김 씨는 위치추적이 되지 않도록 타인 인적사항으로 메일을 보내는가 하면 메일을 보내자마자 PC방을 뜨는 식으로 경찰 추적을 따돌리고 있었다. 휴대폰 위치추적과 IP추적 등의 기법을 이용하여 김 씨의 위치를 확인하고 가보면 이미 그는 자리를 뜬 상태였다. PC방에서도 그는 화장실 가는 척하며 나와 돈도 내지 않고 그냥 줄행랑을 쳤다.”
발품을 팔며 밤낮없이 뛰어다닌 지 6일째 되던 날 수사팀은 부천시 원미구의 한 PC방에서 자신의 범행기사를 검색하고 있는 김 씨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검거된 후에도 김 씨는 이렇다할 죄책감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가족을 상대로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태연한 태도로 일관했다는 것. “가족들을 왜 죽였느냐?”고 묻자 김 씨는 “진작 돈을 줬으면 됐을 것 아니냐”고 말해 수사팀을 경악케했다는 후문이다.
존속살인 및 살인미수 등으로 기소된 김 씨는 2004년 6월 대법원으로부터 사형을 확정받고 수감 중이다.
(옮김)